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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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문재인 (文在寅, Moon Jae-in)
출생일1953년 1월 24일 (64세)
출생지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1]
본관남평 문씨
본적함경남도 흥남시
학력경희대학교 법학 학사
정당더불어민주당
종교천주교 (세례명: 티모테오)
부모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2]
가족배우자 김정숙, 슬하 1남 1녀
형제자매2남 3녀 중 장남[3]
신체173cm, 67kg, B형
현직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약력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제29대 대통령비서실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제19대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더불어민주당 대표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별명달님[4], 명왕[5]
링크트위터 페이스북 팟캐스트
대통령비서실장
28대29대(폐지)
이병완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비상대책위원장2대 / 초대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문희상문재인김종인

1 개요

대한민국법조인이자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부산에서 노동 및 인권 변호사를 하던 시절 그와 함께 왕성히 활동했고, 노무현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뒤로는 줄곧 뒤에서 노무현을 도와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다. 노무현청와대에 입성한 뒤로는 청와대 민정수석 두 번과 시민사회수석[6]을 거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노무현재단의 이사장 직을 맡아 고인의 기념 사업을 이끌며 정치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 사상구에서 5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에 열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사퇴함으로써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섰지만 48%의 득표율에 그쳐 51.6%의 득표율을 기록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3.6%의 차이로 패해 대권을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선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은 후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7]

대선에서 패배한 뒤,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다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제2대 당대표 선거에 당선되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장으로서 당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초대 당대표가 된다.

김종인 비대위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최고위원들과 함께 2선으로 물러나 2016년 1월 27일 기준으론 평의원 신분으로 돌아왔으며, [#] 2016년 4.13 총선이 끝난 뒤로는 중앙 정치 무대와 거리를 두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대선 행보로 풀이되는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다.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더불어민주당 의사 결정 구조에 영향력을 끼칠 권한이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를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주류 세력인 친문계의 리더이자[8] 더불어민주당의 최대주주로서 여전히 최고 실력자의 위치에 있다고 보고 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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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1 초년 시절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재인의 아버지는 대대로 이북 함경남도 흥남 인근 남평 문씨 집성촌에서 살았고 당시 명문이던 함흥농고를 나와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 과장을 지냈으나 공산당 입당을 거부한 탓에 북한 공산당에게 시달리다가 6.25 전쟁 당시 흥남 철수미군의 메르디스 빅토리호[9]를 타고 월남하였고, 문재인을 피난 중에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낳았다.

그러나 태어난 지 7개월도 안 되어 휴전 협정으로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길이 막혀 부모님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졌기 때문에, 부산 영도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태어난 곳은 경상남도 거제시지만 연고지는 부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이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공산당에게 너무도 시달렸기 때문에 공무원 생활은 절대 하지 않겠다면서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노무자로 일했고 어머니는 거리에 나가 계란 행상으로 가계를 꾸렸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양말 떼다 판매상에게 공급하는 사업을 벌렸으나 빚만 졌다고 한다. 그래서 구호물자로 얻은 옷가지를 파는 좌판이나 연탄배달 소매상 등을 하던 어머니가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가난한 시기가 이어졌다. 문재인은 훗날 집에 자전거를 살 만한 형편이 아니어서 지금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제작진이 문재인에게 자전거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보조바퀴 달린 걸로 주었다는 게 함정(...)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 매달 내야 하는 '월사금'[10]을 못내서 담임이 집에 가서 받아 오라고 하면 그냥 같이 못낸 친구들과 바닷가 가서 놀다가 학교 마칠 때 쯤 교실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동네 성당에서 나눠주는 전지분유를 배급받은 고마움에 어머니가 먼저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문재인 본인도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영도구에 있는 신선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1965년 부산 남항국민학교를 졸업했고, 당시 명문이었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근데 경남중 동문 중에 새누리당의 전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있다는 게 또 함정[11]. 1968년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후, 그 당시 PK 지역 최고의 명문고로 꼽혔던 경남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중학교 때 학교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 도서관에 가거나 책을 대출 받아 읽는 일을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계속 했다고 한다.

고교 시절 초기에는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낙담, 사회 계층 차이에 대한 불만 등으로 인하여 술과 담배에 손을 대는 등 방황을 하다가 서울대 입시에 실패하고 말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주먹도 좀 썼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 1등을 해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지만, 재수 후에도 서울대에 낙방, 후기로 1972년, 경희대학교 법학과에 문과 수석으로 4년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경희대를 선택한 건 설립자 조영식 박사가 문재인의 아버지처럼 실향민이라는 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경희대학교 4학년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12]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집회를 주도했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지만[13] 대학에서 제적당했다.[14]

출소 이후에는 강제로 징집되어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복무하였다]. 이때 사령관이 정병주 장군[15], 여단장이 전두환, 대대장이 장세동이었는데 훗날 일어나는 12.12 군사반란에서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또 이들 밑에서 일반 사병으로 복무했던 문재인의 미래를 돌이켜 보면 참 역사란 드라마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항간에서는 문재인이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한 거니까 꿀을 빤 거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특수전사령부에선 장교, 부사관 뿐만 아니라 일반 사병들 중 특전대대에 배치된 일부 인원도 똑같이 전투 훈련을 받았다. 따라서 문재인도 그 당시 특전사에서 주특기가 폭파였고, 수중침투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전투 지원 및 행정 업무만 하는 지금의 특전병도 특수전 훈련 빼고 다른 훈련 (공수 훈련 등) 은 다 받고 있다.

군 복무 중에는 당시 특전사 사령관이었던 정병주 장군과 여단장이었던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당시 문재인과 같은 부대에서 교육장교로 있었던 노창남 예비역 대령의 회고에 따르면, 문재인이 이등병이었던 시절 폭파 과정 훈련에서 최우수자로 선정됐는데 특전사장교, 부사관 등 직업 군인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이 성적 우수자로 선발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 사병이, 그것도 가장 낮은 계급의 이등병이 성적 최우수자로 상을 받는 일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이렇게 군 생활을 잘 해서 그런지 전역할 때 간부들이 말뚝박으라고 괴롭혔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론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보복조에도 소속돼 있었다고 하는데, 본인 말로는 직접 투입되진 않았고, 전면전 발발을 대비해 비상 대기중이었다고 한다. 미루나무 작전에는 '현장팀'과 '작전상황팀'이 있었고 문재인은 작전상황팀 소속이었다고 한다.[#] 판문점의 보복 작전 현장에 1차로 직접 투입된 건 특전사의 '장교'와 '부사관'들이었다고.[16]

이러한 문재인 전 대표의 특전사 복무 경력과 일부 정치인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대비되면서, 군 복무가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되려 메리트로 작용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 됐다. 특히 2016년 10월 송민순외교부 장관 회고록 파문이 터지자 일부 보수 세력들은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색깔론 공세를 펼쳤는데, 문 전 대표는 이를 두고 "군대도 안 갔다온 사람들이 걸핏하면 종북 타령이냐" 라며 국가 안보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보수 진영에서도 정작 군 복무를 면제받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을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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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가 특전사 예하 제3대대에 배치받았을 때 '시위하다 온 애', '교도소에 있다 온 놈'이라는 전력 때문에 대대 예하의 각 부서에선 그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17] 그러자 대대 인사과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몰랐던 작전과 교육계한테 "똑똑한 놈이 새로 왔다"며 설득하여, 대대 본부 작전과에 문재인을 배치시켰다. 배치 받은 후에야 다른 장교들에게 문재인 신병이 '시위하다 온 애'라는 사실을 들은 교육장교 노창남 당시 중위는 다음날 인사과장에게 항의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상태였다고(...)

문재인이 속해있던 제3특전대대 본부 작전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노창남 예비역 대령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에 문재인과 같이 군 복무했던 사람들을 비롯해 문재인을 지지하는 특전사 출신 700여 명을 모아 '문재인과 특전사 전우들의 모임'을 결성하고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그리고 노 대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당대표를 뽑는 2.8 전당대회가 열렸을 때에도 문재인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새정치민주연합 대의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1978년 전역 후 고향에 돌아와서 진로 문제로 방황하던 중에 아버지가 59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사법시험에 매달리기로 하고 바로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대흥사 암자로 가서 공부에 매진, 1979년 사법시험에 두 번째로 1차 합격하였다.[18][19] 단, 준비 소홀로 2차는 다음 해로 목표를 정했다. 그러나 그때 부마항쟁이 시작돼 다음해 80년에는 학교와 복학 논의가 시작되어 뜻하지 않게 복학생 대표가 되었다.

