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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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姬鎬
1922년 9월 21일 ~

대한민국 역대 영부인
14대 손명순15대 이희호16대 권양숙

1 소개

1922년 9월 21일 출생.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의 배우자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여성운동가 출신이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미국 스칼렛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취득.

본관은 전주이며, 분파는 계성군파이다. [1]

2 생애

서울특별시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번째 부인이다. 첫 부인인 차용애[2]는 1959년에 병사했다[3]. 2살 연하의 김대중과 결혼할 때 미국 유학을 다녀온 초엘리트 여성운동가였다. 결혼할 때 여성계 선배들이 아깝다고 통탄했다고. 후일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과 결혼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잘 생겼잖아요."

이희호의 자서전이나 발언을 종합해 보면 김대중과 만나기 전에는 계훈제와 결혼할 생각이 있었다.
서울대출신 엘리트인 계훈제는 재야의 유명인사로 반탁운동, 4.19혁명, 베트남파병반대, 유신반대 등에 앞장섰다. 하지만 잦은 투옥 생활을 하게되며 폐결핵이 심해지자 이희호는 해외유학을 결정하였고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하였다.

김대중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여성운동 활동도 접어야 했다. 대신 남편의 기나긴 옥바라지와 내조, 민주화투쟁의 동지로 일생을 보냈으며,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비판자이자 조언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70대 후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소외계층 복지와 정책감시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김대중 정부의 여성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 조문을 위해 방북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당시 북측의 조문단 파견에 대한 답방 차원이라고 한다. 당시 이희호와 함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동행했는데, 둘 다 남편이 사망했을 때 북한에서 조문을 왔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3남[4] 김홍걸을 두었다.

3 평가

3.1 긍정

  • 1차례의 출마 불발, 3차례의 낙선으로 살림이 망가진데다 애까지 딸린 남자가 열렬한 웅변조로 구애하는걸[5] 승낙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 남편의 투옥, 자식들에게까지 미치는 시찰 및 탄압을 감내하며 일생동안 동반자이자 좋은 도반[6] 같은 역할을 하는 덕을 쌓았다. 특히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했던 DJ는, YS처럼 달리기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지 못하고 이따금 수영이나 하는 수준이었는데도 87세까지[7] 장수하였다. 옆에서 헌신적으로 음식, 덕담이나 격려, 조언 등 세심한 배려 없이는 불가능한 결과.
  • 여성권익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젊었을적 초심을 잃지 않고, 부군의 정책공약에 정치적 관심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을 위한 대책이 들어가게끔 도왔으며, 이는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여성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 후 재기를 노리는 DJ가 정계복귀를 결심했을 당시에는, 재택근무비서 장성민에게 "왜 애아빠를 말리지 않느냐?"고 꾸짖었을만큼 크게 반대하였지만, 남편이 울타리 밖에서 여권과 언론의 예리한 비판에 직면했을 때는, "군인들이 헌법을 고칠 때는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해도 너무한다."는 대외발언으로 옹호,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한편, 자신이 단순 배우자가 아닌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대외에 알리는 효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3.2 부정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서 독재를 한다면 본인이 막을 것이라 말한 바 있지만, 정작 김대중 정권 시절 동안, 이희호의 친인척들이 구설수에 올라, 야권의 대정부 공세의 빌미가 되었다. 역시 왕자리에 오르면 외척이 득세하는 것인가?

첫째, 이희호의 남동생 민주사랑회 회장 이상호는 알선수재 및 미성년자 원조교제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둘째, 이희호의 조카[8] 이형택은 수십조원을 관리하는 공공금융기관인 예금보험공사의 전무로 있으면서 기록한 공적자금 실적이 환수율이 15%에 불과해,[9][10] 방만한 관리를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되었고, 이용호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산업은행에게 부실 건설사를 250억에 인수하도록 압박 + 국정원의 보물탐사 + 벤처기업 주가조작의 혐의로 구속돼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셋째, 이희호의 조카 이형작은 경기은행 퇴출 관련 수사가 이루어질 당시, 해외도피의혹을 받았고, 이희호의 처조카 사위 이윤복은, 국민의 정부 시절 생긴 강원랜드 서울지사 사장으로 이명되는 특혜를 받기도 하였다.

