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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간지[1]
그는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적인 기사도의 풍모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주윤발과의 첫 만남에 대한 오우삼의 회고
이름 | 주윤발(周潤發, 저우룬파), Chow Yun Fat |
출생 | 1955년 5월 18일, 영국령 홍콩 라마 섬 |
신체 | 185cm |
데뷔 | 1976년 영화 '투태' |
가족 | 배우자 진회련 |
영원한 따거
1 개요
홍콩 라마 섬 태생. 조상의 고향은 중국 광둥 성 카이핑(개평). 혈액형은 O형.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액션영화의 전성기를 가져온 아이콘격 배우로, 한국에서는 영웅본색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쌍권총 총격 액션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그 카리스마로 인해 '윤발이 형', '윤발 따거[2]' 등으로 불리운다.
한자로는 周潤發(중국 간자체로는 周润发).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북경어 발음표기는 저우룬파(Zhōu Rùnfā). 사실 광동어 발음으론 짜우연팟(Zau Jeon Faat)에 가까우나 국내 기자들은 보통화 발음을 고집한다. 그런데 이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한국의 '공식' 규정이므로 어쩔 수 없다.[3] 하여튼 주윤발의 경우 광동어 발음에서 따온 Chow Yun-Fat[4]이라는 표기가 통용되는 편이다.
TVB 연예인 훈련반 3기 출신으로 두기봉, 임영동, 오맹달, 임달화 등과 동기이다.
2 연기경력
1976년 오맹달(그 오맹달 맞다)과 함께 출연한 홍콩 RTHK의 드라마 "사자산하 (獅子山下)" 中
주윤발은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자라 중학교를 중퇴하고 상점 직원과 우편배달부 등의 일을 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1972년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영화 데뷔작은 1976년작 영화 투태. 그러다 1980년작인 드라마 상해탄이 인기를 끌면서 스타가 되었고, 이후 1984년에는 등대여명으로 대만 금마장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소오강호 드라마에서 영호충역을 한 것도 이 때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영웅본색을 위해 마크 역의 배우를 물색하던 오우삼 감독을 만나게 되는데, 오우삼 감독은 어느날 지역신문을 보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주윤발의 기사를 읽게 되었고 그를 만나보기로 한다. 그리고 오우삼은 주윤발과의 첫 대면에서 그를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에 잃어버린 의협과 기사도의 풍모가 느껴지는 사람이다."라고 평가하고 캐스팅하게 됐다고 한다. 1986년 개봉한 영웅본색은 그를 내수용 스타에서 단숨에 아시아의 톱스타로 발돋움시켜줬는데 사실 영웅본색에서 그는 정확히 말하면 주연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 스토리상의 진짜 주연은 장국영과 적룡.
허나 이 영화에서 주윤발은 으리의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연연하지 않는 비장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홍콩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홍콩 느와르 풍의 도시적 유혈액션이 강조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이후 '마지막 보이스카웃', '매트릭스' 등 수많은 헐리웃 영화에서 패러디하게 되는 멋진 쌍권총 액션을 보여주었고, 한국에서 썬글라스와 바바리 코트의 느와르식 패션과 담배 대신 성냥개비를 씹는 특유의 모습을 크게 유행시켰다.
이후 영웅본색의 속편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느와르 영화와 도신 시리즈 등 도박영화, 멜로영화, 코미디 영화 등 여러 장르의 영화에 다작으로 출연하였는데, 느와르식의 고독한 킬러 Badass 분위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풍부한 표정과 유머러스한 입담을 가지고 있는 연기파 배우로 '대장부일기', '장단각지연', '공자다정' 같은 영화에선 코미디 역할도 굉장히 잘 소화해낸다. 악역에도 도전했는데, 86년작 드라마 충열전기 양가장[5]에서 자존심 때문에 송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 신선 여동빈 역을, 87년작 영화 소생몽경혼(국내 개봉명은 몽경영웅)에선 처절할 정도로 찌질한 부패경찰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팬들에게 흑역사로 남았다.
