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희

金鍾喜
1922년 11월 12일 ~ 1981년 7월 23일

한화그룹의 창업주이다. 호는 현암(玄巖)이다. 별명은 다이너마이트이었다. 현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빙그레 회장 김호연의 아버지이다. 따라서 서정화 전 내무부장관, 백범김구선생의 차남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과 사돈이다.

그의 형 김종철자유당, 민주공화당, 한국국민당 소속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동생 김종식신민주공화당, 민주자유당 소속 정치인이었다.

192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천안북일사립학교, 직산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에 경기공립상업학교(현 서울특별시 경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경기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학생을 구타하자 그 일본인 학생을 구타하였는데, 이 일로 퇴학을 당한 뒤 원산상업학교로 전학하여 1941년 12월에 졸업하였다.

1942년에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에 입사하였다. 8.15 광복 후인 1952년 10월 28일에는 부산에서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재산을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한국화약주식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다. 1956년 4월에 인천 화약공장을 복구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자체 생산하였다.

1967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에 선출되었다. 또한 주한 그리스 총영사에 취임하였다. 1968년에는 경인에너지주식회사[1]를 설립하였다.

1975년에는 학교법인 천안북일학원을 창립하였다. 이듬해인 1976년 3월 6일 천안북일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그리고 천안북일고등학교 야구부도 같은 해 창설하였는데 청주중학교 선수인 훗날 칰무원이상군을 돈을 줘 가며, 그리고 이상군의 형들을 한화그룹에 취직까지 시켜 주며 스카웃했다.

또한 그 해에 프라자호텔을 설립하였다. 1977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취임하였다.

1981년 별세하였다. 이 때 이상군 투수가 그의 관을 운구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룹은 장남 김승연에게 승계되었다.

생전에 김승연에게 “남자는 술도 좀 마시고, 담배도 피워보며 단맛 쓴맛 다 맛봐야 한다”며 “어차피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호연지기를 키울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2007년...
  1. 한화정유였다가 매각되어 현재는 현대오일뱅크 소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