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der of Garter
성 조지 예배당에 걸린 가터 기사단원 가문 및 왕실 문장 |
1 개요
에드워드 3세가 백년전쟁 초기(1347년)에 결성한 잉글랜드의 기사단. 본거지는 윈저궁이었으며 수호성인은 드래곤을 잡은 성인으로 유명한 성 조지(George).
2 상세
일종의 명예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잉글랜드 국왕을 단장으로 총 26명의 기사를 뽑았다. 최초에는 21명이 정원이었으며, 근대에 들어오면서 정단원 외에 명예단원으로서 가입하는 경우도 있다.
선발되는 기준은 그 기사가 세운 공적이 보통 기사와 비할 수 없이 클 때. 이론적으로는 평민이나 여성도 일단 기사서임을 받은 뒤 공훈이 혁혁하다면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가터 기사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는데, 실제로 가터 기사단이 존재하는 동안 68명의 여성이 이 기사단의 기사로 임명되었다[1].
그러나 영예로운 가터 기사단에게도 흑역사가 있으니, 그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가터 기사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42명의 가터 기사들이 사형되었으며, 헨리 8세 시대에만 8명이 사형당했다. 이는 가터 기사단이 스코들랜드와 통합되기 이전 잉글랜드의 유일한 궁정기사단이라서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힘 좀 꽤나 부리는 귀족들이었는데, 인권보장을 포함한 법의 지배원칙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중세와 근세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무장반란을 포함한 정치적 대립에서 패배한 가터 기사단원들이 받는 처벌은 사형이었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도 가터 기사에 서임되었는데, 최초로 서임제안을 받은 것은 1945년 대독 전쟁이 종료된 후 치러진 선거에서 참패한 후로서 이 때는 "국민으로부터 선거패배라는 훈장을 받았는데, 다시 가터 기사훈장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서임을 거절했다. 그가 가터 기사로 서임된 것은 1950년대 중반의 일이다
가터 기사단 예복을 입은 찰스 왕세자와 앤드루, 윌리엄 왕자 | 다이쇼 덴노 |
또한, 영국 국왕의 왕자들과 영국과 우호관계에 있는 여러 군주국의 군주 또한 가입이 되어 있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일본[2], 스페인 등 7개국의 군주가 가입되어 있다. 이탈리아 국왕도 가입되어 있었는데, 2차대전에서 영국과 적대하게 되자 탈퇴 처리되었고, 전후 왕정 폐지로 그대로 탈퇴된 채로 남게 되었다. 마찬가지였던 일본 덴노는 1998년 복귀.
가터 기사단에 가입하는 것은 동시에 가터 훈장을 서훈받는다는 의미이다. 서훈시 문장이 새겨진 방패와 브로치, 대수, 검, 가터벨트 등을 받으며, 이들 중 일부는 사망 시 반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