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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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京鎭

1966 7월 14일~

직업 국회의원

소속 국민의당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변호사.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 북구갑에 출마, 당선되었다.

2 생애

2.1 학창시절

1966년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3년 광주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987년 고대법대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1989년에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2.2 검사시절

1992년 사법연수원 제21기로 수료하고, 1995년까지 군법무관을 마친 다음, 1995년 3월 인천지검을 시작으로 검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전주지검 군산지청, 광주지검에 있다가 2000년에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있었고, 2000년 8월에 변호사로 개업하였다가 다시 2001년에 전주지검으로 들어갔다.

그 후 서울지검, 광주지검, 광주고검을 거쳐, 2006년 2월에 대전지검 천안지청에서 부장검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2008년에 다시 변호사로 개업하여 법무법인 이인의 광주 북구 분사무소의 대표변호사가 되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환경미화원 체불임금·소방공무원 체불임금·군사정권 고문피해자 법률구조 소송 등을 도왔다.

2.3 초기 정치활동

2008년과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선거구인 광주 북구갑에 도전하였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특히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강기정 의원과의 당내 경선에서 막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29%를 득표했다.

2.4 정치평론가

이후 방송 등에 출연하며 정치평론가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종편에 출연하던 야당 패널들 중에는 발군의 실력자로 평가 받았으며, 여당 패널들의 거친 공격을 막아내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1]

2.5 제20대 총선 출마

2016년 1월에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광주광역시 북구선거구 경선에서 김유정을 제치고 공천받았다.

평소 쌓아둔 인지도[2]와 고른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초반부터 무난한 당선이 예상되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이었던 것은 강기정 의원의 공천탈락으로 무주공산이 된 광주 북구 갑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헛발질 공천을 했다는 것. 그 밖에 호남에서 실질적 여당 역할을 해왔던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심판을 해야 한다는 지역구민들의 열망이 높아서 일찌감치 지지도 1위를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 전남지역 최다득표로 당선되었다.[3]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북구갑)무소속2,357 (4.06%)낙선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북구갑)무소속19,027 (29.11%)낙선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북구갑)국민의당65,721 (70.80%)당선
  1. 예를 들어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특위에 반드시 수사권을 줘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역설하던 모습은 네티즌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관련 동영상 참조
  2. 주로 종편 패널로 출연하여 조리있게 말을 잘 한 것으로 쌓아올린 인지도이다.
  3. 70.8%의 득표율로 총 65,721표를 얻었다. 사실 국민의당이 호남 전역에서 대부분 압승했다고는 했지만 다른 호남지역 후보들의 득표율을 따져보면 대개 40~50%대에 그쳤다. 그에 비교해보면, 김경진의 득표율 70.8%가 정말 대단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