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延壽
(? ~ 645)
1 개요
고구려-당 전쟁 당시 고구려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주필산 전투의 주역(...). 이 양반이 말아먹은 15만 대군은 이후로 고구려에 큰 타격을 주었다.
거기에다가 은근히 매국노삘이 나는 인물. 전투에서 패해 병력을 모조리 까먹은 것도 모자라서 패배한 후에는 그대로 당나라에 붙어서 고구려를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북부 욕살(褥薩)의 벼슬을 지냈으며, 성씨가 고구려의 왕족인 고(高)씨임을 미루어 볼 때 계루부 출신의 인물로 여겨진다.
2 생애
2.1 출전
보장왕대인 645년, 당태종이 역적 연개소문을 벌한다는 명분으로 고구려-당 전쟁을 일으켜 안시성에 이르자 보장왕은 고연수에게 이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연수는 남부 욕살 고혜진과 함께 고구려 군대와 말갈병의 연합군으로 구성된 15만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 군대에 맞서려 하였다.
이때 나이가 많아서 노련하고 경험이 많았던 대로(對盧) 고정의가 "당 태종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 당나라 군사와 정면으로 대적하지 말고 방어선을 구축하여 시간을 벌다가 적의 보급로를 끊어 패퇴시켜야 한다."라고 조언하였으나 고연수는 이를 듣지 않았다.[1]
2.2 주필산 전투
당 태종은 우선 돌궐 기병을 보내서 고연수를 가까이 유인한 다음, 고정의가 이끌고 온 15만 대군에 겁을 먹은 척 하며 서신을 보내어 화의를 요청하였다. 고정의는 이를 보고는 안심하여 방어를 가볍게 하였는데, 당 태종은 그 틈을 노려서 명장 이적과 장손무기 등에게 병사를 나누어 주어 부대를 배치시켜놓았다.
다음날에 고연수와 고혜진은 이적의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는 무턱대고 공격하다가 배후에서 장손무기가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오자 군진이 어지럽혀졌다. 게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갑툭튀한 설인귀가 선두에서 뛰어난 무용으로 고구려군을 몰아붙이는 바람에 고구려군은 사기가 꺾여 대패하였고, 3만명의 병력을 잃었다.
산속으로 달아난 고연수는 사방이 당나라 군대에게 포위당하고 산 밖으로 빠져나갈 통로인 교량마저 파괴당하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고혜진 및 3만여명의 병력들과 함께 항복하였다. 당 태종은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전투가 벌어졌던 산에 '주필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붙였다.
2.3 최후
항복한 고연수는 고혜진과 함께 당 태종으로부터 벼슬을 받았다. 이후로 당나라 군대를 따라 종군하였으며, 안시성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그러나 기껏 당나라에 귀순한 보람도 없이 먼치킨안시성주에게 털리고 말았다(...).
계속해서 안시성에서 시간이 지체되자 고구려에 두고 온 가족들이 걱정되어 당 태종에게 안시성에서 시간을 끌지말고 평양성을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장손무기가 반대하는 바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전쟁이 고구려의 승리로 끝나자 당 태종의 군대와 함께 당나라로 향하던 중에 나라를 배신하고 항복한 일에 대하여 후회하고 탄식하다가 결국 근심으로 병을 얻어 죽었다.[2]
3 그 외에
아이러니한 점은 고연수가 당 태종과 피터지게 싸웠던 이유도 안시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정작 당 태종에게 항복한 후에는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사실 살려면 별 수 없었겠지만
어쩌면 애초부터 그리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그리 높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라를 버린 것을 끝내 후회하다가 죽었으니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