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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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지연의》는 원형인 삼국지평화 등의 이전 작품에 비해서 사서 내용을 상당히 많이 참고해서 반영했지만, 어쨌든 역사서가 아니라 군담 소설이므로 흥미를 끌기 위한 과장이나 각색 등이 많이 덧붙었다. 그리고 소설의 중심 이야기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축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활약했건 삽질했건간에 묻혀서 인상이 약해진다. 더구나 당대의 주요 사서인 《정사 삼국지》가 조위정통론을 따르는 반면, 이 소설에서는 유비가 주인공이고 촉한정통론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정사 삼국지》와는 다르게 취급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민중에게 어필하기 위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런 띄워주기와 낮추기는 당시 민중의 생각과 큰 연관이 있다. 이전에 나온 삼국지평화와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도 있으며, 나관중의 개인적인 취향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전사(戰死)"에 대해서는 피해인가 아닌가를 좀 고민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재중동포 작가 리동혁은 《삼국지가 울고있네》라는 책에서 고대 군담소설에서는 장수가 전사로 목숨을 잃는 것을 오히려 명예롭게 보았다고 쓰고 있다.

2

조조 휘하의 책사들은 너프를 좀 당한 편이지만 다만 곽가는 예외다. 또한 제갈량을 상대한 장수들은 주로 너프를 당한 편이다.

2.1 곽회

정사에서 한번씩 촉나라 인물들에게 털리지만(...) 사마의가 중용할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있고, 후방을 추스르고 이민족들의 관리 등의 전투 보조적인 일에 더 뛰어나고 진태, 등애 등을 기용하여 그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최적의 전술을 찾아내는 능력도 뛰어났다. 더블어 강유를 잘 파악해서 북벌을 막은 명장. 화려한 장수라기보다는 견실한 타입의 장수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사마의가 중용할 식견은 연의에서 안 나오고 제갈량을 까다가 장포에게 산으로 도망가는 추태를 저지르고(...) 근데 장포는 이것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 함정 강유를 무작정 추격하다가 머리에 화살에 맞아 과다출혈으로 사망했다. 그나마 진태 등의 조언를 듣고 최적의 전술을 찾아내는 능력을 보이지만.

2.2 마균

정사에서 보여준 공돌이로서의 면모는 부각되지 않고, 여러 실용적인 발명 전적들은 모두 빠져 궁궐 개축이나 거대 동상 제작을 감독하면서 조예의 불로장생 망상을 부추기는 엉뚱한 역할로 변형되었다. 원융노 개량 등도 구상에 그친 데다가 원융노는 소설상 늦게 등장하기 때문에 시기를 놓쳤고 발석차 개량은 한참 전인 관도전에서 유엽이 가져간다.

2.3 만총

원소군 잔당이 집결했던 여남을 격파하고, 오의 침공을 몇 번이나 물먹이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거기에 태위, 군사도독을 역임하였고 식읍만 1만 호에 가까웠음에도 개인적으로 재산을 모으지 않는 청렴결백함을 보였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조조에게 몸을 맡기고 있던 유비에게 공손찬이 원소에게 멸망했다는 사실을 알리러 온 것이나 형주 공방전 당시 우금의 대패로 낙심한 조인에게 절대 항복하지 말라고 주장한 것과 오와 동맹을 맺으러 간 것을 제외한다면 등장 자체가 거의 없다. 더 억울한 것은 만총 항목에는 삼국지연의의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정작 이 항목에는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2.4 사환

하북 평정 마지막까지 종군하고 열후에 봉해져 자연사한 인물이 연의에선 원상과 싸우다 거짓퇴각에 속아 전사한다. 물론 상기된 대로 전사로 각색된 최후 자체는 논의의 여지가 있겠으나, 이 킬마크로 교만해진 원상이 자기 무력을 과대평가하다가 장료에게 깨지고 달아나는 내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원씨 집안의 용렬함을 강조할 목적을 띄고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억울한 케이스.

2.5 서황

관우를 띄워주기 위하여 뜬금없이 안량에게 도전했다가 일기토로 패한다던가 동관에서 마초와 싸우다 달아나는 등 은근히 굴욕이 많다. 실제 정사에서는 대 원소전, 마초전에 활약을 해서 적의 장수를 잡거나, 뒤를 쳐서 패퇴시키는 장면들이 나오지 본인이 지고 도망가는 장면은 단연코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허구.

한중전에서는 조조가 길잡이로 붙여준 왕평이 옳은 말로 간언하는 걸 공연히 무시했다가 패해놓고 찌질하게 왕평만 갈구고, 빡친 왕평이 강 건너가 촉에 항복해버리는 모습으로 나온다. 당연히 왕평과의 일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일화가 아니다. 그리고 나관중 특유의 장수는 전사해야 제맛이라는 이유 때문에 맹달에게 헤드샷 당하고 사망한다. 실제 사망원인은 노환이며 사망시기도 이미 사마의가 맹달을 치러가기 이전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황은 한번도 진 적이 없다 정사에서 서황은 전투를 무지하게 잘해서 조조로부터 주아부의 품격을 가진 명장이라는 더 이상 추켜세울 수 없을 때까지 추켜세워진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연의에서는 이것도 빼버렸다. 다만 판본에 따라서는 서황이 관우를 격파했을 때 조조가 나중에 도착해서 서황의 진지를 둘러보고 "역시 서공명(서황의 자)에겐 주아부의 품격이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래도 이문열은 이것을 차용해서 다행이다.

번성전투때는 실제로 관우가 번성을 공격하던 당시 그 지역 위의 군사 상황이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풍전등화같은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관우가 기세를 타고 번성을 접수했으면 그 뒤의 삼국의 운명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위기의 상황을 완벽하게 역전시킨게 서황이며, 번성전투는 장료의 합비전, 장합의 가정전에 버금가는 서황의 인생전투다. 지략을 이용하여 요화와 관평이 세웠던 10중 녹각을 완벽히 파괴하고, 이후 관우와의 일전에서도 거의 발라버렸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결국 번성에서 패한 관우는 이후 오의 계책에 형주를 잃고, 사로잡혀 죽임을 당한다. 이러한 이유때문인지 실제로 장료와 함께 관우와는 막역한 인물이었음에도 연의에선 나관중의 분노를 사서 많이 폄하되게 나오는듯하다. 정사에서 서황우금, 장합, 장료, 악진과 함께 오자양장이라고 불리며 위나라의 오대장격으로 실렸지만, 연의를 거치면서 버프를 받은 장료에 비하여 서황은 그 공적이 더하면 더했지, 모자람이 없었음에도 많이 애매한 B급 장수처럼 폄하된 경향이 너무 크다.

2.6 손례

정사에서는 양주지역의 수문장으로 활약하고 조예과 함께 사냥중에 호랑이를 만나 칼을 꺼낼 정도의 용장이었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발음이 비슷한 이유로 서량의 지사로 나오고, 곽회과 같이 세트로 제갈량에게 매일 털리는 잡장A로 격하되었다, 특히 진창전에서 화공을 준비하려다가 제갈량이 "이몸이 화계의 달인인데, 감히 화계로 나에게 대항하다니"하고 역화공을 당한다.(...)

그나마 무력은 상향되어 호랑이를 칼로 죽이는 상향을 받았지만, 호랑이보다 강한 메리 수 관흥, 장포에게 털리는 것을 보면 상향이 아니긴 하다.(...)

2.7 순유

군략에서 최고의 업적을 쌓은 책사인데 인지도가 곽가한테 밀린다.

정사에서 순욱, 가후와 함께 최고의 문신으로 엮이는 반면, 연의와 기타 창작물에서는 곽가한테 밀린다. 자신의 공적이나 혹은 다 함께 이뤄낸 계책을 곽가 혼자서 독차지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창작물에서 곽가가 이렇게 띄어진 반면, 정작 순유는 배송지가 곽가와 같은 선으로 분류한 정욱과 비슷한 수준으로 묘사된다. 정욱은 늙어서 뭔가 존재감이라도 있는 경우는 있는데, 순유는 작품에 따라서는 순욱 때문에 존재감 자체도 없다.

게다가 정사에서 조조가 위왕 되기전에 죽었고[1] 위왕에 대해 찬성한 인물인데, 연의에서는 위왕 반대했단 이유로 조조에게 "니 삼촌과 같은 꼴당하고 싶냐?!"라고 협박당해 충격으로 병사하는 것으로 나온다.

2.8 왕랑

제갈량에게 편지 한번 보냈다가[2] 작가에게 찍혀서 인격 자체가 바뀐 경우다. 연의에서의 왕랑의 이미지란 손책한테 깨진 후[3]에 그저 존재감을 상실했다가 늘그막에 재등장하여 북벌 온 제갈량에게 "이빨까기 배틀"을 신청했다가 그저 자폭[4]하고는 죽어버리는 평생 발리는 안습한 인생으로 나온다. 앞에서 말했지만 사실 존재감 자체가 없으며, 손책에게 깨진 왕랑과 제갈량에게 죽은 왕랑이 동일 인물인지도 관심을 받지 못한다. 몇 번 더 나와봤자 '조조의 딸랑딸랑' 1, 2, 3 정도의 존재로 조조에게 아부를 떨거나 헌제를 협박하는 잔챙이 악역이나 맡는다.

김홍신 평역판 삼국지 한정으로 화흠의 눈짓을 알아채고 헌제의 멱살을 잡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대의 태위 양사의 제자이자, 경전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잠시 도겸 밑에 머물렀으나 곧 회계태수로 부임했다. 손책에게 패하여 달아난 것은 맞으나 연의 같은 자존심만 남은 골목대장이라서 맞선 것이 아니라, 한실의 신료로서 임지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다는 의지 때문에 맞섰다. 이후 잠시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손책에게 포로로 잡혔다. 기록에 따르면 "손책은 왕랑이 교양이 있고 곧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문책만 했을 뿐 죽이지는 않았다. 왕랑은 비록 유랑과 곤궁한 생활을 하여 아침에도 그날 저녁 걱정을 해야하는 처지였음에도 친척과 친구를 포용하여 위로하고,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항상 나누어 도의에 바탕을 둔 행동이 매우 빛났다"고 되어 있다.

이후 조조가 초빙하여 수년간 산 넘고 물 건넌 끝에 간신히 관료 생활을 시작한다. 비슷한 직위에 있던 종요와 비교했을 때, 종요는 깐깐한 원리원칙주의자로 명성이 있었다면, 왕랑은 가능하면 죄를 적게 주고 융통성 있는 너그러운 인물로 통했다.[5] 이후 벼슬을 사공과 사도를 지냈으며 낙양의 자택에서 천수를 누리고 228년에 사망했다. 자식이 열후에 봉해졌을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이 해가 바로 1차 북벌이 있던 해였기에 나관중은 이를 십분 활용하여 촉한 띄우기에 왕랑을 써먹었던 것이다. 어쨌든 결국 연의에선 손책과 제갈량에게 두 번 죽은 셈이 되어 버렸다. 또한 전설의 엄백호와 친구라는 동인설정까지 붙어버렸으니

연의에선 칼춤을 추며 태사자와 맞짱을 떴다는 구절 때문에 더욱 수상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그 실력이면 편지로 제갈량의 성질을 건드리기보다는 직접 나서서 제갈량과 1:1 일기토를 신청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고생하고 나이를 먹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사실은 전부 훼이크고, 나관중은 고도의 왕랑빠라 카더라

2.9 왕필

정사에서는 조조가 직접 유능하다고 하거나 그가 죽자 분노할 정도의 인물이었는데, 연의에서는 술을 좋아하는 무능한 관리로 나왔다.

2.10 이통

남양 일대 중소호족에서 시작해 여남까지 세력을 구축했다. 그 후 조조에게 귀부했다. 그 후 많은 전투에서 참가해 많은 큰 공을 세웠다고 나온다. 동관전투 중에 병사했다.

근데 나관중은 이런 인물이 맘에 안 들었는지 엑스트라로 나오고 마초에게 바로 사망한다. 그것도 우금장합(?) 등이 먼저 나갔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지 혼자 독단으로 뛰쳐나가 싸우다 사망한 걸로 묘사해놨다. 지못미.

그래서인지 몰라도, 최훈삼국전투기에선 병에 걸려 허약해진 상태에서 마초를 상대하다가 결국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그렸다.

2.11 우금

정사에서는 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장이며 관도대전에는 무장 중에서는 가장 많은 활약링크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연의에서는 그저 공기취급도 아니고 병× 되어버렸다.(…) 링크에 있는 관도대전의 활약이 모두 잘렸으며 번성전투에서도 방덕이 부장으로 나와서[6] 방덕이 관우를 잡으려는 걸 공훈에 욕심내서 방해[7]하는 것으로 나온다. 항복장면도 실제로는 한수가 범람해서 피할 데가 없자 정줄 놓고 항복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연의에서는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는 등 더 비참한 모습으로 나온다.

찌질한 쪽은 조비다. 정작 유비의 부하였지만 퇴로가 끊겨 조비에 투항한 황권은 우대했으면서… 이에 대해서는 우금 항목에 더 자세하게 있다. 하기사 잘 생겼다고 태수를 주는 조비의 취향이라 이런 점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것이다.

항복 장면뿐만 아니라 청주 태수로 억지로 임명돼서 청주로 향하는 유종과 채부인을 조조의 명을 받고 죽이는 장면 때문에 악당의 똘마니같은 모습도 추가되었다.

이러한 그의 안습행보는, 그의 상대가 삼국지 최고의 아이돌(...)이었기에 대비효과가 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홍수맞아 진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2.12 유복

조조의 문관. 200년 여남의 이술이 반란을 일으키고 수춘이 함락당하자 조조가 그를 양주자사로 임명해 합비로 보냈다. 거기에서 여남의 이술뇌박의 무리들이 치고 박고 하는데 여강의 주민들이 피해를 입으니까 뇌박의 무리들을 설득하고 합비에서 있게 되었다. 더블어 합비에 학교 건설, 둔전, 제방과 관개의 정비, 합비의 성벽 강화 등으로 공훈을 올렸다. 적벽대전이 끝나고 합비 공방전이 시작되지 않을 때에 사망했지만. 오나라가 합비에 꼬라질을 하게 하는 원흉이다. 오나라의 진정한 숙적.

