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량

동오의 역대 황제
1대 대황제 손권2대 폐황제 손량3대 경황제 손휴
연호건흥(建興, 252년 4월 ~ 253년)
오봉(五鳳, 254년 ~ 256년 10월)
태평(太平, 256년 10월 ~ 258년 10월)
손(孫)
량(亮)
자명(子明)
생몰기간243년 ~ 260년
재위기간252년 ~ 258년

1 개요

삼국시대 나라의 2대 황제. 는 자명(子明), 시호묘호는 폐위된 관계로 없고 그냥 폐제(廢帝)로 불린다.

손권의 뒤를 이어 나라의 2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손권의 7번째 아들이자 막내 아들로 말년의 손권이 로리 반부인에게 빠지면서 얻은 늦둥이 아들이다.

2 생애

2.1 즉위 전

손권장남 태자 손등차남 손려가 모두 요절하자 손권의 후계자 책봉을 둘러싸고 새로 태자가 된 삼남 손화와 사남 손패가 암투를 벌였다. 여기에 정나미가 떨어진 손권이 터뜨린 병크둘을 모두 폐출시킨 것이다. 폐출된 손패를 사사[1] 시킨 손권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가장 총애하던 손자 막내아들 손량을 태자로 지명한 것이었다.

2.2 즉위 후

즉위 시 나이가 9살이었으므로 제갈각이 전권을 위임받아 오를 대신 다스렸다.

253년, 제갈각을 두려워한 손준[2]은 연회석상에서 제갈각을 주살하였고 그의 일가를 몰살시키고 실권을 잡았다.

256년, 손준이 죽자 손준의 사촌 동생 손침이 뒤를 이어 실권을 잡았다. 손침은 조상 형제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전횡을 일삼으며 그야말로 막장가도를 달린다.

257년에 손량은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킨 제갈탄(諸葛誕)을 도와주기도 했다.

258년, 손준-손침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전횡을 보다 못한 손량은 장인 태상 전상과 그 아들 황문시랑 전기, 장군 유승과 함께 손침을 제거할 것을 도모하고 전기에게 밀조를 내려 전상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전상은 생각 없이 손침의 사촌 누나인 아내에게 이를 전달했고 전상의 아내는 이를 손침에게 흘렸다. 그 때문에 손침의 선제공격을 받아 유승은 죽고 전상은 사로잡힌 후 영릉으로 보내졌다가 피살되었으며 전기는 아버지의 실수를 부끄럽게 여겨 자살했다. 뒤이어 손량은 손침에 의해 폐위되어 회계왕(會稽王)으로 봉해지며 쫓겨났다.

2.3 폐위 후

260년 손량을 복위시킬 것이라는 참언이 돌아 후관후(候官侯)로 격하되었다. 후관으로 이동하던 중에 자살했다는 기록[3]과 손휴에게 짐살당했다는 상반된 기록[4]이 존재한다. 장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아내 전혜해가 훗날 오군에 안장된 것을 보면 오군에 안장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3 일화

각각 배송지가 오력과 강표전에서 인용한 주석들이다. 아래의 일화들을 보면 나이에 비해 총명한 듯 했고, 잘 교육 받았으면 명군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았겠지만, 아쉽게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3.1 에 절인 매실

손량은 자주 중서성에 가서 손권의 옛 일을 보고 좌우의 시신들에게 물었다.

손량 : 선제께서는 자주 특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장군이 묻는 일에 단지 내게 몇 자만 쓰게 하는데 그래도 좋소?

손량이 후에 서원(西苑)이란 곳에서 매실을 먹으려고 할 때 환관에게 분부하여 궁중의 창고에 이르어 꿀로 절인 매실을 가져오게 했다. 꿀 안에 쥐똥이 있기에 장리(藏吏)[5]를 불러 물었다.

손량 : 황문이 그대에게 와서 꿀을 구하지 않았는가?

장리 : 요구한 일이 있사오나 실제로 감히 주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지만 환관은 불복하였고 시중(侍中) 조현(刁玄)과 장빈(張邠)이 말했다.
조현, 장빈 : 황문과 장리의 말이 일치하지 않으니 아예 옥졸에게 넘겨 처리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손량 : 이건 알기 쉬운 일이오.
손량은 쥐똥을 쪼개라 명하니 똥 안이 말라 있었다. 손량이 크게 웃으며 조현, 장분에게 말했다.
손량 : 만약 쥐똥이 먼저 꿀 속에 있었다면 안팎이 마땅히 모두 젖어있어야 할 것인데 지금 보면 바깥만 젖었고 안은 말랐으니 필시 황문이 한 짓이오.

