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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카트린 드 폐리농은 1754년 5월 31일에 프랑스 그라나다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16세기 이래로 그라나다에서 기반을 다진 명문 귀족 가문이었다. 또, 이 집안은 18세기 무렵에 툴루즈 시에 세력을 확장하는 등,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렇듯 그의 가문 배경이 훌륭했기에, 폐리농은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으며, 좋은 교육을 받고 군사적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1793년 7월 17일, 그는 투르 및 매스 드-세르 전투에서 용맹을 발휘하여 프랑스 군대의 승리에 기여했다. 또, 그는 툴루즈 전투에서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적군에 맞서 싸웠다. 이렇게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덕분에, 폐리농은 1793년에 중령에 승진했고, 9월에는 준장에 승진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상원의원이었는데, 나폴레옹에 대한 아첨을 상당히 많이 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뒤에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그는 루이 18세에게 열성적이고 겸손하게 접근하였고, 그결과 자신의 직위를 인정받음은 물론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또한 그는 루이 18세를 위한 포고령을 성공적으로 반포하여 왕의 신임을 받았으며, 마침내는 귀족 칭호를 받기에 이른다.1815년, 그는 군사 부분의 총재로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나폴레옹을 제거하기 위한 모의를 꾸몄지만 실패하였고, 도리어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급히 망명길에 올랐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배반한 폐리농을 직위에서 파면시켜버렸다. 하지만 얼마 뒤, 나폴레옹은 워털루에서 패배하고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 뒤 나폴레옹을 따랐던 미셸 네에 대한 제판이 열렸는데, 이때 폐리농은 네를 처형하는 것에 대한 찬성표를 던졌다. 그후 영화로운 말년을 보내다가 1818년 12월 25일에 파리에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