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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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줄리 앤드루스 (Julie Andrews)
본명줄리아 엘리자베스 웰스 (Julia Elizabeth Wells)
국적영국
출생1935년 10월 1일, 잉글랜드 서리 윌튼 온 템즈
직업배우, 가수, 작가
활동1945년 – 현재 (무대)
1949년 – 현재 (스크린)
신장173cm
남편토니 월톤 (1959 – 1967)
블레이크 에드워즈 (1969 – 2010)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줄리 앤드루스
JULIE ANDREWS
분야영화
입성날짜1979년 10월 5일
위치6901 Hollywood Blvd.

목차

일생

영국 출신의 영화,뮤지컬 배우, 가수. 《사운드 오브 뮤직》, 《메리 포핀스》 등의 명연기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금까지도 명성을 가지고 있는 여배우다.

그녀의 어머니 바바라 워드 웰스는 에드워드 찰스 테드 웰스와 결혼했고 줄리는 테드 웰스를 아버지로 알고 자랐지만 나중에 그녀가 성인이 되었을때 어머니 바바라는 그녀의 생부가 따로 있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줄리 앤드루스는 이를 밝히지 않다가 2008년 자서전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바바라와 찰스는 잠시 이혼했다가 재결합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녀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의붓아버지인 찰스 테드 웰스로 런던콘 립맨 스쿨의 교사 릴리안 스타일스 알렌을 만나 레슨을 받으면서 그녀의 재능이 깨어나게 된다. 줄리는 릴리안을 제3의 부모라고 칭할정도로 그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냈고 릴리안 또한 회고록에서 줄리 앤드류스의 음악적 재능에 경탄했다고 밝혔다. 다만 릴리안은 줄리가 모차르트와 로시니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수 있다고 말했다지만 줄리는 한번도 그 곡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말해 오페라 가수가 되기를 바랬던 스승과는 다른 길을 가길 원했고 그대로 실행했다.

줄리가 선택한것은 바로 뮤지컬 배우의 길로 1945년부터 부모의 도움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무대 공연의 커리어를 쌓아나가다 1948년에는 BBC의 라디오,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뮤지컬 에피소드를 공연하기도 했다.

1954년, 그녀의 나이 19세때 영국 뮤지컬 "보이프랜드"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될때 줄리는 여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라 성공적으로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가운데 그녀는 보이프랜드 제작진과 맺은 계약이 만료될 무렵에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디션 제안을 받고 여주인공에 발탁되었다. 이때 그녀의 재능에 감탄한 리처드 로저스가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이 공동으로 제작한 TV 뮤지컬 "신데렐라"에 캐스팅했고 이것이 CBS에서 방영되어 1억이 넘는 미국인들이 이를 시청했다. 또한 1960년에는 뮤지컬 "카멜롯"에서 기네비어 왕비역으로 출연해 당시 신인이던 배우 리처드 버튼과 호흡을 맞췄다. 후에 리처드 버튼은 줄리를 피터 오툴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더불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였다고 회고할정도로 그 또한 줄리의 재능에 감탄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워너 브라더스를 통해 영화화 될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적으로 공연한 줄리가 주인공 물망에 올랐으나 잭 워너는 줄리가 영화 출연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 대신 오드리 헵번을 선택했다. 이때 마이 페어 레이디에 출연하지 못한 대신 그녀에게 찾아온 기회는 바로 디즈니가 기획하던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였다. 이 무렵 무대 연출가 토니 윌튼과 결혼해 딸 엠마 캐서린 윌튼을 임신중이던 그녀는 처음에는 메리 포핀스역 제안을 임신을 이유로 거절했으나 디즈니는 '이 역할에는 줄리 앤드류스가 가장 잘 어울린다'라면서 그녀가 영화에 출연할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결국 딸을 출산한 이후에 줄리는 디즈니의 요청을 받아들여 메리 포핀스에 출연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박을 치게 된다. 196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줄리는 사상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된다. 또한 골든 글러브 뮤지컬,코미디 부분 여우주연상도 수상했다. 여담이지만 디즈니 제작 영화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까지 한 배우는 줄리가 유일하다고 한다.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줄리는 자신을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탈락시킨 잭 위너를 향해서 "마지막으로 훌륭한 영화로 저를 인도해주신 미스터 잭 위너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5년, 줄리 사상 최고의 대표작이 될 영화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 그것이다. 메리 포핀스에서의 연기를 보고 감탄한 제작진이 그녀를 여주인공 마리아 폰 트랩역으로 캐스팅했는데 1965년 개봉 헐리우드 영화중 가장 큰 흥행수익을 기록했고 20세기 폭스사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흥행성적도 기록했다. 마리아 역으로 줄리는 골든 글러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2년 연속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2년 연속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아쉽게도 수상은 "달링"의 줄리 크리스티에게 넘겨주어 2년연속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이듬해 1966년에는 영화 "하와이"에 출연해 3연속 대박을 치게된다. 영화 "하와이"는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을 정도. 또한 폴 뉴먼과 함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토른 커튼"에 출연했으며, "모던 밀리"라는 영화에도 출연해 큰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지속된 줄리의 흥행신화는 이후 대대적인 흥행실패로 주춤거리게 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같이 호흡했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연출작인 거트루드 로렌스의 전기영화 "스타!"에 출연했으나 이 영화는 그녀 커리어에서 가장 큰 실패작이 되었다. 또한 록 허드슨과 호흡을 맞춘 "새벽의 출격"에도 출연했다.

