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한 말의 인물
關靖
(?~199)
후한 말의 인물. 공손찬 휘하의 문관. 자는 사기(士起).
병주 태원군 출신으로 공손찬 밑에서 장사를 지냈고 본래 악독한 관리였으며, 사람 마음을 혹하게 하거나 아첨을 잘해 원대한 계략도 없었지만 공손찬에게 신뢰와 총애를 받았다.
원소가 공격해 왔을 때 공손찬이 아들 공손속을 장연에게 보내 원군을 요청하고 자신의 자랑거리인 돌기병으로 서산의 원소군을 쌈싸먹을 계획을 세우나 관정이 나와서
지금 병사들의 마음이 다 떠나 있는데 그런데도 이들이 버티고 있는 것은 자신의 부모자식을 지키자는 마음과 공손찬 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역경루에서 농성을 한다면 원소군은 알아서 떠날갈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손찬님이 출진하시면 후방의 지원이 없어져 역경이 위험하게 되고 그러면 병사들은 다 도망가 역경은 결국 함락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공손찬은 결국 출진을 포기하고 니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허나 이 말은 듣기에도 좋고 실행하기도 편하겠지만 최악의 수였다. (공손연도 비슷한 전략으로 최후를 맞았다.)
199년에 공손찬이 원소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자결하자
예전에 공손찬님이 출진하는 것을 막지만 않았다면 꼭 실패한다고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을... 내가 듣기로 군자는 남을 위험에 빠뜨리면 필히 자신도 그 고난을 함께 한다 했으니 어찌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라 외치고 말을 타고 단기로 돌격해 죽었고 그의 목은 원소가 허창으로 보냈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나라를 망친 간신들인 양송이나 황호, 잠혼 같은 부류보다는 훨씬 나은 최후. 그들은 나라와 주군을 망치고도 자신들의 보신만 생각했지만 관정은 비록 늦었지만충성심을 보였고 자신의 전략적 실책을 뉘우쳤다. 또한 군자라는 단어를 언급한 걸로 보아서 비록 학자 출신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도 나름대로 유교적/전통적인 미덕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1.1 미디어 믹스
삼국지 9,10,11 |
삼국지 12,13 |
12에서 나온 일러스트는 공손찬이 자결한 뒤 그 뒤를 따르려 결의를 다잡는 모습으로 보인다.
삼국지 시리즈에는 무장이 없어서 고생하는 공손찬군의 문관으로 등장한다. 9부터(군사 특기가 있어야 되는 군사가 되는 삼국지 10 제외) 공손찬의 군사로 책정이 되었는데, 대부분의 유져들이 대신 전예를 군사로 임명한다. 그이유는 전에의 지력이 80대에 75짜리 관정보다 지력이 높아서 전예를 군사로 임명한다. 그리고 의리가 낮게 설정되어있는데 관정 본인에게는 억울한 설정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9/무력 61/지력 72/정치력 65. 문관이었고 지력도 높지만 모략이나 책략계 병법이 하나도 없다. 돌파, 기사 보유. 그래도 무력이 61은 되고 공손찬군은 세력 병법이 주사라 그럭저럭 써먹을 수 있다.
삼국지 10에서는 공손찬 진영의 유일한 군사 특기 무장이다. 다만 능력치는 그렇게 좋진 않다. 통솔력 35/무력 50/지력 73/정치력 68/매력 51에 나머지 특기는 상업, 화시, 반목, 유인. 군사 특기는 사기지만 지력이 73이라 조언 성공율은 구리고, 통솔이 35라 생각만큼 턴이 그리 자주 오진 않는다.
삼국지 12에서는 군사 특기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냥 쩌리 무장. 안그래도 비책이 중요한 게임인만큼이나 공손찬 진영은 약소세력이 되었다.(...)
삼국전투기에는 영화인 '늑대와 춤을'의 존 덴버 중위로 등장한다. 소개문에서 지나치게 꼼꼼한 스타일로 수하에겐 인기가 없고 상관에겐 사랑받는 스타일, 개념은 탑재라고 나오며, 늑대와 산책할 땐 꽃삽과 비닐봉지 지참이라면서 늑대의 똥을 치우는 모습으로 나왔다. 조운에게 상산의 장연에게 원군으로 보내라고 했으며, 공손찬이 사망한 후에는 양 손에 만세를 한 채로 원소군에게 돌격했다가 던지는 창에 맞아 죽었다. 공손찬군의 카우보이 컨셉에 의한 결과인 듯. 개똥은 치우자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2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關定
관우가 유비를 찾기 위해 여남으로 갔다가 유비가 하북으로 간 것을 알고 만나러 가던 도중에 묵게 되었는데, 관우가 앞 마을에 장원 한 채가 있어 쉬려고 했다. 이 때 관정이 지팡이를 짚고 나와 인사했고 관우가 찾아온 사정을 밝히자 두 아들을 불러 관우에게 인사하도록 하면서 극진하게 대접했다.
유비가 하북에서 돌아오면서 또다시 두 아들을 불러 초당 앞에 절을 했으며, 관정은 아들 관평이 관우를 따르도록 제안했다. 유비가 아들의 나이를 묻자 열여덞이라고 대답했으며, 유비도 관우가 아들이 없음을 들어 관우를 설득해 수락하도록 했다.
이에 관정은 크게 기뻐하면서 관평을 시켜 관우에게 절하게 하면서 아버지로 모시개 했고 유비를 큰아버지라 부르게 했으며, 유비가 원소의 추격이 있을까봐 서둘러 떠나자 한참 배웅하다가 돌아갔다.
2.1 미디어 믹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관평이 관우가 양자가 된 것을 보고 하인들을 불러 큰 잔치를 열게 하자는 것이 나오는데, 유비가 원소의 추격에 온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 급히 길을 떠나야 한다면서 잔치는 뒷날에 미뤄야 한다고 하자 그 말에 따르는 모습이 나온다.
신삼국에서는 산을 점거해 관정장이라는 산채를 세웠는데, 조운이 데리고 온 공손찬의 3천 군사를 기거하게 했다. 호탕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조운이 관우와 장비를 만나자 조운이 그 둘과 함께 관정장에 들어오자 대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