하지만 연의에서는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술잔치를 벌여서 취했던 조조가 자신의 심기을 불편하게 했다고 죽여버렸다. 이후 잘못을 뉘우치고 장례를 후하게 치뤄주긴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 이렇게 따지면 본래 수명보다 적게 살아버린 셈이 된다. 지못미.

2.13 장간

정사에서는 조조의 문신이자 당대의 거상출신으로 재주와 말솜씨가 뛰어났다. 장간은 적벽 전투에서 패배한 조조가 209년 주유가 귀순하도록 설득하라는 명을 받고, 주유를 귀순시키려고 하지만, 주유는 손권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강조하였고, 장간은 웃으며 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조에게 돌아온 장간은 주유를 칭찬하며 말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본의도 아니게 희대의 이중간첩이 되었다.(...) 해당 항목 참고.

2.14 장합

정사에서의 모습은 뛰어난 전략가형 장수인데도 이상하게 멧돼지처럼 한자루 꼬나쥐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장수로 나온다. 그나마도 전투력 측정기화 돼 버렸다. 인간흉기급의 장비, 장료일기토로 맞짱을 뜨기도 했고 한수에서는 뜬금없이 마초에게 1:1로 싸움을 걸었다가 캐발리고 도망쳤다. 장판파에서는 유선을 품고 가던 조운의 앞길을 막아서는 임팩트 있는 악역을 맡았으나 페널티가 있는 조운을 잡지 못하고 놓쳐 버렸다. 조운띄워주기.

장비와의 전투도 장합이 조홍에게 "장비 그까이꺼 뭐가 무섭답니까?"라며 내가 지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코웃음치고 군령장 쓰고 나간 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정사대로 지긴 하지만, 그랬다고 조홍에게 두 번이나 목이 베일 뻔 한다.(…) 곽회야 편들어줘서 고마워.

제갈량의 1차 북벌을 막아낸 공은 사마의가 가져간다. 가정전투 자체는 그대로 묘사했지만 이것이 사마의의 통솔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마의의 입장은 장안에서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고 있던 정도였다. 조진이 끙끙대다가 조정에 지원군을 불렀는데, 이 소식을 장합이 들고 왔다. 이 때 사마의가 "우리가 이겼으면 촉군은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졌다면 물러났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전했고, 진짜 그렇게 돼서 조진을 빡치게 한다. 욕나올 상황이다. 실제로라니!! 실제로라니!!! 이런 개나발!

제갈량이 사마의를 꾀어내어 죽이기 위해 목문도(木門道)에 함정을 파 놓은 것을, 그 대신 추격하다 사망[8]하였고 이를 본 공명은 '오늘은 말(여기서 말은 사마의의 성에 있는 司馬에서 딴 의미)을 잡으려고 했는데 노루(장합의 성인 張과 獐의 음이 일치한다. 여기서 장은 노루)를 잡았구나'라고 말하였다. 사마의가 한사코 추격을 말리는데 괜히 공명심에 들떠 우격다짐으로 출병했다가 끔살.

실제로는 사마의가 추격을 명령하였고, 당시에는 경험 많은 역전의 장수인 장합이 불길하다며 추격하지 말 것을 주장하다 어쩔 수 없이 출격한 것이다. 연의에서 공명을 띄워주다보니 숙적인 사마의를 띄워주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15 조인

조씨 일족 중에 조조의 세력확대에 공헌을 했던 무장. 적벽에서 대패한 조조가 형주 방면의 수비를 그에게 맡기고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조조 진영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 가능하게 해준다. 주유를 상대로 1년이 넘도록 강릉에서 수비전을 펼치는 등 나이가 들수록 강해졌다. 이 당시 전투에서 소수의 아군이 적 대군에게 포위 당하자 몸소 수십기를 이끌고 적 포위망을 교란시키며 병사들을 구출해냈다. 용맹함과 근면함과 침착함을 두루 갖춘 위나라의 에이스. 결국 이 싸움은 졌지만[9] 그 외에는 패배한 일이 거의 없다.

연의의 이미지 때문에 조인의 위상이나 공적이 어느 정도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다음의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관우, 장비에 비교해도 꿇릴 게 없는 삼국시대 최고의 무장 중 하나. 장료 정도로는 비벼보기도 힘든 위나라 원탑 에이스.

물론 연의에서는 그런 거 없이 엄청 깨지고 맨날 진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서서유비 측에서 처음 활약한 전투인 신야 전투[10]라든가, 백하 전투 등이 있다.

그리고 예형이 조조의 부하들을 까댈 때 "조자효는 인색하니 요전태수(돈에 환장한 태수)라고 하면 되겠다."라고 했는데 오히려 조인은 청렴하고 검소한 인물이었다. 진짜로 인색하고 돈에 환장한 작자는 조홍으로 조자효가 아니라 조자렴이라고 해야 옳다.

삼국에서는 유비와 같이 재평가를 받아서 조조의 주력무장으로 나온다. 아예 허저와 같이 조조군 장수로서의 독점으로 인해 다른 무장들은 병풍이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하후돈이 여기선 병풍으로 전락한다. 괜찮아 관우하고 붙었잖아. 뭐 사실 하후돈은 그저 인격만 좋은 장수였으니...

2.16 종요

정사에서 혜서체로 유명한 서예가이면서 정치가로 유명했다. 또한 정치뿐만 아니라 여러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활약 대부분이 삭제되고, 마초의 관동 대거병에 장안을 뺏기는 무능한 문관으로 격하되었다. 아들인 종회도 피해자인데, 종요 본인도 피해자라서 부자 모두 피해를 본 셈.

2.17 종회

수혜자 항목에 버젓이 올라와 있었던 양반이 웬 피해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당 항목에서의 주장들은 출처도 아직 불확실한 상태고, 현재 최소한 확인 가능한 모종강본 삼국지연의에서는 피해자 맞다.

모종강 판본에서 종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사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종회에 대해 불리한 서술이 좀 있다. 제갈량의 제사를 지낸것은 제갈량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제갈량의 혼령이 큰 바람을 일으키고 고스트(?) 병사들을 지휘하여 종회군을 공격하게 하는 이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며[11], 등애를 모함한 내용은 정사에도 있지만, 연의에서는 단순한 야심이 아닌, 등애가 큰 공을 세운 것에 대한 질투였으므로 좀 더 찌질하게 보인다. 게다가 반란 내내 강유의 꼬드김에 휘둘리는 호구스러운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종회가 혜강에게 누명의 씌워 죽인 악행은 연의에서 잘려나가긴 했는데... 그냥 나관중이 이쪽으로 관심이 없었을 뿐, 의도적으로 쉴드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2.18 조진

조진이 세운 대부분의 전공은 사마의에게 먹히고 조진 자신은 잉여인간이 되어버렸다. 이름 그대로 연의에서의 이미지를 조진케이스.

실제로는 생전에 제갈량의 북벌을 제법 막아내었다. 북벌에서 제갈량의 가장 깔끔한 패배라 할 수 있는 진창 전투에서 학소를 남겨둔 것은 조진이었다. 반면 연의에서 조진은 제갈량-사마의에 미치지 못하는 삼류 도독으로 등장하며 작중 내내 당하기만 하는 역할이고 내기[12]에 연연하는 무능한 지휘관으로 묘사되더니, 마지막엔 제갈량으로부터 받은 모욕적인 편지를 읽고 나서 화를 참지 못하고 그냥 죽어버린다. 물론 이건 100% 뻥이고, 실제로는 낙양에서 병사했다. 이는 연의의 소설적 재미를 위해서 사마의를 제갈량의 맞상대인 최종보스로 포장하기 위해 피해를 본 케이스라 하겠다. 조진보다는 덜하긴 하지만 곽회도 그 자신보다는 주로 사마의에 의해 움직여서 성과를 얻은 걸로 표현된다.

단 연의에서도 완전히 무능하고 3류 도독만은 아닌 게, 왕랑하후무가 공명에게 깨지자 실전 경험이 풍부한 장군으로써 공명을 막을 상대로 자신을 추천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공명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지 않으려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고, 병중에 공명이 진창을 함락하자 병에 걸린 몸에도 위를 위해 사마의에게 대도독의 인수를 넘겨주는 등 좋은 이미지도 보이기는 한다. 왕랑의 말처럼 사마의를 제외하고는 위의 장수 중에서 그나마 공명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장군으로 일단 연의에서도 설정상 유능한 장군인 듯하나[13] 문제는 공명에게 계속 깨지니 그 설정이 전혀 의미가 없다.

이전 문서에선 가정 전투도 조진이 다 했다는 서술이 있었는데, 명제기와 장합전을 보면 장합을 파견한건 조예였으며, 그때 조진은 조운에게 낚여 가정 선점을 내주고 미현에서 방어하고 있었다. 조예의 조치와 장합의 캐리를 왜 조진의 공으로 넘겼는지 의문.

또한 2차 북벌 또한 무조건 조진이 막았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 제갈량의 결정적인 퇴각 요인은 그 때도 역시 조예의 조치에 의한 장합의 구원 이었다. 애초에 형주에서 사마의를 돕던 장합이 낙양까지 끌려와 다시 서부전선으로 파견된 이유는 조진이 학소로 막고 비요를 파견하고서도 형세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학소를 선택한 조진의 혜안이나, 10배 이상의 병력차를 극복한 학소의 방어를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결정적으로 전투를 끝낸 조예, 장합[14]을 깡그리 무시하고 무조건 이게 다 조진의 공이다. 조진은 피해자.식으로 퉁치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할 부분.

2.19 주령

이 사람이 왜 피해자냐고 하기 쉽지만 이 사람은 정사에선 제법 오랫동안 조조를 섬기면서 여러 전투에서 부장급으로 참여한 성실노력파 베테랑이다. 그 명성은 서황에 버금갔다고, 흠좀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조비 때는 고당후로 봉해지기까지 했고, 처음 임관했을 때부터 조조에게 별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았지만 나중엔 조조가 다른 무장들에게 "니들은 왜 주령만도 못하냐?!"라고 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근데 정작 연의에서는 노초와 함께 유비를 지원하러 갔다가 병사는 못 돌려받고 돌아오는 병력셔틀바보가 되었다. 근데 이것도 아예 조조한테 목이 날아가는 삼국보단 나을지도.

2.20 한호

정사에서는 하후돈의 부관으로 여포에게 인질로 잡힌 하후돈을 구출하는데도 활약한다. 무엇보다 둔전제의 시행에도 기여하는 등 괜찮은 공적을 세운 장수로 나온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뜬금없이 한현의 동생으로 나와 황충에게 끔살당한다.

2.21 하후무

정사나 연의에서 모두 까는 인간이 웬 피해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사에서의 무능함은 주변 인물의 평가에 그치고 실제 행동은 별로 없었던 반면, 연의에서는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나선다거나, 삽질로 훌륭한 인재를 적 편으로 만드는 등, 그 무능함을 아예 실천한다. 특히 정사에서는 동생들의 막장 행각을 꾸짖을 만큼 적어도 인간성은 그나마 조금 나았을 수도 있었는데 연의는 그딴거 없다.

3

3.1 간손미

참고로 간손미 드립의 경우 사실 상 이말년씨리즈의 영향이지 연의의 영향은 아니다.

행정 및 외교 방면에서 활약한 촉 개국공신들. 입촉 후에는 그에 걸맞은 높은 대우를 받았으며 특히 미축은 지위만 따지면 제갈량보다도 높았다. 거기다가 연의 때문에 미축을 그냥 평범한 부자 문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실제로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는 무인이기도 했다. 장난 아니라 진짜 정사에 이렇게 적혀있다.

3.1.1 간옹

유비와 동향이자 친구. 누구랑 비슷한데? 유비가 거병한 이후로 그의 막료로 활약했다. 유비의 신하들 중에서는 전체 다 따져서 관우, 장비와 함께 최고참.

익주 정벌 시절 간옹이 유장에게 사자로 나서자 유장이 그를 보고 매우 아꼈다. 후에 유비가 성도를 포위하자 간옹을 보내 유장을 잘 설득해서 항복시켰고, 간옹은 소덕장군(昭德將軍)에 임명되었다. 익주가 평정되자 대우를 이적, 손건 등과 동등하게 우대받았다.

3.1.2 손건

유비의 대표적 외교 막료

유비가 조조를 배신하고 손건을 외교 사자로 보내 원소와 관계를 맺게 하였는데 유비군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외교를 실수없이 잘 성취했다. 또한 유비가 원소에게서 벗어날 때 미축과 함께 유표에게 사자로서 향했고 이 외교 또한 깔끔하게 성취했다.

유비가 형주에 이르자 간옹, 미축과 함께 종사중랑(從事中郞)이 되었다. 유표는 원상에게 편지를 보내 원상과 원담의 항쟁에 대해서 유비, 손건 등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만큼 유표는 손건을 우대하고 인정하였다.

3.1.3 미축

문관형 인물로 알려져있으나 말과 활솜씨에 능했던 문무겸비의 인물.[15]

집안 대대로 서주에 근거지를 둔 유지로써, 엄청난 재산을 소유했음에도 행실이 겸손하고 인덕이 넘쳤다는 평이 자자하여 도겸이 그의 덕행을 듣고 불러 문관 벼슬을 내려 등용하였다.

유비가 도겸에게 양도를 받아 그를 이어 서주를 통치하게 되었을 때 미축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 근거지가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던 시절부터 유비의 장래성을 높게 평가했는지, 서주를 상실하고 도주하는 유비를 대대로 서주지역의 유지였음에도 끝까지 따라가면서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중앙 권력에 조조측 인물로 입신양명할 뻔하였는데 서주에 자자한 미축의 명성을 들은 조조가 태산군의 일부 현을 갈라내 영군을 설치하면서 당시 편장군을 지내던 미축본인을 영군태수로 임명하기도 하였다.[16] 하지만 이를 사양하며 유비를 따라 서주를 떠났고, 이로써 그의 중앙 권력에서 입신양명은 없던 일이 되었다.

