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랄프 맥퍼렌 카이너 (Ralph McPherran Kiner) |
생몰월일 | 1922년 10월 27일~2014년 2월 6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뉴멕시코 주 산타 리타 |
포지션 | 좌익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46년 피츠버그 파이리츠 입단 |
소속팀 | 피츠버그 파이리츠(1946~1953) 시카고 컵스(1953~1954)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55) |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영구결번 | ||||
1 | 4 | 8 | 9 | 10 |
빌리 마이어 | 랄프 카이너 | 윌리 스타젤 | 빌 매저로스키 | 폴 웨이너 |
20 | 21 | 33 | 40 | 42 |
파이 트레이너 | 로베르토 클레멘테 | 호너스 와그너 | 대니 머토 | 재키 로빈슨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랄프 카이너 | |
헌액 연도 | 1975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5.41% (13회) |
1 소개
윌리엄스,디마지오,뮤지얼,그리고 카이너.이들은 자신들이 활동했던 기간에 가장 뛰어난 외야수였다.- 빌 제임스
카이너는 단 한번의 스윙으로 당신의 리드를 날려버릴 수 있다.- 워렌 스판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7년연속 홈런왕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을 대표한 전설적인 강타자이자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전설.
내셔널 리그 7년 연속 홈런왕이자 메이저리그 전체 6년 연속 홈런왕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은퇴한 비운의 타자다.
2 선수시절
카이너는 1922년 뉴멕시코 주에서 태어난 카이너는 1946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23살의 나이로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카이너는 데뷔하자마자 23홈런을 치며 내셔널리그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다음해인 1947년부터 1953년까지 7년연속 30홈런,1952년까지 양대리그 통합 6년연속 홈런왕을 차지하는 충공깽스러운 성적을 기록했다.또한 카이너는 데뷔시즌인 1946년부터 1952년까지 7년연속으로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다.[1]
하지만 카이너의 전성기는 일찌감치 끝나버리고 말았다.그 이유는 그가 30세때 당한 부상때문인데,당시 의학수준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너는 부상을 당한상태에서 3년을 더 뛰었으나,결국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기 힘들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1953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뛴 기간은 고작 10년에 불과했다.
통산 fWAR은 45.9에 지나지 않는데, 7년 연속 홈런왕의 숫자 치고는 10년치라고 봐도 상당히 작은 편이다. 이는 그가 수비에서 엄청나게 WAR을 까먹었기 때문. 또한 2할 8푼을 채우지 못한 타율에도 불구하고 통산 출루율이 .398이나 되는 눈야구 되는 OPS형 거포였다.
3 은퇴 후
카이너는 은퇴이후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1985년 해설위원을 그만두고 조용히 지내다가 2014년 2월 6일,자신의 자택에서 사망했다.향년 92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서는 고전했는데,뛴 기간도 고작 10년[2]에다가 누적스텟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채 400홈런도 치지 못했고, 1500안타도 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7년연속 홈런왕의 임팩트가 매우 컸기 때문에 턱걸이로 입성에는 성공. 비운의 은퇴 역시도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