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009년(고려 목종12년)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가 군사를 이끌고 개경에 입성하여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옹립한 사건.
2 상세
1009년 고려 제7대 왕인 목종은 병석에 누워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종은 우복야 겸 삼사사 김치양이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유충정을 통해서 전해 들었으며, 삼각산의 신혈사에 유폐 되어있던 대량원군 왕순에게서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있으니 보호해달라는 밀지도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목종은 중추원부사 채충순을 은밀히 불러 왕위를 내정한 대량원군 왕순을 궐로 데려오도록 하는 한편, 서경 도순검사로 있던 강조를 입조시켜 숙위토록 하였다. Protect me
왕명을 듣고 출발한 강조는 뜻밖에1 수도로 오던 도중에 왕명이 천추태후와 김치양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거짓정보를 듣게 된다.[1] 일단 강조와 그 군대는 서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뜻밖에2 아버지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왕이 이미 사망했으며 김치양 일파 등이 사직을 마음대로 하고 있다는 내용이 써있었다.[2] 따라서 군사 5천을 이끌고 다시 개경을 향했다. 서경을 떠날 때, 강조는 김치양 일파를 제거해 안전한 상황이 되었을 때 목종의 후계자인 대량원군 왕순을 왕위에 세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3 경기도 평주에 이르렀을 때 자신에게 유지를 남기고 죽은 줄 알았던 목종이 아직 살아있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머리 속은 혼란으로 휩싸인다. 많은 수의 군사를 이끌고 왔기 때문에 이미 반역으로 몰릴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 선택의 길은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하고 새 왕으로 대량원군을 옹립하는 것이었다. 결심한 그는 개경을 향해 말을 달렸다. 혼란스러웠던 강조를 이해하자
강조의 군대는 순식간에 개경을 장악했다. 궁궐을 장악하자 추종자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 했지만 강조는 거부했다.[3] 그러나 목종을 폐위하여 양국공으로 낮추고 대량원군 왕순을 데려와 왕(고려 현종)으로 세웠다. Sorry, I'll kill you[4]
이 정변이 일어나자마자 거란은 강조의 처벌을 명분으로 내세워 두번 째로 고려로 쳐들어왔다. 그리고 강조 역시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자청해서 거란을 막으러 나갔다. 그리고...[5]
2.1 의문
상식적으로 왕을 보위하려는 자가 왕명을 듣고서 군사를 이끌고 출발했으나 속아서 돌아갔다가 죽었다는 거짓정보를 듣고 다시 수도로 왔는데, 죽지 않았다는 소식에 고민하다가 정변을 일으켰다는 것은 이상하다. 왕이 엄연히 개경에 머물고 있는데 그곳에 군사를 몰고 들어간다는 것은 반역행위로 간주되어도 할 말 없는 행위라지만, 강조는 원래 왕명으로 군사들을 이끌고 온 것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왔다는 거면 몰라도 군사를 이끌고 왔다는 거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역사의 기록에 최후의 승리자가 된 현종의 입김이 닿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강조 열전의 관련 기록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석하자면, 강조는 입위하라는 목종의 명령을 받기 전에, 혹은 받고 나서 군대를 출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역심을 품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후기 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현종이 정변의 주체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안】 순이 왕위에 오른 것은 목종의 뜻에서였다. 순이 부름을 받고 왔을 때 비록 구적(冦賊)의 난이 종횡무진하더라도 마땅히 왕의 소재처를 물어서 친히 그 명을 받았더라면 왕위를 주고받음이 매우 정당하였을 것인데, 이제 와서 왕의 소재처를 한 번도 묻지 않고 급하게 서둘러 자신이 즉위하였다. 비록 강조가 왕을 시해하였다 하더라도 필연 순이 그 일에 참여했을 것이다.
</br>그런데 사책에,
</br>“새 임금은 알지 못하였다가 거란이 죄를 문책할 때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
</br>하였으니, 그것이 과연 말이 되는가?
</br>동사강목 제6하 기유년 목종 12년(송 진종 대중상부 2, 거란 성종 통화 27, 1009)
- ↑ 강조는 동주에서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위종정과 최창은 김치양에게 원한을 품었다) 수도에 대한 소식을 물었는데, 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 사람들은 강조가 수도에 없는 사이 김치양 일파가 되었지만, 강조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이후 기록을 보면 천추태후는 강조가 서경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듯.
- ↑ 당시 '목종이 이미 죽었다'는 뜬소문이 돌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천추태후는 왕명으로 강조가 온다는 소식에 그를 막으려고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걸 막아 정보도 통제되었던 듯하다. 강조의 아버지가 소문을 사실로 믿고 그대로 전한 건지 아들을 오게 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편지 내용 중에 왕이 사망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편지를 전했던 종은 하루종일 달려 편지를 전달하고 지쳐 죽었다!
- ↑ 고려사의 기록엔 '강조가 건덕전의 어탑 아래에 앉았는데 군사들이 만세를 부르자 놀라 일어나 꿇어앉으며,「“다음 임금이 오시지도 않았는데 이 무슨 소리인가?”」 라고 말했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 ↑ 목종은 일단 충주로 보냈다가 나중에 부하들을 보내서 시해한다.
- ↑ 자기가 왕이 되지 않고 대량원군을 왕으로 세울 정도이니 당연한 행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전사한 이유도 거란군을
신나게추격하다가 붙잡혀서 죽었다. 강조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