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데르 둡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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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Dubček 1921년 11월 27일 ~ 1992년 11월 7일

1 개요

체코슬로바키아정치인이자, 제 4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장이다. 공산주의 정치가이긴 했으나 공산당의 개혁을 추구했으며 이로 인해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에 의해 축출되었으나 1989년 동구권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다시 정치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다.

2 생애

1921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출생하여 3살 때 가족과 함께 소련으로 이주[1]하여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2] 이후 제 2차 세계대전 직전 체코슬로바키아가 나치 독일에게 흡수되고 친독일 꼭두각시 정권이 수립되자, 이에 대항하는 공산계열 레지스탕스에 가입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공산당 입당으로 이어진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무혈 쿠데타에 의해 공산화된 이후 슬로바키아 공산당 내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에 유학,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955년 당 중앙위원회 멤버가 된다. 1963년 전 서기장이자 보수파인 노보트니가 경제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서기장이 되었으며 이때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3]라는 구호 아래 다당제 도입, 언론자유화, 연방제 국가로 체제 전환 등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프라하의 봄 참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사적 개입으로 인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소련군의 침공 직후 둡체크는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에게 무력저항을 하지 말 것을 호소했으며, 이후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다른 정치적 동지들과 함께 모스크바로 강제 송환된다.

다행스럽게도 헝가리 혁명 당시 비명횡사한 너지 임레(Nagy Imre)와 달리 둡체크는 목숨을 건졌으나 정계에서 강제로 은퇴할 것을 종용받는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온 후 브라티슬라바 근처에서 삼림 관리원으로 일하게 된다.[4] 공산정권 막바지이던 1988년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허락받아 20년 만에 처음으로 서방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 벨벳 혁명이 일어나자 둡체크는 다시 정계에 모습을 나타내고 이번에는 21년 전에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프라하의 봄을 마침내 실현시키게 된다. 1989년 12월부터 1992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의 연방 의회 의장을 맡았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를 막으려 노력하던 중이던 1992년 11월 7일 교통사고에 따른 부상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그리고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끝내 분리되었다. 후새드

3 여담

  1. 부모가 모두 사회주의 지지자였기 때문에 소련에서 사회주의 낙원 자신들의 이상을 펼치고 싶어하기도 했으며, 결정적으로 체코에서는 일자리가 없어서(...)
  2. 정확히는 키르기즈스탄이었다고 한다.
  3. 이 말은 20여년 후 고르바초프도 사용하게 된다
  4.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온 후 호되게 앓아누운 적이 있었는데, 이를 놓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 사이에서 "로스케 놈들이 두브체크 동지를 억류해 놓고서는 방사능이 든 음식만 먹였나보다!"라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방사능 홍차프로토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