3.2 오의

강인하면서도 자애로왔던 장군으로 눈부신 무용은 없지만 통솔력이 뛰어나 적은 군사로 많은 병력을 제압했고 좀처럼 위기에 빠지지 않았던 무장으로 황제의 의붓 외삼촌으로서 북벌에 종사했고 거기장군까지 역임한 거물이었지만 위연과 양계에서 함께 위장 곽회비요를 격파한 전공을 연의에서 강유에게 빼앗기고 유비유장이 다스리는 촉을 공격할 당시 장임의 부장으로 나와서, 장임의 계략에 따라 유인된 장비를 장임과 같이 양쪽에서 협공해 장비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때마침 구하려고 달려온 조운에 의해 사로 잡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안습. 비록 장임과 같이 둘이서 달려든 것이지만 혼자서 만 명을 이긴다는 천하의 맹장 장비를 그 두 명만이서 수세로 몰아넣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무예실력이 있는 편으로 인정되는 점이 위안이랄까...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사후 조운, 위연과 견줄만한 무장에 황실 외척이었으나 연의에 묘사되지 않아 존재감 없는 무장으로 전락했다.

3.3 왕보

정사에서는 이릉대전에서 전사하는 걸로 나오지만, 연의에서는 맥성이 함락되는 시점에서 관우의 죽음을 알게 되어 자결한다.

3.4 왕평

정사에서는 오호대장군, 오의, 위연, 장억, 마충, 강유 등과 더불어 촉한 최고의 용장으로 꼽힐만한 인물이지만 연의 내에서는 조운 사후 촉한 최고의 무장을 위연으로 만들어버리고 위연의 반골의 상을 운운하느라 후기 최고의 명장을 전혀 묘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왕평이 가다가 하평으로 이름이 바뀌기 때문에 거의 정사 삼국지 그대로 묘사한 위연을 제압한 장면에서도 왕평이 하평인 줄 사람들이 몰라서 그나마 있는 공적이 잊혀지기도... 게다가 이때 위연을 무력화시킨 것은 왕평이지만 결국 죽인 것은 마대라서 왕평보다 마대가 위연의 난을 묘사할 때 더욱 기억난다…

다만, 연의를 유심히 보면 왕평이 뺀질나게 많이 나온다. 남만정벌에서 북벌까지 꽤 많이 나오고 꽤나 통찰력있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일화도 나름대로 있다. 문제는 일기토씬같은 임팩트있는 이벤트가 별로 없고, 일기토를 해도 장합같은 강자거나 위연을 제압할 때처럼 거짓퇴각을 밥 먹듯이 하기 때문에 무력이 강조될 리가... 그래도 제갈량이 죽기 전에 믿을 만한 장수로 지명됐지만 그때도 제갈량의 후계자 강유가 비중이 훨씬 더 많았다. 실제로는 왕평이 죽을때까지도 별 지분이 없던 강유가 위연 사후의 비중을 다 가져갔으며 촉이 위나라에게 이긴 가장 큰 전투인 낙곡대전이 짤리면서 부장급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 한다.

왕평이 이렇게 묘사된 것에 대해서 후반기의 비중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마대에게 묻힌 것은 굴욕. 사실 왕평의 활약이 묻히는 건 마대를 비롯해 관흥, 장포 등 당대에 활약하지도 않은 인물들이 지나치게 크게 활약하고 다니다 보니까 손해보는 면이 크다.

아니 무엇보다 최대의 전공인 낙곡대전이 연의에서 안나오는 것이 큰 피해가 아닌가? 아무튼 문맹이라서 나관중에게 무시당한 왕평 지못미.

3.5 위연

제갈량X맨, 내부의 적이라는 이미지. 하지만 실제로는 위연이 아니라 양의가 이 포지션인데 연의에서는 어쩐 일인지 모든 덤탱이를 위연이 쓰고 있다. 안습. 실제로 주변인물들과의 관계가 껄끄럽기도 했지만 유래가 없는 "반골의 상"에서부터 제갈량의 수명연장기도를 방해한 점까지, 연의에서는 시종일관 한결같이 제갈량을 태클하는 인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반역의 의도는 없다 하더라도 제갈량의 군령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건 명백한 사실이고, 정사에 따르면 왕평사자후 한방에 군사가 흩어져 버려 맞이해 버린 최후는 원술의 꿀물 드립이 무색할 정도의 찌질한 죽음. 오히려 누가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 라고 패기있게 외치다가 죽는 모습이 멋있을 정도다. 반골의 상 드립을 위연의 죽음을 포장하기 위한 재료라고 보아도 이상하지 않다. 양의 역시 단지 위연과 사이가 나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수혜자가 되었다.

또한 제갈량의 공적들이 연의에서 많이 구체화되고 포장되면서, 그 일선에 선봉을 많이 섰던 위연 역시 그 덕을 많이 보았기에, 전장에서의 업적 면에서는 실제 정사에서보다 많은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연의에서 위연이 활약하는 부분은 위연 자체를 띄워주기 보다는 제갈량이 위연을 잘 사용하는 걸 보여주는 장치에 불과하다. 정말로 위연이 혜택을 봤다면 정사의 활약과 연의의 위연의 활약을 비교해 보면서 후자의 경우가 대단하다고 느껴야하는데 연의를 읽은 독자들이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위에 왕평과 같은 이유로 관흥, 장포 같은 2세대 장수들이 활개치고 다니다보니 위연이 연의에서 묻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3.6 진식

정사에서는 무도와 음평을 점령하고 곽회를 이기는 활약을 했는데, 연의에서는 당하는 장면만 나온다. 한중 전투에서 무모하게 덤비다가 하후상에게 포로로 잡히질 않나, 제갈량의 북벌에서도 말을 무시하고 홀로 움직이려는 위연에게 동조했다가 크게 패하고 돌아온 뒤 제갈량앞에서 위연 때문에 패한 것이라고 변명하자 요참형을 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3.7 장억, 마충

장수 모두 주위의 이민족들을 잘 다스린 명장들이다. 장억의 경우, 그 지역에서 그에 관한 전설과 송덕비까지 있을 정도이고, 마충 또한 그가 죽자 그를 기리는 묘당이 만들어져 해마다 장사가 지내졌다고 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뛰어난 장수들이였다. 허나 연의에서는 이민족들에 대한 내용이 많이 축소되었기에 이들의 이러한 공적들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는 딱히 크게 연의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장수 모두 제갈량의 남만 정벌에서 축융부인에게 일기토에 세트로 패해 사로잡히는 꼴을 당한다. 더구나 장억은 그나마 강유를 구하다 전사하는 장렬한 최후를 맞지만 마충은 노환으로 죽었는지 어느 순간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다만 참여하지 않았던 제갈량의 북벌에도 부장들로 참전하는 건 좀 미묘하다.

애초에 세트로 피해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피해받은 것의 증거가 아닌지... 다행히 삼국지 조운장억전에서는 주인공급(…) 버프를 받긴 했다. 물론 장억 혼자만 버프을 먹었지만.

3.8 초주

정사에서는 정치적, 학문적으로도 실적을 쌓았으며, 시류와 현실에도 어둡지 않은 유능한 인물로 나왔으며, 제갈량의 북벌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갈량이 죽었을 때 먼저 달려간 사람은 초주였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항복을 주장했지만 이는 무조건 항복이 아니었으며, 협상을 통해 유선의 안위문제 및 성도의 치안문제 등을 해결하였다. 어차피 항복 외에는 별 방법이 없었으며, 항복하자는 행동도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초주를 매국노라 욕하는 건 너무 심한 평가다. 정치적 스탠스 자체가 연의십자포화를 맞기 딱 좋은 위치여서, 연의에서는 그저 제갈량 북벌 반대론자에 항복주의자로 나왔다.

다만 마지막 순간만이 아니라 시종일관 부정적인 발언을 하고 틈만 나면 "항복해야", "전쟁은 하지 말아야"만 주장했던 것은 역사적으로도 사실이다. 위나라가 공격해 오기 전에도 이미 왜 반역죄로 처벌받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의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천명은 위나라에 있다거나, 유비의 이름자인 '비'는 준비한다는 뜻이고 유선의 이름자인 '선'은 바친다는 뜻이니 촉나라를 위나라에 바쳐질 운명이라는 등등. 판단은 알아서 할 것. 또한 정사의 저자인 진수스승인 만큼 정사에서의 묘사를 참고할 때도 어느 정도 필터링이 필요하다.

3.9 요화

사료 부족으로 인한 대표적 피해 사례. 이보시오 나관중 양반 내가 황건적이라니!!

연의에서 미부인과 감부인에게 황건적 잔당을 끌고 다니면 유비의 이름이 더러워진다면서 거절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하지만 요화는 양양군 중려현 사람으로 집안은 면수 남쪽에서 대대로 고관을 지낸 가문출신이었고. 과거에는 형주에서 관직 생활을 했는데 관우가 죽고 형주가 함락될 때 오에 포로로 잡혔다가 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을 가장하여 감시의 시선을 피했으며[17] 노모를 모시고 밤낮으로 달려 오를 탈출해 때마침 오를 치기위해 자귀로 나온 유비군에 합류하였다.

거기장군, 영병주자사, 중향후에 임명되는 등, 분명 촉한 군부의 중신이었지만 기록이 미비하여 열전을 남기지 못했고, 종예전이나 곽회전, 강유전 등의 말미에 더부살이로 약간의 기록만이 남아 있어 그나마 황건적 잔당으로 라도 해서 어느 정도 연의로 얻은 인지도에 비해 알려진 정사의 내용은 매우 미비한 인물이다. 다만 촉한의 마지막 중진으로서의 노익장의 이미지는 높은 편이다.

3.10 사인

물론 관우랑 사이가 안 좋은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는 임지인 공안을 지키려고 했던 장수였고 배신자로 인해 오나라 군대가 공안을 포위하자 어쩔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항복했다. 그래서 우번은 이는 휼병[18]이니 사인을 남군으로 데리고 가야 하고 공안성을 수비해야 하니 여몽이 사인을 공안에서 끌어내고 남군으로 데레갔다. 진짜 배신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손권과 내통하고 있었던 미방. 이후 사인이 어찌되었는지 기록은 없다.

근데 연의에서는 이걸 반대로 뒤집는 바람에 오히려 미방이 항복을 고민하는데 사인이 옆에서 부추겨서 항복한 것으로 바꾸어 놓고 이릉대전에 유비군에게 끔살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 역사상 사인의 기록이 이후엔 적혀있지도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캐안습.공명전에서는 아주 비굴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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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나라쪽 인물들의 경우 삼국정립 이후에는 육손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삼국정립 이후에도 상당 부분 그렇다. 연의의 초점이 조조-유비, 제갈량-사마의에 맞춰져 있어 공적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어버렸기 때문. 같은 이유로 오를 주로 상대했던 위나라 인물들 역시도 피해를 입었다.

4.1 노숙

등장 당시 대범하게 손책군에게 군량을 내 주는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제갈량주유 사이에 끼어서 어리버리한 모습만 보여주거나, 손건과 비슷한 메신저 역할로만 등장하는 등 어딘가 빵셔틀스러워진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주유가 죽이려 하면 제갈량이 말빨로 압도하는 상황에서, 노숙은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도 모자라 양쪽에게 까이기까지 한다.[19]

그렇다고 인격적으로 온전하게 성실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주유가 계책으로 채모, 장윤을 제거했을 때, 제갈량은 자신이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주유에게 알리지 말것을 노숙에게 부탁하였지만, 노숙은 다 일러바친다.(...) 익양대치 부분도 오히려 노숙이 관우를 초대한 것으로 변하면서 정사와 바뀌었다. 물론 온전한 연회가 아닌, 병사를 매복한 것이므로 정인군자의 이미지도 날려먹었다.

그러나 정사노숙주유와 함께 오나라 중심으로 장강 이남을 통일하여 조조의 세력에 대항한다는 웅대한 천하이분계획[20]을 수행하던 주축이었으며, 형주문제로 관우와 대립할 때도 관우를 압박하는 등 절대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또한 관우와 대립하면서도 유비 세력과의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강온 양면에서 활약한 인물이었다.

주유노숙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오나라 내에서 유비 세력과의 연합을 의문시하는 세력이 힘을 얻고 설상가상으로 관우가 오나라의 쌀창고를 털어먹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로 인해 오나라의 역습과 관우 사냥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다. 확실히 손권은 노숙이 살아 있을 당시에도 노숙과 제갈근번갈아 갈구면서(…) 형주 받아오라고 징징댔다.

하지만 등장 초반에서는 역할이 많다. 손책(주유라고도 한다.)에게 군량을 내 주는 모습[21]을 비롯해, 막 군주가 된 손권에게 대의를 설파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삼국에서는 유비, 조인처럼 재평가를 받아서 셔틀이미지을 벗어나간다. 게다가 "촉나라에는 유비, 제갈량이 있다면 에는 조조, 사마의, 에는 노숙이 있다."라는 말이 생겼다. 순욱 지못미.

그리고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제갈량은 립서비스로나마 노숙의 지휘 능력을 칭찬한 적이 있다. "길에 매복하거나 관문을 지키는 건 노숙이고[22] 강에서의 수중전은 주유다"라는 말 자체만 보면 노숙이 오나라의 지상전 에이스... 까지는 아니라도 나름 스페셜리스트로 평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당시 상황은 정말로 제갈량이 노숙의 지상전 실력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니들은 수중전 아니면 지상전밖에 할 줄 모르지만 나는 올라운드다."라는식의 자뻑+도발에 가깝다.

4.2 반장

관우를 생포해서 관우의 죽음에 일조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3]

연의에서는 이릉대전 초기에 패하고 민가집으로 도망갔다가 관우의 원혼을 만나 놀란 상황에서 관흥에게 사망하는 굴욕[24]을 당하지만 실제는 달라도 너무 다른데, 이릉대전에서 육손과 함께 를 지켜낸 구국의 영웅 중 하나로 유비군 격퇴에 공을 세우고 이후 위나라와의 전쟁 때 하후상과 맞서는 등 활약하다가 234년에 사망한다. 실제로는 능력은 있었으나 포악하고 부하의 물품을 뺏고 살해하는 등 인성에는 문제가 있는 인물이었다.

