피그말리온

Pygmalion

1 그리스·로마 신화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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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와 결혼한 남자
인류 역사 최초이자 최고로 행복했던 피규어 오타쿠.[1]
인류 역사 최초로 살아있는 더치 와이프를 제작한 사람이며, 후세의 피규어 오타쿠들에게 영향을 크게 끼친 선구적인 인물과거덕후의 위엄

현실의 여성에게 환멸을 느껴 자기 이상형등신대 피규어인데 어떤 의미로는 3차원을 직접 제작하고, 여신의 힘으로 인간화된 그녀와 결혼하고 자식까지 둔 엄청난 인간. 외모가 어땠는지까지는 몰라도[2] 실로 덕후 로망의 결정판.

키프로스 섬에서 살았으며 직업은 조각가[3]로 상아로 여성들을 조각하였다. 어느날 프로포에티데스[4]의 "닥치고 매음"에 가까운 행위를 본 후 현실의 여성에 대해 흥미가 사라졌으나,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결국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피그말리온은 베누스(아프로디테) 신에게 '이 여인을 닮은 여자를 제 짝으로 내려주십시오'라고 기도를 올리자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말을 눈치껏 알아차리고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들은 결혼하고 자식까지 두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

참고로 조각상의 이름이 피그말리온이 아니다. 조각가의 이름이 피그말리온이다. 조각상의 이름은 거품의 요정을 의미하는 갈라테아. 혹은 갈라테이아.

실제 인간이 아닌 자동인형으로 만들었다는 변형도 있다. 더치 와이프?

피그말리온 이야기는 수많은 회화, 조각, 소설, 희곡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조각상이 인간이 된다는 아이디어도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재창조되었다. 여기서 나온 용어가 피그말리온 효과. 즉 한 대상에게 관심을 주고 격려해주면 실력이 없던 사람이 결국 실력이 상승한다는 효과다.

여담이지만 이 둘의 외손자가 테이아스이고, 그의 딸이 스미르나, 둘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바로 아도니스다. 3대를 못버티고 아프로디테에게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린 것. 외가니까 상관없나? 거기다 3대째 때문에 역관광당했으니... 사실 아프로디테와 연관되지 않았으면 피그말리온은 행복한 덕후라이프를 즐기다 갔을텐데...

여신의 축복으로 해피엔딩이 된 자들의 후손이라 해도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얄짤없는게 그리스 신화속 세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이야기.

2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위의 신화를 바탕으로 버나드 쇼가 1912년에 창작한 희곡. 1913년 초연되었다.

하층민 소녀인 일라이자 둘리틀을 음성학자 헨리 히긴스가 발음과 어투를 포함한 전반적인 태도를 교정하여 상류사회의 사교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문제들로 일라이자가 히긴스를 떠난다는 내용.

이 희곡은 입센의 <인형의 집>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히긴스가 일라이자의 태도와 발음 등을 교정한 것은 그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5] 때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라이자의 삶과 그녀의 장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안했었다. 즉, 히긴스에게 있어서 일라이자는 '살아있는 인형(living doll)'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내기가 자신의 승리로 끝나자 히긴스는 모든것이 끝났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일라이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히긴스에게 왜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되묻는다. 이는 그녀가 과거의 하류층 생활로 돌아갈 수도, 상류층 여성으로서 살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히긴스의 교육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지만, 그녀는 상류층 귀족여성의 언어를 구사하고 그에 따른 매너를 갖추게 되었을 뿐, 그녀가 할 줄 아는 일이나 지식수준 등은 과거와 차이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6] 하지만 히긴스는 이에 대해서 진중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그냥 예전처럼 자신의 집에서 자유롭게 살면 된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결국 일라이자는 히긴스의 슬리퍼[7]를 집어던지면서, 그를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떠난다.

이처럼 버나드 쇼는 <피그말리온>에서 본래 신화를 비틀어 버리고 신데렐라식 결말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지점은 갈라테아는 피그말리온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버나드 쇼의 후일담에서도 잘 드러난다. 갈라테아가 인간이 된 순간 이미 그녀는 그녀만의 의지를 지니게 되었고, 그녀 스스로 자신의 앞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 결국 <피그말리온>은 <인형의 집>처럼 근대적 자아의 각성을 이야기하는 셈이다.[8]

이 작품은 페미니즘적 관점으로도 자주 읽히곤 한다. 버나드 쇼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었고, 이는 그의 <워렌 부인의 직업>이나 <성녀 조앤>같은 그의 극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일라이자와 그녀의 아버지인 둘리틀을 통하여 당시 영국의 신분사회를 비판하는 모습을 읽기도 한다. 일라이자가 상류층 부인 행세를 하기 위해서 받는 교육은 어디까지나 언어와 매너 같이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즉, 그에 걸맞은 도덕이나 지식 같이 내적인 것들은 거의 습득받은 바가 없다. 특히 둘리틀[9]의 대사를 통하여 단순히 돈이 많은 것과 같은 물질적인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도덕과 희생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파하면서, 중산층의 도덕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가난한 하층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일라이자의 변화도 결국 중산층인 히긴스와 피커링 대령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둘리틀의 변화 역시도 히긴스가 그의 언변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지원해줌으로써 그가 유명해지고 부자가 될 수 있었다.

