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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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볼 수 없는 두산 베어스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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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를 떠나고 휠체어 테니스 선수가 된 김명제.

이름김명제(金明帝 / Myeong-jae Kim)
생년월일1987년 1월 5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학동초 - 휘문중 - 휘문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5년 두산 베어스 1차 지명
소속팀두산 베어스(2005 ~ 2010)

1 개요

대한민국휠체어 테니스 선수이자 전 프로야구 선수.

2 아마추어 시절

처음 시작한 포지션은 포수였으나, 휘문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투수로 전향하여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 지역 중학생 투수들 중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실력을 보였는데, 이때 라이벌이 다름 아닌 유화상유원상이었다고 한다.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구속을 150km/h 가까이 끌어올리며 뛰어난 성적을 올린 그는 결국 계약금 6억 원두산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게 된다.[1] 여담이지만 두산은 김명제에 이어 2차 1순위로 신일고 투수 서동환을 지명하며 계약금 5억 원을 줬다. 신인 두 명에게 계약금으로만 11억을 쓴 것.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멸망했다. 이후 김명제와 서동환은 11억 듀오로 불렸는데, 성적이 신통찮다보니 좋은 뜻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3 프로 시절

2005년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5선발로 낙점되었고, 28경기 107이닝 7승 6패 평균자책점 4.63의 무난한 성적을 기록한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호투하며 박명환에 이은 차기 토종 에이스감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6시즌에는 김명제가 잘 던지면 타선이 침묵하고, 타선이 터지면 김명제가 무너지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9월 말까지 승 없이 11패만 당하는 등 크게 고전한다. 최종 성적은 41경기 111이닝 3승 11패 평균자책점 4.46.

이듬해인 2007 시즌에는 박명환이 LG 트윈스로 이적하면서 김명제는 다니엘 리오스, 맷 랜들에 이은 3선발로 출발했다. 하지만 성장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2군에 내려가는 수모를 겪는다.[2] 이후 2군에서 복귀한 이후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6⅔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더군다나 이날 한화의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호투는 더 빛났다. 2007 시즌 성적은 30경기 117⅔이닝 4승 7패 평균자책점 5.05.

그리고 2008 시즌, 그는 전반기에만 7승을 따내며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한다. 두산 팬들은 드디어 포텐셜이 터졌다는 생각에 기뻐했지만, 안타깝게도 어깨와 허벅지 부상이 겹치며 후반기에는 거의 나오지 못했다. 최종 성적은 22경기 111이닝 7승 3패 평균자책점 3.81.

그리고 2009 시즌, 전지훈련 때 사타구니 부상을 당해 중도 귀국하는 등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시즌 들어와서 대차게 말아먹었다. 구위도 제구도 맛이 간데다 부상까지 겹치면서 16경기 32⅓이닝 1승 3패 평균자책점 9.19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때 김명제는 팬들 사이에서 먹튀+명제를 조합한 먹제신기하게도 프랑스어로 "먹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원형이 manger(멍제...)이다(...)라로 통했는데, 팀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받고 들어온 유망주가 제대로 보여준 것 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팬들의 실망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 김명제는 인생 최악의 실수를 하고 만다.

4 음주운전 사고

2009년 12월 28일, 김명제가 몰던 스포티지가 수서동 가락시장 부근 탄천1교를 지나다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를 들이받은 뒤 4∼5m 높이의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경추 2개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은 김명제는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구 팬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고, 모두가 김명제의 쾌유를 빌었다.

하지만 다음 해 1월 10일, 수서경찰서는 김명제의 혈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0.172%가 나왔다고 밝혀지면서 야구 팬들은 다시 충격을 받는다. 결국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였음이 밝혀지자 팬들의 반응은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도 교통사고 기사가 뜨자마자 자짤을 김명제의 쾌유를 비는 자짤로 바로 바꿨다가, 결국 음주운전이라는 기사가 뜨자 두갤에선 그 자짤을 바로 내렸으며 "내가 음주운전한 놈의 쾌유를 빌었다니…" 라는 자학하는 글로 넘쳐났다. 일부 두산 팬들이 감싸려고도 해봤지만 결국 자업자득이었다는 반응이 다수를 이뤘다.

어쨌든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알려지긴 했지만, 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한편 2010년 9월 6일, 선배인 김명제가 그 지경이 된 것을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두산의 마무리 투수 이용찬도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었고 당연히 팬들에게는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5 근황

본인은 마운드에 다시 서겠다는 각오로 재활했고,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3]

하지만 그의 복귀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 두산 베어스에서는 결국 2010년 시즌 후 김명제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사실상의 방출. 부활 가능성이 없음에도 1년 연봉 보전 차원에서 보류선수로 남겨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차피 2010년 전력외 선수이고 훗날을 도모하자면 임의탈퇴가 맞는 수순인 만큼, 최고 계약금 입단 선수에 대한 구단의 마지막 예우가 아니었나 싶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뜸했다가, 2014년 9월 16일 경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전해졌다. 기사 참조 마운드로는 테니스 선수로 성공하여 시구자로 서기 전까지는 야구장을 밟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실제로도 사고 후 3년 간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살았다고 하는데 그 기간동안 게임만 붙잡고 미용실도 거의 안갈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저녁식사하다가 그 모습을 보고 식사를 중단하고 자리를 뜨기도 했다고... 10월 들어서 일간스포츠 인터뷰에서 당시 1년정도 절망하여 몸무게가 무려 125Kg까지 나갈 정도로 폭식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수술을 받게되고 수술 직후 의식을 차리고 김명제를 보자마자 한 첫 마디가 "밥은 먹었니?" 였고 그 한마디에 정신을 차리고 의욕적으로 체중 감량 및 구직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2016년 5월 17일 근황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인터뷰 기사
  1. 김명제가 받은 6억 원은 지금도 두산 베어스 팀 사상 최고액 계약금으로 남아있고, 당시로 따지면 김진우임선동이 받은 7억 원에 이은 한국프로야구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두산이 그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를 걸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 참고로 이 시기 두산 베어스 2군에서도 정신 못 차려서 박종훈 당시 2군 감독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했다.참조.
  3. 달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천천히 걷는건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