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소재지 / 별표는 특례시.,,|<#CD0000>
陜川郡 / Hapcheon County
1 개요경상남도 중북부에 위치한 군. 인구 약 5만 명, 면적 983.47km²로 경상남도의 시·군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2 역사합천읍 교동지역과 대양면 대목리에서 석기류 출토와 합천댐 건설시 유적발굴로 인해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삼한시대에는 변한에 속하였으며, 부족국가로는 대량국(합천지방), 초팔국(초계지방), 사이기국(삼가지방)이 있었다. 현재까지도 합천지방, 삼가지방, 초계지방이 크게 발달한 지역으로 유지되고 있다. 가야연맹시대에는 대가야국으로 분류되지만 가야연맹의 소국인 다라(多羅)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 562년 신라장군 이사부와 부장 사다함에 의하여 대가야국이 멸망됨에 따라 합천이 신라에 귀속됨
신라가 가야연맹을 병합한 이후에는 대야성이라는 군사요충지가 되었으며, 백제 의자왕 대에 백제의 장군 윤충이 공략하여 함락시킴으로서 신라 수도 코앞까지 육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야성 전투에서 김춘추 사위 품석이 막료인 검일의 아내를 겁탈하였고 그에 분한 검일이 백제군과 내통하여 창고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에 김품석은 항복하려 나가는 아찬 서천(西川)의 권유를 받고 성문을 열고 신라군을 내보냈으나, 백제군이 신라 군사를 모조리 죽이는 것을 보고 그의 가족과 함께 자결하였다. 그 밑에 있던 화랑 죽죽이 끝까지 싸웠다(백제에 항복했던 검일은 뒤에 백제가 멸망하자 붙잡혀 처형된다). 합천에서는 군가에 죽죽을 집어 넣는데, 밑의 공원 명칭에 쓰일만한 위치였다. 후삼국시대에도 이곳에서 고려와 후백제군이 격전을 벌임으로서 군사 요충지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하였다. 정유재란 당시 조선 육군 사령부가 있었으며, 백의종군 신분으로 충무공 이순신도 100일간 머물렀다. 3 교통철도는 현재 없으나 남부내륙선 철도가 계획중이므로 철도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에서는 한참뒤에 벗어날 예정. 광주대구고속도로, 24번 국도, 33번 국도, 59번 국도가 있다. 해인사 방면으로의 시외버스 노선이 합천읍 방면만큼이나 많은 것이 특징. 해인사IC가 관내 야로면에 자리하고 있지만 군 북쪽으로 한참 치우친 곳에 위치해 있어 합천읍으로 가기엔 불편하다. 차라리 고령군 소재 고령IC로 가서 33번 국도 따라서 가는 게 훨씬 낫다. 대체로 대구광역시 생활권에 가까우며 합천읍 북쪽(가야면, 야로면, 묘산면, 봉산면)[1]과 동쪽(덕곡면, 청덕면, 쌍책면, 초계면, 적중면, 율곡면)은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하다. 반면 합천읍 남쪽(가회면, 삼가면, 쌍백면, 대병면, 대양면, 용주면)으로는 진주시 생활권에 더 가깝다. 최근 대구-합천간 새 국도가 건설되면서 용주면과 대양면은 대구광역시 생활권에 더 가까워 졌다. 현재 함양-울산간 고속도로가 공사중인데 이 고속도로가 합천을 통과한다. 4 관광주요 관광지는 다음과 같다. 5 정치
전두환의 고향, 더불어 고령화, 이촌향도현상으로 인해 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평균연령은 높아지고 있어 보수정당 지지율이 압도적이다.
6 이야깃거리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cjnews_345152_1[583769].jpg
한국인 피폭자들이 많아 국내에서 유일한 관련시설인 평화의 집과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이 있다. 일제시절 강제징용이나 정신대, 돈을 벌기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다수 일했기 때문이다. 평화의 집 원장은 윤여준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이 의외로 안 알려져 있다. 고려현종이 오늘날 합천에 거주할 당시에 그 지명을 따서 대량원군으로 불리게 된다. 7 하위 행정구역합천군/행정 항목으로. 8 출신 인물
8.1 관련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