이후 미국으로 진출한 절친한 오우삼 감독의 부름으로 1998년 리플레이먼스 킬러란 액션 느와르 영화에 출연해 헐리우드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데, 영어회화 능력의 부족으로 홍콩 영화에서의 유머러스한 입담을 살리지 못하고 과묵한 킬러 모습으로 등장해 이전보다 연기폭이 줄어든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그후 1999년 애나 앤드 킹, 커럽터에 출연했지만 큰 히트는 못쳤고, 그나마 2천년 개봉한 와호장룡이 북미권에서 대히트해 인지도는 넓혔지만, 이후 찍은 방탄승[6]은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부턴 캐리비안의 해적, 드래곤볼 에볼루션 등의 영화에서 조연을 주로 맡으며 헐리웃 영화 속에서 역할 비중이 확 줄게 되었다.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차라리 조연이 낫다 인터뷰에서도 "헐리우드는 나를 쌍권총 쏘는 살인기계로만 취급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주윤발은 사실 총기를 싫어한다고 밝힌 바 있는 평화주의자이다.
그럼에도 헐리우드를 떠나 홍콩에 완전히 복귀하지 않고 꽤 오래동안 왔다갔다해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당시 다작출연에 너무 질린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고[7] 중국 정부와 사상면에서 대립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평소 주윤발이 중국의 공산당 일당독재에 반대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가끔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오우삼의 중국복귀영화 적벽대전에서 주유역을 제안받았으나 하차했다. 적벽대전에서 하차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데, 유력한 설은 개런티 문제와 앞서 설명한 정치적인 문제, 또는 대본문제나 긴 촬영기간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 적벽대전은 촬영 직전까지도 대본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며, 예상 촬영기간도 무려 6개월이어서 대본과 긴 촬영기간 때문에 하차한 것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양조위도 대본과 촬영기간을 이유로 하차를 선언한 적이 있었고, 다시 복귀했지만 양조위는 결국 2008년 적벽대전 한 작품에만 매달려야 했다.
2010년 영화 공자의 공자역을 맡았고, 2012년 10월 조조: 황제의 반란[8]에서 조조역을 맡아 열연했다. 주윤발의 연기는 흠잡을데가 없지만, 영화 자체는 평이 썩...
3 개인사
삼국지에 나오는 주유의 직계후손이라고 한다.[9][10] 정확힌 주유의 후손으로 송나라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한 주응두의 후손이라고. 이 때문에 조상개그인지(...) 적벽대전에서 원래 제의받은 역할은 주윤발이 주유, 양조위가 제갈량이었는데 주윤발과 양조위가 동시 하차. 양조위는 오우삼 감독의 간곡한 요청으로 복귀했지만 이미 제갈량 역은 금성무가 캐스팅 되어버려서, 주윤발이 맡기로 한 주유를 연기하게 되었다.[11] 그리고 본인은 이후 자기 조상의 숙적이었던 조조를 연기하였다.(...)
1978년 무명 시절부터 사귄 TVB 시절 후배 여배우로 진옥련(陳玉蓮)[12]이 있었으나, 진옥련 모친의 교제 반대로 1982년 헤어지고 충격으로 가정용 세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진옥련이 병원에서 한동안 병간호를 했을 정도. 허나 결국 헤어졌고 이에 대해 주윤발은 훗날 "가슴 깊이 새겨둔 사랑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배우 여안안(余安安)과 결혼하였고,[13] 9개월 만에 이혼함으로서[14]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된적이 있다.따거의 흑역사 현재 아내는 80년대 중후반 결혼한 진회련으로 지금까지도 부부간 금슬은 좋은듯.# 다만 친자식은 없다. 1991년 진회련이 유산을 한번 한 이후[15] 아내의 충격과 건강을 염려해서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대신 입양한 양아들이 있는데 언론에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입양해 호주에 유학보냈다가 2010년 처음으로 양아들의 존재를 알려 화제를 모았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이 글 참조.
재산이 대략 13억 홍콩 달러(한화 2천여억원) 정도 된다고 하며, 죽은 뒤 자기 재산 중 99%를 사회산업에 기부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다만 재산은 추정치라 언론마다 왔다갔다하는 면은 있다. 그래도 엄청난 부자인건 확실하지만.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소가 몸에 배어있는지 매달 용돈으로 1000홍콩달러(한화로 대략 10만 5~6천원)를 아내에게 받아서 쓰고 있으며, 자신의 정확한 수입은 아내만이 알고 있다고 한다. 또 개인용 자동차가 없어서(...) 평소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이 글 참조.
