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이글스에서 활동했던 선수들 중 은퇴하여 코치가 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무능한 코치를 까는 표현이다. 한화 이글스 구단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 왔으며, 한화의 암흑기를 불러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되었다. 2015년 김성근 체제로 전환하면서 드디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 했으나 실제론 전혀 아니었다.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는 해결하지 못했고, 살려조를 비롯한 선수 혹사 및 현장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새로이 발생하였다. - 타팀으로 쫒겨난 칰무원들이 몇명 빼고 의외로 호평받고 있다. 반면 나가서도 답이 없는 사람도 있어서 싸잡아 욕먹던 과거랑 다르게 누가 진짜 문제인지 얼추 밝혀진 상황이다.
2 발생 원인
한화 이글스는 전통적으로 레전드에 대한 대우가 타 팀과 달리 굉장히 좋은 편이며, 이는 한화 그룹의 사훈인 '신용과 의리'를 따르는 모습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레전드 대우는 굉장히 부작용도 커서 한화에서 프랜차이즈 역할을 했거나 어느 정도 활약을 한 선수는 연수도 없이 요직에 꽂아버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이름하야 칰무원이라 부른다.
실제로 한화 레전드 출신 중 한화 시절 코치로 확실한 성과를 보여줬다고 평가받는 인물은 한용덕이 거의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화 레전드들은 코치로서의 능력이 없는가? 송진우나 한용덕 등을 보면, 적어도 한화 레전드들의 자기 관리 능력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다. 이러한 모습이 제대로 전수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소리. 결국, 전술하였듯이 제대로 된 연수조차 없는 조직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강석천의 사례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 문제가 된 사례도 있으며, 2014년 11월 한 전직 코치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치게 끈끈한 관계 때문에 코치 대 선수가 아닌 선배 대 후배로 이어지면서 훈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
3 칰무원 리스트
3.1 상군매직
제일 먼저 칰무원의최종보스이자 대표주자로는 한화의 육성군 총괄코치인 이상군이 있다.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김종희 회장이 천안북일고등학교 야구부를 만들던 시절에 거액을 주고 영입한 투수였다. 김종희 회장이 1981년 별세하자 관을 운구한 인물 중 하나이며, 現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전통적 술동생이다.
그는 현역시절 통산 100승을 거둔 명 투수였지만, 2003년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여 성과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를 데려온 이광환 2군 감독이 물러나자, 2006년에 LG에서 한화로 오게된다. 그 뒤로는 유원상 ,양승진 등의 유망주를 2군에서 박살내고 있었고, 김인식 감독이 최동원, 한용덕을 2군으로 내리면서 1군에서 콜업되었다.
1군 코치로서는 이상군 항목에 있듯이 능력이 최악이었으며, 2012년은 스카우터로 근무했다. 코칭스탭만 아니면 괜찮겠지... 라는 한화팬들의 헛된 희망 말도 있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 이 시기에 송신영을 데려왔다가 FA먹튀가 되어 떠나보내기도 했었고, 용병으로 뽑은 브라이언 배스와 션 헨는 처참하게 망했다.
2013년부터 2군 코치를 맡았으며, 지금은 육성군 총괄로 내려갔다.
팬들은 이상군 코치의 해임을 기다리고 있지만, 스스로 나가는 게 아닌 이상 잘릴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애초에 아무리 능력이 없다고 해도 한화그룹의 전대 회장이 직접 손을 써서 데려왔고 현 회장의 술친구인 동시에 전대 회장의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한 4명 중 1인일 정도로 오너 일가와의 친분이 각별한 인사가 쉽게 잘릴 리 만무하다. 팬들도 차라리 사람은 좋으니 현 자리에서 만족하고, 1군 요직에만 앉는 일이 없기만 바라는 상황. 어떤 의미에서는 그래도 참 대단한 게, 이 정도 인물이 깽판 치면 팀은 솔직히 나가리난다. 사람 하나는 좋으신 분이라는 게 전반적인 평가. 제발 거기 가만히만 계세요. ㅠㅠ
그러다가 1군 불펜코치로 올라와서 1군을 지키는 상황이다.