이에 환관은 인정했고 좌우사람들이 놀라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3.2 사탕수수과 쥐똥

손량이 환관을 시켜 사발을 덮개와 함께 가지고 나아가 장리에게 가서 교주(交州)에서 진상한 사탕수수엿을 가져오게 했다. 환관은 옛날에 장리에게 원한이 있었으므로 이에 쥐똥을 엿 가운데에 던지고는 장리가 조심스럽지 못했다고 모함했다. 손량이 장리를 불러 엿그릇을 가져오게 한 뒤에 물었다.

손량 : 이 그릇은 덮개가 있고 또 다시 덮는 것이 따로 있으니 이렇게 될 이유가 없소. 황문이 그대에게 한스럽게 여길 행동을 한 적이 있소?

장리 : 일찍이 시중드는 아무개가 궁중의 완석(莞席)[6]을 구했는데 완석은 일정한 수량이 있기에 감히 주지 않았습니다.
손량 : 필시 그것 때문이오."

손량은 다시 환관에게 묻자 인정했다. 손량은 그 환관의 머리를 밀고 채찍으로 때려서 내쫒았다.

3.3 네 명의 첩

손량은 정실 황후로 전혜해가 있었지만 다른 첩들에 대한 일화도 있다.

태평광기, 습유기 등에 따르면 매우 얇고 투명한 푸른 유리 병풍을 만들어놓고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밤에는 달빛 아래에서 그 병풍을 펼쳐놓았는데, 절세의 미인으로 총애하는 첩인 조주(朝姝), 여거(麗居), 낙진(洛珍), 결화(潔華) 등이 있었다. 그 첩들을 병풍 안에 앉혔지만 밖에서 바라보면 마치 가로막혀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듯 했지만 그 향기 만은 밖으로 세워가지 않았으며, 여인들을 위해 네 가지 향을 배합했고 그 향은 먼 이역의 다른 나라에서 바친 것이었다.

일년 내내 밟고 지나다니는 곳이나 편히 쉬는 곳마다 그 향이 옷에 배어들어 해가 지날수록 향이 더 짙어졌으며, 백 번 빨아도 향이 지워지지 않아 백탁향(百濯香)이라 불렀다. 또 손량은 향의 이름을 네 명의 첩들의 이름을 붙여서 불렀으며, 손량이 밖에 나가 놀 때면 네 명의 첩들을 함께 자리했다.

향기의 이름에 따라 앞뒤 순서를 정해놓고 그 순서를 뒤섞는 법이 없었으며, 손량의 첩들이 거처하는 방을 사향미침(思香媚寢)이라 불렀다.

4 미디어 믹스

삼국지평화에서는 뜬금없이 노숙이 도독인 시절에 나와서 여몽과 함께 3만을 이끌고 장강을 건너 제갈량과 싸웠는데, 제갈량의 공격으로 전사했다. 그런데 손권이 죽고 손량이 오주가 되었다는 말이 언급된 걸 보면 동명이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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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10,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선 지력, 정치, 매력만 높은 문관형.

삼국지 3에서는 다른 능력은 다 보잘것 없는데 매력만 80이다. 코에이가 후반 인물에게 능력치가 박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24/11/71/76. 혼란과 투함을 보유하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24/10/74/76/69에 특기는 기술, 고무 단 2개. 그냥 후방에서 기술셔틀로 쓰면 된다. 손권 사후라면 고정도를 물려받아 무력 3이 오르지만 무력이 10이나 13이나 별 차이가...

삼국지 12에선 원본에선 짤렸지만 파워업키트에서 추가되었다. 일러스트는 전상때문에 아내인 전혜해에게 "니 아버지 때문에 일을 망했다!"하며 칼을 들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반삼국지에서는 손권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으나, 별 비중이 없고 계속 털리다가 최후의 순간에 유신들과 함께 물에 뛰어들어 자결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웃소 에빈으로 등장했는데 여담으로 반부인은 카테지나 루스로 등장했다.이것이 바로 최훈의 기막힌 센스!! 깨알같은 '어머니입니다.'도 재현. 캐릭터 소개에서도 "어거지로 황제가 된 것 치고는 거짓말처럼[7] 역량을 지니고 있었으나, 문제는 너무 어렸다."라 하고 있다.
  1. 전 태자 손화는 손량의 즉위 후 손준의 의도에 따라 자살한다. 하지만 그의 장남이 나중에 황제가 되어 문황제로 추존되는데 바로 그 장남이 오의 마지막 황제인 손호다.
  2. 손준은 손견의 아우 손정의 증손자로 손량의 7촌 조카였지만 나이는 당시 24살이나 많았다.(...)
  3. 진수의 정사 삼국지 오서 손휴전
  4. 정사 삼국지 오서 손휴전에 장발의 오록을 인용한 배송지의 주석
  5. 황실의 돈, 재물,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인 중장부를 맡은 관리로 중장리라고도 한다.
  6. 왕골로 만든 돗자리
  7. 웃소 에빈의 이름의 유래가 '거짓말(우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