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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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김남성
출생1952년 5월 6일
출신지전라북도 익산시
출신학교대신고 - 성균관대
지도자성균관대학교 감독 (1981 ~ 1996.03)
현대건설 여자배구단 감독 (1998.05 ~ 1999.05)
서문여자고등학교 배구부 감독(2000.10 ~ 2001)
명지대학교 배구부 감독(2002 ~ 2008.11)
우리캐피탈 드림식스 감독(2008.11 ~ 2010.05)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

대한민국의 배구인. 현역시절 포지션은 래프트였다.

1952년 5월 6일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 익산 남성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배구를 시작했다. 이는 당시 남성중학교 배구부가 선수 부족으로 대회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급조되어 주전 선수로 뛰게 된 것이다.

이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구에 입문한 후 상경한 그는 서울 대신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하였다. 다만 키가 177cm 정도여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그 당시 미도파의 이창호 감독과 현대건설의 전호관 감독이 국가대표 출신이 아닌데도 명장이 된 것을 보면서 용기를 얻은 그는 1981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배구부 감독을 맡아 일찌감치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그는 노진수, 마낙길, 박종찬, 임도헌, 신진식, 김상우 등의 빼어난 스타 선수들을 발굴하며 당시 한양대학교송만덕 감독과 함께 명장 반열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삼성화재의 창단 이후 김남성의 감독 인생은 크게 틀어지게 되었다. 당시 성균관대학교1997년 이후 삼성 재단이 크게 후원해 주고 있었는데,(성균관대학교 항목 참고) 문제는 김남성 감독이 친 현대파였다는 것. 특히 신진식스카우트 파동이 결정타였다. 신진식은 자신을 후원해 주었던 현대자동차서비스로 가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밝혔으나, 삼성화재 측이 신진식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성대에 지원금과 리무진 버스를 제공했고, 이에 고무된 성균관대학교 측에서는 현대자동차서비스로 갈 경우 특기생 학점을 주지 아니한다는 방침을 고수하였다. 이런 학칙 때문에 신진식은 어쩔 수 없이 현대자동차서비스행을 포기했고, 삼성화재에서도 현대자동차서비스에게 위약금을 줘 가면서 1996년 10월에 신진식삼성화재에 입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친 현대파였던 김남성 감독이 신진식현대자동차서비스로 보내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법정 공방이 일어나게 되자, 결국 성균관대학교 배구부 감독에서 해임되었다.

성대를 떠난 그는 현대건설 여자배구단명지대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08년 우리캐피탈 드림식스의 창단 감독을 맡았으나, 정식으로 맞이했던 첫 시즌인 2009 - 2010 시즌 후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이후에는 대한배구협회의 홍보이사를 지내다가, 2016년 4월 25일 대한항공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박기원 감독의 후임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월드리그에 들어서서는 6연패를 당하며 3그룹으로 강등되는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서재덕의 하드캐리로 홈인 장충에서 체코 -이집트- 네덜란드를 상대로 기적과도 같은 3연승을 거두며 3승 6패 승점 9점으로 10위에 올라 강등을 면했다.[1]
  1. 그룹 12개국 가운데 최하위 포르투갈이 결선 라운드 개최국으로서 3그룹 강등을 면제 받아 2승 7패 승점 9점으로 11위에 머문 일본이 3그룹으로 떨어질 예정이었지만, 쿠바가 자국선수 성폭력 사태로 인해 징계를 받아 3그룹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