3.2 자칭 명포수
배터리 코치인 조경택은 현역시절에 뛰어난 선수도 아니었고 공수주 모두 수준이하였다. 그런데 2003시즌 끝나고 은퇴하여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한화 이글스 한 팀에서 꿋꿋히 버티면서 배터리 코치를 하였다.
이 시기에 뽑은 포수만 봐도, 박노민, 김기남,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이 있었지만 모두 폭망했고 결국 40을 바라보는 신경현이 마스크를 쓰는 일이 생기고 만다.
거기에 2013~2014시즌은 유망주인 한승택, 김민수를 데려왔지만 모두 FA보상[1]으로 뺏겼다(...).
결과적으로 보면 코치경력 10년동안 제대로 키운 포수가 단 한명도 없었고, 이로 인해 신경현 은퇴 이후 더 답이 없어지는 결과를 닣았다.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길러낸 시마 모토히로를 보라. 같은 이글스인데 차이가 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4시즌 끝나고 이 사람이 잘린 것이다. 결국 두산 2군 코치로 갔다. 다만 배터리 코치가 아니라 재활 코치...코치진이 1군에는 강인권, 2군에는 김진수가 있다보니....다 제쳐두고 감독부터가 이미 포수 마스터이기도 하고... 그리고 두산은 우승했다
3.3 공필성과 막상막하인 최악의 수비코치
강석천은 2003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2005년부터 코치를 하였다.
사실 강석천은 타격코치로서는 그나마 괜찮다는 평을 받았지만,[2] 2013~2014시즌에 수비코치로서는 최악이라는 평을 받았다. 실제로 2013~2014년에 한화는 특유의 답이 없는 수비로 제대로 골머리를 앓았고 이 시기에 한 일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조경택과 같이 2014시즌 끝나고 잘려서 두산에 갔다. 1루코치를 하다 강동우에게 짤리고 수비코치를 한다 그냥 전형도 코치가 수비 같이하면 안돼? 여러가지로 선수시절 뇌수비하던 3루수에게 수비코치를 맡긴건 실책이었다. 이미 공필성의 예도 있고... 근데 공필성도 16년 두산으로 입성 실제로 보면 주루 코치 시절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고, 타격 코치 시절에는 심지어 석천 매직이란 말까지 들은 바가 있었다. 대체 왜 수비 코치를 맡긴 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 그런데 정작 두산은 15시즌 최소실책 3위....그리고 우승[3]
3.4 칰무원으로 까였지만 논란이 있는 인물들
3.4.1 송진우
2011~2012 시즌에 대한 평가는 꽤 괜찮았던 편이지만, 2013~2014 시즌을 모조리 말아먹고 돌진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나 2군 코치 시절 김혁민, 신주영 (지금 이분들 어디에..) 등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려놓은 공이 있어, 육성 능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는 평가.
여담이지만 코치로서는 나름 평가가 갈리지만, 해설위원으로서는 최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3.4.2 정민철
투수 교체와 불펜 투수 혹사 문제로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다만 일부 코어 팬들에게선 "그래도 엉망징찬 수준의 한화 코치진 중에서 정민철만은 그럭저럭 쓸만하지는 않냐?"라는 이야기를 듣긴 하였다. 실제로 투수 코치로서의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아, 김성근 체제 출범 하에서 이상군, 장종훈과 함께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레전드 출신 코치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해설위원으로 변신
코치로서 크게 관여하기보다는 멘토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편. 특히 2010년 당시 고뇌와 자괴감에 빠져있던 박정진에게 네가 정말 던지고 싶은 투구폼으로 던져라라는 조언과 신뢰를 보내줘서 2010년 그의 각성을 이끌어내 한화 이글스의 불펜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또 유원상에게 슬로커브를 전수시켰고, 2011년 선발 위주의 긴 이닝 교체를 주도하면서 양훈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 또한 그를 인정하여 같이 가려고 하였고, 해설 위원 전향 이후로도 해설 능력을 보면 야구를 보는 눈 또한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정민철 나가고 나서 들어온 정민태는 이름이 비슷해서 들어왔냐고 죽자고 까이고 있다. 한용덕, 장종훈과 함께 한화 팬이 돌아오길 바라는 몇 안 되는 코치. 다만 보여준 모습에서 아직까지 칰무원이냐 아니냐가 좀 갈리는 경향이 있다. 칰무원의 문제를 짚었던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유력시되고 있다.
