屈晃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이궁의 변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손패와 손화파로 갈려 서로 싸우다가 손권이 손화를 유폐시키자 이 때 상서복야를 지내던 굴황은 주거와 함께 머리에 진흙을 바르고 스스로를 묶은 후에 연일 궁궐로 와서 손화를 풀어줄 것을 요청한다. 백작관에 오라 이 꼴을 본 손권은 반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런 쓸데없는 짓을 뭐하러 하냐면서 질책을 한다.
그 후 손권이 손량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하자 진정과 진상이 진헌공의 예를 들며 이를 말리고 주거와 굴황 또한 이들의 의견에 찬성하여 손권에게 후계자 자리를 그대로 두기를 청하는 사건이 발생, 진노한 손권은 진정과 진상의 일족을 멸하고 주거와 굴황은 궁궐로 끌고 와서 곤장 백 대를 때린다.
하지만 굴황은 궁궐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태자는 어질고 총명하며, 온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분명하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지금 세 방면의 정권이 버티고 있는데, 태자를 바꿔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낳게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성스럽게 생각하십시오. 만약 그리 하신다면 늙은 신하를 비록 죽더라도 살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충언했다고 한다. 이후 굴황이 고개를 떨구고 피를 흘릴 정도의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계속해서 손권을 설득하기를 시도하지만 결국 손권은 굴황을 추방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다.[1]
후에 손화의 아들인 손호가 황제가 되자 굴황이 사직을 바로잡기 위해 충심으로 간언하면서 자신을 버렸음을 칭찬해 굴황의 아들 굴서[2]를 동양정후로 봉하고, 동생 굴간과 굴공을 입의도위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