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3세

라틴어: Leo PP. XIII
이탈리아어: Papa Leone XIII
스페인어: Papa León XIII
영어: Pope Leo XIII
독일어: Papst Leo XIII.
프랑스어: Pape Léon XIII

교황명레오 13세 (Leo XIII)
세속명조아키노 빈첸초 라파엘레 루이지 페치
(Gioacchino Vincenzo Raffaele Luigi Pecci)
출생지교황령 카르피네로마노
사망지이탈리아 로마
생몰년도1810년 3월 2일 ~ 1903년 7월 20일 (93세)
재위기간1878년 2월 20일 ~ 1903년 7월 20일 (25년 150일)
역대 교황
255대 비오 9세256대 레오 13세257대 비오 10세
레오 13세의 문장

1 전반적인 생애

1810년 3월 2일 루도비코 페치 백작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형도 추기경, 즉 비오 9세 항목에도 서술된 주세페 페치(Giuseppe Pecci) 추기경이다.

사도좌 궁내원장으로 재직하다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며 93세까지 생존해 장수한데다가 요한 바오로 2세가 기록을 갈아치우기 전에는 3번째로 오랫동안 재임한 교황이기도 하다. 사실 선출 당시 나이가 일흔을 바라본 데다가, 교황 본인의 건강이 썩 좋지 못한 편이어서, 추기경들은 물론 본인도 25년 넘게 재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2 업적

2.1 회칙 《새로운 사태》

회칙 《새로운 사태》 발표 75주년 기념 주화, 1966년 발행

레오 13세의 업적 중에 특히 중요한 것은 1891년에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발표한 것이다. 교황이 사회정의 자체를 초점으로 교서를 발표한 첫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그 이전까지 중근세 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의 길드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했지만, 레오 13세 시절 자본주의 요소가 강화되어 유럽길드 조직이 사라지면서 노동자를 보호할 만한 조직이 전무한 채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게 됐다. 레오 13세의 회칙은 이런 사회적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레오 13세는 사회주의를 반종교적, 반사회적 사상의 극치로 여겨 극도로 경멸했다. 그래서 사회정의에 관해 발표한 회칙에서도 교회가 사회주의적 요소를 긍정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또한 레오 13세의 회칙에서는 사회안정을 최우선으로 두어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들의 행태가 하느님 앞에서 옳지 않은 죄악이라고 단죄하면서도, 또한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맞서 무력으로 봉기혁명을 일으키지 않기를 당부한다. 이 점 때문에 참으로 미적지근한 면이 상당히 있다. 하지만 이 회칙을 발표함은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사회 밑바닥에 있음을 당시 유럽가톨릭 신자들에게 일깨워, 가톨릭 계열 사회운동 단체가 다수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유럽의 노동운동사에서도 특기할 만한 사건으로 역사에 남았다. 또한 이 회칙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배제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가톨릭 노동단체가 사회주의 쪽 노동단체와 협력하지 않는 근거가 되었다.

레오 13세가 이 회칙을 발표하면서 그토록 사회주의와 선을 그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톨릭 내의 보수주의자들은 교황이 너무 급진적이라든가 좌파적이라고 생각하여 꺼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회칙은 좋은 의미에서 역사에 큰 업적으로 남았다.

이 회칙이 끼친 영향력은 이후에도 후임 교황들에게도 이어졌다. '새로운 사태' 반포 40주년을 기념하여 1931년에 비오 11세 교황이 《40주년(Quadragesimo Anno)》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1년에 《100주년(Centesimus Annus)》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2.2 성 미카엘 대천사 기도문

그 외에 레오 13세와 관련한 특기할 점은 스스로 미카엘 대천사악마를 쫓아내기를 청원하는 라틴어 기도문을 작성하여 1886년에 발표했으며 낭독 미사[1] 때에 마지막 마무리 기도로 사용하도록 명했다는 것이다.

이 기도는 레오 13세가 환상을 본 뒤 작성한 기도로 유명하다. 레오 13세는 어느날 좌중이 있는 자리에서 기도 중에 느닷없이 환상을 보았는데, 악마가 하느님 앞에서 70년, 길게는 100년만 시간을 준다면 교회를 유린할 수 있노라 장담했다는 내용이라고 전한다. 그래서 레오 13세는 특별히 미카엘 대천사에게 악마를 지옥으로 던져달라는 내용으로 기도문을 작성했다.

하지만 가톨릭 전례학자들 사이에서는, 미사에 이 기도를 덧붙임은 미사라는 '종교의례'의 입장에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1970년 전례개혁 때 미사에서 삭제되었다. 전례학자들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한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로마 미사의 역사에서 이 기도가 전례가 없다는 점, 다른 하나는 미사가 끝난 상태에서 자꾸 다른 기도를 덧붙임으로써 구조를 난잡하게 한다는 점이었다. 로마 미사는 간결함이 특징이라 의미가 중복되거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빼버리기 때문에 나온 지적이다.[2]

비록 현행 가톨릭 미사에서는 이 기도를 마지막 마무리로 사용하지 않지만 기도문 자체는 여전히 권장할 만한 기도로 보아,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악마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 기도문을 바치기를 신자들에게 권고하기도 하였다.

