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本営(だいほんえい)
Imperial General Headquarters
구 일본 제국 시절 전쟁 혹은 전투 상황 중에 설치된 일본군 육군 및 일본군 해군의 최고 통수 기관이다. 그야말로 통수 기관 덴노의 명령(奉勅命令)을 대본영 명령[1]으로 발하는 최고 사령부로서의 기능을 가지는 기관이다.
1 개요
대본영은 일본군 전체를 지배하에 두는 전시 덴노 직속의 최고 통수 기관으로서 1893년 5월 19일에 칙령 제52호의 전시 대본영 조례에 의해서 법제화 되었다.
청일전쟁을 지휘하기 위해서 1894년 6월 5일에 설치되었다. 대본영은 1893년 제정된 해군 군령부 조례에 의해 평시에 있어서만 육해군부의 군령이 대등하게 된 바로 직후라, 전시 대본영 조례에 의해 해군의 군령도 통괄하고 있던 육군의 참모총장만이 막료장으로 여겨졌다. 9월 15일, 전시 지도의 거점을 히로시마 시(広島)에 두기 위해 천황이 히로시마에 옮겨 갔기 때문에 대본영도 히로시마로 옮겼다(히로시마 대본영). 1894년 4월 1일, 대본영 해산의 조칙에 의해 해산되었다.
러일전쟁을 지휘하기 위한 대본영은 1904년 2월 11일에 설치되었다. 이 때는 1903년의 대본영 조례 개정에 의해 전시에 있어서도 육해군 모두 군령 기관이 대등하게 되었기 때문에 육군 참모총장과 해군 군령부장 모두 막료장으로 여겨졌다. 1905년 12월 20일에 해산되었다.
중일전쟁은 일본 정부가 차후에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기 위해, 전쟁이 아닌 "단순한 사변"으로 포장했기 때문에 1937년 11월 18일에 대본영 설치를 전시로 한정하고 있던 대본영 조례는 칙령 제658호에 의해 폐지되어 새롭게 전시 이외의 사변에도 설치 가능하게 한 '대본영령'(쇼와 12년 군령 제1호)이 제정되었다. 1937년 11월 20일, 대본영이 설치되어 그대로 태평양 전쟁 종전까지 존속한다. 전쟁 말기에는 나가노(長野) 마츠시로(松代)에 건설된 지하호에의 천도도 계획되었지만(마츠시로 대본영), 미완성이 된 채 종전을 맞이해 1945년 9월 13일에 폐지되었다.
2 조직
대본영은 대부분의 기관이 참모본부 및 군령부에 속해있는 조직이었다. 대본영 회의는 덴노와 참모총장, 군령부 총장, 참모 차장, 군령부 차장, 참모본부 제1부장(작전 부장), 군령부 제1부장, 육군 대신, 해군 대신에 의해서 구성되었다.제국군 3장관 대본영 조직에는 내각총리대신과 외무 대신 같은 내각 관료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본영과 일본 정부와의 의사 통일을 꾀하기 위해 대본영 정부연락회의가 설치되었다.
2.1 육군부
2.2 해군부
3 트리비아
- 정부나 기업 등에서 좋지 않거나 악화되는 상황임에도 공식적으론 좋다거나 개선되고 있다고 뻥을 칠 때 대본영발표라고 부른다.
- 오만방자하고 자기만 옳다고 우겨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 계속 패착을 두는 사람을 가리켜 '대본영참모'라고 부른다.
4 참고항목
- ↑ 대본영 육군부 명령(大陸命), 대본영 해군부 명령(大海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