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 정보
이름 | 김홍걸(金弘傑) |
출생 | 1963년 11월 12일 |
본관 | 김해 김씨 |
부모 | 아버지 김대중, 어머니 이희호 |
가족 | 이복 형 김홍일, 김홍업, 부인, 슬하 2남 |
학력 |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
2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겸 정치인.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희호다. 2016년 현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
3 트리비아
1963년 11월 12일 김대중과 이희호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복형은 김홍일(1948)과 김홍업이다.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82학번으로 입학하였다. 재학기간 동안 아버지의 정치적 고난을 목도해야 했으며, 당시 5공화국에서는 고려대에 이런저런 압력을 넣어서 그의 입학을 막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1993년에야 고려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재직 중 2002년 5월 최규선 게이트 (불법 뇌물 자금 수수)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1] 최규선이라는 고단수 인물에 의해 완전히 농락 당했다는 평. 그 후 2005년 8월 15일 노무현에 의해 광복절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미국포모나대학교 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2016년 1월 4일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안철수가 이희호 여사와의 비공개 독대 자리에서 이희호 여사의 안철수 신당 지지 의사표현을 들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자, 즉각 그런 거 없다. 어머니는 그냥 듣기만 하셨다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국민의당 창당 멤버들이 연로한 어머니를 정치적 언플에 악용했다고 생각했고 이에 크게 격분했던지 그 이후 안철수 전문 저격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 24일에는 아예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기까지 했다.[2] 입당일에 열린 국회 기자회견에서 "2012년 대선 때 순수한 뜻으로 정권 교체를 위해 뛰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아울러 더민주야말로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이 합쳐진 60년 민주당의 정통 본류이며, 더 이상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호남 분열과 갈등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되고 분열의 수단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며 더민주 탈당파를 겨냥했다.
이미 입당 인사에서 총선에 나가겠단 말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라며 선을 그었지만, 나중에라도 총선에 나가겠냐는 기자들 질문에는 "나중에 분명히 밝히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과거에 무려 15억 원을 뇌물로 받은 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두 형들도 모두 감옥 신세를 져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예나 평판을 떨어뜨렸는데, 더불어민주당에서 과연 공천을 받아도 되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11년 전에 그 죗값을 다 치렀고, 김대중의 아들을 더민주가 받아들인다면 국민의당과의 정통성 논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해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후 문재인 대표는 1월 26일 김홍걸 교수 본인이 아예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 출마설에 대해 분명한 매듭을 지었다. 총선에 공천을 받지 못한 대신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에 임명 되었다. 입당 이후 친노패권주의가 문제되자, "친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확실한 것은 친문 의원은 1명 밖에 없더라"라는 말을 하였다.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하여 비대위의 후보 명단 발표로 당내에 분란이 일어나자, "A,B,C그룹안을 나눈 다음 투표를 하는 것은 당헌에도 어긋난다"는 발언을 하였다.
20대 총선 기간 막판에는 문재인의 호남 선거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 때 문재인은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은퇴 및 대선 불출마를 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호남에서는 패배했으나, 정작 총선 후에 문재인 지지율은 올랐기 때문. 비록 호남에서 패배한 것은 맞지만 문재인이 직접 지원 유세를 한 PK 지역에서 낙선을 각오하고 출마한 후보들이 8개 지역구에서 당선에 성공한 기적같은 결과를 이뤄냈고, 수도권에서 더민주 지지세가 집결하여 대승을 거두면서 상황이 미묘해졌다.[3]
그리고 선관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득표율을 보면 더민주가 국민의당에게 패한 것은 맞지만, '전북의 맹주'라고 불리던 정동영 의원이 이제 재선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 김성주 후보에게 불과 0.7% 차이로 간신히 이기는 등 압도적 참패보다는 예상 외로 접전 구도가 많았기에 문재인이 섣불리 정계 은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다시 역전하기 시작하면서 16년 8월 기준으로 호남에서는 문재인이 지지율 1위를 회복했다.
2016년 5월 18일, 5.18 광주 민주화 항쟁 36주기 기념식에서 손학규가 "정치의 새 판을 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하자, "국민들께서 이미 20대 총선을 통해 새로운 판을 짜 주셨는데 무슨 새 판을 또 짠다는 것인가?"라며 손 전 지사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시에 아들 3명이 모두 권력형 뇌물 비리로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를 두고 '홍3게이트(뇌물3형제)'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 ↑ 이에 대해 한국일보의 논설위원이자 칼럼니스트였던 고종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으면 김홍걸을 족보에서 파버렸을 거라며 비난을 남기기도 하였다.
- ↑ 특히 수원시에선 민주당이 20년 이상 패배한 팔달구에서 처음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남평우 - 남경필 부자가 이 지역의 맹주였는데, 남경필 의원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돼 의원 자리게 비게된 이곳에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했다가 새누리당의 정치 신인에게 패해 일시적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