아마도 관우를 생포한 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복수를 위해 출전한 유비군까지 개박살내었고, 그러면서도 저자 본인이 중시한 인간성조차 나쁜 인물(즉 똥별)이었기에 나관중정사를 완전히 왜곡하고서라도 저런 안습한 최후를 안겨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능력상으로도 반장은 나름대로 문과 무를 겸비했으며 무예의 분야에서는 반장이 이끄는 병력은 일당백이 된다는 기록이 있고 두뇌적인 분야에 있어서 반장은 시장을 열면 시장이 번창한다는 기록이 있다.

막장스런 인간성 때문에 사고를 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나 그때마다 손권이 옛 공을 들어 커버해 줘서 실제 역사에서는 제 명에 살다 죽었다지만, 손권이 아낀것은 어디까지나 그 능력일 뿐 반장이란 인물 자체를 아낀건 아니라 최고위직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4.3 반준

부사인과 함께 관우를 배신하고 형주여몽에게 넘긴 반역자 취급을 받는 인물. 연의에서는 왕보가 "(손권군에게서 형주를 방어할 때, 후방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그는 사리(私利)에 밝은 인물이므로 중용해서는 안 됩니다. 조루를 보내 지키도록 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며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반준미방이나 부사인처럼 바로 배신한 것이 아니라 사로잡힌 후 황권이나 황충처럼 절의를 지키며 끝까지 버티다가 손권이 직접 찾아와 위로를 해주자 귀순했으며 그 후에는 육손과 함께 형주 무창의 수비를 맡고 후일 손권황제에 오르자 시중의 자리까지 오른다.

하지만 촉나라 양희가 쓴 계한보신찬에서는 미방, 사인, 학보와 함께 세상을 구제하려는 뜻이 없고 의 웃음거리가 됐다며 마구 씹혔다. 이것으로 보면 반준에 대한 반역자 취급은 이미 당시 촉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던 모냥. 하긴 습진이 끝까지 저항하다가 자살한 것과 비교해보면 그의 행동은 촉나라 사람들로선 까고 또 깔 짓이겠지만...

일단 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말에 신빙성이 부족하다.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우번이 항장인 우금이나 미방은 대차게 깠음에도 반준은 깐 전적이 없고 후에 손권의 총애를 받는 간신 여일이 승상 고옹을 감금하거나 하면서 횡포를 저지를 때 혼자 매일매일 암군이 된 손권에게 강경하게 진언하고 심지어 관리들과 공모해 스스로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여일을 죽이려하여 결국에는 정신차린 손권이 여일을 처형시키게 만들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었다.

이에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양희와는 달리 반준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항상 국가의 대사를 논하였다.라며 높게 평가하였다.

4.4 보즐

오의 승상 중에서 한 명인데 그냥 장소, 고옹과 세트로 까이는 일만 하는 놈으로 나온다.[25] 거기다가 그냥 문관으로 나와서 승상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말년에 손패를 지지해서 욕을 먹어서 그런 것 같다. 동오의 승상들이 연의의 대표적인 피해자들이다. 안습. 존재 자체가 해로운 애들은 제외하면

4.5 손견

주인공 보정을 위해 희생된 케이스

정사에서는 천하용장으로 알려진 명장이다. 각지 반란을 진압한 공적을 올리고, 반동탁 연합전에서 초전에 서영에게 털렸지만, 양인 전투에서 부장 화웅을 참살하는 등 크게 승리해 동탁이 손견라는 이름에 겁을 먹었고, 낙양를 무력으로 탈환한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반동탁 연합전에서 초전에서 이기긴하나 정사에서 수급A에 불과한 화웅에게 크게 털리고, 동탁이 여포가 유관장 형제에게 털려서 낙양을 태우고 그대로 버려서 먼저 무혈입성해서 옥새를 도둑질하는 먹튀 캐릭터가 되었다.(...) 게다가 옥새를 먹퉈한 소식을 들은 원소에게 "내가 옥새를 가지고 있으면 화살들이 내 몸을 박히게 된다고" 말하다가 유표을 공격할 때 여공에게 유인당해 정말로 화살에 온 몸이 박혀죽는다.(...) 덤으로 정사에서 황제 행세를 하고 다녔던 유표에게 역적 소리듣는 것도 안습.

다만 이부분은 주인공인 유관장의 활약이 없다는 점으로 볼때 주인공인 유관장 삼형제으로 인해 피해를 봐다고 할수 있다.

실제 배송지에서 손견이 옥새를 발견했다고 한 것을 기록이 이상한다고 반박하고, 원술에게 한실을 중시하자고 진언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한실에 충성하는 충신은 맞다.

다만 수혜받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원술의 휘하로 나오지 않고 동등한 군벌로 나온 것이라는 점. 그러나 옥새 도둑놈 타이틀을 얻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게 수혜인지 알 수가 없다.

확실히 손견은 피해자가 맞다. 주유과 비교하면 주유는 인품이 너프되지만 능력이 상향되고, 손견은 인품, 능력 모두가 손해를 받았다.

4.6 송겸

이릉대전까지 종군하는 장수인데, 연의에서는 이전에게 죽었다. 안습. 나름 숙장에 속하는 장수지만 사실 정사에서도 존재감이 아예 없다. 진도와 비고하면 오십보백보.

4.7 엄준, 고옹, 낙통, 설종

연의에서 제갈량에게 설전으로 패한 것으로 인해 무능한 문관처럼 나왔다. 특히 엄준은 제갈량이 엄준과 친해지고 싶다고 정사에 나왔는데. 연의에서는 그런것 없다. 호구 왔는가.

4.8 여몽

관우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따라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덕분에 연의에서는 관우의 귀신에게 빙의당하고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한다. 게다가 죽을 때에도 나는 관우다!라고 했다니 이건 뭐.(…) 나관중 등 관우 신봉자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는지 연의에서는 괄목상대의 일화도 없고,[26] 형주 공략 때 세운 계략이 연의에서는 육손의 계략으로 나오는 등 전공이 축소되었으며, 정사에서 보이는 좋은 일화들이 연의에서는 많이 삭제되어 있다.[27]

게다가 관우 사후의 에피소드는 조조의 죽음에서부터 뭔가 쑥덕거릴 여지가 많았기 때문에 당대의 민간설화도 엄청나게 많다. 지병이 도져 급사한 것을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화려하게(?) 연출한 것. 물론 지병을 앓고 있었어도 형주를 공략할 당시까지만 해도 업무수행은 가능할 정도였는데 관우를 죽이자마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었던 만큼 정말 저주를 받은걸로 비칠수 있긴 했다.

이러한 서술 때문에 여몽의 후예인 여씨 집안 사람이 관우사당에 들어가면 관우의 원혼에 의해 즉사한다는 미신이 생겨났으며, 임진왜란 이후로 명나라에 의해 조선에 관우신앙이 퍼져 관우사당이 곳곳에서 생겨난 이후로 조선에서도 이런 미신이 성하였다고 한다.[28] 장비가 선조로 환생한 거면 그렇게 겁쟁이처럼 도망가지는 않았을텐데...

실제로 중일전쟁 당시 관우를 상당히 존경했던 일본군 장교가 난징에 소재한 여몽의 묘를 훼손하기까지 한 사실이 있다.[29] 그만큼 연의에서는 여몽을 매우 천하의 개쌍놈 수준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리고 명성황후임오군란 때 군인들을 피해 도망다닐 때 관우 귀신이 씌웠다는 무당을 만난 일화도 있다. 그 무당이 여씨 집안을 관우를 죽인 여몽의 후예라고 저주하는 신탁을 내려서 안 그래도 소론이라 비좁았던 여씨 집안의 등용길이 막혀버렸다고.(…)

참고로 이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은 선례 중 하나. 아니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1,700년전 조상이 한 행동을 1,700년도 더 지난 뒤의 후손에게 따지는 건 뭔 짓거리란 말인가. 이것은 명성황후에 대한 민심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일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4.9 여범

연의에서는 손책이 강남을 평정하던 시절에 여범이 잠시 등장하지만 이후로는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2대에 걸쳐 손가에 충성하고 여러 공을 세운 인물이지만 연의에서 부각되는 손가의 인물은 군사분야에서는 주유, 노숙, 정치 및 외교분야에서는 장소와 제갈근 정도(…). 정사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군을 이끌고 손가의 주요 전투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대사마에 오를 정도로 지휘관으로써의 능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연의에서 이러한 모습은 거의 묻혔고 문관으로써의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어 삼국지연의의 피해자가 되었다.

4.10 육항

육손의 아들로 연의나 정사에서 오나라 마지막 명장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연의에서는 서릉 전투는 양호의 입으로 언급되어서 처리되었다고 넘어간다고 해도 손호에게 군권을 박탈당하고 유배에 처했다는 것은 완벽한 피해를 봤다.

실제로 육항은 대호족이라 손호가 육항에게 아무런 핍박도 하지않을더러 그에게 덤비지 않았다.

4.11 잠혼

정사에서는 그냥 간신이었지만 연의에서는 환관, 즉 고자가 되었다.(…) 그러나 한 짓거리가 한 짓거리라 동정은 못 받는다. 불쌍하지도 않다. 악행의 대가를 소설에서 그대로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4.12 제갈근

제갈량의 형이었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경우.

연의에서는 실속 없는 외교를 하는 사람으로 나오지만, 제갈근이 나올 때 쯤에는 이미 상황이 개판 5분 전인 상태였다. 형주 반환문제는 양쪽다 양보할수 없는 상황이었고, 제갈근과 노숙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가며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릉전투 때는 이미 유비의 꼭지가 돌아가다 못해 뽑혀있는 상태였으니, 이 전쟁은 제갈근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한 나라의 No.2 를 죽이고 주요거점을 빼았아 가놓고 외교로 어떻게 될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바보짓. 도리어 이 사람조차 쓰고도 실패했다고 봐야 할 정도로 오나라 입장에선 최후의 외교카드 중 하나였다. 제갈근은 한 국가의 외교관으로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는 외교 전문가이며, 그 동시에 정무에도 뛰어난 문관이자, 동시에 무관으로서는 공을 세우기 위하여 적들에게 피해를 많이 입히는 것보다는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훌륭한 무관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적을 만들지 않고 모두에게 온후하게 대하는 훌륭한 정치인이기까지 했다. 비록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이 사람도 엄청난 인물인 것은 확실하며 대장군과 동시에 중요한 요직인 예주목과 좌도호를 겸임한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4.13 주연

대부분이 피해자인 오나라의 대도독 중에서도 연의 최고의 피해자.

주치의 양자로,[30] 손권의 학우이며, 문무 겸장에, 대륙의 중심인 형주의 중심인 강릉을 철벽같이 지켜낸 자로써, 위의 문빙( 항복 후, 강하를 30년동안 지켜낸다.)과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수문장 병사들이 대부분 병에 걸려, 싸울 수 있는 자가 5천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황, 장합, 하후상, 조진이 이끄는 위의 대군을 맞이하여 강릉을 6개월간 지켜내 는 강릉 함락에 실패하지만 연의에서는 이릉에서 패주하는 유비를 추격하다가 갑툭튀조운에게 끔살당한다. 문제는 이릉전투가 일어난 것은 222년인데 실제 주연이 사망한 연도는 249년.[31](…) 주연은 연의에서 그를 죽인 조운보다도 20년이나 더 오래 살았는데, 소설적 재미를 위한 조운 띄워주기라고 하기에는 죽은 시기가 너무 이르다. 아마도 관우의 죽음과 관련해서 피해를 본 거라고 할 수 있는 케이스.

정사에서는 오나라 최고의 문무겸장 겸 중진 중 한 명으로, 심지어 관직은 좌대사마, 우군사[32]까지 오른다.

반장과 함께 관우를 생포한 공으로 관직을 제수받았고 3대 도독인 여몽이 죽기 전에 자기 후임으로 주연을 추천한 것도 있고 하여[33] 나관중의 미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판본에 따라서는 그냥 조운에게 당해서 쓰러졌다고만 나오지 죽었다고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역지사지로 한다면 오히려 "조운이 장판교에서 아두를 구하다가 서황에게 목을 베였다."라고 서술한 것과 비슷하다. 아니면 관우화웅 에게 목이 따였다고 서술한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아들인 주적도 대도독인데, 아버지가 빨리 죽어서 아예 나오지 않는다. 진짜 나관중에게 너 고소를 시전해야할 정도.

4.14 한당

손견의 오른팔이자 오나라의 원로공신이며 정사 기준으로 군공은 오나라에서 제일 많은 장수가 한당이다. 손견 대부터 이릉대전까지 참전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하지만 연의에서 한당은 모든 군공이 가려진 채 그냥 잡장 1로밖에 묘사가 안된다. 오히려 화웅을 유인하고 종적을 감춘 조무보다도 대우가 더 박하다. 이걸 촉한에 대입하면 조운을 잡장으로 만든 셈. 한당과 같은 위치의 황개적벽대전때의 활약 덕인지 엄청난 버프를 받았지만 한당은 연의에서 아무런 대우도 받지 못했다.

5 그 외 세력

5.1 가비능

정사에서는 상당히 유능한 선비족 수장으로. 위나라의 대 유목민족 전쟁 성과가 32승 1패 1무였는데 그 1패 1무를 안겨준 사람이 가비능이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이름만 언급되는 역할로, 위나라의 요청에 응하여 촉나라 정벌에 나섰지만 마초가 나서자 데꿀멍하며 퇴각한다. 게다가 정체성도 심각하게 오락가락하는데 분명 요서 선비국의 국왕 이라면서 정작 이끄는 건 서강병 이라든가, 아니면 "서번왕", "서강왕" 으로 호칭까지도 수시로 변한다.

5.2 국의

실제로는 양주 일대에서 활약한 인물로 한복을 섬기다가 원소를 섬긴 장수공손찬과의 싸움에서 그가 이끄는 기병을 상대로 여러 번 이기는 활약을 세웠는데 연의에서는 그저 조운의 등장을 돋보이면서 그를 띄워주기 위한 희생양 & 엑스트라.

그나마 공손찬장수인 엄강을 격파해서 그를 죽인 것은 연의에도 표현이 되어있다.

