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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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황태자
Crown Prince Rudolf
1858년 08월 21일~1889년 01월 30일 (30세)

1 생애

1.1 태어나자마자 불행의 시작

루돌프 황태자는 1858년 8월 21일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1830년 8월 18일~1916년 11월 21일)와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1837년 12월 24일~1898년 9월 10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루돌프의 할머니이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어머니였던 조피 대공비는 루돌프의 큰누나 조피[1]가 부모와의 여행 중 죽자 이를 빌미로 루돌프와 누나 기젤라를 며느리에게서 빼앗아 양육했다.

1.2 행복한 적이 없었던 어린 시절

조피 대공비는 루돌프가 7살 때부터 군대식 보육교사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했다. 총소리에 놀라 기상, 차가운 눈발 걸어가기, 찬물 끼얹기, 루돌프 혼자 내버려두고 루돌프 황태자가 알아서 집까지 돌아오기 등 7살 아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교육이었다. 루돌프는 자라면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2]

1.3 갈등의 가속화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친독일적 성향의 황제이고, 루돌프 황태자는 친프랑스적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에 항상 갈등이 잦았다.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루돌프 황태자를 한국의 영조사도세자에 대입할 수 있을 정도다. 아버지와 대화할 시간이 극히 없어서 서로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 해 갈등은 깊어만 갔고, 어머니 엘리자베트은 부자 관계를 조정해보려는 노력은 못 할망정 '니들이 알아서 해라' 하는 식으로 도피여행이나 다녔으니 이들의 불화는 불 보듯 뻔했다.

1.4 사랑 없는 결혼, 그리고 갈등의 절정

루돌프 황태자는 벨기에의 명예에 먹칠을 한 콩고의 악마의 딸 스테파니(1864년 5월 21일~1945년 8월 23일)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서 딸 엘리자베트 마리가 탄생했지만 루돌프 황태자와 스테파니 황태자비의 사이는 루돌프 황태자와 프란츠 요제프 1세와의 사이만큼이나 악화되었고[3] 스테파니가 딸 엘리자베트 마리(1883년 9월 2일~1963년 3월 16일)를 낳으면서 병약해져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못하게 되자 극도로 나빠졌다.[4]

2 황태자의 러브스토리, 마리아 폰 베체라

2.1 갈등의 폭발, 사랑을 만나다

루돌프 황태자는 사랑 없는 결혼에 신물이 났고 가족사에 신경을 안 쓰고 어머니처럼 방황하다가 라리쉬 백작부인에게서 남작의 딸 마리아 폰 베체라(1871년 3월 19일~1889년 1월 30일)를 소개받았다. 라리쉬 백작부인은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친정오빠 루트비히 빌헬름(1831년 6월 21일~1920년 11월 6일)이 귀천상혼해서 얻은 딸로 루돌프 황태자에게는 사촌이었다. 아무튼 루돌프 황태자는 마리아 폰 베체라와 사랑에 빠졌고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들의 사랑을 반대했다. 루돌프 황태자는 당시의 교황 레오 13세에게 '스테파니 황태자비와 이혼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레오 13세는 (당연히) 이 사실을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말해버렸다.

2.2 비극으로 끝난 사랑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격노하여 루돌프 황태자의 면전에서 너 같은 놈의 얼굴은 보고 싶지도 않다. 제발 가정에 충실해라!!!라고 한 후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어릴 적부터 축적되어왔던 각종 스트레스와 원한, 분노와 외로움이 한 순간에 쏟아져나오면서 루돌프 황태자는 마리아 폰 베체라와 함께 별장으로 가서 권총자살했다. 이때 루돌프의 나이는 32살(만 30세)였고 마리아 폰 베체라의 나이는 이제 겨우 19살(만 17세).

다만 이에 대해서는 본래 루돌프가 정말로 사랑했던 여인은 따로 있어서 그녀에게 동반자살을 제안했다가 그녀가 거절하자 베체라와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3 가정사의 비극

루돌프 황태자 비극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루돌프 황태자에게는 그저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미 루돌프 황태자 이전에도 큰딸 조피와 남동생 막시밀리안을 잃었고, 어머니 조피 대공비 때문에 아내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와의 사이가 소원해졌고, 너무 장수해서 아내가 암살되는 소식을 들을 정도였다. 동생 한 명(카를 루트비히 대공)을 위장병으로 또 잃고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암살. 이보다 더 비극적인 집안이 없을 정도로, 불행한 사적인 가족사도 그렇지만 공적으로도 국제사회에서 이미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오스트리아가 루돌프 황태자의 죽음과 사라예보 사건으로. 아예 멸망했다. 즉,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아주 심각하게 불행한 황제였다.

4 가족관계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는 인물들은 ☆ 처리
아버지 : 프란츠 요제프 1세
어머니 :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큰누나 : 조피(1855년~1857년)☆
작은누나 : 기젤라(1856년~1932년)
루돌프 황태자 자신(1858년~ 1889년)☆

형식상의 아내 : 벨기에의 스테파니(1864년~1945년)
딸 : 엘리자베트 마리(1883년~1963년)

여동생 : 마리 발레리(1868년~1924년)

숙부 : 막시밀리안 1세(1832년~1867년)☆

숙부 : 카를 루트비히(1833년~1896년)

사촌 : 프란츠 페르디난트(1863년~1914년)☆
사촌 : 오토 대공(1865년~1906년)
당조카 : 카를 1세(1887년~1922년)
  1. 조피는 루돌프 황태자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이미 죽었다.
  2. 환경도 영향을 미쳤지만 어머니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가족들에게 유전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비텔스바흐 가문 사람들에게는 우울증, 광증 등의 정신병력이 있었다.
  3. 루돌프의 아버지를 예를 들었는지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 생각해보자.
  4. 이 '병약해진' 것이 성병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다. 황실 생활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여성편력으로 풀었던 루돌프가 그 과정에서 얻은 성병을 스테파니에게 옮겼다는 것. 뮤지컬 엘리자벳에서는 이 이야기가 루돌프의 부모인 엘리자베트와 요제프의 이야기로 각색되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