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1 기본 정보
이름 | 김홍일 (金弘一) |
출생 | 1948년 1월 21일, 전라남도 목포시 |
본관 | 김해 김씨 |
가족 | 아버지 김대중, 어머니 차용애, 의붓어머니 이희호 남동생 김홍업, 이복 남동생 김홍걸 아내, 슬하 3녀[1] |
종교 | 가톨릭(세례명 : 요한) |
2 트리비아
1948년 1월 21일, 전라남도 목포부에서 김대중과 차용애[2]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에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 대신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를 졸업하였다. 1975년 독립운동가 윤경빈의 장녀 윤혜라와 결혼하였다.
1980년 5.17 내란 직후 신군부에 의해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벙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이때를 회고한 김홍일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끌려온 첫날, 군복을 던져주며 갈아입으라고 했다. 하얀 벽은 구멍이 뻥뻥 뚫린 방음벽이었다. 세면대와 소변기, 책상 둘이 있었다. 수사관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두들겨팼다. 하루를 한마디 말도 없이 구타만 했다.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뜨니 새 얼굴이다. 담당이 대여섯 명 되는 것 같았다. ‘니가 김대중이 아들이냐. 너는 절대로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한다. 어차피 송장으로 나갈 테니까 피차 힘들게 하지 말고 묻는 말에 답해!’ 사흘 동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5월15일 서울역 집회 배후자임을 시인하라고 윽박질렀다. 내 이름은 ‘빨갱이 새끼’였다. 연청 사무실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쓴 메모를 (간첩이 쓰는) 난수표로 인정하라고 했다. 사정없이 구타하지만, 급소는 교묘하게 피했다. 수치감과 모멸감을 받으며 ‘사람이 이렇게 망가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차라리 죽이라’고 소리쳤다. ‘죽여달라고? 허허, 이놈이, 여기서는 죽는 것이 가장 호강하는 거야. 너 좋으라고 죽여줘?’ 카메라가 보였다. 만약 내가 자백을 하면 ‘봐라, 김대중이 아들이 말했다’고 악용하려는 것일 거다. 나는 혹여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할까 두려워 수사관의 눈을 피해 자살을 기도했다. 책상에 올라가 머리를 시멘트 바닥으로 처박고 뛰어내렸다. 이때 목을 다쳤다.”
김홍일이 그렇게 목을 심하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중정 요원들은 치료해주기는 커녕 김홍일을 더 가혹하게 때렸다. 허리와 전신을 짓밟았다. 그때 김홍일은 목뿐 아니라 허리의 신경까지 다쳤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니까 결국 파킨슨병에 걸리고 말았다.[3]
그렇게 고문을 당한 뒤에 정보기관의 조작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년 선배인 최재승에게 김대중을 소개시켰고, 최재승은 김대중의 비서가 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88년 평화민주당의 외곽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약칭 연청)를 조직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라남도 목포시-신안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파킨슨병이 악화되어 보행이 불편해졌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파킨슨병이 점점 더 심해지자, 미국을 오가며 수술을 여러 번 받았다.
그리고 2006년, 안상태 전 나라종합금융 사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에 대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3 근황
그 후 파킨슨병이 악화되어 몰라볼 만큼 야윈 모습으로 변하였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2009년 8월,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별세했을 때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으며, 간신히 '아버지'라는 말 한 마디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세 딸들은 현재 모두 결혼한 상태.
- ↑ 김대중의 첫번재 부인, 1960년 사망했다.
- ↑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substantia nigra)에 분포하는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는 신경계의 만성 진행성·퇴행성 질환이다.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지속적인 외부의 충격과 고문을 받은 이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한겨레 신문의 초대 사장을 지냈던 송건호도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중정에 끌려가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얻어 8년간의 투병 끝에 2001년 12월 죽었다. 前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이 병을 앓다가 2016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