5.3 서영

사서에서는 반동탁 연합군이 손발이 안 맞아 답답해진 조조포신이 독자적으로 동탁을 공격해오자 요격을 맡아 이들을 털어버리고 장막 휘하의 위자와 포신의 아우 포도를 죽여버렸다. 그리고 북상하는 손견도 무찔러 쫓아냈다. 이래봬도 위촉오 세 영웅 중 둘인 조조와 손견과 싸워서 이긴 장군인 것이다. 특히나 손견은 서영의 주군인 동탁을 벌벌떨게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연의에서 취급은 조홍의 이벤트를 발생시키기 위한 엑스트라로 정사에서 패장으로 유명한 하후돈에게 몇 합만에 죽는다. 게다가 손견을 이긴 부분도 손견에게 죽은 화웅따위가 가졌갔다.

5.4 순우경

실제 서원팔교위로 발탁되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인물이었으며, 사실 원소장수 중에서도 순위권에 있던 인물이었다. 물론 관도대전에서 군량저장소를 지키다 조조군에게 패했긴 했으나, 필사적으로 싸우다 졌으며, 조조도 그에게 자신을 섬길 것을 제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그런 실력은 드러나지 않고 그저 듣보잡으로 나오며, 게다가 관도대전 전투는 술 마시고 태만하게 있다가 조조에게 패한 것으로 왜곡되었다. 최후도 꽤나 안습하게 변형되었는데, 정사에선 순우경이 조조의 제안을 거절하자 별 수가 없던 조조가 그를 처형한 것으로 나오나, 연의에선 조조가 그의 코를 베고[34] 원소 진영으로 보내자 빡친 원소가 그를 처형했다고 나온다.[35] 그저 안습.

5.5 원소

연의의 피해자라는 존재감조차 없는 것부터 엄청난 피해자.

실제로는 엄청난 효웅이었으며, 주관 확실하고, 백성들에게 칭송 받고... 연의에서 캐릭터가 완전히 변해버린 인물. 가문빨이라는 인식이 크나 사실은 유복자로 태어난데다 어머니는 노비.

하지만 이런 출신에도 불구하고 원술을 제치고 원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 대단히 능력있는 인물인 동시에, 자부심도 큰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론 동탁에게 옹립된 당시 황실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질 않나, 황실은 명분적인 도구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등 당시 군벌들 사이에서 가장 패도지향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연의에선 초반 플롯이 정사의 모습과 철저히 다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전부 짤려나갔지만, 나관중이 이런 걸 좋게 생각하진 않은 듯. 십상시의 난 무렵부터 은근히 캐붕스럽게 묘사되더니 반동탁 연합 파트쯤 되면 노골적으로 소인배로 전락해서 권위적, 무능, 비겁, 치졸함, 위선, 우유부단함 등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게다가 자신뿐만 아니라 그 부하들과 친자식들마저 대부분 평가가 별로다.

단 연의에서는 소인배가 된 것과 동시에 그의 패도적인 면도 거의 삭제되어 의외로 인간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게 나오는 소소한 이득을 봤다. 이게 어째서 이득이라 할 수 있냐면, 상당수의 원소빠들이 정사의 원소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다가 연의의 내용으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그의 능력에 경탄하는 것과 동시에, 지나치게 무자비하고 냉혹한 인간됨[36]에 충격을 받고 다른 의미에서 원소까로 전향하는 사태도 종종 벌어지기 때문(...). 실제로 일본 창작물에서 조조의 이미지로 내세우는 감정을 거의 안 드러내는 냉혹한 카리스마 독재자의 이미지는 오히려 정사의 원소 쪽이 더 가깝다는 평까지 있을 정도.

5.6 원상

십대 중반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 나이와 거의 전무한 경력, 원소의 급사로 상속 싸움에 휘말리긴 했으나 사실 굳이 따지자면 원소의 정통 후계자가 맞다. 원소가 이미 한참 전부터 원담을 폐출시켜 후계 구도에서 제명하고, 원상을 후계자로 할 것을 거의 기정사실화[37]하고 있었기 때문.

심배가 후견인을 맡으면서 후사 계승을 마치긴 했지만 동시에 원담을 필두로 하는 내부에서의 집단 불신임과 조조의 공격이라는 극심한 위기를 맞았으면서 안으로는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밖으로는 조조를 격퇴하는데 성공하는 등 제법 활약을 한 편이다. 막장 형제들 간의 후계자 싸움이라는 인식과 달리 내전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기도 했으나 원담과 심배의 대립에서 결국은 끝내 심배의 손을 들어주면서 심배의 폭주를 묵인하는 식으로 이어졌던 것이 실책이라면 실책.[38]

하북을 잃고 오환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잔당들의 반란을 사주하고 변경지역을 여러차례 공략해 큰 피해를 주면서, 조조 진영에서 유주와 병주는 곧 확실하게 넘어갈 것이고, 기주,청주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오거나 유표는 원상에 비하면 별 위험거리도 못된다고 평가되는 등 극도의 위험인물로 분류되던 정황을 감안한다면, 대내외적 상황이 모조리 개판인 상황에서도 무서운 저력을 보이던 능력있는 후계자가 맞다.

연의에서는 사환을 일기토로 참살하는 등 무용 면에서는 다소 버프를 받았으나, 원소의 총애를 믿고 원소 생전부터 파벌을 조성해 원담과 대립하고, 조조가 침공해오자 원소를 대리해 나섰다가 졸렬한 지휘로 참패해 복장이 터진 원소의 쇼크사를 유발하고서는 원소의 유언을 조작해 후계자의 지위를 차지한 뒤 원담을 대놓고 핍박하는 등 패륜아에 가깝게 묘사되었고, 사환을 잡은 것 역시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다가 조조와의 싸움에서 경거망동하여 참패하는 내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버프로만 보기는 어렵고, 조조를 한 차례 격퇴하는 데 성공했던 전적이 킬마크 하나랑 맞바꿔진 격이기 때문에 손해본 것이나 다름없다. 원담과의 내전 또한 곽도,신평의 부추김을 받은 원담에게 일방적으로 습격당했던 것이 오히려 먼저 선공을 거는 것으로 나오는 등 전반적으로 원담의 막장도가 희석되는 대신 원담 이상급의 막장으로 묘사되었다.

5.7 이각, 곽사

흔히 찌질세트로 취급되고 실제로 이각이나 곽사나 정치에 대한 개념이 뇌 속에 전혀 들어있지 않은 듯 찌질행보가 극을 달리지만 군사적 능력만큼은 진퉁이었다. 연의의 영향력으로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많지만 동탁은 그 시기 가장 강력한 군벌이었고 그 휘하 핵심무장은 호위직 전전하던 여포가 아니라 이들이었다.

이각은 원술과 내통하던 주준을 격파한 뒤 형, 예주 일대의 백성들을 대량으로 학살하고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켰고 곽사는 이각과 싸울 때 수백의 군사로 수만의 적을 무너뜨렸고, 패하긴 했지만 여포와 1:1 대결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맹장으로 일신의 용맹이든 용병술이든 무장으로서는 매우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비록 가후의 계책이지만, 여포를 격파해 장안을 장악한 후 장안에 쳐들어온 마등, 한수를 물리쳤고, 마등을 지원한 유언도 패퇴시킨 활약을 하지만, 연의에서 겨우 15살의(...) 꼬맹이 마초에게 겁먹는 모습으로 나와 군사적 능력도 없는 무능한 장군들로 나온다. 안습.

뭐 이래저래 지금 평가는 너무 박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잘쳐줘도 원소의 안량, 문추 정도의 인물들로 그 안량, 문추가 연의에서 너무 띄워줬다는 평을 받는걸보면 참 애매하다.

5.8 장로

한중의 태수.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장로의 업적 중 제일 돋보이는 것은 "의사"라는 빈민 구호 & 여행자 숙박시설을 만들어서 쌀과 고기를 공짜로 먹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인데, 코딱지만한 한중 땅에서 이렇게 쌀과 고기를 백성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면서도 거대한 익주(유장이 다스릴 때의 )와 맞먹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봐서 이 인간도 나름 유능한 지도자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가공의 인물 양송에게 속아 마초방덕을 소홀히 대하는 암군으로 그려진다. 마초가 의롭고 충성스러운 인물로 그려지면서 반대로 그런 마초가 버리고 갈 정도의 못난 군주로 그려진 것이다.

또한 오두미도의 교주인 건 맞으나 "쌀도둑놈"[39]이라는 천박한(…) 타이틀도 획득했다. 물론 이건 실제 오두미도도 그렇지만 어째 돋보이는 것도 사실.

5.9 육강

수혜자 항목의 옛 버전에서 손책, 원술을 언급할 때, 육강 토벌이 연의에서 잘렸다고 서술하지만, 실제 모종강본 기준으로 육강 토벌은 있었다. 다만 그 과정이 직접 나온것은 아니고, 그냥 짧게 언급되는 정도에 그쳤다. 너무 짧게 언급하였기 때문에, 정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육강이 그저 군벌A 정도인 줄로 안다.

5.10 포신

연의에선 포신이 조조의 기반을 다져주는데 도와줬다는 내용은 조조와 함께 황건적 토벌 시 전사한것으로 바뀌었고 반동탁연합 당시 공을 세울려고 애꿎은 가상의 동생(...) 포충[40]을 죽게 만들었다는 창작이 붙어버렸다.

그나마 가정본 삼국지연의에서는 "지혜와 꾀가 많고, 문무에 능하다"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사실 18로 제후들을 소개할 때 누구나 이렇게 거창한 수식어는 받았던 거라 말 그대로 립서비스일 뿐.

유능한 모습이 전혀 묘사되지 않고, 찌질하게 창작된 모습만 나오는 연의의 영향으로 여러 매체에서 찌질하고 무능한 인물로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단 피해자라고 볼 만하다.

5.11 한현

연의와 마찬가지로 장사태수인데, 정사에서는 유비의 형주 4군 정벌로 항복했다고 나오지만 연의에서는 전형적인 탐관오리로 등장한데다가 비참하게 끔살당하는 등 정사의 기록은 얼마 없는데 연의에서는 처참한 대우를 받았다. 같은 편이자 충신인 황충을 디스하다가 위연에게 살해당하는 걸로 최후를 장식.

실제로 그의 묘비명부터가 이미 漢忠臣 韓玄之墓(한충신 한현지묘)라 써 있으나 연의에서는 그의 묘비명과는 완벽하게 정 반대로 묘사되어 있다.

5.12 황건적

삼국지연의 공식 야라레메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애시당초 백성들이 폭정에 못이겨 민란을 일으켰으나,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만악의 근원 혹은 천하의 개쌍놈들로 묘사된다. 물론 나라가 어지럽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살육/약탈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인해 민중들의 봉기가 단순한 도적/초반 악역 및 영웅들의 떡밥급 상대로만 기억된다는 것이다.

황건적의 난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종교집단이 일으킨 민란이자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반란 사건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황건지란(黃巾之亂)이라는 말을 쓰기도 긍정적으로 평가해 황건기의(黃巾起義)[41]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다만 삼국지연의 등의 영향으로 한국일본에서는 역사 전공자를 제외한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황건적을 단순한 도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삼국지의 주요 군웅들인 유비, 조조, 손견, 원소, 황보숭, 동탁 등이 처음 등장할 때 군공이라고 내민 게 황건적 토벌이기 때문에 만약 황건적을 미화하면 이들은 모두 악당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황건적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요인물들을 띄워주기 위해 일개 도적 집단으로 폄훼된 것이다. 이들의 저주로 삼국시대가 역사적으로 듣보잡 취급을 받는다 카더라.

6 엑스트라

6.1 무장 이외의 문관이나 책사 등의 동원된 엑스트라

이들 중에서는 많은 책을 집필한 학자들, 또는 군주에게 많은 상소를 한 문관들 등등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한 인물들도 있다. 허나 대부분은 연의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안습하게 나오며, 연의가 거의 전쟁, 일기토, 전투 중심이기에 묻혀버렸다.

반대로 생각하면 정사가 문관 중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사에서는 뛰어난 무장이나 군사가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열전조차 가지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반면, 뚜렷한 업적 없이 고위직에 올라 현상유지 정도에 성공한 문관도 열전을 받는 등 행정직 관료들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런 현상은 후대로 갈수록, 즉 진수 생전의 시대에 근접할수록 심해지기 때문에 모든 역사서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당장 기록을 써서 남기는 당사자들이 문관인지라...

어떻게 보면 간손미가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 셋은 유비군이 방랑 시절에 (외교적으로) 거의 손발 노릇을 했음을 잊지 말자. 이들 없었으면 유비는 원소나 유표에게 의탁하지도 못했다. 손건은 유비의 외교문제 대부분을 해결해 준 장본인이고 미축은 그 자체가 유비의 돈줄이었다. 일단 유비의 병력을 모집하고 유비의 군수품을 구매하는 등 유비 자체를 먹여살린게 미축이다.

6.2 일기토에 동원된 엑스트라

정사의 기록에 의하면 단 한 번이라도 1:1 대결을 벌이는 무장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연의에서 벌어지는 숱한 일기토는 어느 한 장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42] 맹장들의 칼밥으로 사라져 간 수많은 엑스트라들도 알고보면 억울한 사람들이라는 얘기. 여담이지만 연의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하면 대부분 이쪽 계열이다. 실존인물을 일찍 죽여버리면 오류가 생기니까, 허구적 인물을 칼받이로 양산하는 셈.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존인물들이 무사한가 하면 그것도 아닌데 실존인물이라도 정사에서 엑스트라 수준의 비중이라면 역시 끔살당한다. 하후란, 고람, 주찬 등이 좋은 예.

심지어 서황을 비롯한 일부 위나라의 장수들도 이런 역할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서황의 경우 실제론 문추, 마초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운 장수이나 연의에서는 안량, 문추, 마초 등에게 일기토에서 패하고 달아나는 역으로 나온다. 물론 정사라고 해도 서황같은 장수들이 무예로 이름을 날린적은 없지만...

그렇기는 해도 실존인물이 아닌 소설에서 창작한 허구의 인물들까지 들먹이며 연의의 피해자라 보는건 지나친 면이 있다.