1980년 복학하면서 4월 학내 시위 와중에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치렀을 무렵,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발표하고 민주화 운동 전력이 있는 대학생 등 반정부 인사들이 '계엄포고령'을 위반했다면서 마구잡이로 구속했다. 문재인 또한 5월 17일 저녁 강화도 예비 처가에 다녀오는 길에 잡혀 또 구속됐다. 이런 사유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실제로 국가유공자 자격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한다.[#]

구속된 지 한 달이 지나는 중 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2차 합격했다.[20] 보통은 1차 합격을 하면 2차 시험을 위해 총력을 다해 매달리는데 문재인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사법시험 공부까지 병행해서 합격한 것이다. 2차 합격 소식을 애인 김정숙이 유치장에 면회를 와 알려줬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 관계자들이 면회를 와서 합격 소식을 전하자 구치소 직원들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고(...) 계속 반말을 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문재인을 보고 영감님(검사에게 쓰던 호칭)이라고 부르며 유치장 밖으로는 못 나가니 학교 관계자나 면회객을 유치장 안에 들어가게 해서 축하주를 마시게도 해주었다.

그해 경희대에서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2명이라[21] 다급해진 대학 측은 총력을 기울여 구명 노력을 펼쳐 며칠 후 석방되었다.[22] 이후 3차 면접 직전에 안기부에서 그를 호텔로 불러 "지금도 생각이 그때와 같은가?" 라고 사실상의 전향 의사를 타진했지만[23] 문재인은 합격 취소를 각오하고 “그때 나의 행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훗날 문재인은 썰전에서 이 3차 면접 때 안기부로부터 전향 요구를 받았을 때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렇다고 그 손을 덥석 잡아버리자니 너무도 굴욕적으로 느껴져서 거부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호텔 밖으로 나와서 후회했다고 사실 사법시험 합격자가 귀한 경희대의 구명 노력과 당시 전두환 정권의 일시적인 유화책 실시라는 행운이 겹쳐 불합격이라는 불행은 면했지만, 소신을 지키려고 몇 년 간의 공부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 수 있었던 셈인데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인간적으로 이해가 갈 만한 부분이 아닐런지. 다행히 그해에는 3차 면접에서 아무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그 다음해부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예외없이 3차에서 탈락했다고 한다.[24]

2.2 인권 변호사 시절

사법연수원 12기 출신으로, 조영래 변호사, 박원순 서울시장, 고승덕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다.[25]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된 것도 이 시절이었다고 한다. 성적은 수석이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차석 졸업 법무부장관상을 받았고 집시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이유로 판사로 임용되지도 못했다.[26] 판사 임용이 좌절되고 거대 로펌의 제의도 있었지만[27] 문재인은 어머니가 계신 부산으로 낙향했다.

이때 연수원 동기인 박정규가 노무현 변호사를 소개 해주었고[28] 의기투합한 둘은 '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다.[29] 이후 노무현과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재야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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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노무현 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의 명함.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사무소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만나다 보니 차츰 부울경 지역에서 대표적인 노동 및 인권변호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그리고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약칭 부민협)이 설립되면서 부산 민주화 운동의 구심체가 마련되었고 노무현 변호사와 문재인 변호사는 33인의 대표 발기인으로 들어갔고, 부민협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약칭 국본)가 결성되었는데 부산 국본의 상임집행위원장이 노무현 변호사였고 상임집행위원이 문재인이었다. 이 둘은 당시 박정희가 만들고 전두환이 계승한 통일주체국민회의 하의 대통령 간선제를 국민 투표에 의하여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로 바꾸기 위한 민주화 운동을 했다.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게 노무현과 함께 국회의원 공천 제안을 받게 되었다. 노무현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서 당선, 13대 국회의원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였지만, 문재인은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재야에 남은 문재인은 꾸준히 젊은 변호사들을 영입하여 법률사무소 이름을 '법무법인 부산'으로 바꾸고 대표 변호사를 지냈다.

최동원 선수의 부탁으로 선수협 고문변호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2016년 부산 촛불집회에서 본인이 다시 언급하기도. [문재인의 야구 사랑에 대해서 쓴 기사.] 한겨레신문부산 지사 설립을 위해 변호사 신용 대출로 빌린 2억을 쾌척해 주었으며, 한겨레신문의 창간위원과 부산 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 돈은 지금까지도 받지 않고 있다.

1990년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으며, 2016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해당 사건을 다룰 때 출연해 인터뷰를 하였다. 그는 "사건의 여러 정황상 용의자들이 무죄라고 확신했지만[30], 누명을 벗겨주는 데 실패했다"며 본인의 35년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안타깝고 한이 남은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참고로 이 시기는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많은 범죄가 일소되었지만, 그만큼 경찰, 검찰 등 우리나라 사정 기관들이 실적 올리기에 눈이 돌아가 있던 시기라 애꿎은 사람들이 사소한 트집 하나 때문에 범죄자로 몰려 수없이 체포되었고, 고문 수사 및 진술 강요 역시 만연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1996년에는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의 주범들을 변호했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이것으로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문재인 후보는 본인이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것을 흑역사로 여기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사건 항목에 서술된 주석의 내용을 빌리자면, 변호사 윤리 규칙 제19조 제1항엔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즉,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형사 절차에서 최소한의 절차적 기본권은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정신이며, 이를 조력하는 것은 변호사의 당연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권 변호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애초에 이런 사건의 변호는 흔히 생각하듯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법에 따라 적절한 선에서 처벌을 받도록 조율하는 것이라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존재한다.

이후 부산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산 지부와 경남 지부장을 역임하며 꾸준히 시민사회 활동을 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2016년에는 대선 준비를 위한 비용(사무실 임대료 등등)을 모으기 위해 '법무법인 부산'의 지분 22.56%로 처분(8,370만 원) 하였다고 한다.


2.3 참여정부 시절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는데[31]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32] 결국 민정수석비서관을 그만두고 네팔에서 트레킹을 하던 중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33]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 당시 법사위원장 탄핵 정국이 끝나고 노 대통령이 대통령 업무에 복귀한 직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었고, 다시 민정수석을 거치면서 왕수석 으로 불렸고, 청와대 비서실장[34]으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하였다.

청와대에서 일하던 시기에는 부정 청탁을 받지 않기 위해 친구를 만나지 않았고 아내에게도 백화점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또한 고위공직자 부인들 사이의 교류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고. 그것 뿐만 아니라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 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에는 아내 김정숙 씨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주택청약저축을 들었는데, 그 사실을 안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주택청약저축이란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우리 가족은 집이 있으니 해당되지 않는다며 해약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소개되었다.

2006년 부산 지역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참여정부를)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한 지역에서 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새천년민주당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라면서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과 호남인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민정수석으로 일하던 시절,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골프로 인해 구설수에 휘말리자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하라고 촉구하기도 했으며, 청와대 직원들에게는 늘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고 한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소개한 일화에 따르면, 사학법 문제로 교육위 의원, 교육부 장관, 청와대 교육수석이 청와대에 모여 '당*정*청 회의'를 열었는데 교육부 장관이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표를 내겠다며 강수를 두자 당시 회의의 일원이었던 문재인이 회의 내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럼 관두시죠"라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국가 정책을 조율하는 데 자신의 자리를 압박 수단으로 사용할 거라면 관두라는 뜻이었다고.

문재인 전 대표와 절친한 관계로 알려진 노영민 전 의원은 충청북도의 지역 언론인 '충북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시절 전체 국정 현안 중의 95%는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선에서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노 전 의원의 발언에 따르면 정부 부처끼리 의견 조율이 끝내 안 돼 노무현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간 국정 현안은 5% 정도도 안 되었고 나머지 95%는 모두 문재인 비서실장#s-4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문재인 전 대표가 차기 대권을 잡는다면 국정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2.4 제19대 국회의원

2008년 참여정부를 마치고 경남 양산으로 들어가 칩거했으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다시 정치 일선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정치판으로 나와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럼 노무현에 대한 책이라도 한권 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쓴책이 운명이였고 이 책이 꽤 잘팔려서 독자를 위해서 서울에서 북콘서트 한번 열어야 하지 않겠냐고 1회성으로 시작한 북콘서트가 또다시 대박이 나고 결국 전국순회콘서트로 이어지고 결국 그를 정치로 나오게 만들었다고 한다.

