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호너스 와그너 (Honus Wagner) |
생년월일 | 1874년 2월 24일 ~ 1955년 12월 6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펜실베니아주, 샤르티에 |
포지션 | 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897년 7월 |
소속팀 | 루이빌 콜로네스 (1897-1899)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1900~1917) |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영구결번 | ||||
1 | 4 | 8 | 9 | 10 |
빌리 마이어 | 랄프 카이너 | 윌리 스타젤 | 빌 매저로스키 | 폴 웨이너 |
20 | 21 | 33 | 40 | 42 |
파이 트레이너 | 로베르토 클레멘테 | 호너스 와그너 | 대니 머토 | 재키 로빈슨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호너스 와그너 | |
헌액 연도 | 1936년 - 최초의 5인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95.13% (1회) |
1 소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 별명은 플라잉 더치맨[1]
통산성적은 21시즌 동안 타율 .327, 출루율 .391, 장타율 .466, OPS .857, 순장타율 .139, 3415안타, 101홈런, 722도루, wRC+ 147, 1732타점을 기록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활동한 선수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된 5명 가운데 한명이다. 김형준 기자의 레전드 스토리 참조
2 최고의 유격수
메이저리그의 역대 유격수 자리에서 항상 올타임 넘버원으로 꼽히는 인물로, 같은 포지션에서 그의 기록들을 갈아치울 것 같았던 전성기 시절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뒤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기에 당분간 그의 후계자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약쟁이약물 복용자로 드러난 이상 당분간 그의 위상을 넘을 유격수는 찾기 힘들 듯. 여자로 야구단을 차리신 이분은 어떨까?
그가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꼽히는 이유는 특급 유격수의 기본 자질인 수비 뿐만 아니라 타격에서도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 그는 단점이 없는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의 웹사이트 베이스볼 페이지에는 그의 장점이 '타격, 주루, 수비, 송구'인 반면에 단점은 '없다(None)'로 기록 되어 있다. 이거 머야 무서워
NL타격왕을 8차례나 수상[2], 토니 그윈과 함께 공동 1위 이며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는 타이 캅의 11번에 이은 2위. 또한 14년 연속 3할타율도 기록, 거기다 장타율에서 6번이나 리그 1위에 올랐을 정도의 파워를 갖추고 있었으며 점수가 더럽게 안나는 데드볼 시대에 100타점을 9번이나 기록했다. 그리고 20세기 최초의 OPS 1.000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그의 강점은 당대 레전드 투수들을 상대로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는 점. 크리스티 매튜슨에게는 통산 타율 .324, 사이영에게는 .343의 통산 타율을 기록했다.
거기다 그는 유격수 뿐만 아니라 야구의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가장 다재다능했던 선수로, 내외야는 물론 투수로도 등판했으며[3], 경기에서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포수도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데뷔 6년동안 내외야를 가리지 않고 뛰었던 것만봐도 역대급 툴플레이어.
거기다 선천적으로 심하게 휜 다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루왕을 5차례나 차지 했으며 통산 도루에도 역대 10위에 랭크되어 있다. 1루 출루 후 홈스틸까지 포함한 3연속 도루로 홈에 들어온 것이 3번에, 20세기 최초로 1경기 2회 홈스틸을 기록 하기도 했다.
수비력도 좋은 평가를 받는데, 통산 필딩율 자체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수준이지만 당시의 형편없던 그라운드 상태와 허접하기 짝이 없었던 글러브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리그 평균과 비교한 필딩률을 따져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시 리그 평균 유격수의 필딩율과 와그너의 그것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0.13.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수비를 갖고 있다는 유격수인 오마 비즈켈의 경우에는 0.12. 아무리 못해도 오마 비즈켈 수준의 수비를 갖고 있었다는 소리가 될 수도 있다.[4]
팔, 큰 손, 강력한 어깨로 리그를 주름잡았는데, 당시에는 열악한 그라운드와 조잡한 글러브 때문에 맨손으로 수비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수비를 두고 베이스볼 라이브 러리에는 이렇게 기록 되어 있다.
