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마티유 필리베르 세뤼리에

나폴레옹의 26인 원수
장 란조아생 뮈라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앙드레 마세나장 바티스트 베시에르에두아르 모르티에
루이 니콜라 다부니콜라 장드듀 술트미셸 네
장 바티스트 주르당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피에르 오주로
프랑수아 조제프 르페브르프랑수아 크리스토프 켈레르만기욤 마리 안느 브륀
도미니크 카트린 드 폐리농장 마티유 필리베르 세뤼리에아드리안 쟈노 드 몽세
클로드 빅토르오귀스트 마르몽자크 마크도날
니콜라 우디노루이 가브리엘 쉬셰로랑 구비옹 생 시르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엠마누엘 그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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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2년 12월 8일에 프랑스 레옹에서 태어났다. 중간층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1755년에는 민병대에 입대하여 중위가 되었다. 1778년에는 대위가 되었고 1789년에는 메도크 지방 초병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다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귀족 출신인 세뤼리에는 당장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었으나 다행히 목숨과 지위는 보전했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의 부관이 되었고 나폴레옹과 함께 싸우면서 점차 그의 전술에 크게 감탄했고 나폴레옹 역시 세뤼리에의 고결함을 높이 평가했다.
그 뒤로 승승장구 하다가 1804년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에 의해 원수가 되었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해가기 시작하자 1814년 3월 30일 나폴레옹을 따르던 부상병들이 운집해있던 곳에 불을 지르고 죽임으로써 혹시나 모를 나폴레옹의 폐위에 방해가 될 걸림돌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부르봉 왕조가 복위하자 백작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다시 나폴레옹이 복위하자 이번에는 나폴레옹에게 붙었지만 나폴레옹은 그의 모든 활동을 차단했다. 그리고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패하자 그는 입장을 바꿔 루이 18세를 지지해 목숨은 건졌지만 백작직위는 반납해야 했다. 1819년 1월1일에 프랑스 명예원수로 임명되었지만 1819년 12월 21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