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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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 고려 숙종 7년인 1102년에 흥왕사(興王寺)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간행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의 약사경을 훗날 조선 세조 5년인 1459년에 왕의 명으로 복원한 불경.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대한민국 보물 제1130호에, 부산광역시 남구 백련사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흥왕사는 고려 전기의 고승인 의천이 교장, 즉 속장경을 간행하던 곳으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이런 의천이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당시 왕이었던 고려 숙종의 명에 따라 국사의 병이 치유되길 기원하며 대장경판을 사용하여 제작한 약사경이다.

이때 제작되었던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원본은 훗날 대몽항쟁 시기 또는 여말선초의 혼란기 속에 다른 대장경들과 함께 완전히 불타 소실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다 조선 세조 시기에 고려시대 불경, 대장경 복원 사업 중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한부가 발견되면서 이를 간경도감에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

보물 제1130호로 지정된 장서각본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에는 흥왕사(興王寺)의 간기(刊記)가 붙어있으며, 대장경의 천자함(千字函: 대장경을 보관하는 함의 순서를 千字文에 따라 붙인 것) 표시인 국(鞠)자가 새겨져 있다. 이 천자함 표시는 대장경 간행 때만 한정되고 개별 경전 간행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이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이 고려 전기 의천을 위해 만들어졌던 대장경판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1459년(세조 5) 어제발(御製跋: 왕의 명령에 의해 조성했다는 발문)이 붙어 있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된 백련사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장서각본과 동일한 인본이다.

고려 전기 대장경판각의 형태와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자료이며, 또한 고려시대 판본의 격을 갖추고 있는 자료로 고려 전기 우리나라의 발전된 인쇄술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또한 조선 세조 시기 고전문화 복원사업에 대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고려불경을 조선 세조 때 복원한 것으로 정명경집해관중소, 대반열반경소, 천태사교의집해 등이 있다.

3 바깥고리

4 보물 제1130호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줄여서 ‘약사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질병의 치유를 기원하기 위한 경전이다. 이 약사경은 속장경을 간행하기 위해 1086년 흥왕사에 설치한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펴낸 것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어낸 1권으로 크기는 세로 30㎝, 가로 16㎝이며, 제목 아래 대장경의 천자함(千字函: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책의 번호를 매기는 방법) 표시인 ‘국(鞠)’자가 적혀 있다. 대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을 간행하던 중 숙종 6년(1101)에 돌연 병이 생겨 그해 10월에 입적하게 되는데, 그의 병이 치유되길 기원하기 위해 대장경판에 근거하여 간행에 착수하였고 숙종 7년(1102)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새김의 솜씨·글자획·종이질 등이 고려시대의 목판을 보고 다시 새긴 것을 조선시대에 찍어낸 여러 판본들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5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8호

흔히『약사경(藥師經)』으로 불리는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동방세계에 유리광국(琉璃光國)이라는 불국토를 건설하고, 12가지 큰 서원(誓願)을 세워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할 것을 서원함으로서, 중생들의 질병을 치유하고 모든 재난을 제거하며 수명을 연장하는 약사여래의 공덕을 설파하고 있는 경전이다.

백련사 소장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당나라 현장이 번역한 것으로, 고려 초조본 대장경판으로 간행된 것으로 모두 16장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4장 7행의 13번째 글자 ‘경(竟)’자와 12장 22행의 12번째 글자 ‘경(敬)’자의 마지막 획이 탈락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 태조의 조부의 휘(諱)를 피한 결획(缺劃)이다. 표죽(褾竹)이나 뒤에 축을 달아 권자본 형식으로 장정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불상의 복장용으로 인출된 것으로 보인다.

백련사 소장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초쇄본은 아니지만 인쇄 정도가 대체로 선명하고 보관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이 책과 동일한 인본(印本)이 하나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또 하나는 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초조본 대장경의 희귀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서지학 및 대장경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