2.1 트라비아

이 작품은 버나드 쇼의 의도와는 다르게 히긴스와 일라이자의 로맨스로 오독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해피엔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10] 아니 히긴스는 40세, 일라이자는 18세인데... 중년남자가 거리에서 소녀를 데리고 와서 반 년간 자기 집에서 데리고 살면서 교육시키더니만 이제는 결혼을 한다고?

1914년 런던에서의 공연 당시, 버나드 쇼는 이 희곡을 고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었다. 당시 공연팀은 대사를 수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라이자가 부케를 던지는 장면을 결말에 삽입하여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식으로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해서 버나드 쇼는 '그 결말은 저주 받아 마땅하며 총살감'이라고 분개하였다. 결국 이후 책으로 출판하면서 장문의 후일담을 추가하여 왜 두 사람은 결별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했다.

이후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화화되었다. 먼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영화화되었는데, 버나드 쇼가 직접 각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절대 결말을 바꾸지 말 것을 계약서에 명시했었는데, 두 영화 모두 히긴스와 일라이나가 다시 만나는 형태의 해피엔딩으로 끝맺었다.
1938년 버나드 쇼가 직접 각색하여 영화화가 이루어진다. 버나드 쇼는 희곡의 대사를 그대로 살리면서, 희곡의 후일담 형식으로 새로운 결말을 추가한다. 이는 히긴스와 결별한 후 일라이나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스스로의 꽃집을 차려서 행복해하는 장면이었는데, 제작사에서는 흥행에 별로라고 생각했다. 로맨스 따위는 장식입니다. 제작사분들은 그걸 몰라요. 결국 감독은 새로운 결말 따윈 내다버리고는 엔딩에 히긴스와 일라이나가 재결합하는 장면을 추가한다. 거기다가 영화에는 맞지 않다고 대사도 수정이 가해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영화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193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Academy Award for Best Adapted Screenplay)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버나드 쇼는 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해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패는 받아서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고 한다.

1956년 브로드웨이에서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이름으로 뮤지컬화도 되었다. 본래 30년대부터 뮤지컬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버나드 쇼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그가 죽은 뒤에야 뮤지컬화되었다. 뮤지컬은 1938년 영화의 스토리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대사는 원작인 희곡의 대사를 거의 그대로 살려냈다.[11] 이 뮤지컬의 성공을 바탕으로 1958년 동명의 뮤지컬영화가 탄생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마이 페어 레이디 항목 참조.

3 트리니티 블러드의 등장인물 멜키오르 폰 노이만의 칭호

  1. 자세한건 아갈마토필리아 항목을 참조하자.
  2. 대부분의 그림이나 조각에서는모에화 제법 잘생긴 외모로 나오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신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란게 전쟁이 잦았던 시대인지라 당시 예술가나 기술자들은 대체로 전쟁터에 나가기엔 어딘가 부실한(...) 사람들이었기에병약 미소년 속성인가 그렇게까지 훤칠한 미청년은 아니었을 가능성도 높다.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로 묘사되는 것도 이 때문. 피그말리온이 예술가이자 이었다는 말도 있지만 다만 이것도 책에 따라선 왕은 아니고 그냥 조각가 청년이었다는 전승도 있는데다 일리아스 같은 걸 봐도 알겠지만 그 당시는 왕이 곧 군대 지휘관이었던 시대라서... 하지만 후손인 스미르나아도니스가 신급 미모로 유명한 걸 보면 피그말리온도 갈라테이아의 유전자를 훼손시키지 않을 정도의 외모는 되지 않았을까. 결론은 신화를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긴다. 무엇보다 왕이라고 해서 꼭 미남이리라는 보장이...
  3. 상술했듯이 을 겸업했다는 말도 있다. 외손자(스미르나의 아버지)가 시리아의 왕이 되어있는 걸 보면 피그말리온도 왕족이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4. 아프로디테의 숭배를 거절한 죄로 음란한 성격 치녀속성이 주어져 창부가 되었다가 후에 돌로 변신하였다.
  5. 히긴스는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기에 6개월 안에 일라이자를 공작부인처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고, 이를 놓고 피커링 대령과 내기를 벌인다.
  6. 일라이자가 히긴스에게 교육을 받을 때부터 히긴스의 어머니는 히긴스에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며 우려했었지만 히긴스는 이를 무시했었다.
  7. 일라이자는 히긴스에게 발음과 어투 등의 교정을 받으면서 일종의 시녀 생활을 하였다. 히긴스는 항상 자신의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놓았다가 나중에 욕설을 내뱉으며 슬리퍼를 찾았고 일라이자는 그런 슬리퍼를 정리하여 가져다 주었다.
  8. 물론 시대가 시대인만큼 <인형의 집>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작품이다. <인형의 집>의 노라는 인형처럼 집에서 지내다가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일라이자는 하층민의 삶과 상류사회 체험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깨달은 것이다.
  9. 극 초반에는 딸 일라이자의 몸값을 흥정하던 술주정뱅이였는데, 그 뛰어난 언변 때문에 극 후반에는 부자가 된다. 그런데 이를 기뻐하기 보다는 괴로워한다.
  10. 이하의 내용은 Derek McGovern의 "From Stage Play to Hybrid: Shaw’s Three Editions of Pygmalion"(2014)를 참조함.
  11. 버나드 쇼가 쓴 희곡의 대사 자체가 바로 노래가사로 써도 될 정도였기에 최대한 살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