3.4.3 장종훈
타격 코치 시절 김태균, 이범호의 상승세와 더불어 김태균에 가려 있던 유망주 김태완을 지명타자에 안착시켜 클락-김태균-이범호-김태완의 클린업 쿼텟이라는 공포의 타선을 선보여 '종훈매직'이라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클락이 거짓말처럼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타선 전체의 침체가 오면서 미완의 매직으로 끝났다. 2012년에도 팀 성적이 워낙 바닥인 탓에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송광민을 안정적으로 라인업에 안착시키고 이양기 등 2군에서 묵혀두기만 했던 선수들을 재발굴하면서 차기 시즌을 대비하였다. 김성근 체제 하에서 수많은 칰무원 코치들이 야인이 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코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12월 7일 롯데 자이언츠 타격 코치로 발탁되면서 결국 한화를 떠났다.
다만 파워툴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만 교타자 육성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고, 실제로 선수들 상당수가 선풍기 스윙으로 변하였다.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강석천으로 교체된 후 극적인 공격력 향상이 나타나면서 더 까임권을 얻기도. 그러나 특유의 연습생 근성으로 롯데 시절에는 교타자 육성을 위해 노력한다고. 다만 결과는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어쨌든 롯데에서는 말이 왔다갔다 하기는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코치로 인정받는 편. 특히 강민호의 대각성에는 장종훈 코치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는게 평.
타자 본인의 타격폼에 손을 대지 않고 개성을 존중하면서 타격의 기본적인 문제점(퍼져나간다든가, 팔꿈치가 붙어나오지 않는다든가)만을 찾아내서 교정하는 정도에 그치는 대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멘토 역할을 하면서 타자 본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스타일. 분야는 다르지만 정민철과 스타일이 비슷하다.
3.4.4 김민재
2010년 은퇴 후 별다른 연수 없이 제발 연수 좀 시켜요!! 한화 이글스의 수비코치, 작전코치, 주루코치 등 요직을 두루 섭렵하며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3루에서 주자에게 냅다 팔을 돌려서 홈에서 주자가 비명횡사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등, 한화 루상횡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당시 한화 선수들의 수비 능력은.... 당시 한대화, 정민철과 함께 물러나야 할 코치진의 암세포로 찍히기도 했다.
다만 기간 자체가 워낙 짧았고, 두산 베어스[4]로 이적한 이후에는 무난한 코칭 능력을 보여주면서 코치의 문제라기보다는 팀의 문제가 더 크지 않았냐는 평가를 받았다. KT Wiz의 코치 부임 이후로도 딱히 악평이 없는 것을 볼 때, 팀의 문제가 정말 크긴 컸던 듯.
4 김성근이 오면서 흩어진 칰무원들
결국 자신의 사단을 보유하고 있는 김성근이 오면서 기존의 김응용 사단인 김종모, 이선희, 오대석, 신용균, 이종범, 정민철 등이 해임되었다.
그리고 칰무원으로 악명높던 강석천과 조경택, 송진우, 김기남도 해임되자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이상군은 살아남았다.
그 중, 송진우는 KBS N SPORTS의 해설자- ↑ 한승택은 이용규, 김민수는 권혁의 보상선수
- ↑ 장종훈 코치 시절 모조리 선풍기 스윙으로 변해버린 선수들을 교타자와 장타자로 구분하여 가르쳤다. 실제로 당시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 전 27경기에서 팀 타율 2할2푼1리, 경기당 평균 3.0점밖에 못했지만, 보직 변경 후 17경기에서 팀 타율 2할4푼7리, 경기당 평균 4.2득점으로 눈에 띄게 공격력이 향상됐다.
- ↑ 이후 2016년 전지훈련에서 강석천은 나는 행복합니다를 불렀다(...). 심지어 2016년 두산에서는 공필성도 2군 감독을 맡으며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 ↑ 두산 입성 당시에는 김민호의 계약실패로 대신 들어온 터라 여론이 굉장히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