7 정사에 등장하면서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

정사에 가도 묻힐 인물은 수도 없이 많지만 나름대로 활약을 했거나 전공이 있는 인물들의 경우에는 짤리는 경우가 많은데, 연의에서 집중되는 사건에서 나오는 인물들로 짤리는 경우가 있다.

삼국지연의의 피해자라고 보기에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나올 수 있는 부분에서 나오지 않아 존재감이 묻혔다는 점이 그렇다고 볼 수 있어 이러한 인물들이 일부 있는데, 관우 사건이 나오기 때문에 그 사건에 관계되었지만 촉한학보, 습진 같은 경우는 나올만한 인물임에도 나오지 않았다.

정사에서 황조를 쫓아가서 기어이 목을 베어낸 뒤 황조의 수급을 손권에게 바친 풍칙의 경우 사서에 기록된 유일한 졸병인데, 연의에서는 언급이 없다.

진도 같은 경우에도 예주에서 유비를 수행하면서도 명성과 관위가 조운 다음으로 가는 인물임에도 나오지 않았다.[43] 또한 오나라의 도독이나 되는 인물이나 되면서 제갈각의 요청에 따라 북벌에 참여했는데도 불구하고 주적도 나오지 못했다.

연의에서도 나오는 사건인데다가 손고, 부영과 함께 규람, 대원을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원은 나오지 못했다.

사섭의 경우에는 교주를 지배한 베트남사에서도 언급되는 인물이며, 손권에게 투항한 후 익주의 옹개를 회유해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등 나름대로의 족적을 남겼으나 연의에서는 나오지 못했으며, 옹개도 사섭이 아닌 맹획과 연합했다는 설정으로 등장했다.

상총출사표에 언급될 정도로 촉나라에서 중용된 장수였지만 연의에서는 출사표에 언급되는 것 외에는 등장하지 않아 연의 독자들에게 "뭐지? 이 갑툭튀는?" 이런 반응을 느끼게 했다. 이 점은 곽유지도 마찬가지로, 출사표에서 비의, 동윤과 함께 '선량하고 진실하오며 뜻과 생각이 고르고 순박하여 선황제께서 발탁하시어 폐하께 남기셨사오니, 아둔한 신이 생각하건대 궁중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그들에게 물어보신 이후에 시행하시면 필히 허술한 곳을 보완하는 데 크게 이로울 것이다.'라고 하였지만 연의에서는 그를 시중으로 삼아 궁중의 일을 총괄하게 했다라는 언급만 나오고 더 이상의 등장은 없다. 제갈량 통치하에서 제갈량을 위해 강철의 주조법을 개량하여 새로이 검을 만들고 촉나라 군사들의 무장을 강화하고 제갈량이 설계한 목우유마를 실제 제작한 과학자인 포원의 경우 북송 때 백과사서인 태평어람에 나오는데 연의에선 안 나온다.(...)

나헌의 경우는 촉나라가 멸망하고 등애종회가 서로 죽고, 오나라가 보즐의 아들인 보협을 보내 촉땅을 얻으려고 하지만, 나헌은 단 2000명으로 막아냈고 오나라는 화가 나서 육항을 보냈지만 육항의 3만을 6개월이나 막아낸 지장이었지만, 연의에서는 아예 나오지 못해 인지도 면에서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최소한 한 줄로라도 간략히 언급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70년부터 279년까지 서진선비족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 연의에서는 아예 삭제되는 바람에 서진은 촉 멸망 후 15년 동안 니트짓(...)이나 하다가 오를 멸망시켰다는 내용이 되었으며[44], 자연스럽게 이 때 반기를 들었던 선비족의 수장 독발수기능과 선비족을 격파하고 서진이 오 정벌에 나서게 만들었던 마륭 역시 나오지 않았다. 특히 마륭은 제갈량팔진도를 도입하는 등 군사적인 면에서 제갈량의 후계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는 만큼, 충분히 제갈량 관련으로 엮을수 있음에도 연의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염행은 무려 마초를 거의 죽일 정도로 하는 맹장이나 연의에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8 항장들

배신자는 죽여도 곱게 죽이지 않는 것이 나관중의 스타일. 주인을 배신한 인물에게는 예외 없이 비참한 최후를 선사한다. 무장의 경우는 떡밥매치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전사이므로 무장으로서는 명예로운 최후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을 서두르거나 계략에 말려들어 끔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기 때문에 간지나는 전사와는 경우가 다르다.

항복한 뒤로 정사에서 행적이 좀 묘연하다 싶으면 연의에선 거의 이쪽 루트를 타고 있다. 가상의 인물들도 대거 포진. 살기 위해서는 장합이나 문빙, 그리고 장료처럼 눈부신 공적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록이 확실히 남으니까.

단, 조조를 배신하거나 유비에게 편입되는 경우는 OK. 이는 그들이 유비(=한나라)에게 충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도 없지 않다.

9 미묘한 경우

9.1 유비

능력 부분에서는 많은 것이 폄하되었다.

정사에서 그려지는 유비는 지용겸비의 효웅이다. 황실의 후손이라지만 사실상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성장한 인물이었다. 군주로서 뛰어난 판단력과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었고, 인재를 보는 안목도 뛰어났으며[49] 전투에서도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정사의 유비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이라고 할 정도로 유파에게 집착하여 유파를 어떻게든 모셔오기 위해 혼자 동분서주했는데 유파에게 내정을 맡기자 촉한의 재정에 큰 보탬이 된 것,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제갈량삼고초려, 양의의 직위해제[50] 등은 유비의 인재선발능력이 발군임을 입증해준다.

연의에서는 이런 모습 대신 인자하고 온화한 군자상의 인물로 묘사된다. 개인적인 전공은 모두 다른 인물들의 공(특히 제갈량)으로 돌려지고[51] 자신은 그저 큰 덕으로 백성과 부하들을 보듬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정사에서는 유비 자신이 직접 인재를 배치해서 전쟁에서는 승리를, 내정에서는 풍요로운 재정상태를 추구했음에도 연의에서는 그저 제갈량에게 의존하는 모습만 보였다. 스스로 독우를 매질하던 모습은 연의에서는 장비가 떠맡았다. (유비는 되려 말린다.) 걸핏하면 눈물을 보이는 우유부단함을 보이는 등 다른 군웅들의 호쾌한 모습과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나관중의 작중 의도, 조조와의 대립구도 등을 살펴본다면 연의가 단순히 유비를 깎아내리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연의에서 재탄생된 유비의 '무위의 치'로서의 캐릭터는 한고제 시절부터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아온 친숙한 영웅상이다. 이런 인물상은 당시 군주들의 행동원리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으로, 유비는 이를 취함으로서 여느 군웅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인의를 저버린 세상에 있어 단 하나 남은 이상적인 군주가 되는 것이다. 을 먹기를 염려한 것은 유장이 종친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난세에서 살아남은 건 조조와 반대의 행동을 했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에 조조와 같은 짓을 하면 안 될 것이라 생각해서다.

실제로 유비는 어진 정치를 폈기에 부임하는 곳마다 백성들에게 인기[52]가 높았으며 그가 구축한 집단도 이상하리만치 끈끈한 유대로 묶여 있었다. 실제로 적군의 처자를 인질로 잡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을 데리고 함께 피난가거나 서주를 구원하러 갈 때 난민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또한 도둑질이 성행할 때 재물을 풀어 도둑질을 막는 걸 보면 호족들에게 비추어진 모습은 어떨진 몰라도 백성들에겐 좋은 사람으로 여겨진 듯하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인의를 강조했으되 강단있는 효웅의 모습인 반면 연의에서는 지나치게 인의만을 따르는 유약한 모습으로 묘사된 만큼 정사에서의 유비의 행적과 결합되는 부분에서는 이중성이 느껴지게 된다. 이는 여포의 유언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다. 연의에서는 여포가 먼저 배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 여포를 용서하고 화해해서 오히려 여포를 감복시켜 서로 친하게 지내다가 뒤통수를 치는 식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여포의 배신 때문에 계속 사이가 안 좋았다면 단순히 여포 탓이라고 하면 그만이었겠지만, 대인배스럽게 여포를 용서하는 묘사가 나오는 바람에 그런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은 여포의 뒤통수를 치기 위한 음흉한 수작이라고 해석할 여지를 만든 것. 게다가 그렇게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여서 화해한 후 원술이 유비를 공격했을 때 여포가 기령과 유비를 불러놓고 창의 가지를 화살로 쏘아서 유비를 구원하는 유명한 장면까지 나왔고, 그러다 유비가 다시 여포와 싸우게 된 것도 조조가 유비에게 여포를 공격하라고 포섭했을 때 유비가 동의한 서신이 여포 손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나오니 결과적으로 유비가 대인배스러운 척 연기해서 여포를 속이고 이용해먹다가 뒤통수를 치려던 수작이 들통난 형국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여포가 사로잡혔을 때 조조에게 여포를 죽여야 한다고 권하기까지 한 셈이라... 사실 여포의 유언 부분은 정사에서는 이중성과는 인연이 없는 장면이다.

그 외에도 백성에게 인기가 높은 모습도 별로 나타나지 않았고, 말과 행동이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정사에서 유비가 참수한 인물 외에 다른 인물들을 참수하는 경우도 많다. 연의에서 유비는 말년에 거의 살인광 수준으로 참수를 일삼았는데 대표적으로 부사인, 미방, 유봉 등을 참수했다. 하지만 이중에 실제로 죽은건 유봉이 전부이며 유봉은 제갈량에게 살해당했고 그나마도 유비보다 먼저 선수쳐서 살해했다. 사인과 미방은 죽기는 커녕 오나라에서 잘먹고 잘 살다가 천수를 모두 다 누렸다. 미방의 경우 정사에서는 미축이 자기 동생의 잘못 때문에 스스로 결박해 나타나서 유비에게 벌을 청했으나 유비는 용서했다.

여하간 개인의 능력이 중시되는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능력 부분을 약화시키고 인의를 강조시킨 것이 "우유부단 찐따"로, 찌질하게만 보이는 역작용이 되었으며, 이렇게 능력치를 희생시켜가면서 부여한 인의 이미지는 후세에 와서는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되어 오히려 음흉한 위선자라는 인상만 남기게 되었다. "유비의 후덕함을 나타내려 하였으나 오히려 위선자처럼 되었다." 는 루쉰의 평가가 좋은 예시.

당대의 다른 소설들도 연의유비와 비슷한 유형을 가진 주인공이 많다. 송강, 삼장법사 등이 그러한데 부하들의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주인공 캐릭터가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드라마 삼국의 경우, 유비의 캐릭터를 재조명하자 관우, 장비의 캐릭터가 묻혀 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부분으로 인해 어느 정도 피해를 본 부분도 있는 반면 수혜를 입은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는지라 삼국지연의/수혜자 항목에도 유비가 들어가 있을 정도이다. 물론 그 쪽에서도 애매한 경우에 들어가지만.

9.2 장비

통솔력과 개인적 무용 모두를 겸한 만능형 장군.[53]
연의에선 싸움만 잘하는 열혈바보가 되었다.[54]

삼국지평화와 그 이전의 민담 등에 따르면 지혜롭고 용맹한 최고의 장군이었지만 연의에 와서는 인덕의 유비와 충성스럽고 근엄한 관우에 맞춰서 캐릭터를 만들어야 되며, 당시 관우의 인기가 상당했기 때문에 성질 급하고 포악하게 변해서 종종 사고를 친다.

일단 병사들을 혹독하게 대한 것은 정사에도 나오니 완전한 날조는 아니다. 정사의 기록은 이렇다.

관우는 병사들에게는 잘 대해주었지만 사대부들에게는 오만하였고, 장비는 군자는 아끼고 존경했지만 소인은 보살피지 않았다. 유비는 항상 이것을 경계하여 말했다.

“그대는 형벌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치고, 또 매일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그들을 측근에 임용하고 있으니, 이것은 화를 초래하는 길이오.”

그러나 장비는 깨우치지 못했다.

하지만 정사의 장비는 적어도 능력이 있거나 명망있는 이에게는 존경심을 표했으며, 이렇다할 사고, 특히 술먹고 사고친 기록은 없다. 아니, 술을 좋아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정사에서는 독우를 구타한 건 유비이며,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긴 것은 장비의 실책이라기보단 서주의 유력인사던 조표(를 포함한 서주내 반 유비세력)가 여포와 연합한 탓이었다. 또한 병사들을 혹독하게 대한것도 더 과장되었기 때문에, 나관중본에서는 장판에서 장비를 따라간 병사가 적은 건 '맞아 죽을까봐' 라고까지 적혀 있을 정도이다.

군자는 존중했으나 소인은 경멸했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연의에서의 관우의 성격이 실제 장비의 성격처럼 보인다.[55] 엘리트 의식내지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냉혈한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장판파 장면에서도 삼국지평화에선 조조를 내쫓고 다리를 끊은 것을 유비가 칭찬하는데 비해 연의에서는 머리가 나쁘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 장면은 정사에는 조조의 병사들이 장비를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유비가 화를 면했다고만 나온다. 연의에서 장비가 다리를 끊은 것 때문에 유비군이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은 삼국지평화뿐만 아니라 정사보다도 너프된 셈이다.

유비가 익주를 정복할 때도 장비는 엄안을 사로잡았고 한중공방전에서도 장합을 격파하는 등 절대 바보라는 말을 들을 장수는 아니다.

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호걸 장비가 일만 터트리는 이미지가 된 건 연의의 영향이 크다. 다만 삼국지평화에선 지나치게 강한 감이 있긴 했다.

그러나 장비는 연의에서 절대 무식한 장수가 아니다! 난폭하고 급한 성격으로 나오는 바람에 언뜻 보면 무식한 장수로 묘사됐다고 알기 쉽지만, 연의 작중에서는 장비가 머리쓰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유대를 잡은 것도, 엄안을 잡은 것도, 장합을 털어버린 것도 장비의 지략에 의해 달성된 것으로 묘사된다. 빛바래기는 했지만, 소패에서의 조조 기습작전과 장판파에서의 허장성세도 또한 장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제갈량도 장비가 지략을 쓸 줄 아는 것을 유비에게 경하드린다고 하기까지 한다. 의동생의 성장을 의형이 몰라주다니 문제는 작중 의형이 그랬던 것처럼 연의에서 심어놓은 장비의 이미지가 워낙에 강렬해서인지, 2차 창작물에서는 장비가 머리쓰는 모습을 거의 반영되지 않고 선입견마냥 무식쟁이 고주망태 망나니(...)로만 나온다.[56]

참고로 서화에 능했다는 설은 근거가 없으므로 낭설에 불과하다.