넷째, 강원랜드 메인시스템 입찰에서는 이희호의 친아들인 김홍걸의 후견인이자, 김대중 일가의 재산관리자으로 주목받은 조풍언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정보시스템이 승리하였다. 조풍언은 김대중 정권 동안 26건의 군납을 따냈으며, 김홍걸 미국 저택의 주인이기도 하였다.

4 그 외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당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옛 동교동계 출신인 박지원 후보를 지지하였다. 2015년 8월 5일,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 지원 등을 목적으로, 4일짜리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2016년 1월 4일, 안철수 의원이 이희호 여사를 방문해 약 20여분 동안 비공개 면담을 했다.

이 면담을 취재하였던 중앙일보는 이희호 여사가 안철수 의원에게 "정권 교체의 주축이 되어라"라는 말로 안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며 대서특필을 했으며, 안 의원 측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희호 여사 측에서 이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중앙일보 쪽에 정정 보도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는 일이 일어났다. 이 기사를 본 김홍걸 교수가 이 여사에게 사실 관계를 물어보았고, 기사를 본 이희호 여사는 "아이구 맙소사"라며 몹시 당황해 했다는 것.

논란이 일자, 안철수 의원은 그간의 입장을 뒤집고 "이희호 여사에게 폐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며 즉답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희호 여사 측은 중앙일보에게도 정정보도 요청을 끝내 거부할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해 진실을 밝혀내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결국 월간중앙이 안철수 의원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녹취록을 공개하였는데, 비공개 면담에서 이희호 여사는 대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고 안철수 의원이 "꼭 건강하셔서,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꼭 정권을 교체하겠습니다"라고 한 말에 "그렇게 하세요"라고 화답만 한 게 전부라는 것이 드러났다.

중앙일보와 안 의원 측이 이 여사의 당연한 화답을 좀 과도하게 부풀렸던 것도 그렇고, 비공개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서 함부로 녹음을 하였으며 그걸 또 언론에 흘리기까지 했느냐는 질타가 안철수 의원과 국민의당 쪽에 쏟아지자 안 의원 측은 수행원 중 한 사람이 무심코 녹음을 한 것 같다며 이 여사 측에 공식 사죄하고 문제의 수행원을 해임하였다. 다만, 녹취자와 유출자는 별개 인물로 보인다. 유출자는 결국 찾지 못한 것 같다.

5 이희호를 연기한 배우

  1. 계성군은 성종의 서자로 연산군의 이복동생이자, 중종의 이복 형
  2. 호적상 이름은 차용수
  3. 김대중 대통령은 사망하기 전 완성된 자서전(2009년판)에서 과로사에 가까운 병사라고 구술하였다. 연이은 낙선으로 궁핍해진 살림을 보태고자, 집에 미용도구를 갖춰놓고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독한 약품에 많이 노출되던게 쌓여서 탈이 났다는 것.. 생모가 작은댁이었다는 사실까지 솔직하게 구술해놓은 2009년판 자서전 내용인만큼, 신빙성 있는 출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김대중 대통령의 자녀 3남 중, 장남과 차남은 전처 소생.
  5. 실제로는 결혼 전부터 잘 생긴 용모에 언론인 출신다운 예리한 시야와 통찰력을 보이는 젊은 김대중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한다.
  6. 불교에서 같이 수행을 하는 동행자를 뜻하는 말.
  7. 음력으로 보면 1923년생이다.
  8. 오빠의 아들이라고 한다.
  9. 회수불가능액수는 81조원. 이중 대우그룹 사태로 인해 떼일뻔한 돈이 29조원이었다. 이후 관계자들이 회수에 나섰지만, 15년이 넘어가는 소걸음으로 진행되면서,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사실상 부채탕감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나마 7조원은 대우 측에서 갚지 않아도 되는 자금이라 주장하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10.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당시 "추가 대출을 받으면 위기 극복가능"이라는 낙관론으로 일관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선친들 간에 인연이 닿은(김 회장 선친이 박정희 전 대통령 은사)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는 호재가 생겼음에도, 아직 복귀할만한 명분이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