2010년~2011년까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해오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이 항상 강세를 보여왔던 부산광역시사상구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을 얻어 새누리당손수조 후보(43.76%)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3당 합당 이후 사상구에서 당선된 첫 번째 민주당 후보다.

2014년 여름 즈음에 부산에 수해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보수 진영이 비판한 적이 있다. 문재인 당시 의원은 이때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단식 투쟁을 말리기 위해 본인도 단식 중이었는데, 이것을 두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중요하고 자기 지역구는 안 중요하냐는 소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허나 이에 대해서는, 당시 사상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 규모가 미미한 편이었는데[35], 이는 사상구에서 하천 정비 사업 등 수해 방지 대책을 잘 세워놓은 덕분이었으며[36] [문재인 의원은 사상구에서 진행 중인 사업의 중요성을 일일이 설명하고 예산을 삭감 없이 잘 지켜내어 힘을 보탰다]는 반론이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사상구 바로 옆의 북구에서는 문자 그대로 수해가 할퀴고 간 피해를 입었으나, 사상구의 경우 백양산 운수천(계곡) 등산로 등이 일부 유실된 외에 지역 주민들의 생활 터전에서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 수해 이후에도 예산을 확보하고 추가적으로 우수관거를 정비하는 사업을 벌이고 교통개선사업 등을 함으로써 사상구청(새누리당 소속 구청장)과 사상구 국회의원(민주당 소속) 모두 수해로 인한 피해도 없고 사후 대처, 지역 현안 등을 잘 챙겼다는 평가를 들었다.


2.5 제18대 대통령 선거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기호이름기호이름기호이름
1박근혜4박종선7김순자
2문재인5김소연
3이정희6강지원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의 슬로건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37]
이것을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겠습니다."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수락 연설 中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역사공원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같은 해 9월 16일, 전국 13개 시*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13연승 전승을 거두고 대선 후보 경선에서 56%의 득표율을 얻어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은 이 문서에서 다루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대선 후보 선출 이후, 용광로 선대위를 구성해 계파를 초월한 선거 캠프를 꾸릴 것을 천명했다. 캠프 명칭은 <담쟁이 캠프>.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에서 따온 것이다.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다른 후보들과 당원, 대의원을 포괄해, 시민 사회와도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캠프를 꾸린 셈.[38] 경선에서 패배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선거 캐치프레이즈 <저녁이 있는 삶>을 문재인에게 양보하기도 했다.[39] 하지만 선거에 쓰이지는 않았다.

대선 후보 정책으로 '순환 출자 금지' 및 '출차총액제한제 재도입', '소상공인 특별법 제정' 등의 재벌 개혁, 경제민주화를 골자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대검 중수부 폐지' 등의 검찰 개혁, '노인 장기 요양, 사회서비스 제도 충당', '보편적 반값등록금', '소득과 무관한 보편 의료비지원' 등의 복지 정책을 내세웠다. 또한 애묘인답게 정책공약집에는 심지어 반려 동물 권리를 위한 법안까지 있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와 함께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지난한 협상을 벌였다. 혹자에게는 1987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조성하다가, 공개 TV 토론회 이후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가 예비 후보직에서 물러남으로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민주진영 단일후보로 출마했다.[40]

박근혜, 이정희와 세 번의 대선 후보 TV 토론회를 벌였다. 1, 2회의 토론회에서는 강력한 데미지 딜러의 폭딜을 관전만 하며 존재감이 없다가[41], 박근혜 후보 떨어뜨리기 위해 나온 그 사람이 후보를 사퇴한 후에 벌어진 3차 토론회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1:1 토론을 벌였다. 이때 그 유명한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가 나왔다.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박근혜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선거에는 패했지만,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 중 전 정당을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은 14,692,632표(48.07%)를 득표했다.

작곡가 김형석이 캠페인 송 [사람이 웃는다]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문 후보의 정책 공약 '다섯개의 문, 단 하나의 문'에 감동 받아서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선 캠페인 송으로는 보기 힘든 고퀄을 자랑하나, 그닥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떠들썩한 유세차량에서 시끄럽게 나오는 캠페인 송에 비해 임팩트는 약했던 편. 이후 김형석은 2015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공개지지했던 故 신해철이 자신의 대표곡인 <그대에게>를 문재인 캠프에 캠페인 송으로 편곡까지 해서 음원을 캠프에 제공했다. 부제는 <[그대에게 : Reboot The Nation (ver.1.0)]>.

2.6 2015년

문재인/2015년 참고.


2.7 2016년

문재인/2016년 참고.


2.8 2017년

문재인/2017년 참고.

3 비판과 논란

문재인/비판과 논란 문서 참조.


4 트리비아

4.1 노무현과의 관계

참여정부 시절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

金蘭之交
잘 나갔을 때에도, 그리고 무너졌을 때에도 언제나 옆을 지켜줬던 영원한 친구.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해도 될 만큼 긴 시간을 동지로서 함께했다. '법무법인 부산'에서의 변호사,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 캠프의 부산 지역 선거대책본부장,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일어났을 땐 변호인단을 꾸려 위기 돌파에 기여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검찰로부터 표적 수사를 받고 있을 때엔 그의 변호를 맡기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병원에서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전하였으며, 화장 후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건호 씨와 함께 고인의 뼈를 빻는 일도 하였다. 노 전 대통령 사후에 설립된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현재도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어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은 가장 필요한 순간마다 함께 했던 동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력 정치인이 잘 나갈 때에는 그의 곁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편을 들어주지만, 그의 인기가 떨어지고 정치적으로 쇠락하기 시작하면 손바닥 뒤집듯이 단호히 선을 긋고 떠나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나라 정치 세계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문재인이란 사람에 대한 노무현의 신뢰가 어떠했는지는 노 전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 부산에서 했던 연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 아니겠습니까?"누구는 나쁜 친구를 두고 있어서 대통령감이 아니라 카더라 - [실제 연설 영상]

그야말로 신뢰의 끝. 문재인이 노무현 당시 후보의 부산 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었고, 이 연설을 부산에서 했던 것을 미루어 보면 그냥 립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권을 잡은 후에도 문재인을 계속 중용하였고, 퇴임 이후에도 계속 그를 곁에 두었다. 이것을 보면 고인이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인 셈이다. 사실 노무현은 성품이 직설적이라서, 립서비스와는 상극이었다.

문재인에게 노무현은 친구, 정치적 동반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문재인이 차기 대권에 도전하고 정치활동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점을 볼 때 문재인은 노무현을 뛰어넘는 통합적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4.2 안철수와의 관계

안철수/정치 문서 참고.

2016년 주요 기관 차기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기복이 큰 안철수 의원과 달리 문재인 전 대표는 꾸준하게 20%대 지지율로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함께 선두권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호남권 지지율만 놓고 본다면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약진한 뒤부터는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이 계속 우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김수민 & 박선숙 리베이트 사건'으로 인해 '새정치'라는 이미지에 심각한 훼손이 일어났고,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안철수 의원과 국민의당이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바람에 안 의원의 지지율도 점점 떨어져 결국 이재명 성남시장에 이어 황교안 총리에게까지 지지율이 뒤쳐지는 안습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문재인 전 대표는 비문 성향의 언론과 정치권의 집중 견제를 받는 상황 속에서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위를 유지하며 '문재인 대세론'의 불을 살려나가고 있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서부터는 호남권에서조차 문재인 전 대표가 안철수 의원을 계속 앞지르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문재인 전 대표의 잘못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데, 문재인/2015년 항목에 쓰여져 있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당대표로 있을 때 혁신위원장직과 '문*안*박 연대'[42] 를 제안하는 등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안 의원 쪽이 번번이 거부를 했다. 또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고 좋은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다르고 정책이 다르면 서로 다른 정당에서 경쟁하고, 국민들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옳다.

