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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성 천수각 |
名古屋城
1 개요
나고야 성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위치한 성으로, 오랫동안 고산케의 하나인 오와리 도쿠가와가의 성이었다. 일본 100명성 중의 하나이며 금성(金城)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 역사
나고야 성의 역사는 도쿠가와 천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곳에 처음 성을 쌓았던 것은 이마가와 가문으로, 당시에도 이름은 같았지만 '那古野城' 으로 한자를 달리 썼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노부히데가 이 성을 차지해 거성으로 삼았는데, 노부나가도 이 성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오다 가문의 거성이 키요스, 기후 등지로 옮겨간 다음에는 차츰 필요성이 사라져 폐성되었다.
이곳이 다시 부상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목하면서부터이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압박하기 위해 이에야스는 오사카를 몇 겹으로 포위하는 형태로 각지에 가신들을 파견해 성을 쌓았다. 오와리 국의 축성 후보지로는 키요스 성이 있었으나 규모가 작고 수해가 잦다는 점 때문에 탈락시키고 지금의 나고야 성 부지를 선정했다. 나고야 성 축성에는 가토 기요마사[1], 가토 요시아키, 후쿠시마 마사노리, 호소카와 타다오키, 구로다 나가마사 등 20명의 다이묘가 동원되었다.
메이지 시대 판적봉환 당시 번에서는 성의 건물을 철거하고 자재를 팔아 각종 비용에 충당하고, 천수각 꼭대기의 킨샤치(金鯱)는 신정부에 바칠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획을 알게 된 독일 공사 막스 폰 브란트가 철거하지 말 것을 건의했다. 아무래도 나고야 성을 방문했을 때 천수각의 풍경과 혼마루고텐의 장벽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어쨌든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나고야 성은 폐성령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나고야 성은 육군성 관할을 거쳐 궁내청의 나고야 이궁이 되었다. 1930년에 소유권이 나고야시로 넘어갈 때 주요 건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3 구조
천수각 : 나고야 성 천수각은 사상 최대의 규모로 유명하다. 축성을 맡은 다이묘들이 공사 구역을 나눌 때 가토 기요마사가 자청해 천수대를 맡은 덕에 기반이 훌륭하게 조성되었다. 성곽 공사 후에는 코보리 엔슈, 오쿠보 나가야스 등이 건물 부분 공사를 시작했다. 천수각은 남쪽의 소천수와 북쪽의 대천수가 와타리야구라를 통해 이어진 연결식 천수이다. 1945년 태평양 전쟁 와중에 공습을 받아 소실되었다가 1959년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 재건되었다.
2000년대 들어 50년이 넘어 건물이 노후화되고 현대의 내진 설계 기준과 맞지 않는 점이 지적되었다. 대대적인 보수 혹은 해체 후 재건 등의 대안이 제시되었는데, 현재 목조로 재건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 최근 나고야시가 채택한 안에 따르면 복원 비용은 최대 500억엔. 2017년 6월부터 해체 공사를 시작해, 2020년 올림픽 이전까지 완료하는 것이 목표이다. 일각에서는 앙케이트 조사 결과 해체 후 목조 복원에 찬성하는 의견이 그리 높지 않았던 점이나[2] 졸속 복원의 가능성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혼마루고텐 : 나고야 성 혼마루에 있는 고텐은 영주의 주거와 번의 정무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지만 번의 정청이 니노마루로 옮겨진 이후에는 쇼군이 교토에 행차할 때 중간 숙소로 사용했다.[3] 혼마루고텐은 성의 위용에 걸맞게 면적이 4천 제곱미터가 넘는 건물이었다. 에도 막부 초기 서원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의 국보였지만 천수각과 함께 소실되었다. 다행히 내부를 장식하던 장벽화들은 따로 보관한 덕에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2009년부터 3단계 복원 공사에 착수, 2018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4 트리비아
혼마루 해자에는 사슴이 살고 있다. 동물원에서 3마리를 기증받아 기르던 것이 한때 50마리가 넘을 정도로 번식했으나 지금은 2마리만 남은 상태. 해자 보수 공사 등으로 사슴이 풀을 뜯을 수 있는 면적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도다이지 마당의 무법자사슴들과는 너무도 다른 처지.
나고야 성의 킨샤치 |
천수각 꼭대기를 장식하는 킨샤치는 나고야 성의 상징이다. 샤치(鯱)는 상상의 바다 동물로, 건물의 화재를 예방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아즈치 성을 시작으로 오사카 성이나 에도 성 천수각에도 설치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소실, 결국 나고야 성에만 남아 있게 되었다. 무려 320kg의 금을 사용해 만들어 값어치가 대단했기 때문에 오와리 번에서도 애지중지했다. 18세기에는 훼손을 막기 위해 철망으로 두르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킨샤치를 대단한 자랑거리로 생각했는지 1873년 빈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비롯해 국내 여러 박람회에도 출품했다. 문화재 이전에 귀금속으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킨샤치를 벗겨 먹으려는 시도도 여러 번 있었는데, 스타트는 번주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이 끊었다. 응? 번에 재정난이 닥칠 때마다 금을 긁어내 재원으로 활용한 것. 메이지 시대 이후에도 3번의 도난 사고가 있었다. 1937년에는 소유권이 나고야시로 이전될 때 조사 과정에서 금으로 된 비늘 58개가 도난당해 시장이 사임하는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전국적인 수사를 벌인 끝에 장물 거래를 하던 범인을 체포하는 것으로 해피 엔딩.
일본 성의 페이퍼 크래프트를 제작하는 Facet#에서 혼마루고텐을 재현해 내놓았다. 예전에는 파일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었는데 완성도를 높여 상품화하는 쪽으로 선회한 듯.
5 찾아가는 길
메이테츠 히가시오테역이나 나고야 시영 지하철 시청역에서 내린다. 입장료는 500엔.
도니치 에코 킷푸가 있으면 400엔에 이용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