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북한)

이름김영주(金英柱)[1]
출생1920년 9월 21일[2], 평양(만 95세)
본관전주 김씨
가족 김일성, 조카 김정일, 김경희
학력모스크바 대학교 정치경제학 학사

1 소개

김일성의 동생. 현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이다. 대단하네 그 와중에 살아남고. 현재 만 95세이다.

2 생애

흔히 뉴라이트나 조갑제가 이사람이 관동군 특무였다고 주장하면서 북한 체제가 친일파를 적극 기용했다고 까는데, 동아일보의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반박한 바 있다.[3] 김일성이 변경에서 워낙 악명(?)을 떨쳤기 때문에, 일제는 이사람을 붙잡아다가 선무공작에 이용했고, 이게 바로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일제의 밀정이라는것인데...자세한 것은 북한의 친일파 참조.

아무래도 김일성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그 후계자 자리를 두고 조카인 김정일과 함께 경쟁을 벌였다. 1972년 5월에 이후락 중정부장과 두 번 회담을 하는 등, 7.4 남북공동성명 발표에 일정 정도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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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이후락, 김영주, 김일성.

하지만 1974년 말, 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일이 낙점되자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났고 대외보도자료에서도 모습을 감추어 곁가지[4]로 분류되어 숙청당했거나 지방한직에 임명되어 앞으로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을 거라 여겨졌다. 그런데 김일성 사망 수개월 전에 복귀설이 돌았고, 실제로 1993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자 부주석으로 임명되었다. 김정일도 어떻게 못 한걸로 봐서 원로는 원로인 듯.

북한의 실세가 김영주에서 김정일로 이행되는 것을 지켜봤던 간부 출신 탈북자는 당시 김영주가 밀려난 것은 아니라고 증언한 바 있다. 정무적 감각이 매우 뛰어난 김영주가 향후 후계 구도에서 김정일이 부상하는 것을 막는 것은 사실 상 어렵다고 생각하고 김정일 세력과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이러한 타협으로 실제로 자신의 자리를 김정일에게 넘겨준 김영주는 자강도에 있는 특각에서 편안히 지냈으며, 그의 가족이나 평소 김영주 라인에 섰던 간부들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부주석으로 임명된 후 얼마 가지 않아 김일성이 죽고, 김일성이 중시한 오진우가 이듬해인 1995년 사망, 그들의 권력기반을 장악해 세력을 확장했고 1999년 유일한 견제세력이란 평을 듣던 이종옥이 사망하자 과 출신성분을 내세워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으로 뽑혔고 2003년부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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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김영주가 북한의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에 참여하는 모습이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거동이 다소 불편한 것 외에는 현재까지도 건강상의 큰 이상은 없는 것이 확인되었다.

슬하에 김영성과 김정현을 두고 있다.

3 여담

여담으로 김정일이 어렸을 적에 군사 훈련소에 들어가 훈련을 받던 와중에 야영지에서 땡땡이를 쳤는데, 하필이면 삼촌인 김영주에게 걸려서 얻어 맞기도 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 외에 김정일과는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복동생이었던 김평일과 그 가족들이 김일성 사후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도 김영주의 도움 덕분이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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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일성의 본명이 '김성주(金成柱)'인 것으로 보아, 돌림자가 '주(柱)'자인 듯.
  2. 커크 더글라스보다 5살 어리고, 송해보다 7살 더 많고, 스탠 리, 신격호 이희호 보다 2살 많으며(!!) 전 군인 출신인 백선엽과 동갑이다(!!).
  3. 주성하 기자는 확고한 반김, 반북 성향이나, 사실이 아닌 것까지 이용해서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다. 허위사실을 가지고 하는 공격은 역풍을 맞고 오히려 상대의 정당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준다는 측면에서 백해무익하다.
  4. 북한은 김정일의 후계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을 '곁가지'라 하여 철저히 숙청하거나 좌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