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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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仙芝
(? ~ 756)[1]

고구려 유민 출신의 당나라 장수[2]. 고(高)라는 성 때문에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으나 딱히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당나라에는 한족 이외의 출신들을 장군으로 기용하는 번장제도가 있었는데,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高斯界)가 당나라의 번장이었으며, 고선지는 그러한 아버지의 지위에 따라 음보로 등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 고향은 하북 밀운군으로 북경 근방이나 730년경의 튀르기시 토벌원정때 이주한걸로 추측된다. 일찍이 장군이 되어 크고작은 공을 세웠으며 당나라의 서역 원정을 지휘하였다. 747년부터 서역원정에서 토번과 사라센 등을 개발살냈고, 수많은 서역국가들을 관광태우면서 당나라의 영향권을 서쪽 사막지대로 확장시켰다. 이러한 원정에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동투르키스탄(지금의 위구르)과 타슈겐트를 넘어 사마르칸트까지 점령했는데 이러한 역사는 사실 한족왕조 역사상 710년의 일시점령과 더불어 두 시기밖에 없다.

751년, 고선지의 석국원정에 참살당한 왕의 아들이 압바스 왕조와 연합하자 위협을 느낀 고선지는 본국에서 파견한 병력과 동맹국의 병력들을 소집하여 탈라스 대평원으로 향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탈라스 전투인데 하지만 카를룩군이 배신과 전략적인 패배와 수적인 열세에 밀리며 완벽하게 대패하였고, 간신히 휘하장수 이사업의 패병 재편성과 당 왕조의 기강붕괴로 하서절도사의 유임정도로 끝나고만다.

755년 안사의 난이 발생하자 부원수로 임명되어 정부군을 지휘하였다.황족은 관례상의 원수로 지휘되는걸 감안하면 사실상의 원수. 고선지는 안녹산[3]의 서진 소식을 듣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임의로 휘하부대를 이동시켰다. 덕분에 안녹산의 서진은 저지할 수 있었지만, 정치장교감군이던 환관 변영성이 황제의 명령없이 군대를 움직인 점을 문제삼아 당현종에게 과장하여 보고하였다.

진노한 현종은 참형을 명하였고 결국 고선지는 진중에서 참수되었다.

신당서(新唐書) 고선지전(高仙芝傳)은 고선지와 봉상청의 최후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참고로 봉상청은 고선지가 발탁한 인물로 절름발이라 태생적으로 군직을 맡기에 문제가 있었으나, 일찍이 발탁되어 그럭저럭 실력을 인정받았고, 고선지가 탈라스 전투 패전으로 물러난 이후 고선지의 직위를 물려받았다. 안사의 난에서도 고선지 군 보다 먼저 안녹산군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되었으나 패해서 후퇴한 상황이었고, 이로인해 감군 변영성의 모함으로 고선지보다 앞서 처형되었고, 이어 고선지도 처형되었다.
'.....황제가 대노하여 변영성(邊令誠)에게 곧 군중(軍中)에서 베어 죽이게 했다. 변영성은 봉상청을 베어 죽여 시체를 거친 대자리에 싸서 버렸다. 고선지가 다른 곳에서 도착하자 변영성은 도수(刀手) 100명에게 자신을 따르도록 지시한 뒤 고선지에게 말하기를, "대부(大夫)에게도 역시 황명이 있다."고 했다.
.....고선지가 이내 급히 내려가 말하기를, "내가 후퇴한 것은 죄를 지은 것이니 그 때문에 죽는다면 어찌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보고 창고의 식량을 도둑질했다는 것은 모함이다."라고 하고, 다시 변영성에게 이르기를, "위로 하늘이 있고, 아래로 당이 있고, 삼군(三軍)이 모두 여기 있는데, 어찌 임금께서는 이 일을 모르시는가?" 했다.
또 휘하의 사졸들을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모집했던 처음 의도는 적을 쳐부수고 나서 큰 상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적의 기세가 이 순간에도 성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관을 고수하고 있게 되었다. 내게 죄가 있다면 너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너희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원통하다고 외쳐라!"라고 하자, 군중에서 모두가 "원통하다!"고 크게 외쳤는데 그 소리가 사방에 진동했다.

고선지가 봉상청의 시체를 보고, "그대는 내가 발탁했고, 또 나와 절도사를 교대했다. 지금 그대와 더불어 죽으니 이는 모두 운명이 아니랴!"하면서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였다.'

사실 고선지로서는 안녹산의 서진을 도저히 막을수 없어서 일단 섬주를 버리고 전략적인 위치로 후퇴하고 적에게 노획될 가능성이 있는 무기를 파묻고 창고를 직권으로 개방해서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준 것이 고선지의 죄라면 죄이다. 즉 임의로 상부 명령없이 소개작전을 펼쳤다는 일, 하지만 상황이 어쩔수 없을 정도로 군이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처형은 지나친 감이있다. 참고로 충신이라는 이름하에 고선지의 소개명령을 거부하고 상소를 올린 변영성은 수도 장안 동쪽에 있는 동관을 지키고 있다가 후에 안녹산이 오자 직접 동관을 바치고 항복한다. 흠좀무. 물론 나중에 난이 진압된 후 죽음을 당하지만

국내의 경우 남북국시대를 배울 때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세계사의 경우 그 유명한 탈라스 전투가 중요하기 때문에 언급되는 인물, 그러나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했다.가 설명의 전부라서 대부분 듣보잡취급한다. 가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고선지를 강조하긴 한다.

지배선이라는 역사학자가 이정기와 함께 엄청나게 미는 인물. 국내에 나온 고선지 관련 서적은 전부 지배선 저작.

국내에서 드라마로 제작하려고 했으나 취소되고 대신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 아역으로 잠깐 출현한다. 동명천제단이 공중분해되고 이문에게 포로로 잡혀 당나라 장안성에 압송되어 저잣거리에 묶여있는 대조영에게 물을 준다. 아역배우가 누군지 아시는분은 추가바람.
  1. 연세대학교 사학과 지배선 교수는 그의 출생연도를 700년 전후로 비정하기도 한다.
  2. 대만의 영웅이자 한족과 일본계 혼혈인 정성공이 유사한 인물로 꼽힌다.
  3. 재밌는 점은 안녹산도 이란계 이주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