실제로 안철수 의원과 호남 비노계가 더불어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을 만든 뒤 더불어민주당의 고질적인 질환이었던 계파 갈등 문제가 상당히 해소가 됐고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폭등에는 이러한 점이 상당 부분 플러스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된다.

4.3 박원순과의 관계

일단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문재인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친분이 있기도 했지만, 박원순 시장 본인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고, 문재인 전 대표 등 여러 친노 진영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박원순 시장 스스로도 친노를 자처하기도 했다.[43] 문 전 대표도 박 시장에게 호의적이기도 하고. 상호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면서 서로를 비판할 때도 있지만,[44] 둘의 관계는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표 쪽을 '청산돼야할 기득권 세력'이라고 공격한다거나, 호남에 내려가 '참여정부가 호남을 홀대했다'고 주장한다거나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뽑을 대선 후보 경선의 룰을 정하는 일에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의 네거티브 전략을 선택하면서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지지층 사이에서는 박 시장의 이미지가 크게 나빠졌다.

이전 서술에서는 저조한 지지율 극복을 위해서 박원순 시장이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을 시작했다는 서술을 했지만 박원순 시장이 바보도 아니고(...) 민주당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했다가 역으로 넘겨지는 다른 후보들을 보고서도 단순히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문재인 전 대표 측을 공격했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에 대해 한겨레신문에서 문재인 캠프가 박 시장의 사람들을 빼가고 또 친문계 정치인을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밀기로 했다는 음모론을 듣고 박 시장 측이 문재인 캠프에 비판적으로 변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다.[45] 물론 이 또한 박원순 시장 측의 주장일 뿐이니 위키러들은 알아서 판단하자.

4.4 기타

  • 2014년 10월에는 [눈가가 부은 모습]으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누구세요? 보톡스 및 성형 시술의 부작용이 아니냐는 둥 별의별 소리가 나왔었으나, 고향에서 제초 작업을 하다 벌레에 쏘인 것이 악화되어 저렇게 됐다고.
  • 대한민국 역대 대선 후보들 중 최고의 미남으로 손꼽히며 역대 국회의원들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다. 60세가 넘은 나이지만 미노년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위 사진들처럼 각종 시설에서 일일 체험을 하는 행사 등에서 여러 가지 복장을 입을 때가 있는데, 뭘 입어도 30년은 종사한 전문가로 보인다는 코스프레 옷빨(...)이 매우 좋은 인물이다.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자. [고등학교 졸업 사진과], [특전사 시절 사진과], [아버지가 된] [중년 시절의] [사진]. 그 덕에 얼빠도 꽤 있는 편. 19대 대선에서는 안희정의 등장으로 조금 밀리는 편(?)이다.
  • 주사가 굉장히 귀엽다. 문재인의 아내 김정숙 여사의 말에 따르면 술을 좀 과하게 마시고는 옆 집 문을 두드린 적도 있고 기분 좋게 한 잔 걸치고 들어온 날이면 외출복 그대로 입은 채로 반려견인 마루와 껴안고 마당을 뒹굴고 둘이 누워 있곤 했다고 한다. 뭐하느냐고 물어보면 마루랑 달구경을 한다나 어쩐다나.. 마당에 앉아 나무와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 아기들과 학생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은 편이다. 특히 아기들과의 케미가 단연 최고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아가들이 문재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사진과 동영상이 유독 많고 본인도 그걸 굉장히 할아버지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한다 좋아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아기들이 순수해서 보는 눈이 있는 것이라고 농담하곤 한다.[46]


이 사진은 제49회 한국보도사진전 people in the news 부문에서 <아이의 시선으로>라는 제목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안아주데여] [피리부는 문재인] 학생들을 떼거지로 몰고 다닌다.

제87주년 광주 학생 독립운동 기념식이 끝나고 차에 탑승한 문재인이 행사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차에서 다시 내려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10대 학생들에게도 엄청나게 인기가 있어, 아이돌 가수 저리가라 할 정도다.

  • 문재인을 가까이서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평가는 단연 젠틀맨이라는 평이 많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모든 비서관들에게 존칭을 썼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고, 종편 등에서 여러 방송을 진행했던 박종진[47]은 문재인의 인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흠 잡을 부분이 없는 분."이라고 극찬했다.
  • 상도동계 중, 김영삼 前 대통령의 직계 후계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강삼재 前 의원과 대학교 동기이자 친구다. 그 덕분인지, 상도동계김덕룡상도동계의 주요 인사들 상당수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김현철 고려대학교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도 문재인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이걸 계기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으며 김 전 대통령이 별세한 이후 문재인은 고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였다. (이때, 김영삼의 장례식에서 이명박과도 만나서 인사를 나눴다고(...) ) [#])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사이가 틀어져 있었지만, 문재인은 인정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덕분에 문재인의 지지층의 폭이 더욱 넓어지는 이점을 얻게 되었다.