9.3 육손

정사에서 여몽이 병으로 사망한 뒤 여몽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직위를 승계받아 이릉대전에서 유비의 촉나라 군대를 맞아 싸워 이긴 공이 있다.

다만 육손은 백제성으로 도망간 유비를 죽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피눈물을 흘리며 오나라로 철수해야 했는데, 정사에서는 위나라 황제인 조비가 오나라에 선전포고하여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오나라로 철수한 것이다.

그런데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돌로 만든 장병들이 육손의 군대를 계곡으로 유인해서 육손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당연히 육손은 당황하여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고 한탄하고 있었을 때 제갈량의 장인인 황승언이 홀연히 나타나 육손의 군대를 무사히 탈출시키고 육손에게 "제 사위인 제갈량 몰래 당신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절대로 타인에게 이 일을 발설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다만 본인이 크게 피해받은 이궁의 변 사건이 연의에세 삭제가 되어서 숙청을 당하지않고 그냥 병사했다고 연의에서 나와서 수혜아닌 수혜(?)를 받았긴하다.[57]

9.4 조조

유비의 활약이 적은 초반부를 장식하는 주인공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허자장으로부터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인물평을 들으며 껄껄 웃는다든가[58] 동탁을 죽이는데 실패하고 달아나 반동탁연합군을 주도하며[59]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자 다른 군웅들을 질타하고 자신의 군세만으로 동탁을 추격한다. 실제 형양 변수 전투는 보통 교전. 사방에 적을 둔 연주에서 일어나 사방에서 몰려오는 여포, 원술, 유표, 장수, 원소 등 당대의 쟁쟁한 군웅들과 사력을 다한 혈전을 벌인다. 이각, 곽사로부터 핍박받는 천자를 구해내고 허도에 새로운 조정을 새우는 등 사직을 받들며 나라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동탁 암살 등의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서주에서 자행한 대학살이나 원소군의 포로들을 생매장한 일화가 어물쩍 넘어가는 등 어느 정도 보정을 받기도 했다. 방통을 처음부터 높이 평가하고 매우 정중하게 대접한 유일한 군주이기도 하며, 관우를 휘하에 두고 벌어졌던 에피소드에서는 대인배급의 폭풍간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보스원소를 쓰러뜨리면서 상당한 포지션 변화가 생긴다. 유비가 형주에서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주인공 자리를 가져가는데다가 조조 스스로도 천자를 홀대하고 외척들을 숙청하는 듯 본격적인 악행을 시작해 페이크 주인공 겸 최종보스에 등극해 버린다.(그나마도 사마의의 등장으로 사실상 페이크 최종보스로 끝난 셈이지만) 실제로 연의에 등장하는 조조의 악행은 이때를 전후하여 폭발하다시피 늘어난다. 술김에 유복을 죽인다든가, 복황후를 죽이고, 마등을 속여 죽이고[60], 그를 고발한 묘택도 배신자라고 죽인다. 공융은 불효했다고 죽이고[61] 양수닭갈비 알아챘다고 죽인다. 양수같은 경우는 조조의 셋째인 조식의 지지자였다. 멀쩡한 장남 놔두고 삼남을 지지한 것 만으로도 이미 양수는 조조 눈밖에 난 상황에서 마침 자기 묫자리를 자기 입으로 판다.

아무튼 막 죽인다. 원래는 원소가 최종보스였는데 조조는 그 원소를 쓰러뜨리고 자신이 최종보스가 되어버렸다.

이와 함께 전장에서도 추태를 보이기 시작하여 적벽, 위수에서 비참한 몰골로 생사를 넘나들더니 결국 생애 마지막 군사행동인 한중전에서 유비에게 패배한다. 한중에서의 패전은 유비의 수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퇴각한 정도였으나, 연의에서는 이를 한층 과장하여 위연[62]의 화살을 맞아 이가 부러지는 등 수모를 당했다. 더불어 군사적으로도 참패한 것으로 바뀌었다. 근데 군사적으로 참패할 뻔한 것은 맞다.

그래도 기실 연의는 기존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조조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조조의 악역은 연의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연의는 조조의 위치를 어느 정도 복권시켜 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조의 평가가 이미 부정적이 되어 있었고 나관중과 당대 중국인들의 이상향에는 멀었으므로 연의 초반에 언급된 대로 간웅의 모습이 되었다.즉 연의에서도 악역은 맞지만, 일방적으로 나쁘고 찌질하기만 한 악역이 아니라 나름 포스있고 입체적인 악역으로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이나미 리츠코는 그녀의 저서 "삼국지 깊히 읽기"에서 삼국지연의의 다원적인 특성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비 대 조조라는 한실부흥의 구도로 보면 조조는 악역이지만 관우를 중심으로 본다면 조조는 준 선역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상으로도 조조가 관우를 대접했다는 얘기가 있고 이는 연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충의깊은 관우라는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선 충성의 대상 유비 외에도 그의 충성을 뒤흔들만한 누군가가 필요했고 조조가 그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조는 명분상으론 악역이지만 주역인 관우와의 관계로는 영웅이 되는 묘한 위치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이나미 리츠코는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폄훼된건은 손권의 오라고 주장한다. 조조와 위는 관우에게 잘해주었기에 그나마 반쪽이라도 영웅적인 면이 돋보일수 있었지만 손권의 오는 관우를 죽였기 때문.

9.5 주유

삼국지연의의 저자인 나관중이 먼 친척이자 함께 과거를 보던 주서가 주유의 직계 후손이었는데, 주서만 합격하고 자신만 떨어지자 그를 질투해서 삼국지연의를 통해 주서의 조상인 주유를 깎아내렸다 카더라

연의에서는 간단하게 "기생유 하생량(旣生瑜 何生亮, )"이라는 말로 연의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제갈량에게 번번히 물을 먹고 성격 또한 제갈량의 계책에 열폭하는 걸로 묘사된다. 엄밀히 말하면 제갈량과는 전성기가 달라 직접적으로 비교를 할 수 없음에도 연의에서 적벽대전의 주인공이 제갈량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와 비교되어야 했고, 캐릭터 변형이 이루어져야 했다.

일찍이 손책의형제를 맺고 강동제압의 공로자일 적에는 이미지가 좋았지만, 이후 제갈량이 등장하면서 항상 몇 수 뒤지게 설정되었다. 적벽대전에서 10만 개 화살 일화와 바람을 바꾸는 장면 등으로 항상 자신이 뒤지거나 속았다는 사실에 열폭하는 이미지이다. 최후의 순간에도 주유유비 대신 을 공격할테니 길을 내달라는 핑계로 쳐들어 오는 것을 제갈량은 간단히 파악하고 그를 물러가게 해버렸다. 그 직후 제갈량의 조롱 편지를 받고 위에서 말한 旣生瑜何生亮, 즉 "이미 주유를 낳았거늘 제갈량을 왜 또 낳았는가"라는 대사를 남기고 죽는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유비와의 연합이 오나라의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유비 측에 물자 뿐 아니라 영역을 빌려주고 세력 확장을 지원하는 등 유비측에 도움을 주면 줬지 피해가 갈 만할 일을 한 적이 없다. 게다가 아직 유비의 세력이 약하고 제갈량이 유비의 세력의 2인자로 떠오르지 못했던[63]시기에 주유는 보다 대형 세력인 오나라의 2인자 자리를 꿰차고 있었으니 "기생유 하생량"하고 한탄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던 것. 애시당초 정사의 주유 인품을 생각했을때 제갈량에게 열폭할 이유조차 없고 또 주유 입장에서 제갈량은 그냥 친구 동생이다.

하지만 반대로 연의에서 버프를 받은 부분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적벽대전에서 사서는 연합군의 주체를 유비로 기록하고 있으나, 연의에서는 오로지 주유 혼자서 적벽대전을 승리한듯이 묘사한다. 유비군은 기껏해야 손오가 다 궤멸시킨 조조군의 잔당을 추격하기만 하는 것으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연의에서는 조조군의 물량을 100만이라 묘사하는 등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는데 이 또한 그 조조군을 처바른 주유에게는 좋게 작용한다. 또한 적벽대전 이후 남군 전투에서도 정사에서는 주유와 유비군이 협력했다는 묘사가 분명하게 나오지만 연의에서는 이것도 오로지 주유 혼자서 다 해논 것을 유비가 숟가락만 슬쩍 얹어서 뒤통수 쳤다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공적 면에서 분명한 버프를 받은 셈이다.

지모 면을 따져봐도 연의에서 지략 원톱, 초월자, 신선과 같은 이미지로 묘사되는 제갈량의 라이벌로 잠시나마 설정된 덕분에 장간 역관광같은 일화를 만들고, 지모로 장윤과 채모를 죽이는 등 지모를 강조한 이벤트들이 만들어졌다. 연의에서도 충분히 능력자로 묘사되는 조조를 엿먹인걸로 묘사된 셈이다. 또한 적벽대전의 중요한 전술인 '화공'을 놓고봐도 정사에서는 화공이고 사향계가 황개가 입안했고, 주유는 그것이 옳다고 여겨서 받아들인 케이스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주유와 제갈량이 서로 손바닥에 火를 써서 보여주는 등, 화공 자체를 주유의 머리에서 나온 듯이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주유를 띄워준것도 다 그만큼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냐고 반문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없던 일화와 공적까지 만들어준 것은 수혜가 아니라고 보기는 힘들다. 관우를 띄워주기 위해 버프를 받은 화웅이 수혜를 받은게 아니라고 볼 수는 없듯이 말이다.

요약하자면 인격적인 면에서는 손해를 봤지만, 공적이나 지략 면에서는 다소 버프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유가 당대의 명장이 아닌건 아니다.

9.6 미방

관우 사망 사건의 희생자 중 하나. 연의에서는 유비가 분노하여 쳐들어오자 다시 투항했지만 용서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반면, 정사에서는 오나라로 투항한 후 이릉전투 이후에도 살아 있었다. 참고로 우번하고 사이가 나빴다. 역시 계한보신찬에서 사인, 반준, 학보와 함께 마구 씹혔다. 그리고 삼국지대전에선 사인과 함께 등장하며 찌질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근데 문제는 연의에서는 항복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항복하기라도 했지 정사에선 사적인 감정으로 적한테 투항한 것은 까여도 마땅한데다가 자기가 잘못한 걸로 처벌받을까봐 두려워서 적과 대놓고 내통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을 믿고 남군 태수를 맡긴 주군과 친형까지 배신했다. 오히려 정사의 행적으로 보면 더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9.7 하후돈

역시 상당히 애매한 케이스다.

원래 정사에서 묘사되는 하후돈의 모습은 후방 경영에 탁월한 행보관목민관이며, 인격적으로 매우 완성되어 있는 덕장의 모습을 보인다. 허나 싸움에는 연전연패하는 등 장수로서의 기량은 농담으로도 뛰어나다고는 말하기 힘들 정도. 그 머리 나쁘기로 소문난 여포의 계략 같지도 않은 계략에 빠져 포로로 잡혔다.

반면 연의에서는 조조의 상장으로 관우와 비슷한 용맹을 가진 장수로 등장한다. 대신 연의에서 하후돈의 인품은 조조의 명으로 복황후를 죽이는데 앞장 서고, 후에 복황후의 유령을 보고 죽는 등 결코 좋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물론 자신이 아끼던 진기관우에게 베이자 복수하러 관우를 공격하는 장면이나 유비에게 패하여 스스로 몸을 묶고 처벌을 바라는 장면 등도 들어있는 바와 같이 일방적인 악한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으나, 실제 정사에서의 하후돈의 모습을 볼 때, 인품에 있어서는 확실한 페널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연의에서 조조가 주역->악역으로 변하는 과정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다.

나관중에게는 외눈에다가 대장군까지 오른 그가 인상이 강한 적의 심복으로 가장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관련 2차 창작에서는 연의의 용장 하후돈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성격면에서 정사를 참고한다. 예를 들어 창천항로.

9.8 화흠

관료나 학자로서의 능력은 좋았으나 한황실을 핍박하고 다니던 면모는 연의나 정사나 하등 다를게 없다. 정사에 인용된 조만전에 보면 연의에서도 묘사되었듯 복황후를 마구잡이로 끌고가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는 정통성을 중시하던 학자들에게 까이기 딱 좋은 행동일 뿐이다. 연의에서는 화흠의 역적행각만 중점적으로 나와서 다른 면모들이 묻혔을 따름이지 없는것 만들어 내면서 까는 수준은 아니다. 가끔 화흠을 탐관오리로 매도한다는 견해가 나오지만 연의에서 화흠이 까이는건 탐관오리라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황실을 핍박한 역적행각 때문이다. 굳이 비판적으로 보자면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수준에 가깝다.

