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코트

(레드코트에서 넘어옴)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육군 군복.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육군 군복.

영국 육군의 별명이자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해가 지지 않는 제국 '대영제국(British Empire)'의 아이콘이라 할만하다. 그 기원은 청교도 혁명 중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만들어진 신식 군대(New Model Army)이다. 당대에 상대적으로 값이 싼 코치닐 염료를 활용하여 붉은색 제복을 입기 시작[1]했는데 넘사벽 해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육군이 약한 영국이지만 그 군인들은 약골이 아니라서 소수의 병력으로 그야말로 세계를 정복했다. 그런 그들이 입던 붉은 외투를 따서 지은 영국 육군의 별명. 본래 해군에 파견보내던 육군 연대를 아예 해군에 배속시켜 만든 해병대 역시 그 영향으로 한동안 레드 코트를 입다 20세기 즈음부터 검정색 정복으로 바꿨으나, 해병대는 딱히 레드 코트라는 별명으로 불리지 않은 편으로 레드 코트라 하면 대게 영국 육군을 지칭한다.
하지만 랍스터는 둘 다를 깔때 쓴다

특히 영국군은 17~19세기 선형 전투에서 타국에서는 기본적으로 3열로 전열을 갖춰 전투를 치르는 데에 비하여 특이하게 2열의 얇은 전열을 짰는데 이는 영국군이 사격과 속사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좀더 이야기 해보자면 타국에서는 1열 사격 2열 사격준비 3열 재장전의 단계를 거쳐 사격에 임했는데 이는 플린트 락 머스킷 특유의 느린 재장전 속도 때문이었다. 게다가 병사들이 사격에 쓸 재료인 부싯돌과 화약은 턱없이 비쌌으며 사격을 연습한다 하더라도 부싯돌을 끼울 곳에 나무조각을 끼워넣는 식으로 사격연습을 했고, 따라서 사격전보다는 백병전을 중시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실탄 사격연습을(!!) 할 수 있었으며 특히 속사를 연습할 수 있었다. 타국에서는 3열로 구성된 병력이 느린 속도로 사격전을 감행할 때 영국군은 2열로 구성된 병력들이 더 빠른 속도(!!)로 사격에 임했다. 게다가 같은 병력을 3열로 나누어 순차사격 하는 것보다 2열로 나누어 순차사격을 하면 사격 할때 탄환의 밀집도가 이론적으로 1.5배 올라간다. 영국군은 거기에 더해서 2열이 동시사격을 해대기도 했다. 이렇게 되니 3열 이상으로 나뉘어 순차사격을 하는 적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낼 수 있었던 것. 이는 병사 개개인의 숙련도와 정예도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군은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으로도 적의 대병력을 맞이하여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이런 영국군의 얇지만 특유의 붉고 야무진 전열을 가리켜 'The Thin Red Line'이라고도 한다. 앞서의 특성 때문에 영어 숙어로 '특정 지역, 주의를 지키는 용감한 소수인들'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붉은색 군복의 영국 육군과 대조되게, 혁명기와 제정기 프랑스 육군은 푸른 군복을 입었고, 혁명기 이전 부르봉 왕조 때에는 흰색 군복을 입었다. 마찬가지로 부르봉 왕가 시기의 에스파냐 육군 역시 흰색을 입었으며, 오스트리아 육군의 군복도 흰색이었다. 프로이센 육군은 특유의 군청색, 흔히 프러시안 블루라고도 알려진 색의 군복을 입었으며, 러시아 육군은 녹색의 군복을 입었다.

레드 코트를 전장에서 밀어낸 것은 역시 그 색깔 때문이었다. 보어 전쟁에서 보어군의 좋은 표적이 되면서(...) 영국 육군은 레드 코트는 물론 흰색 장구들까지 전면적으로 폐지하였고 갈색 군복을 입게 된다. 이는 나중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군은 물론이고 독일군보다도 사망 비율을 줄일 수 있었던 중요한 결정이었다.

최근에는 영국 일각에서 현재의 1, 2차 대전식 카키정복이 아니라 이 레드코트 풍의 붉은 정복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처럼 카키색의 정복과 붉은색 예복이 나뉘어 있는 걸 정복을 폐지하고 붉은 예복만 줘서 정복을 겸하게 하면 되려 피복비가 절감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미 카키색 정복이 100년 넘게 사용된터라 일선의 평은 뜬금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1. 사실 코치닐은 굉장히 비싼 염료였다. 멕시코산 연지벌레를 산 채로 짓이겨 내는 즙을 이용해 만드는 염료가 코치닐이었는데, 사르가소 해 항로를 개척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서양 항로를 건너면 겨우 10%만 살아남았기 때문.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에서 이 부분을 매우 잘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