둘이 서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동문이다. 생애란에도 적혀 있지만, 김 전 대표와 경남중학교 선후배 지간이며, 문재인 전 대표가 후배다. 그래서 2015년 2월 경남중학교 동문회에서 [만나기도]. 싸우길 싫어하는 문재인과 호방한 김무성이 서로 정치를 떠나서 케미가 잘 맞는 듯하다. 심지어 정책 문제로 서로 으르렁댄 다음 날 총동문회에서 만나 서로 간지럼태우며 장난치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문재인은 김무성의 차녀 결혼식에도 깜짝 등장해 덕담을 전하기도 했다. 문재인과 김무성은 서로 반대 진영에 있지만 사적으로는 상당히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어 일가 행사 때 김무성이 같은 당 사람들은 공과 사를 따로 하여 초청을 안 할 때도 문재인은 사적으로 연락해서 초대하기도 한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위험한 상상을 하며 온갖 드립을 쏟아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48]
  • 지난 대선 시즌보수 언론들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문재인 당시 후보의 자택 일부가 무허가로 드러났다며 해명을 요구했는데, 그 '일부 무허가'라는 게 집의 지붕이 약 몇 cm 정도 삐져나온 걸 말하는 것으로 드러나 누리꾼들로부터 비웃음만 샀다. 게다가 문재인 당시 후보가 집을 지은 게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샀던 것이라서 문재인 후보의 잘못도 아니었고, 문제의 지붕도 건축물법 위반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잘못이라 부를 일도 아니었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누리꾼들은 이 일을 '처마게이트'라고 부르는 듯.] 이 건에 대해서 양산시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처마를 복구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결국 이 건으로 대법원까지 갔고 2016년이 되서야 문재인이 승소했다.
  • 제18대 대통령 선거 중 [TV 대선 광고 중] 문재인 당시 후보가 앉아있던 의자가 고가 브랜드 제품으로 알려져[49][50] 서민 코스프레'를 한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이에 문재인 당시 후보의 아내인 김정숙 씨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전시됐던 소파를 아는 분이 '땡처리'(재고품을 싸게 사고 파는 것)로 싸게 샀고, 나중에 그걸 제가 50만 원에 산 중고품입니다"라고 해명했다.[51]
  • 동남 방언, 그중에서도 거제도 방언은 '쌍시옷(ㅆ)' 발음을 잘 못 한다.[52] 덕분에 대선 토론회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눌변으로 비판을 받는 와중에도 비슷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발음이 좀 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시절 과로로 치아가 10개 정도(!) 빠져서 임플란트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대 대선 당시 정치 풍자를 위주로 했었던 SNL 코리아에서는 이를 개그 소재로 써먹기도 했다.
  • 이름 재인이 영어권의 여성 이름인 제인(Jane)과 발음이 비슷하여 Jane Moon 등으로 장난 삼아 불리기도 한다. SNL 코리아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문제니'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한 바 있어 문제니라 불리기도. 위에 서술된 금괴 드립과 관련해서는 금괴인, 황금왕, 문수르 등의 드립으로 불렸다. 안티들에게는 주로 '문죄인'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 풍산개도 길렀었다. 이름은 [마루]. 지금은 문재인의 딸이 고향인 양산에서 키우고 있다. 술버릇이 마당에 앉아서 마루와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씹덕킹 문재인 여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 개를 길렀었다고 한다. [뉴스1] 그리고 스피츠도 길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죽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 개를 길렀던 적이 있다고(...)[한겨레]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반려견 취향인가 보다 유기견이었던 강아지를 지순이라고 이름짓고 기르고 있다고 한다. [헤럴드경제] 또한 찡찡이라는 유기묘도 기르고 있다. 지지자들은 농담삼아 '문재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비선실세는 마루와 찡찡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 대선 후보 당시 한국경제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아이유를 꼽았다. 대학 포기 선언[53]을 한 것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하다. 이 외에도 그의 트리비아에 대해 언급이 많은 기사. [기사 원문]
  • 성씨가 ''(MOON)인 탓에 지지자들 중 일부는 애칭으로 '달님'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문 세력들은 반대로 친문 세력들을 '달레반'이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 20~30대 젊은층의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였던 계층이 20대 여성(69%)이었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지원 유세 사진과 영상들만 봐도 같이 사진 찍으려는 젊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20대 여성 (69%) > 30대 남성 (68%) > 30대 여성 (65%) > 20대 남성 (62%) 순으로 지지가 높았다. 반면 50대 이상 노년층에서는 낮았다.
  • 2014년 8월에 대구광역시의 한 취객이 문재인 당시 의원을 죽이러 간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가 검거되는 일이 있었다.[#] 문재인 의원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위해선 그렇게 열심히 뛰면서 정작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사실 문재인 의원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유족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단지 이를 알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던 유족 박성찬 씨가 문 의원의 경상남도 양산시 자택을 방문해 문 의원을 만나고 SNS에 남긴 글이 공개되면서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 상술되어 있다시피 인터넷을 많이 활용하는 20대~30대 젊은 층에게서 주로 높은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라, 웹 상에서 지지자들이 엄청나게 많고 활동도 왕성하다. 다른 민주 &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 문서와 문재인 문서를 비교해 보면, 비판이나 논란 또는 악성 루머가 서술될 때마다 다른 문서들에 비해 신속하게 세세한 반론과 교정이 붙는다. 현 야권 인사라도 문재인을 비난하는 언행을 보이면 비난 받는 일도 있다. 사실 비판이 아닌 비난은 당연히 욕 먹는다. 한 예로 2016년 11월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달린 답글들에 일일이 '좋아요'를 누르다 문재인 전 대표를 비방하고 인신공격하는 악플들에게도 좋아요를 눌렀다가 융단 폭격을 맞은 일이 일었다. 자세한 건 이재명(1964)/사건사고 문서를 참조.
  • 2016년 1월 미국NBC 뉴스에서 이란 관련 소식을 전할 때 지난 18대 대선 때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측이 입고 다녔던 [유니폼 패딩을 입은 현지인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었다. [해당 영상]의 13초, 23초 부분에 등장한다. 대강 추측해본다면 이 옷이 처분과정에서 자선단체나 의류수출업체 등으로 기증 혹은 처분되었고,[54] 이것이 이란 쪽으로 흘러들어가 글씨의 의미를 모르는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 노무현이명박자덕인 것과 달리, 문재인은 자전거가 아닌 등산을 즐겨하는데, 60대의 나이에도 히말라야 등반까지 할 정도로 등산을 즐겨하는 산악인 체질이다. 또한 병역 의무를 특전사로 마쳐서인지 정치계 유명 인사들 중 체력도 수준급이라고. 문무겸비? 다만 치아 상태가 나쁘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가 흔들리다가 빠지는데,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을 때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잇몸이 허물어지고 이가 다 빠져(!) 현재의 치아 모두 임플란트라고. 그의 발음이 약간 새는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로서 대선 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는지 최근 탈모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특히 앞머리 쪽과 머리 뒤쪽에 원형 탈모가 급속히 진행되어 점점 대머리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과 주고받은 질의응답이 화제가 됐다. 질의응답 내용 자체는 크게 특별할 것은 없었으나, 대체적으로 '사람이 너무 부드러워서 문제다'라는 소리를 듣던 문재인 전 대표에게도 나름대로 이런 '까칠한' 면모가 있었다는 점에서 유명세를 탔다.[영상]
  • 2016년 11월 22일, 인터넷 커뮤니티인 엠엘비파크에 문재인 전 대표와 그의 남동생 문재익 씨에 관련된 일화가 하나 올라왔다. 이 일화의 필자는 상선의 선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문재익 씨의 대학 후배이자 부하 선원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자, 문재익 씨가 일하고 있었던 선사에서 문재익 씨를 해상직에서 육상직의 고위직으로 승진시켰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익 선장에게 연락해서 "선사에서 그런다고 그 선사에 도움을 주는 일 따윈 없을 테니, 다시 선장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라고 하였고, 결국 문재익 씨는 선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은 듯하다. 문재익 선장이 만취한 상태에서 형 욕을 하며(...) 그날의 서운함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들었고, 그때서야 자기가 모시던 선장이 문재인 전 대표의 동생이었단 것도 알게 됐다고.[#] 참고로 문재익 씨가 일했던 선사는 지금은 사라진 STX였다고 한다. 이 일화가 인터넷에서 화제를 타자 작성자가 부담을 느꼈는지 해당글은 엠엘비파크에서 삭제된 상태다.
  • 사드 배치 논란에 대해서는 배치 반대 쪽으로 알려져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드 배치는 사드가 들어설 곳의 지역 주민들이 감내해야 할 피해와 우리가 부담해야 할 비용, 그리고 인접 국가들과의 갈등 조정 등의 문제가 있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므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도록이면 설치하지 않는 게 좋겠지만 그렇다고 찬성하는 쪽의 주장 또한 묵살할 게 아니라는 '신중론'에 가깝다. 그런데 사드 배치 합의가 된 지 시간이 오래 지났고 미국 쪽에서도 강한 의지를 보이는 터라 사드 배치 취소가 어렵긴하다고 입장이 좀 변한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차기 정부문재인 정부에게로 공을 넘겨 제대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 2016년 12월 17일, 경향신문박근혜 당시 유럽코리아재단 이사가 북한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한 편지를 입수해 공개했다.[#] 이 사건은 나무위키박근혜 편지 사태라는 문서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친북적이고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을 극진하게 예를 갖춘 문체로 물으며 심지어 남북이 아닌 북남이라고 쓴 표현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자 누군가가 박사모에 이 편지를 문재인 전 대표가 쓴 것이라고 속여 게시했는데 박사모에선 '역시 문재인은 빨갱이다!'라며 이 편지를 널리 알려야 한다며 이 편지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려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팀킬하는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손가락 혁명군도 여기에 낚여 이 편지를 문재인이 썼다면서 퍼날랐다고 카더라(...)[#]
  • 도널드 트럼프에게 미국 대선 당선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냈었다 (물론 개인적인 호감이 아니고 한미동맹 차원에서 대통령 축하로 볼수있다) [YTN]
  •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지만 미국에게도 NO를 할 수 있어야한다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주성을 강조했다고 알려졌으나 NO가 아니라 동등한 대화를 나눠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축약 보도함으로 벌어진 오보[55]로 밝혀지기도 했다. 북한에대해서도 북한 체제는 싫지만 대화는 할 수 있어야한다고했다 [연합뉴스] , [SBS]
  • 야구팬이라고 한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을 때 본인이 야구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김응용의 팬이었다고 밝혔을 정도.
  • '19대 국회의원' 항목에 잠깐 쓰여져 있기도 한데,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2학년 김유민의 아버지 김영오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장기 단식에 돌입했을 때,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나치게 단식을 오래한 나머지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상황에 처한 김영오를 설득하다가 끝끝내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김영오가 단식을 중단할 때까지 자신도 동조 단식을 하겠다며 아예 함께 단식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훗날 공개된 김영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이 일에 대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도 적혀 있었다. 일각에서는 김기춘 실장의 지시를 적은 이 메모를 근거로, 그때 박근혜정부에서 김영오가 단식 때문에 죽으면 그때 동조 단식을 했던 문재인 의원을 자살방조죄로 엮어 '치워버리려고' 김영오가 죽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였다.[#1][#2] [56]
  • 2007년 일본 정부가 우토로 마을[57]의 도시화, 개발 & 정비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마을을 철거하려고 했을 때 당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 소식을 접하고 정부 예산 30억 원을 우토로 마을에 지원하도록 도와 마을 부지 6000평 중 2000평을 매입할 수 있게 해서 우토로 마을 주민들이 거주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2년 우토로 마을 주민회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당시 참여정부의 지원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문재인 측에게도 감사패를 전달했다.[#]
  •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모임인 '더불어포럼'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2017년 2월 17일 공식 팟캐스트 방송을 개시했고 이틀 뒤인 2월 19일에 첫 방송이 업로드 되었다. 방송의 이름은 '[달이 빛나는 밤에]'라고 하며, 이정렬 전 부장판사가 진행을 맡았다고 한다.
  • 2017년 3월 1일 위키백과의 문재인 문서[58]에 문재인의 국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 수정하는 반달 사태가 발생했다. 이 덕에 이재명 문서와 더불어 관리자 수정으로 격상되었으며, 더민주 측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 1992년 12월 포항제철에서 노동 운동을 하다 해고된 노동자 이건기 씨는 문재인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건기 씨의 변호를 맡기로 한 문재인 변호팀은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경주지법에서 열린 1심부터 대법원에서 열린 3심까지 모두 승소를 이끌어냈고 덕분에 이건기 씨는 불가능해 보였던 복직에 성공하게 된다.
이때의 인연으로 이건기 씨는 문재인 변호사가 훗날 정치인이 돼 2012년 18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 새누리당의 초강세 지역이었던 경상북도를 누비며 문 후보의 선거를 도왔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기간 중이었던 2017년 3월 28일에는 이 복직 일화를 본인 페이스북에 공개하며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 [페이스북 원문]

