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북한)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영식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최종계급 : 조선인민군 해군 대위
?~2002년 6월 29일 전사

알려진 생전 마지막 근무지는 조선인민군 해군 서해함대 사곶 제8전대사령부 등산곶 해군기지 경비전대 7편대 소속의 일명 '등산곶 684호정'. 최종 직책은 684의 함장.[1]

제1연평해전 당시 상위 계급의 갑판 직책으로 참여, 대한민국 해군참수리급 고속정과 교전 중 등산곶 684호정의 경비정 정장과 상당수의 승조원이 사망한 뒤, 김정일의 지시로 상위 계급에서 대위로 특별 진급하게 되어 등산곶 684호정의 정장으로 임명되었고, 김정일은 사실 제1연평해전에서 자신들이 참패한 전과를 알고 있었기에 684호정 개조 지시를 내린다 [2]

제2연평해전에서 근접 차단기동을 실시하던 참수리 357호정에 85㎜ 전차포로 선제 기습포격을 지시하고, 계속 전투를 지휘하다 전투 중반 이후 참수리 357호정에서 전력 계통이 나간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포를 수동으로 조작하여 발사하던 병기장 황창규 중사가 발사한 40㎜ 함포에 전사했다.

사후 시신 부검 결과, 그의 몸에서 40㎜ 포탄[3]의 것으로 보이는 3개의 큰 파편이 나왔다고 한다.

이후 영웅 칭호를 받은 2차해전의 35명의 전사자들 중 '공화국영웅'이라는 최고칭호를 받았고, 김영식의 세 역시 공화국 영웅의 자손이자 딸이라며 우대받고 있다.

해전 이후, 등산곶 684호정은 김영식 영웅호로 함명을 개명하고 2004년에 선체보강 및 승조원들의 무장과 보호 장구를 추가 및 교체[4] 등의 소폭 개량을 통해서 재정비를 마치고, 또다시 2004년 서해 NLL을 침범했다가 우리측의 경고사격을 받고 북으로 퇴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 퇴역했는지 소식이 없다가 2013년 훈련사진과 영상을 공개한 이후로 아직도 운용중임이 밝혀졌다. 물론, 워낙 정보공개가 드문 북한인지라 본래 684를 퇴역시킨 뒤 살아있는 동급함을 차출해 다시 함번을 교체한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이대준[5]이라는 이름의 소좌로 등장한다. 배우는 박정학.

사실 북한 군인이고 연평해전이 북한이 무력도발을 저지른 거라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정장으로써의 능력은 제법 나쁘지 않은걸로 보는 시각들이 꽤나 있다. 특히, 당시 북한의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히 유능한 군관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당시 북한군 장비가 남한측 장비보다 허덜나게 후졌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개발살나지 않고 남한측에게 어느 정도 피해를 입혔으며, 사상자도 남북 장비의 질을 감안하면 북한측 사상자도 적게 나온 편이다. 뭐 그래봤자 북한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군관이 유능하다라도 빽이 없으면 좌관급도 겨우 올라가는 처지인데다가, 설사 좌관급 군관이나 장령이 되더라도 장성택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맨 윗놈들이 사소한 것을 트집잡아서 숙청해버리니 어쩌면 연평해전에서 전사한게 그에게 행운일지도...
  1. 북한에서는 정장을 함장으로 통일하여 부른다.
  2. 왜냐하면 S·O-1급 초계정 684호정의 선체나 레이더 시스템들은 북한의 면허생산형과 큰 차이는 없으나 사실 제1연평해전 기준으로 당시의 684호는 85㎜ 전차포는 미장착 상태였고, 무장이라곤 겨우 25㎜ 2연장 기관포 2문이 전부였던, 북한이 소련에서 자국의 연안해군 사업 초기에 도입한 초도 도입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김정일은 당시 해전에 출항한 기존 면허생산분에서 발사된 85㎜ 전차포의 위력을 우리 군의 7명의 부상자의 모습에서 그나마 보게 되었고 그렇기에 684호를 면허생산 경비정 사양으로 개조하게 된다.
  3. 684정 승조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357정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4. 2차해전 이후 스피곳, AT-5 대전차 미사일과 ' 재질'로 된 파편 방호복(이거?)을 채택 후 추가지급하고 파괴된 선체 장갑을 보강했다.
  5. 한때 북한군흉터(…)라는 괴랄한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다른 조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