4 트리비아
국내 최초의 외국인 CF모델[16]이며 1989년에 제작된 밀키스 CF에서 화물트럭 컨테이너로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간 뒤 "사랑해요 밀키스~"라고 외치는 광고가 방영되면서 이 문구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 광고가 히트한 덕인지 이후 왕조현, 소피 마르소 등 유명 외국인 배우들이 TV 광고에 출연하는 것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드래곤볼 에볼루션 촬영 중 박준형과 처음 만나서 한 말이 "사랑해요 밀키스~"였다고. 박준형이 한국인이며, 나이도 그 세대인 걸 알고 해준 팬 서비스. 그걸 계기로 꽤나 친해졌다고 한다.
80년대 홍콩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남자 배우 설문에서 2위에 뽑힌 적이 있다. 1위는 장국영.
중화권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들이 자상하다고 양조위와 함께 기내 매너남으로 뽑기도 했다. 반면 진본좌는 매의 눈으로 스튜어디스들을 스캔한다고 했다
브루스 윌리스와 견줄만큼 헤비스모커이지만 의외로 술에는 약해서 1~2잔 밖에 못 마신다고 한다.
장국영이나 유덕화, 장학우, 곽부성, 여명 등 대부분의 중화권 스타 연예인들처럼 가수 활동을 병행하진 않지만, 그래도 왕년에는 한 때 앨범도 몇장 내긴 했었다.
舊情人(구정인) 이라는 곡으로 일본 여가수 오오하시 준코(大橋純子)의 シルエットロマンス 라는 곡의 번안곡이다. 원곡
飛砂風中轉(비사풍중전)이라는 곡으로 영화 我在黑社會的日子(아재흑사회적일자)의 주제곡이다. 국내에선 '흑사회'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인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2005년에 개봉된 두기봉의 흑사회와는 전혀 다른 영화다.
이런 곡도 있는데 제목은 十二分十分吋(십이분십분촌)이라는 노래로, 당시 홍콩의 유행곡들을 짜집기로 메들리 해서 부른 곡이다. 썸네일만 보면 흑역사 같다
Epic Sax Guy? 왕조현, 엽천문과 합창한 大丈夫日記(대장부일기). 왕조현, 엽천문과 함께 출연한 동명 코미디 영화의 주제곡이다. 초원 감독이 자신의 1964년작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친구 오맹달이 왕년에 술과 여자, 도박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고 그로 인해 30만 홍콩달러의 도박 빚까지 져 삼합회의 협박에 시달리며 곤경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때 오맹달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윤발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주윤발은 "네가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라."라며 단칼에 거절했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오맹달은 주윤발을 원망하였으나, 후에 독한 마음으로 절치부심하며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마침내 모든 빚을 청산한 후에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일부러 돈을 주지 않은 주윤발의 진심을 깨닫고 주윤발과도 화해하게 된다. "만일 당시 주윤발이 돈을 주었다면 지금 나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완전히 폐인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이제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오맹달이 한 말이다.
두산 베어스 김진욱 감독이 선수 시절 이 배우와 얼굴이 흡사했다.
1980년대 쇼 비디오 쟈키의 코너 "도시의 천사들"에서 개그맨 한정호가 주윤발을 자칭하는 조폭역을 맡았다.
스트랭글홀드는 주윤발을 주연으로 한 게임이다.
2014년 10월 2일 홍콩의 한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홍콩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운동을 응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위에 상술했듯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에 반대하는 시각을 가진게 사실인듯. 이에 주윤발과 양조위, 유덕화 등 친시위대적인 발언을 한 홍콩 유명인 수십명의 중국 본토 활동을 금지시킨다는 말이 나오자, "그럼 돈을 조금 덜 벌면 그만"이라고 쿨하게 화답.12 오오 따거 오오 진정한 영웅본색 다만 세간의 인식과 달리(?) 중국 공산당측은 홍콩 문제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대내외에 주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지 주윤발, 유덕화나 양조위를 비롯한 친 시위파에게 직접적인 규제 조치를 취한 바는 없다고 한다. 이후 홍콩 영화에만 쭉 출연했지만 2016년 도성풍운 3로 중국 자본 영화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201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MAMA에 홍콩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상 시상자로 출연했다. 이후 싸이의 무대에서 말춤을 같이 춰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싸이는 어릴 적 주윤발의 팬이었다고 하며 이후 도성풍운 3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5 대표 출연작
5.1 드라마
국내 출시작은 볼드체. 주윤발의 드라마 출연은 과거 TVB 소속이었을 때가 전부. 본 항목에 기재된 드라마들은 주인공이나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한 장편 드라마에 한해 기록하였으며, 단막극이나 단역 출연 작품은 기재하지 않았다. 참고로 주윤발의 첫 드라마 출연은 1974년작 제소인연(啼笑姻緣)으로 엑스트라로 잠깐 나왔었다.
