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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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대 국왕
2대 다루왕 부여다루3대 기루왕 부여기루4대 개루왕 부여개루
시호기루왕(己婁王)
부여(扶餘)
기루(己婁)
생몰년도음력? ~ 128년 11월 (미상)
재위기간음력77년 9월 ~ 128년 11월 (52년)

백제의 제3대 국왕/건길지

1 업적

다루왕의 큰아들로 서기 33년에 태자로 책봉되고, 다루왕이 서기 77년에 죽자 즉위하였다. 그러니까 44년 동안그래도 찰스 왕세자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이나 태자 생활을 한 셈. 아버지처럼 신라의 변방을 때리다가 105년에 조약을 맺고 사이좋게 지냈다. 이 조약의 결과물이 바로 신라를 침공한 말갈을 저지하기 위해 보낸 다섯 명의 장군들과 지원군이다. 하지만 155년에 아찬 벼슬의 길선이 반란을 도모했다가 백제로 도망온 걸 받아준 것 때문에... 신라와 백제 사이의 조약은 50여 년만에 깨지고 다시 서로 으르렁거리게 된다.

비록 별다른 내용은 없으나 천재지변 등에 대한 기록이 상당수이고, 심지어는 32년에 가뭄이 극심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고 했을 정도이다. 재위 21년에는 왕을 상징하는 동물인 이 두 마리 씩이나 한강에 나타났다고 하는 걸로 보아 백제의 내부 사정이 상당히 힘들었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특히 나라 내부의 변고를 천재지변에 빗대어 기록하는 케이스도 있기 때문에 확실히 뭔가 있었을듯,

재위 52년만에 기루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개루가 왕위를 이었다고는 하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기루왕은 승하할 당시 최소 100살 이상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아들인 개루도 38년씩이나 재위한 것을 보아 믿을만한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백제의 기록이 부실하니...[1]

2 삼국사기 기록

一年秋九月 기루왕이 즉위하다
九年春一月 신라의 변경을 공격하다
九年夏四月 객성이 자미로 들어가다
十一年秋八月 일식이 일어나다
十三年夏六月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다
十四年春三月 큰 가뭄이 들어 보리가 나지 않다
十四年夏六月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쓰러지다
十六年夏六月一日 일식이 나타나다
十七年秋八月 횡악의 큰 바위 다섯 개가 땅에 떨어지다
二十一年夏四月 두 마리 용이 한강에 나타나다
二十三年秋八月 서리가 내려 콩이 죽다
二十三年冬十月 10월에 우박이 내리다
二十七年 한산에서 사냥하여 사슴을 잡다
二十九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하다
三十一年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다
三十二年 봄과 여름이 가물어 흉년이 들다
三十二年秋七月 말갈이 우곡에 침입하다
三十五年春三月 지진이 일어나다
三十五年冬十月 지진이 일어나다
三十七年 신라에 사신을 보내다
四十年夏四月 서울 성문 위에 황새가 둥지를 틀다
四十年夏六月 한강 물이 넘쳐 가옥이 유실되다
四十年秋七月 수해를 당한 논밭을 복구하다
四十九年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아 장수를 파견하다
五十二年冬十一月 기루왕이 죽다

보면 알겠지만, 재위기간 52년 중 기록은 고작 25줄. 그나마도 자연재해를 제외하면 반도 안 남는다.
  1. 2대부터 8대까지의 재위기간으로 인해 인해 실제론 중간에 누락된 왕이 있을거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