9.9 황보숭

작품 외적으로 손해를 본 특이한 케이스.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는 정사와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에 일방적인 피해자라 부르기 애매하지만, 문제는 삼국지연의가 편찬되고 나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크게 떨어진 것(...). 당송 대에는 왕실에서 무성왕 태공망의 묘에 제사를 지낼때 상을 만들어 무성왕 옆에 세울 명장들을 뽑을 경우 늦게라도 항상 뽑히곤 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총 70여명의 명장들을 뽑았고, 이 중 삼국시대의 인물이 10명 + 분야가 다른 제갈량이었는데. 이 11명 중 유일하게 위/촉/오 소속이 아닌 인물로 제갈량 외에 삼국시대 출신의 장수들의 명단은 관우, 장비, 여몽, 육손, 육항, 주유, 장료, 등애, 양호, 황보숭 이었다. 그러던 것이 원나라 이후 연의가 편찬되면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묻혀버렸다(...).
  1. 조조의 위왕 즉위한 년도가 216년, 순유의 몰년이 214년.
  2. 정사에 따르면 왕랑과 진군 등은 제갈량에게 "천하의 평안을 위해 에 귀순하는 게 어떠냐."는 편지를 보내지만 제갈량은 끝내 답변하지 않고 단지 "정의(正議, 옳은 것을 논함)"라는 글을 지어 반박을 한다. 이것은 제갈량의 문집인 <제갈량집>을 통해 전해진다. 팬 입장에서는 왕랑은 한마디로 '괘씸한 놈'이었던 셈이다.
  3. 동오의 덕후덕왕을 돕다가 손책에게 털렸다. 이때 우번이 왕랑의 수하에 있다가 손책 편으로 건너갔다.
  4. 기세 좋게 "우리 군사(위군)가 대단하니, 너네(촉군)들은 항복하는 것이 하늘의 순리여."라고 선빵을 날렸는데, 제갈량은 이에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맞섰다. 즉 "그건 상관없고, 넌 하는 짓이 왜 그러냐?"라며 왕랑의 일생을 꾸짖어서(한나라 시절에 효렴(추천을 받아 관직 임명)이 되고도 왜 역적 조조를 섬겼나는 식), 왕랑이 할 말을 잃다가 화병으로 사망했다. 조진에 이어서 두 번째 화병 사망
  5. 다만, 종요가 사형제를 반대했을 때(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시대를 앞선 것이다. 흠좀무 역시 노익장) 이것을 까서(즉 반대) 사형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한 적이 있다. 근데 이게 그럴 만도 한 게, 그 대신에 종요가 제안한 형벌이 발뒤꿈치를 자르게 하는 거였다(…) 물론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몸 어디가 잘려도 사는 게 더 낫긴 하지만…
  6. 방덕은 실제로는 조인의 부장이었다.
  7. 방덕이 관우의 팔에 독화살을 쏴서 찬스를 잡았는데, 징을 울려서 억지로 불러들이더니 자신의 후방에다 처박아놔서 아예 활약을 못 하게 막았다.
  8. 아까 와우관에서 장비와 싸울 때와 마찬가지로 사마의가 말렸는데 장합이 어거지를 부려서 나갔다가 죽은 것으로 해놨다.(…)
  9. 상기했듯, 적벽대전의 대패배 후 남은 병력 조금+불안하기 짝이 없는 형주+전무한 외부지원을 토대로, 한창 기세가 등등했던 주유를 상대로 1년 여를 홀로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훗날 관우를 상대로 한 승리에서도 알 수 있듯, 수성장으로서 조인의 가치는 위장 중 최고라 할 만하다. 전투능력뿐 아니라 행정/정치능력까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10. 팔문금쇄진을 쳤는데 서서한테 깨져서 발렸다고 나온다. 이것도 모자라서 이전의 충고를 씹고 야습(야간 습격)을 감행했다가 패배, 번성까지 빼앗기고 만다.
  11. 실제 정사에선 그냥 제사를 지낸거고 병사들이 제갈량 사당 주변을 더럽히지 않도록 했다.
  12.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자신들(위군)이 온 길을 따라서 쳐들어올 거라는 사마의의 말을 조진이 듣지 않자, 사마의가 어떻게든 대책을 세우기 위해 내기를 제안했다. 각자의 벌칙은 사마의는 얼굴에 분을 칠하고 치마 입고 절을, 조진은 사마의에게 좋은 병마(兵馬) 한 필 선물. 당연하게도 조진은 제갈량의 계략에 낚이고 사마의의 구원을 받았다. 게다가 사마의는 "내기 따윈 관두고 적이나 막읍시다."라고 하여 조진에게 굴욕을 선사한다. 뒤에서 언급하는 조진의 화병은 이 사건이 원인이다.
  13. 어느 한번 제갈량이 계책을 준비하자 위연 왈: 조진도 병법 꽤나 아는 놈인데 통할까요?
  14. 진창전의 논공행상으로 학소가 열후에 봉해질 때, 장합은 정서거기장군으로 올랐다.
  15. 다만 사람을 능수능란하게 부리지 못해 군대를 통솔하는 직위에 임명되진 못하였다.
  16. 동생 미방도 이때 팽성상으로 같이 천거 되었다.
  17. 형주와 오나라 지역 사이의 악감정은 대단했다.
  18. 譎兵, 기만술에 의한 군사행동.
  19. 표현이 그렇지 사실 제갈량&주유 모두에게 까이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제갈량은 "제가 알고 있단 얘기, 주유에겐 하지 말라"라고 부탁했을 뿐. 대신에 눈 앞에서 제갈량의 행동을 보고도 계책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식으로 화자인 나관중에게 까인다. 또한 주유 사후 도독에 임명된 뒤로는 묘사가 부족해 딱히 뭘 하는지도 알 수 없다.
  20.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제갈량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일컬어지는 "천하삼분지계" 역시 노숙을 비롯한 당대 선비들 사이에 이미 오고가던 가설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21.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주유가 노숙에게 임관을 권고하러 갔을 때, 노숙의 집이 "거대한 농장 안에 있었다"라고 나온다. 주유가 노숙을 소개할 때 "제가 수군을 거느리는 동안 군량이 없을 때 선선히 창고를 열어서 가져가게 했습니다."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는 나중에 주유가 노숙을 까댈 때(…) "(전략)내가 예전에 위급할 때 공(노숙)이 나에게 군량을 준 일은 잊을 수가 없소."라고 화를 자제하는 모습에서 재등장.
  22. 문맥을 보면 단순히 매복, 수성전 정도가 아니라 전체 지상전을 뜻한다.
  23. 반장의 부하인 마충이 관우를 포획.
  24. 거기다가 시신은 민가의 주인이 그냥 불태워 흔적을 없애버린다.(…)
  25. 특히 적벽대전에 항복하자고 하고, 육손을 천거하는 감택을 비난하는 손권 진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역으로 나온다.
  26. 김홍신 평역판의 경우 안쓰러웠는지 괄목상대의 일화를 추가했다. 단, 본인 입으로 얘기하진 못했고 남의 입을 통해 "그랬다더라"는 식으로만 언급된다.
  27. 그러나 여몽은 형주 공략 당시 투병 중이었다 병상에서 육손에게 조언했을진 몰라도 형주 공략의 아이디어를 육손에게 돌리는 건 무리가 아니라는 시각도 엄연히 있다.
  28. 임진록에서는 만력제조선에서 원군을 청하러 온 사신을 내쫓고 잠을 자다 보니, 꿈에 관우가 나타나서 만력제에게 말하길 "황제 폐하께서는 저의 형님이신 유비가 환생한 것이며, 조선의 임금 선조장비가 환생한 것이옵니다. 그러니 형제의 의로써 도와주십시오"하고 사라졌다는 서술이 나온다.
  29. 물론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중국에게 패배하였기 때문에 일본은 중국의 문화유산을 훼손했다는 죄로 UN의 배상 권고 판결을 받고 여몽의 묘를 다시 복구해주어야만 했다(...).
  30. 주치의 여동생의 아들이였으나, 후사가 없던 주치가 그가 13세 때 손책에게 건의해 양자로 맞이했다. 원래 이름은 시연.
  31. 향년 68세. 그가 죽자, 손권여몽능통 다음으로 슬퍼했다 한다. 직접 상복을 입고 장례식을 거행했다.
  32. 좌대사마=대사마. 오나라는 대사마가 좌, 우 두개로 나뉘어있었다. 그리고 대사마는 최고등급인 1품관.
  33. 주연 대신 도독이 된게 바로 육손. 대신 주연은 나중에 좌대사마까지 승급한다.
  34.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코뿐만 아니라 코, 귀, 열 손가락이 잘렸다고 한다.
  35.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술 한잔만 줘요라는 말이 순우경의 유언으로 나온다.
  36. 예를 들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십상시의 난 당시 원소는 십상시를 숙청하기 위해 특정 지역의 무고한 백성들을 대량학살하고 이걸 흑산적의 소행으로 조작해 당시 영제와 십상시가 추진하던 흑산적 유화정책을 탄핵한 전적이 있다. 그 밖에 자신과 인연이 거의 없었던 양부모 2명의 삼년상을 연속으로 지내 스스로를 효자로 포장하면서도, 조정(특히 동탁)의 어그로를 끌어 자신의 친족이 몰살당함에도 도리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37. 원담이 폐출된 이상 원희가 장남이 되는데, 원희의 행적과 평가로 볼때는 후계를 노리기에 능력이든 야심이든 한참 모자랐던 것으로 보이며, 폐출되지 않은 것 또한 애초에 위험거리로조차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38. 이조차도 심배는 원담의 처우에 대해 원상이 지나치게 물러터졌다고 깠다.(...) 원상 입장에서 권위가 거의 전무한 자신의 최대 지지자이자 실질적인 섭정격이 심배였음을 생각하면 사실상 딜레마에 가까운 상황.
  39. 교리를 배우기 위해선 쌀 다섯 말(그래서 오두(五斗)이다)을 바쳐야 했다. 오두미도 항목 참고.
  40. 다만 포신의 동생 포도가 전사했는데 여기서 따온 인물로 보인다.
  41. 이건 여담이지만, 중국 수나라 말기에 이연이세민 등이 태원 지방에서 봉기한 것도 '태원기의(太原起義)' 라고 한다.
  42. 이는 삼국시대를 무대로 한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진법이나 전략보단 이해하기 쉬운 일대일 결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보니 일기토가 많아진 영향도 있다.
  43. 다만 진도의 경우는 워낙 기록이 부실하다는 말도 또한 있어서...나오게 하고 싶어도 조운에 버금간다는 서술 이외에는 전해지는 것이 미비해서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44. 원래 위는 촉한 멸망 직후 익주를 경유해 오를 본격적으로 공격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강유, 종회의 난과 서진의 건국, 선비족의 침략으로 오 침공이 늦어지게 되었다.
  45. 그런데 허유는 정사에서도 죽는다. 다만 정사에서는 허저가 아니고 오만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조조가 직접 죽였다.
  46. 실제론 나름 항복을 반대하기도 했고 끔살당하지도 않았다... 근데 이 인간은 정사에서도 그닥 안 좋은 놈으로 나온다. 실제로 조조가 천자에게 표문을 올려 그를 칭찬했을 정도라지만... 이건 그냥 띄워주는 말일 뿐이다. 아니 애초에 "자식 낳으려면 손견처럼 낳아야지. 유표 아들놈들은 개돼지 수준이야." 라고 조조가 직접 말했는데 더 말이 필요한가? 거기다가 연의에서는 유기와 친한 듯 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이가 안 좋았고(유기가 형주를 계승 못한 것도 유종과 채모가 힘합쳐서 저지른 걸로 보인다.) 나중엔 아예 연을 끊고 서로를 원수라고 생각할 정도니... 연의의 최후는 나관중이 이런 유종의 모습을 까려고 그렇게 묘사한 듯 하다. (구 버전에선 재능이 좋았는데 안타깝게 단명했다느니 했는데 실제론 그런 거 없다.)
  47. "관우의 사망에 얽힌 자들(여몽, 미방, 부사인, 반장, 마충)은 모두 죽었는데, 이 둘까지 그냥 죽이게 하면 사건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좌우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48. 정확히는 제갈량이 받아들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동다나&아회남보다는 맹획이 우선순위였기에 그랬던 것으로 추정된다.
  49. 대표적인 예가 마속. 이건 연의에도 언급되었다.
  50. 양의는 위연 사후 자신이 승상에 오르지 못하자 비의 앞에서 위나라로 귀순할 걸이라고 외쳤다.
  51. 박망파 전투 등 유비가 직접 작전을 짜고 지휘했던 전투의 공을 제갈량에게 빼앗겼다. 적벽의 승전에선 패잔병 뒷치기나 하는 존재가 되었다. 심지어는 무제기에서는 '공이 적벽에서 유비와 더불어 싸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비군 2만, 오군 3만 정도로 연의의 묘사처럼 유비군 수가 적거나 약한 것도 아니었다. 보다 적은 병력을 이끌고 있었던 이릉전의 패배가 75만을 끌고가서 5만에게 털린 삽질로 바뀌었다.
  52. (연의 한정으로) 여포의 목을 벤 후 서주의 주민들이 조조에게 와서 유비가 계속 다스리게 해달라거나, (형주 항복 후) 조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번성(?)으로 피신할 때 주민들이 전부 따라나섰다거나.
  53. 만인적으로 칭송받는 무용에 위나라 대표 명장 장합을 격파하는등 사령관으로서의 재능도 뛰어난 자이다.
  54. 정확히는 연의의 이미지를 보고 만든 수많은 작품의 장비가 열혈바보가 되었다. 오히려 연의에서의 장비의 활약을 보면 지장에 가깝다.
  55. 상급자나 강자에서 굴하지 않고 약자에게는 너그러웠던 관우는 오히려 연의 장비와 비슷한 성격상을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소년만화 열혈 주인공
  56. 예외로 지적인 이미지가 남아있거나 오히려 부각되는 작품이 있다면 화봉요원, 삼국전투기, 시, 연 삼국지화에서 묘사되는 장비.
  57. 괜히 손권이 손제리로 욕을 처먹는게 아니다. 부하 명장을 자신의 의견을 거슬렸다 하여 괴롭혀서 분사시킨 희대의 병크를 저질르셨다.
  58. 치세의 간적 난세의 영웅이라는 말도 따로 전해진다.
  59. 실제로 밀서를 위조하고 계획한 사람은 동군태수 교모.
  60. 마등은 조조 세력권 안에서 별 생각없이 있는데 서량에서 아들인 마초가 조조에게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여포, 원소 이후 조조를 위험하게 한 인물중 하나니 당연히 그 아비는...
  61. 조조가 여포와 원소를 잡고 세력권으로 떠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같은 레벨의 태수였던 공융은 조조를 고깝게 보는 시점이 있었고 게다가 조조랑 진짜 상성 안맞는 유학자 + 이빨파라 이미 조조 눈밖에 났다.
  62. 다만 황충이 쏘았다는 판본도 있다.
  63. 관우, 장비가 존재하던 시기에는 아무리 제갈량이라 해도 2인자로 올라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