이 무렵에 그녀는 첫남편인 토니 윌튼과 이혼한 후, 새벽의 출격을 연출하고, 후일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대박을 치게 되는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와 재혼한다. 에드워즈도 이혼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둘은 이후 오랫동안 해로하다가 2010년 에드워즈가 사망하면서 사별하게 된다.

1970년대 줄리는 몇몇 영화에 출연해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지만 60년대의 흥행에 비교하면 못미치는 상업적 실패를 기록해 한동안 영화에선 침체를 면치 못했다. 대신 TV에는 자주 출연해 연기 커리어를 이어나갔고 1982년 "빅터/빅토리아"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이 영화는 빅터와 빅토리아라는 두 얼굴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배역으로 제임스 가너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로 그녀는 오랫만에 세번째 골든 글러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도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수상은 캐서린 햅번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이후에도 그녀는 TV와 뮤지컬, 영화등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1997년 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목소리가 쉬는 일로 인해 뉴욕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만 이 수술이 잘못되어서 4옥타브를 오가던 그녀는 고음 발성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당초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 의사들은 6주만 지나면 원래대로 목소리가 돌아올것이라 장담했으나 2년이 지나도록 목소리는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분노한 그녀는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을 의료사고로 고소했다. 그녀는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메사추세츠 주립 병원의 스티븐 S 제이텔즈에게 수술과 치료를 받아 목소리를 회복할수 있었으나 과거와 같은 고음은 부를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는 계속 연기를 이어나갔고 2001년 그녀는 "프린세스 다이어리"에 출연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이듬해의 "프린세스 다이어리2 로얄 웨딩"에도 출연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 메리 포핀스때를 생각하며 디즈니 관련 일들을 하게 되었고 2004년 슈렉2에서 릴리안 왕비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이후 속편인 슈렉3,슈렉 포에버에도 같은 역으로 출연했다.

현재는 1997년의 의료 사고로 인해서 뮤지컬 공연이나 노래는 하지 못하고 있고 대신 연기나 나레이션등을 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음악상 시상자로 나섰는데 그녀에게 헌정하는 공연을 레이디 가가가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 문화예술 공헌을 인정받아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기사작위를 수여받고 "데임" 칭호를 받게 된다. 또한 2002년에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에서 59위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