- 광조(狂潮, 1976)
- 강호소자(江湖小子, 1976)
- 대강남북(大江南北, 1976)
- 북두성(北斗星, 1976)
- 분투(奮鬥, 1978)
- 강인(強人, 1978)
- 대형(大亨, 1978)
- 망중인(網中人, 1979)
- 상해탄(上海灘, 1980)
- 친정(親情, 1980)
- 천왕군영회(千王羣英會, 1981)
- 악어담(鱷魚潭, 1981)
- 화봉황(火鳳凰, 1981)
- 전로(前路, 1981)
- 소걸아(蘇乞兒, 1982)
- 고성객(孤城客, 1982)
- 북두쌍웅(北斗雙雄, 1983)
- 천강재신(天降財神, 1983)
- 파음인(播音人, 1983)
- 소오강호(笑傲江湖, 1984)
- 대향항(大香港, 1985)
- 양가장(楊家將, 1985)
- 신찰사형속집(新紮師兄續集, 1985)
5.2 영화
- 호월적고사(胡越的故事, The Story of Woo Viet, 1981) [17]
- 순성마(巡城馬, 1981)
- 경성지연(傾城之戀, 1984)
- 등대여명(等待黎明, 1984)
- 홍콩연가(初一十五, 1985)
- 전로정전(癲佬正傳, 1986)
- 공처2인방(殺妻二人組, 1986)
- 로즈 (玫瑰的故事, 1986)
- 영웅본색(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 1986)
- 의개운천(義蓋雲天, 1986)
- 몽중인(夢中人, The Dream Lover,1986)[18]
- 강호정(江湖情, 1987)[19]
- 영웅본색 2(英雄本色II, 1987)
- 의본무언(義本無言, 1987)
- 감옥풍운(監獄風雲, Prison on Fire, 1987)[20]
- 강호정2 - 영웅호한(英雄好漢, 1987)
- 가을날의 동화(秋天的童話, 1987)[21]
- 용호풍운(龍虎風雲, City on Fire, 1987)[22]
- 정장추녀자 (精裝追女仔, The Romancing Star) [23]
- 강호용호투(江湖龍虎鬥, 1987)[24]
- 몽경영웅(小生夢驚魂, Scared Stiff,1987)[25]
- 대호출격(老虎出更, 1988)
- 팔성보희(八星報喜, 1988)
- 대장부일기(大丈夫日記, 1988)[26]
- 장단각지연(長短脚之戀, 1988)[27]
- 공자다정(公子多情, The Greatest Lover,1988)[28]
- 영웅본색 3 석양지가(英雄本色3夕陽之歌, 1989)[29]
- 도신(賭神, 1989)[30]
- 첩혈쌍웅(喋血雙雄, The Killer,1989)
- 타이거 맨(伴我闖天涯, 1989)
- 우견아랑(阿郎的故事, 1989)[31]
- 흑사회(我在黑社會的日子, 1989)
- 행운의 별(吉星拱照, 1990)
- 종횡사해(縱橫四海, Once a Thief, 1991)[32]
- 감옥풍운 2 도범(監獄風雲2逃犯, 1991)
- 첩혈쌍웅 2 - 첩혈속집(辣手神探, 1992)[33]
- 협도고비(俠盜高飛, 1992)[34]
- 사랑이야기(我愛扭紋柴, 1992)
- 화기소림(花旗少林, 1994)[35]
- 도신 2(賭神2, 1994)
- 화평본위(和平飯店, 1995) [36]
- 리플레이스먼트 킬러(The Replacement Killers, 1998)
- 커럽터(The Corruptor, 1999)
- 애나 & 킹(Anna and the King, 1999)
- 와호장룡(臥虎藏龍, 2000)
- 방탄승(防彈武僧, Bulletproof Monk, 2003)
- 황후화(滿城盡帶黃金甲, 2006)
- 캐리비안의 해적 3 - 세상의 끝에서(2006)
- 드래곤볼 에볼루션(2009)
- 공자(孔子, 2010)
- 조조 - 황제의 반란(銅雀台, 2012)
- 대상해(大上海, 2013)[37]
- 몽키킹: 손오공의 탄생(西遊記之大鬧天宮, 2014)
- 주윤발의 도성풍운(賭城風雲, 2014)
- 도성풍운 2(澳門風雲II, 2015)
- 도성풍운 3(澳門風雲III,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