"그는 흡사 문어와 같다, 땅볼을 수비할 때는 큰 국자(그의 큰 손을 비유)로 공을 잡아내고, 송구 시에는 공에 혜성의 꼬리가 달려 있는 것 같았다."[5]
2.1 이모저모
- 기록들 보면 알겠지만 여러모로 타이 콥과 대립각을 세웠던 선수인데 인성면에서도 타이 콥의 정 반대. 1909년 월드시리즈에서 타이 콥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만났는데 피츠버그가 최종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했다. 타이 콥은 2루 갈 기회만 생겼다 하면 신발 날을 들이밀었지만(...) 와그너는 단 한번도 거기 당하지 않았다. 시리즈 후 기자들이 타이 콥에게 '님 웬일로 사람 안찍음?'이라고
남의 속도 모르고물었더니 타이 콥 왈 "와그너에게 스파이크를 들이대라고? 불가능을 실현하라는거냐?"아디다스도 아니고1908년 와그너가 200안타를 기록한 이후 96년 뒤에야 피츠버그 소속 유격수 200안타가 나왔다.[6]피츠버그의 안습함과와그너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 위 이미지는 T206 호너스 와그너라 불리는 야구카드이다. 일명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야구카드. 1909년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에서 자사 담배의 사은품으로 야구카드를 끼워 줬는데 이것이 T206 시리즈였다. 그러나 혐연론자로 유명했던 와그너가 담배에 자기 얼굴이 사은품으로 나간다는 사실에 항의하였고 T206중 호너스 와그너 카드는 딱 200개만 나오고 발매 중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중 하나가 2007년 경매에서 팔렸는데 낙찰가는 무려 30만 달러(한화로 약 3억 2천만원).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죄수중 하나인 "트위너" 데이빗 아폴스키스가 감방에 들어온 이유가 1910년 발행된 와그너의 카드를 훔쳐서이다.[7] 2014년 12월에 이 카드 한 장이 다시 경매에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40만 달러에 낙찰되어 종전 최고가를 다시 갱신했다.
불과 7년 만에 20%나 더 비싸졌다
- ↑ 전설적인 유령선의 이름, 엄청난 스피드를 바탕으로 뛰어난 수비를 보여주었기에 붙은 별명인데, 사실 와그너는 독일계(German) 혈통이었으나 이를 네덜란드계(Dutch)로 혼동한 팬들이 불러버리다 보니 그대로 굳어졌다. 그와 성이 같은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동명의 오페라를 작곡한 것도 기가 막힌 우연이다.
- ↑ 내셔널리그 기준으로 하면 1위
- ↑ 두 번 등판했고 3이닝과 5이닝을 던졌는데 모두 무실점이었다.
- ↑ 다만 수비라는게 기록으로 나타내기 참 애매해서...그래도 수비는 당대 최고였다고 한다.
- ↑ 이 당시의 그라운드의 상황을 빚댄 대사가 미국에서 DHL 택배회사 광고에서 나온 적이 있는데, 야구카드 속의 호너스 와그너가 "In my days, we didn't have bases. We had rocks (우리땐 베이스란게 없었어. 돌맹이가 베이스였지.)"라고 한다.
- ↑ 그 주인공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유격수 잭 윌슨.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00안타 시즌 이후에는 2007년을 제외하고 OPS가 7할을 넘긴적이 한번도 없다.
믈브의 이현곤하지만 수비는 알아주는 선수. - ↑ 옆집에 사는 꼬마 아버지가 야구카드 수집광이라 유흥비나 벌까 하고 야구카드를 훔쳤는데 그 중 들어있었던게 1910년에 나온 와그너의 카드고 30만 달러의 가치가 있었는데 정작 트위너 본인은 농구팬이고 야구는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 가치를 몰랐다는 설정. 결국 중절도죄가 되어 5년형을 받고 1급 교도소인 폭스리버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