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허조

趨許祖

생몰년도 미상

1 소개

후백제의 장군. 별다른 기록은 없고 927년 대야성에서 고려 장수 김락에게 생포되었다는 게 전부다. 그러나 견훤이 온갖 노고 끝에 점령한 대야성을 관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견훤의 오랜 숙장이거나 상당한 위치에 장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2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드라마 태조 왕건에선 강재일이 연기했다. 포지션은 삼국지의 장비 또는 행동대장.

견훤과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이며 견훤도 추허조를 매우 아끼는 것으로 나온다. 용맹은 한가닥 하지만 성미가 급하고 좀 버럭하는 성질이 있지만, 의외로 조금 꾀를 부릴 줄도 안다.[1] 후백제의 초기 건국 멤버 중 한명으로, 견훤이 서라벌에서 하급 군관을 하던 시절부터 능환, 김총과 함께 따라다녔다. 원래는 기록에서 처럼 927년 대야성을 지키다 퇴장해야 하는데[2] 극에선 그보다 12년은 빠른 2차 대야성 공략(915) 중 신검과 양검을 구하다 죽는다. 이는 강재일이 견훤 역의 서인석과 마찰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서로 마찰이 있을 만큼 둘다 성격이 터프한 사람들이긴 했는데, 새벽 촬영이 끝난 뒤 회식 장소에서 소주 한잔을 마시던 중 사소한 입씨름을 벌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강재일은 여관방으로 찾아와 서인석에게 발길질을 했다.
결국, 강재일은 서인석이 출연하던 SBS 아침드라마 촬영장으로 와서 정식으로 사과를 했으나 그 이후 한동안 사극 출연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사극에 자주 출연하던 강재일은 2006년 대조영에서 묵철 역으로 복귀했고 이후 광개토태왕에서는 후연 인물로 나왔다.

작품 초반 견훤이 수달을 굴복시키는 부분을 보면 추허조의 용맹이 수달도 놀랄 정도인 것으로 묘사된다.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 금성 공략전 당시 성문 앞에서 버티고 서서 고려의 장수들을 하나 하나 발라버린다.</ref> 그 뒤로는 오히려 수달이 백제 제 1의 무장으로 부각되고 추허조의 활약은 두드러지지 않는다.[3] 수달이 죽고 나서 최고 무장의 위치를 회복하나 싶었는데 얼마 못 가 자기도 죽어버렸으니 안습. 이후 백제의 용장 역할은 애술신덕이 이어받지만 수달과 추허조에 비하면 확연히 떨어지는 무력이라,[4] 추허조의 죽음은 견훤이 왕건에게 밀리게 되는 여러 계기 중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극중 추허조가 태자들 때문에 죽었다는 보고를 받자 열이 오를대로 오른 견훤은 신검과 양검을 마구 구타(…)하며 폭풍 갈굼을 시전한 후 그래도 화를 참지 못했는지 둘 다 참수하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주변의 장수들과 신료들이 만류하여 그만두긴 하지만 "네놈들보다 몇 배 몇십 배는 소중한 아우인데 너희 버러지 같은 것들을 살리려다 죽어버렸다"며 심한 모욕을 준다.

다만 가뜩이나 고려에 비해 인재가 부족한 후백제인데, 그 인재 중에서도 수달과 더불어 후백제 탑클래스의 장수이자 의형제인 추허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견훤 입장에선 아들내미고 나발이고 간에 제대로 빡칠만 하긴 했다. 신검과 양검이 줄곧 실망 견훤을 실망시키 오기도 했고.

그리고 하필이면 드라마상에서 그 시점이 수달이 죽은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지난 번에는 수달이가 죽더니 이번에는 허조가 죽었어"라는 안습 대사를 남기기도 했다.
  1. 수달을 상대할 때 추허조가 이끄는 30여 명의 철기군이 지리적 여건을 살려 수적으로 우세한 수달의 부하들을 상대로 큰 전과를 거뒀었다.
  2. 그나마 기록상으로는 김락 등에 의해 포로로 잡힌다. 즉, '이후 풀려나 이러저러하게 활약' 이라고 설정할 수도 있었을 것.
  3. 대야성을 공격할 때도 수달이 죽은 후 나주성을 공격할 때도 화살에 맞는 안습한 모습을 보인다.
  4. 애술은 그래도 제법 싸움 좀 하는 데다 박술희와 대등한 무력을 가졌고, 신덕은 배현경과 맞먹는 무력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수달과 추허조에 비하면 떨어져 보인다. 일단 수달은 박술희도 이겼고 배현경과 김락의 2대1 다구리를 역관광 보내기까지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