4.5 금괴 루머

2012년 대선 당시 대한민국어버이연합극우 세력들이 "과거 부산 문현동에 있던 어뢰 공장에 일제가 숨겨놓은 금괴 1,000톤을 문재인이 몰래 탈취했다"는(...) 내용의 루머를 한 인터넷 게시판에다 퍼뜨렸다. 게다가 자기앞수표로 약 20조 원의 비자금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나하나 뜯어 보면 우선 자기앞수표는 20조라는 터무니 없는 금액(이건희의 공식 재산이 15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은 둘째치더라도 일단 자기앞수표라는 물건은 추적이 용이해 비자금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수표라는 것은 수표 발급자가 해당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그만큼의 금액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물건이고, 반대로 은행 측에서도 수표 사용자가 돈을 쓸 경우에는 바로바로 내줘야하는 물건인데 만약 은행에서 이 정도 돈이 빠져나가면 검찰 추적이 문제가 아니라 해당 수표를 발급한 은행이 뱅크런 난다.

또한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민간은행인 신한은행과 kb은행의 경우 총 자산이 각각 400조, 380조 정도인데 총 자산의 5% 이상을 즉시 빼가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은행의 업무는 사실상 마비가 될 것이다. 국가도 이 정도 돈을 처리하려면 한국은행으로는 택도 없고 국회에서 총의결을 거쳐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논란의 금괴는 경제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다. 문제의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중앙은행에 보유한 금괴가 광복 이전 최호황기였던 1925년 기준으로 860톤이 조금 넘었고, 세계 대공황중일전쟁으로 경제가 개막장이 된 1940년에는 중앙은행 금 보유량이 겨우 145톤으로 수직낙하해 버렸다.[59]

만약 일제가 1000톤이나 되는 양의 금을 비밀리에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세계 대공황에도 끄떡 없었을 테고 그랬으면 군부의 폭주도 막았을 테니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됐을까 루머를 처음 제창한 극우 세력도 자기들이 오버했다고 느꼈는지 슬그머니 숫자를 200톤으로 줄였는데, 이것 또한 말이 안 되는 게 위에서 언급했듯이 1940년 기준으로 일본은 금 보유량이 150톤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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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엌 저 정도 금괴가 있으면 뭐하러 정치를 하나

지금도 2016년 기준으로 중앙은행에 문재인이 가지고 있다고 카더라는 금 1,000톤 이상을 보유한 국가는 세계에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스위스 딱 이 6개국 밖에 없고, 금이 200톤만 있어도 세계 21위의 금 보유국이 된다(...) 참고로 21세기 우리나라의 금 보유량은 104톤, 영국의 금 보유량은 310톤이다. 이 정도면 원피스를 털어도 힘들고 문재인이 연금술사라서 금 200톤을 연금술로 만들어냈다는 말이 그나마 믿을 만하다 그래서 일부 누리꾼들은 "오히려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찍어야 제대로 된 복지 국가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보수 누리꾼들을 역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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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5년 12월 30일 오전 9시경, 부산 사상구에 있는 문재인 의원 사무소로 한 50대 남성이 흉기와 시너를 들고 난입해 사무실 직원들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이 알려진 초기에만 해도 "금괴를 노리고 괴한이 침입했나?"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인질범은 사무실 소화기로 유리창을 깨고 "문재인 대표가 금괴를 훔친 도굴범이므로 문재인 대표를 즉각 구속해야 한다" "'고 쓰여진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인질범은 출동한 경찰특공대와의 대치 끝에 오전 10시 16분 경 결국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부산 문현동에 있던 일본 어뢰 공장에 금괴가 숨겨져 있었다는 진실이 참여정부 때문에 가려져 내가 피해를 봤기 때문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사건 당시 문재인 대표는 김근태열린우리당 의장의 타계 4주기 추모 행사에 참여 중이어서 지역구 사무실에 없었고, 이에 정씨는 문 대표의 특별보좌관인 최모 씨를 인질로 잡았던 것이다. 인질극은 1시간여 동안 지속되었고, 정모 씨가 스스로 인질을 풀어주면서 막을 내렸다.

경찰은 정모 씨가 [정신 이상자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기사]에서는 경찰이 이 인질범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고 본다는 소리도 나오는 데다가, 이 자가 과거 부산항 금괴 450톤 이야기로 투자자를 모았다가 [사기 혐의로 실형을 산] 정 씨의 동생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정리]

이와 관련해서 일부 언론에서는 피해자인 문재인 대표를 향해서 '부산 민심이 흉흉하다'며 '문재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며 답정너식으로 성토를 했다. 그 중 MBN더불어민주당 당명 개정 이후 1호 입당 인사인 표창원경찰대학 교수를 초대했는데, [표 교수에게 문재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묻기까지 했다]. 이에 표창원 교수는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면도칼 테러를 당한 건 (그 범인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냐"고 반박했고, 앵커음오아예만 불렀다.[음오아예 패러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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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금괴왕 설'(...)은 정치에 관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나 유명한 '아는 사람만 아는 루머'였는데 이 사건이 터진 직후 정치에 크게 관심 없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다. 덕분에 2016년 1월 27일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더불어민주당 디지털미디어국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금화 모양 초콜릿 한 상자였다. 더욱이 금괴는 댁에 많으실 테니"'라는 드립으로 확인 사살. 퇴직금(?)을 받은 문재인 의원은 매우 기뻐하며, 회식 중 직원들에게 금화(?)를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뜻밖의 유머 감각

브렉시트로 금값이 폭등하자 '재산이 단 하루 만에 6,000억 원이나 늘었으니 브렉시트의 최대 수혜자는 문재인 전 대표다!'라는 드립도 등장했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어떤 노인이 이러한 내용의 루머가 적힌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진이 짤방화되어 돌아다니면서], 금세 위의 레일리 드립과 얽혀 대비보 원피스를 빼돌렸다느니 하는 개드립이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나중에 가서는 엄청난 금괴의 양을 두고 "엘도라 도(道) 지사"라는 드립까지 나왔다.

대전에 와서 금괴 의혹을 자백했다문재인에게 5글자로 질문을 하면 문재인이 답변을 하는 즉석 이벤트에서 한 여대생이 '금괴왕 진짜?'라고 질문하자, 문재인이 "저에게 금괴 200톤이 있죠. 그걸로 여러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재치있게 대답했다.

