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성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의 남부에 있던 신라. 본래 대가야의 땅으로 전략적 요충지였으나, 장군 이사부에 의해 함락된 뒤로는 신라의 옛 가야 지방에 대한 지배 거점이자 대 백제전선의 주요한 방어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지리적 요충지다보니 시대를 막론하고 수없이 전투가 일어났다. 대야성 전투 문서 참조.

선덕여왕 시대에는 642년 백제 장군 윤충이 함락시켜 김춘추의 딸과 사위인 김품석을 죽이면서 신라당나라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시발점이기도 했다.[1] 때문에 대야성의 기능이 압독주로 옮겨졌다가 660년 백제의 멸망으로 대야성을 다시 수복한 이후 661년에 주의 중심지를 다시 대야성으로 옮겼다.

천연의 요새였기 때문에 신라의 영토가 다시 경상도 지역으로 쪼그라든 후삼국시대에는 견훤의 침략을 막아내며 신라가 수십년간 버티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였지만 견훤이 포기하지 않은 끈질긴 공세에 920년 함락당하였다.이후 후백제 장수 추허조가 지키고 있었는데 927년에 고려김락에 의해 함락되었고 928년에 후백제의 관흔이 왕충이 이끄는 고려군을 북방으로 유인한후 신속히 남하해 대야성을 다시 점거하는 등 주인이 계속 바뀌다 결국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고려의 영토가 되었으며 고려 때는 합주의 관할이 되었다.
  1. 김춘추의 사위이자 성주인 김품석의 부하 모척과 검일의 배반이 결정타였다. 근데, 김품석 이 작자 또한 잘한 건 없었는데 그놈의 색욕 때문에 모척과 검일의 부인을 빼앗은 덕에 배반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검일은 훗날 사비성이 함락되었을 때 결국 붙잡혀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