또한 레오 13세는 낭독미사 마무리에 사용할 미카엘 대천사 기도문과 별개로, 미카엘 대천사의 도움을 바라는 기다란 간구가 포함된 엑소시즘 기도문을 새로 작성하여 전례서에 포함시켰다. 이 기도는 전통적인 엑소시즘 기도문과는 별개인데, 한국 천주교에서 자주 쓰이는 묵주기도서에서도 부록으로 실렸다. 이것도 원래 전례용 기도문이었지만, 유별난 성격상 평신자가 사사로이 사용하는 것은 1980년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원에서 금지됐다. 평신자들이 사사로이 행하는 구마기도 중에 레오 13세가 발표한 기도문을 사용하는 사례가 교황청에 보고된 이후 나온 조치다.


2.2.1 라틴어 원어

Sancte Michael Archangele, (쌍떼 미카엘 알칸젤레)
defende nos in proelio; (데펜데 노스 인 프로엘료)
contra nequitiam et insidias (콘뜨라 네퀴씨암 엩 인시디아스)
diaboli esto praesidium. (디아볼리 에스토 쁘래시디움)
Imperet illi Deus, (임페렡 일리 데우스)
supplices deprecamur (수플리체스 데프레까무르)
tuque, Princeps militiae caelestis, (투꿰, 프린셉스 밀리씨애 캘레스티스)
satanam aliosque spiritus malignos, (사타남 알리오스꿰 스피리투스 말리뇨스)
qui ad perditionem animarum (뀌 앋 페르디치오넴 아니마룸)
pervagantur in mundo, (페르바간뚜르 인 문도)
divina virtute, in infernum detrude. (디비나 비르뚜떼 인 인페르눔 데트루데)
Amen. (아멘)


2.2.2 한국어 번역

미카엘 대천사님,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사탄의 악의와 간계에 대한 저희의 보호자가 되소서.

오, 하느님!! 겸손되이 하느님께 청하오니, 사탄을 감금하소서.

그리고 천상 군대의 영도자시여,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사탄과 모든 악령들을 지옥으로 쫓아버리소서. 아멘.


2.3 세속화에 맞서다

1892년에는 무신론적 성향이 강해 당시 이탈리아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던 프리메이슨에 대해 파문을 포함한 매우 강경한 맞대응을 주문하는 교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프리메이슨을 일종의 교회 공동체를 위협하는 세속적인 이단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음모론과는 별 관련이 없다. 여하간 여러 측면에서 점차 가속화되는 세속화의 물결에 저항하려고 한 교황이었다.

전임자 비오 9세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정부와는 재위기간 내내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다. 1899년 [조르다노 브루노]를 기념해 그가 화형당한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 동상이 세워지자, 89세의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금식기도를 바치며 무언의 항의를 표했다. 하지만 한 끼 식사 따위 그까이꺼 누가 알아나 봐 줬겠나...


3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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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시신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있는 레오 13세의 관

19~20세기의 급격한 변혁 속에서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제시한 레오 13세는 1903년 7월 20일 93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묘소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로마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3]에 있다. 레오 13세의 뒤를 이은 후임 교황들은 모두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1. Misa Lecta.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는 등 장엄하게 하지 않고, 사제가 모든 기도문을 읽으며 간소하게 거행하는 미사를 가리킨다. '평미사'라고도 번역한다.
  2. 일부에서는 교회는 물론 사회의 병리현상과 윤리적 타락을 나타내는 모든 척도들(범죄율, 미혼모 비율, 낙태율, 이혼율 등)이 교회 전례에서 이 기도문의 사용을 중지한 지 불과 몇 년 안된 1960년대 말에 이르러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산업화, 세속화가 지속되면서 낙태율 등이 증가하는 추세였고, 더구나 인간의 이성과 선함을 신뢰하는 낙관주의를 깨트린 제2차 세계대전이 40년대에 있었다.
  3. 가톨릭 교회의 모든 주교들은 각자 주교좌 성당이 있다. 가령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은 명동성당으로, 명동성당에 가면 제대 한켠에 교구장 주교가 앉을 자리(주교좌)가 있다. 이 때문에 착좌(자리에 앉음)라는 표현이 어떤 직책에 취임함을 뜻하기도 한다. 교황도 로마 주교이므로 당연히 주교좌 성당이 있다. 교황의 주교좌 성당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알기 쉽지만, 사실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 교황의 주교좌 성당이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한 이후, 로마 주교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이 라테라노 성당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라테라노 성당에 주교좌를 둘 수밖에 없던 것. 라테라노 성당을 개조하거나 무너진 곳을 수리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현재 라테라노 성당은 최초의 라테라노 성당과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교황의 주교좌 성당이라는 중요성 때문에 때때로 가톨릭교회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며, 가톨릭 전례력에는 라테라노 성당 축성을 기념하는 축일(11월 9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