[2016년 탄핵 촛불 집회도 문재인이 1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금괴를 뿌려 사주한 일이라고 한다] 비슷한 드립으로 2015년부터 더불어민주당에서 각계 인사들을 영입할 당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문재인이 금괴를 뿌려서 인사들을 꼬셨다는 개드립도 있었다. 이제는 이런 금괴 드립은 문재인 지지자들도 유머로 사용할 정도로 많이 퍼졌다.문재인이 미소를 지으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은 짤방]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보여준 적 없다는 것이 숨기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라 카더라.[#][60]


5 친문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이다.


6 약력

7 가족관계

  • 아버지 : 문용형 (1920년 ~ 1978년)
  • 어머니 : 강한옥 (1928년 ~ )
    • 누나 : 문재월 (1949년 ~ ) 주부
    • 배우자 : 김정숙 (1954년 ~ )
      • 아들 : 문준용 (1982년 ~ ) : [육군 병장 때 찍은 사진], [2012년에 찍은 사진].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 디자인학부 시각멀티미디어디자인 전공으로 졸업하고[64]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고, 2011년 광주비엔날레에 '마쿠로쿠로스케 테이블'이라는 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다. 2014년 2월 결혼, 장인이 예장 통합 측 목사라고 한다.
      • 딸 : 문다혜 (1983년 ~ ) 2010년 3월 결혼. 주부
    • 여동생 : 문재성 (1955년 ~ ) 주부
    • 여동생 : 문재실 (1957년 ~ ) 지금 부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고 계신다고 한다.
    • 남동생 : 문재익 (1959년 ~ ) 해양대 해사대학을 나와서 상선 선장으로 알려졌다.


8 저서

  • <문재인의 운명>, 가교출판, 2011년 6월 15일 [#]
  • 공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
  • <사람이 먼저다 :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
  • <문재인이 드립니다 :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13일 [#]
  • 공저, <그 남자 문재인 :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
  • <대한민국이 묻는다 :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21세기북스, 2017년 1월 17일 [#]


9 선거 이력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당선 여부비고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상)민주통합당65,336 (55.1%)당선 (1위)[65]
2012제18대 대통령 선거민주통합당14,692,632 (48.0%)낙선 (2위)[66]
2017제19대 대통령 선거더불어민주당


