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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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의 사건. 소설 9권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U.C 800년, N.C 2년에 일어났다. 9월 1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9월 1일 사건'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9월 1일, 전직 자유행성동맹 정부 관료[1]와 재향군인들이 하이네센 폴리스의 응웬 킴 호아 광장에 모여 개최한 합동 위령제에서 시작되었다.

이 위령제는 사전 오스카 폰 로이엔탈 신영토 총독의 허가를 받은 합법적인 집회였으나 로이엔탈을 위시한 제국측 인사는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전직 자유행성동맹 국가원수인 최고평의회 의장이자 현재는 로이엔탈 총독의 보좌관직을 맡고있는 욥 트뤼니히트 전 의장도 불참하였다.

위령제 참석자들은 전 자유행성동맹 원수 시드니 시톨레 같은 고위 관료도 포함되었으나 약 20만에 달하는 참석자 대부분은 무명인사들이거나 하급병사들이었다. 사전 허가받은 위령제이니만큼 행정장관 율리우스 엘스하이머가 짠 계획에 의해 위령제 장소도 지정해주고 검열감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대장은 식장 경비를 위해 약 2만명에 달하는 무장병력을 배치하는 등 신영토 총독부는 위령제의 평화로운 마무리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가했다.

그러나 위령제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군중속에서 "민주주의의 수호자 양 웬리 장군 만세!"[2], "민주주의 만세!", "자유여 영원하라!"라는 외침이 터져나오면서 광장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고 경비를 위해 배치된 제국군들은 점차 올라오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급기야 "친구여! 어느 날엔가 압제자를 타도하고, 해방된 행성 위에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올리자!"라는 자유행성동맹국가(國歌) 첫 소절이 울려퍼지면서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14시 06분을 기점으로 광장에 모인 전 동맹 시민들은 배치된 은하제국군 병사들을 향해 돌멩이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약 2만 명을 배치했으나 한번 분노하기 시작한 약 20만 명의 시민들을 맨손으로 막을 수는 없었던 제국군은 14시 20분, 전 병력에 무력화가스와 곤봉의 사용허가를 내렸으나 밀려드는 시민들을 막을 수 없었던 병사들은 허가가 떨어지기 전부터 가스와 곤봉을 사용중이었다. 총독부는 총기 사용을 간신히 자제해 왔지만 그 금지령도 14시 24분엔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 약 10배가 넘는 적대적인 시민들에게 포위된 제국 장병들 중 하나가 비무장 시민을 향해 총기를 발포해 버린 것이다. 한 발의 총탄이 두 사람을 살해하자 주위에 있던 100여명의 증오심이 한꺼번에 폭발했고 이 작은 폭발이 전체로 퍼지는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일전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당시에도 상대가 무장된 군대일지라도 결코 주눅들지 않았던 동맹 시민들은 총기로 무장한 제국군을 상대로 마구 덤벼들어 총기를 탈취하여 반격하기 시작하며 대 참극의 서막이 화려하게 열렸다.

15시 19분, 동맹 시민 약 4천 800여명이 사망하고 약 5천명이 부상당했으며 제국군도 약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이 참극은 겨우 진정되었다.[3]

사태가 막을 내리고 얼마 지나서 총독부는 광장에서의 대 참극에 대해 "제국군의 발포는 참석자들이 병사를 공격하고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정당방위의 기본조치였다."고 발표하였다. 여기에 로이엔탈 총독은 "난 훌륭한 부하들을 두었군. 무장도 안 한 민간인에게 총을 쏘는 건 어지간한 용기와 의협심 갖고는 못 할 짓이지."라고 독설을 내뱉어 보고하러 온 부하들을 매우 우울하게 만들었다.[4]

사건 발생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이 사태의 주동자'를 밝히는 과정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전직 자유행성동맹군 원수인 시드니 시톨레가 구속되었으나 주동자로 밝혀지지는 않았다. 시톨레는 로이엔탈과 대면한 자리에서 자신이 본 사건의 주동자는 아니지만 주동자였었으면 한다는 패기로운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1. 자유행성동맹의 정부 및 실체는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제2차 라그나로크 작전 중 발표한 겨울 장미원의 칙령으로 모두 해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이미 고인이 된 양 웬리가 들었다면 실소를 금치 못했으리라 해설되었다.
  3. 그나마 로이엔탈이 구국군사회의보다는 덜 막나가는 사람이라 그런지 하이네센 기념 경기장 사건보다는 사망자는 적다(...).
  4. 로이엔탈도 부하들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아서 처벌까지 하지는 않았으나 안 그래도 전 동맹 시민들의 민심을 얻기가 힘든 상황에서 이런 대형 참사까지 발생하자 독설을 내뱉는 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