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

1 여말선초

한국 사극계의 영원한 산소호흡기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르는 정치적 격동기를 말한다. 그 사이에 워낙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2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

여말선초에 대해서 대중들이 잘 알고는 있지만 그 시기가 언제부터 시작해서 언제까지인지는 사람들마다 이야기가 다르다. 정말 넓게 보면 고려 공민왕 즉위인 1351년부터 시작해서 조선 세종의 승하까지인 1450년 혹은 조금 오버해서 문종 승하인 1452년까지로 볼 수도 있고, 좁게보면, 고려 공민왕 시해, 우왕 즉위인 1374년부터 조선 태종의 정변인 1398년이나 즉위인 1400년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1] 정말 좁게봐서 조선 건국의 핵심인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으로만 집중했을 때, 위화도 회군인 1388년 부터 무인정사까지인 1398년으로만 집중할 수도 있다. 어쨌든 길게는 100년 짧게는 10년에 걸친 역사를 여말선초라고 볼 수 있겠다.

3 격동의 역사와 그 속에 있는 개성 강한 인물들

언제나 기존 왕조의 망국과 새 왕조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사건은 다이나믹한 사건들의 연속이고 거기서 펼쳐지는 영웅군담은 사람을 자극하게 만든다. 7세기를 관통하는 삼국통일전쟁이 그러하고, 9세기 말 10세기 초반 동안 대략 40년을 관통하는 나말여초(후삼국시대)가 그러하다. 하지만 여말선초가 이 두 시대보다 더욱 사극화가 많이 되는 이유는 첫째로 사료가 풍부하다. 삼국통일전쟁이나 후삼국 시대가 사료가 부족하다는게 아니라 여말선초를 다루고 있는 사료들이 시대적으로 훨씬 잘 보존되어있고 풍부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극을 만들 때, 사료만으로 잘 버무리기만해도 작품이 된다. 물론 그러지 못한 작품도 있다. 어쨌든 그 격동기 속에서 소설에서 나올 법한 매력적인 케릭터성을 가진 인물들이 넘쳐난다. 그 외 부차적인 이유이지만 삼국통일전쟁이나 후삼국시대는 큰 전쟁이 너무 많아서 제작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2] 더 적은 예산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사극이 많이 제작되었다.

반원과 개혁을 외쳤으나 동지도 사랑도 잃으면서 서서히 몰락한 공민왕
원의 공주로서 누구보다 남편인 공민왕을 지지했으나 끝내 요절해버린 노국공주
진취적 개혁가와 혹세무민의 요승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신돈
권문세족의 정점으로서 온갖 전횡을 일삼았으나 고려를 지키려고 하는 아이러니한 면모도 있는 이인임
백전의 노장으로서 온 몸을 다해 고려를 지키던 충신이지만, 한계와 독선으로 몰락한 최영
유종으로서 개혁가와 혁명가를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한계에 있었던 이색
불세출의 신궁이자 고려 최고의 장군이었으나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문무겸비의 최고의 관리이자 개혁가이며, 고려의 최후의 수호자였던 정몽주
시대를 앞서간 불꽃같은 혁명가로서, 조선의 틀을 만든 정도전
여말선초 최후의 승리자로, 왕권강화에 모든 것을 바친 철혈군주 태종 이방원
왕권과 신권의 절묘한 조화로 한국사 최고의 치세를 펼친, 훈민정음의 창시자 세종대왕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관노에서 면천되고, 조선의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장영실

이외에도 하륜, 이숙번, 황희, 맹사성, 문종 등등...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드라마 소재로도 잘 쓰인다.

4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이런데도 못 만들면 문제가 있는 거다. 그런데 못 만든 것들도 있다.(...)

개국
조선왕조 오백년 - 1부 추동궁 마마, 2부 뿌리깊은 나무
용의 눈물
신돈
대왕세종
뿌리깊은 나무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장영실
순수의 시대
신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대풍수

나는 왕이로소이다
  1. 이렇게 다룬게 드라마가 정도전(드라마)육룡이 나르샤이다.
  2. 물론 여말선초에도 큰 전쟁은 몇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왜구 소탕전 등이라서 중국의 수십만~백만 대군 등을 등장시켜야 하는 삼국통일전쟁에 비할 바는 아니다. 또 후삼국시대도 그렇지만 전쟁의 빈도수도 훨씬 잦다. 그리고 이 두 시대는 전쟁들이 메인 스토리를 관통하고 있어서 전쟁들을 생략하면 극중 진행 자체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