10 관련 문서

  1. 현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명진1길 27
  2. 2017년 올해 나이 90세이다.
  3. 누나 1명, 남동생 1명, 여동생 2명이 있다.
  4. 성씨가 문(Moon)인 것에서 비롯됐다.
  5. 만화 원피스 캐릭터인 명왕 실버즈 레일리와 닮았다고 해서 생긴 별명. 자세한 내용은 트리비아에 쓰여져 있다.
  6. 참여정부 때 신설된 부서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와 민간 부문 간의 협력을 통한 국정 운영'을 뜻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실행하려고 만든 조직이다.
  7. 쉽게 말해 그 이전 대선의 당선자들보다도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얘기다. 참고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는 당연히 그 18대 대선에서 당선된 분. 18대 대선 막바지에 이루어진 전면적인 야권 단일화의 영향이 컸다.
  8. 그동안 더민주의 주류 세력은 친노무현계와 친노와 가까운 '범친노계'라는 그룹들이라는 게 대체적인 주장이었다. 사실, 친문이라 불리는 그룹이 있는 것은 맞지만 새누리당친박계처럼 실체가 뚜렷한 그룹은 아니다. 그리고 '친문'이라 불리는 사람 중에 더민주 지지층에게서 지지를 많이 받는 스타 의원들이 여러 명 거론되는 것도 맞지만 이 그룹이 당 내 다수파인지도 아직 명확히 검증된 건 아니다. 그러나, 더민주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그룹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문재인을 비롯해서 친문계의 의원들은 본인들 스스로 정책노선을 따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파 논쟁을 하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
  9. 영화 '국제시장' 초반부에서 피난민들이 앞다투어 타려고 했던 그 대형 화물선이 이 배다.
  10. 옛날에 스승에게 감사의 뜻으로 제자들이 다달이 바치던 돈. 좋게 말하면 다달이 내는 수업료라고나 할까.
  11. 김무성의 1년 후배다. 의외로 사적으로는 친한 50년 지기 형동생 사이라고 한다. 정치인들 초대를 꽤 자제했던 김무성 딸의 결혼식에 문재인이 오자 놀랍게도 김무성이 문재인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어 문재인이 왔나? 고맙다'라며 환영했다는 건 꽤 유명한 일화. 당시 김무성의 주변 사람들도 꽤 놀랐다고 한다. 물론 문재인은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순수하게 신부 아버지의 지인으로서 간 것이었다. 정치적 입장만 놓고 보면 2012년 대선 때, 지금은 거짓으로 밝혀진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 발언 논란에 불을 붙여 문재인 당시 후보를 종북 좌파로 모는데 크게 일조한 사람이 김무성이었다.
  12. 당시 총학생회장은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냈던 강삼재 전 의원, 집회 당일 경찰의 불심검문을 따돌리고 학교에 늦게 도착해 문재인 의원이 총대를 멘 격.
  13. 이 판사는 시국사건을 집행유예로 풀어줬다고 얼마 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해 법복을 벗었다고 한다.
  14. 후술되어 있지만, 재밌게도 대표적 보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 역시 문재인 전 대표와 경희대 법대 동문이라는 사실이 썰전에서 알려졌다. 문재인 전 대표보다 무려 3년 후배라고(...) 전원책은 문재인을 그 시절에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15. 항목에 좀 더 자세히 기술돼 있는데,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장태완 장군과 더불어 맞서 싸웠던 몇 안 되는 장군이었다.
  16.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가면 사진이 있다. 참고로 그 '예비부대'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에 침투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17. 당시는 '운동권'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18. 사실 대학 재학 시절이었던 3학년 때 1차에 첫 합격을 했었다. 이때가 1974년인데, 아마도 이 직후에 감옥에 가고 강제 징집이 되었기 때문에 시험을 다시 봐야하는 상황에 처했던 걸로 추측된다.
  19. 경희대 법대 3학년 재학 시절 재밌는 일화가 또 하나 있는데, 문재인은 유신 헌법 반대 시위를 하면서 학교 고시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열심히 시위 동참을 호소했는데, 법대 동기였던 고조흥이 "우리는 너와 생각이 다르다"며 쫓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치른 사시 1차 합격자는 고시반에서 공부 안 하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문재인 혼자 뿐이었다는 반전이(...) 이 고조흥이란 법대생은 문재인이 군대를 가 있는 동안 먼저 검사 등 법조계 경력을 쌓기 시작해 후에 한나라당 후보로 재보궐선거에 당선돼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주간경향]
  20. 3차는 면접이였는데 '별 일' 없으면 합격하는 요식행위였다. 단 문재인의 경우가 그 '별 일'에 해당되는 케이스였다.
  21. 80년까지는 사시 합격 인원이 100명 선이었다.
  22. 경희대 대학원장이 육사 1기 출신 김점곤 교수였다. 6.25 전쟁 때 평양에 제일 먼저 진입한 연대장으로 기록돼 있는 인물이다. 그가 중대장일 때 육사 2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점곤 중대장 밑에서(!) 소대장을 했다고 한다. 그가 계엄사 쪽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기소 전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23. 운동권을 하다가 사법시험 합격 후 출세를 위해 군사 독재 정권 편으로 전향을 한 법조인들이 좀 있다. 5공 치하에서 고문 의혹을 받고 있는 정형근 전 의원도 한때는 서울대 학생회장이었고, 시위를 여러차례 주동했다가 사시 합격후 공안검사로 변신했으며, 박근혜 탄핵 당시 박근혜 측에 선 이경재(법조인) 변호사도 마찬가지 테크를 타서 공안검사를 했다.
  24. 그렇다고 문재인도 이 면접에서 한 말 때문에 영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법시험에는 붙었지만 후술한 대로 사법연수원 성적이 1등이었는데도 차석으로 처리돼 차석 졸업을 했고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25. 유독 이 기수에 야권 성향 유명인들이 많은 것은, 12기부터 정치범 전력이 있는 사시 합격자들에 대한 사법연수원 입학 규제가 풀리면서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전두환 정권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유혈 진압으로 민주화 세력이 한 풀 꺾였다고 판단해 여러가지 유화책을 펴던 때였다. 그리하여 교복 자율화, 통행금지 해제, 이념 서적 판매 금지 해제 등의 자유화 조치가 일시적으로 취해졌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에서 소위 운동권 합격자를 받아들였다. 문재인 및 여러 재야 법조인들은 그 혜택을 본 셈이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 세력의 투쟁이 격화되자, 전두환 정권은 다시 폭압책으로 꺼내들게 된다.
  26. 문재인을 제친 12기 수석은 박시환 前 대법관인데, 박시환 前 대법관은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문재인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대리인단의 일원이었고 탄핵 기각 이후 대법관이 됐다.
  27. 문재인 구술"김앤장을 비롯해 괜찮은 로펌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변호사 상과는 달랐다. 보통 서민들이 겪는 사건들 속에서 억울한 사람을 돕고 보람을 찾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머니도 모실 겸 부산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28. 노무현과 박정규는 김해에서 고시공부를 함께했던 인연이 있었다. 늦게 사시에 합격한 박정규를 위해 연수원을 마치면 같이 일하자고 하고 본인 사무실에 방과 책상까지 준비했는데 박정규가 검사로 임용되면서, 미안해진 박정규는 문재인을 자신을 대신해 소개해 준 것이었다.
  29. 실제는 기존에 노무현이 하던 변호사 사무실에 문재인이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는다.
  30. 문재인의 회고에 따르면, 공범으로 지목된 인물은 거의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나빴고 그것 때문에 군 복무까지 면제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장소는 완전히 돌밭이었고, 범인과 피해자는 거기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였다고 한다. 게다가 사건 발생 시각은 달빛조차 없었던 칠흑 같은 밤이었다고 한다.
  31. 노무현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제안했을 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당신들이 나를 정치로 나가게 했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 라고 했고, 문재인은 민정수석으로 끝내고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두 가지 조건을 걸고 허락했다고 한다.
  32. 이때 치아가 10개쯤 빠졌다고 한다. 다음 민정수석을 맡은 사람은 본인을 처음 노무현에게 소개해 주었던 박정규 부장검사였다. 그리고 박정규 다음에 또 문재인이 이 자리로 돌아왔다. 역대 민정수석을 두 번 역임한 사람도 문재인이 유일하다.
  33. 'Impeach'라는 단어를 처음에 보고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 했다고 한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탄핵(impeach)을 영어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34. NLL 대화록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도 이 시기의 비서실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35. 다른 지역의 경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곳도 있는데 사상구 주민들 중에는 사상구엔 수해가 없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36. 사상구는 90년대에 한 번 크게 침수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하천 및 배수 시설등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37. 원래 모두 한 문장이었는데 선거캠프에 같이 있었던 윤태영 前청와대 대변인이 바꿨다고 한다
  38. 하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힘을 보탰다는 증언은 거의 없다. 그때 민주통합당 의원들 중에서 사실상 수수방관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소리가 들린다.
  39. 실제로 2012년 대선 당시 손 후보의 캐치프레이즈 '저녁이 있는 삶'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들의 캐치프레이즈 중에 제일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40. 혹자는 야권 단일 후보라고 명명하기도 했으나, 김소연, 김순자 후보와 단일화한 것이 아니므로, 완전한 야권 단일 후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41. 이때 토론회의 상황을 임재범의 <너를 위해>의 가사를 빌어 표현한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이 댓글은 SNL에서 한 번 더 패러디 되기도 했다.[SNL코리아 시즌2 참고 영상] 이 패러디 영상 자체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패러디이기 때문에 한 번 볼 것을 권한다.
  42.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3대 유력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 & 박원순 & 안철수가 손을 잡고 당을 이끌어나가자는 아이디어였다. 이 제안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긴 했지만, 광역단체장이라 당 운영에 직접 개입하는 건 법을 어기는 행위였으므로 상징적인 참여만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사실상 문재인과 안철수의 공동대표 체제를 문재인 측에서 제안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안철수 의원이 '혁신 전당대회'를 열자는 주장을 고집하면서 무산됐다.
  43. 거기다가 박원순과 이명박도 박원순과 노무현처럼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였지만, 박원순이 이명박 정부에서 벌였던 적대 세력 사찰 등을 문제삼아 반MB 기치를 내걸고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정계에 입문했는데, 이때 친노 진영 인사들도 박원순에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44. 굳이 따지자면 박원순이 문재인을 비판하는 빈도가 조금 더 높다.
  45. 박원순 시장의 최측근이었던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되기 한참 전에 문재인 전 대표와 손을 잡으면서 박원순 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46.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애들 또한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선호한다. 그리고 어른들에 비해 감정을 숨기는 능력이 떨어져서(...) 티가 더 난다.
  47.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올라갔던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였다.
  48. 참고로 김무성은 정계에서 자신의 호모포비아 신념을 당당히 드러내는 인물이며, 문재인은 본인이 직접 입장을 표한 바는 없으나 성소수자와 그 앨라이들에게도 상당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다만, 문재인 역시 동성혼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탄압받아야 할 일도 아니며,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동성애자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이미 국가인권위원회 법에 성소수자 차별을 금하는 조항이 있으니 별도의 법을 만들 것까지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다. 이에 격분한 일부 동성애자들이 그의 정책 회의장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49. 일베 등 극우 사이트에서 대선 후보 CF를 보고 문제 제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 의자가 이탈리아제로 시가 약 900만 원이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수입 업체는 이 의자는 중국산으로 시가가 90만 원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사]
  50. 가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유명한 '임스 라운지 의자(Eams lounge chair)'로, 1950년대에 찰스 임스 부부가 만들어 아직까지도 동일 디자인으로 생산되고 있는 디자인계의 전설.
  51. 박원순 시장도 지방선거 당시 비싼 전세집(...)에서 산다는 비난을 들었고, 문재인 전 의원 역시 대선 때 집이 왜 이리 넓냐고 비난받았다. 그 집이 위에 있는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의 그 집인데, 여기는 시골(...)이다. 그런 비난을 했던 사람들이 부자 동네의 대명사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단독 주택에서 살고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침묵했으니 문제가 된 것이다.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의원은 정계 및 사회 활동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변호사 세계에서 꽤 날리던 사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인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52. 쌀→살 같은 식이다. 참고로 김영삼대통령경상남도 거제시 출신으로 비슷하게 쌍시옷 발음을 잘 못 했다.
  53. 보통 어린 스타들의 경우 대학이 먼저 알아서 특례 입학 등을 시전하여 성적 대비 좋은 학교에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유는 고3 시절 여러 방송과 인터뷰에서 '대학에 가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다'며 대학 입학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54. 동네마다 있는 폐의류 수거함들의 주된 운영구조가 수집한 의류에서 멀쩡한 것을 분류해 kg당 얼마로 자루에 담아 영리업체일 경우 해외수출, 자선단체일 경우 분쟁지역이나 개발도상국에 기증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수집된 옷을 기증받아 소독을 거친 후, 학교나 교회 등지에서 배포했다고 한다.
  55. 뉴욕 타임즈에서는 정정보도를 했다.
  56.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헌법 제34조 6항 :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를 어긴 게 된다.
  57.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렸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무한도전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다.
  58. 이재명 문서와 함께
  59. 출처: World Gold Council, Central Bank Gold Reserves An historical perspective since 1845.
  60. 후일담으로 이 만화가 YTN에서 금괴 루머를 퍼트린 가짜 뉴스의 예로 소개되기도 했다. 원 내용은 이런 루머를 비꼬는 것에 가까움에도.
  61. 두 사람의 합동법률사무소 내에 무료로 상담해주는 노동법률상담소도 있었다.
  62. 상임집행위원장은 당연히? 노무현이였다.
  63. [기사 참고.] 당시 노무현은 이사로 지냈다고 한다.
  64. 2014년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로 개칭.
  65. 3당 합당 이후 민주당 후보가 처음으로 사상구에서 당선된 사례다. 부산에서 3당 합당 이후 민주당 후보가 최초로 당선된 사례는 부산 사하구 을의 조경태 의원이었다. 그런데 2016년 1월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
  66. 역대 대통령 후보들 중 득표수 2위. 이전의 1위였던 노무현의 기록까지 넘은 득표수였으며, 낙선한 대통령 후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라는 타이틀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