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스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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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윌리 스타젤 (Wilver Dornell Willie Stargell)
생몰년도1940년 3월 6일 ~ 2001년 4월 9일
국적미국
출신지오클라호마주 얼스보로
포지션좌익수, 1루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58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자유계약
소속팀피츠버그 파이리츠 (1962~1982)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영구결번
1 4 8 9 10
빌리 마이어랄프 카이너윌리 스타젤빌 매저로스키폴 웨이너
20 21 33 40 42
파이 트레이너로베르토 클레멘테호너스 와그너대니 머토재키 로빈슨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윌리 스타젤
헌액 연도1988년
헌액 방식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82.4% (1회)
1979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데이브 파커
(피츠버그 파이리츠)
키스 에르난데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윌리 스타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1979년 월드 시리즈 MVP
버키 덴트
(뉴욕 양키스)
윌리 스타젤
(피츠버그 파이리츠)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1979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잭 니클라우스윌리 스타젤 & 테리 브래드쇼올림픽 하키 미국 대표팀

1 개요

1962년부터 1982년까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만 21시즌을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파이러츠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한명.

육중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파워와 탁월한 리더쉽으로 피츠버그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스타젤이 활약하던 70년대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전성기였고, 스타젤은 팀의 71, 79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79시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단은 Sister Sledge의 명곡 "We Are Family"에서 얻은 별칭 "the Family"로 통했다. 가족과 같은 끈끈한 팀웍을 자랑하던 당시 피츠버그 구단에서 스타젤은 가장과 같은 존재였다.

2 커리어

통산 성적은 타율 .282, 475홈런, 2232안타, 출루율 .360, 장타율 .529, OPS .889, 순장타율 .247, BB/K 0.48, wRC+ 145, 1540타점을 기록했다.

190cm, 100kg이 넘는 육중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거리 홈런(tape messuring home run)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스타젤이 뛰던 1960~70년대 당시 내셔널리그 절반 가량의 구장에서 나온 최장거리 홈런은 그가 기록한 것이었다. 스타젤이 기록한 통산 475홈런 기록도 과소평가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스타젤이 전성기를 보낸 1960~70년대는 MLB 역사에서 손꼽히는 투고타저 시대였으며, 1970년까지 파이리츠의 홈구장이었던 포브스 필드는 내셔널리그에서도 외야가 가장 넓었던 구장이었다. 어어?? 스타젤이 평균적인 구장에서 선수생활을 했더라며 통산 600홈런은 충분히 기록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1971년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던 해에 스타젤은 48홈런-125타점으로 맹활약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주었다.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비행기 사고로 숨진 1972년 이후 스타젤은 팀의 리더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79 시즌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한해였다. 39세의 노장이었던 스타젤은 79년 정규시즌에서 무릎 부상을 이겨내며, 32홈런-82타점의 성적으로 NL MVP를 차지한데 이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월드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홈런포 등 3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수훈으로 월드시리즈 MVP에도 올랐다. 키스 에르난데스와 함께 정규시즌 MVP를 공동수상했던 스타젤은 NLCS MVP와 월드시리즈 MVP를 한 시즌에 모두 휩쓴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라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스타젤을 기억하는 팬들과 동료들은 그를 최고의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1979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피츠버그 감독을 맡았던 척 태너는 "스타젤과 함께 플레이하는 것은 마치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것과 같다"는 표현으로 그가 팀에 서 차지했던 위상을 설명한 바 있다. 다저스의 명투수 돈 서튼은 "스타젤에게 홈런을 맞으면 자존심까지 날아간다."고 말할 정도였다.

은퇴 후 1988년 82.4%를 기록하며 명예의 전당에 첫턴으로 들어갔다.

여담이지만 스타젤의 특이한 모자와 별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스타젤은 원래 선수에게는 마치 부모가 아이에게 칭찬 스티커를 주듯 자신이 손수 만들어 온 노란색 별을 나눠 주었다. 선수들은 스타젤이 준 별을 받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자랑스럽게 모자에 붙였다. 가끔 스타젤이 깜빡할 때면 해당 선수가 스타젤을 찾아가 왜 주지 않냐며 항의하는 일도 일어났다. 스타젤의 별(Stargell's Star)이 피츠버그 선수들의 모자를 가득 메우자 피츠버그는 아예 별이 달린 모자를 만들었고 이것은 그를 상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