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델 하트

1 영국의 군인이자 군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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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헨리 리델 하트 경(Sir Basil Henry Liddell Hart). 1895∼1970.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군인[1]으로서 1922년까지 복무했으며, 이 기간 동안 군사교범을 편찬하여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중에 입은 독가스 중독 후유증으로 심장마비를 여러 차례 일으켜 소령으로 퇴역, 이후 군사학 저술가로서 활동했다.

스승인 풀러의 이론을 계승해 간접접근론을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1938년 《전략론》을 편찬했다. 영미 군사학계에서는 이 책이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독일군전격전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론적 밑바탕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개소리.

리델 하트의 책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 탁월한 군사적 저술로서 인정받지만, 독일군의 전격전과는 별 관련이 없다. [2] 애초에 간접접근을 신봉했던 리델 하트의 저서와는 판이하게도, 독일군은 포위 후에 이어지는, 직접 피를 흘리는 대규모 섬멸전을 중시했다. 심지어 기계화부대조차도 이러한 섬멸전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는 전형적인 고전적 독일식 기동전인 포위섬멸전(Kesselschlacht)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과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소위 간접접근은 기동에 과도하게 집착하느라 전역 수행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전투를 경시, 아니 사실상 고려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까인다. "리델 하트의 머릿속에서 전쟁이란 총탄이 난무하는 게 아니라 차량과 병력의 행군대열로 시작되어 그것으로 끝나는 일종의 퍼레이드였다"라는 조롱까지 나올 정도.

J.F.C. 풀러의 Plan 1919나 리델 하트의 저서에 독일군이 좋은 평을 내린 것은 사실이나 이에 대해서 당시 쏟아져 나오던 비슷한 부류의 군사학술서적 이상의 평가를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포로로서 수감된 전직 독일군 장성들을 발로 뛰며 취재한 덕분에 독일 장교들과 적지 않은 친분을 쌓았고, 서로 치켜올려준 덕에 그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견해도 있다.

여담이지만 전격전 항목에서 볼 수 있는 작전술 이상 차원의 전격전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유포되는 과정에서 리델 하트의 영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잘못된 견해이다. 리델 하트는 전격전, 특히 1940년 프랑스 전역이 단순히 작전술적 차원의 우연에 기반한 일시적인 효과임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의 저술에서도 그런 부분이 종종 언급된다.
리델 하트의 책임은 전격전의 과정에서 발생한 심리적 붕괴, 그리고 기동의 승리를 자신이 주장하던 간접접근전략의 우월성이 입증된 것으로 간주(사실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니다), 자신의 지명도를 무기로 삼아 기동만능론을 설파[3]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군사전문가가 아닌 저명한 경제학자 및 역사학자들까지 그의 주장에 경도, 역사적으로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리델 하트 본인보다는 본인의 유명세에 편승한 비전문가들의 입심이 문제. 그런 견해가 역사학계를 휘어잡았던 시기에는 이미 고인이었으므로 어떻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단점으로 한 인물에 꽂히면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빨아 제끼는 성향이 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한 책을 저술한 적이 있는데, 스키피오는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며, 나폴레옹만 조금 비빌만 하고, 한니발 바르카조차 스키피오에 비하면 한 수 아래며, 알렉산드로스 3세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스키피오에 비하면 거품 중의 거품이라는 믿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다. 시오노 할망의 카이사르 사랑은 여기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보일 정도(...). 혹자는 게이물이라고 표현을 하더라. 그 내용의 일부

2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의 등장 인물

Rhidel Hard
リデル・ハード(이 때는 '리델 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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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판일본 팔콤

제피르 팰컨 제 3 부대장. 어려서부터 늑대들과 함께 자라오다 로베르토 데 메디치에게 붙잡혀(...) 양육되어 왔다. 거구의 열혈한으로 핼버드를 무기로 사용하며,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늑대 '칼'을 항상 데리고 다닌다.

게임상에서는 잠시 동료가 된다. 하지만 금방 파티에서 이탈하며 분기에 따라서는 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리델에게 반해 제피르 팰컨 본부의 던젼에 있던 롱기누스의 창을 장착시켰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리델이 창을 들고가버리기 때문이다. 분기 이전의 세이브 파일이 없다면 끝장이다.

마법은 쓰지 못하지만 늑대 칼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 주로 근접 공격을 하며 이자벨과 같은 기술을 쓴다. 버서커라는 설정답게 XP가 일정 이상 쌓이면 광화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상의 성능은 정말 안습하다. 대기시간이 65로 이자벨 리피네의 45보다 많이 후달리며 그런 주제에 이동거리는 3으로 4인 이자벨보다 한칸을 덜 움직인다. 즉, 적 캐릭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때리는 영리한 짓은 스켈톤 슈즈를 장착시켜 주지 않으면 꿈도 못 꾼다는 말이다. 마법 공격도 불가능하고, 거기다 늑대 '칼'은 사정거리가 3이라 최소 공격가능 사정거리가 4 이상인 보스에게는 공격할 수단이 없다. 이자벨은 투창의 사정거리가 5라서 공격은 가능.

기본적인 설정치 자체가 이자벨보다 너무 떨어지는 편이다. 이자벨에게 앞서는 점이라곤 체력 조금 높은것과 힘 좀 센것 밖에 없다, 웃기는 사실은 힘은 좀 있는데 민첩성이 후달려 이놈이 상대할 수 있는 적의 유닛은 몬스터 말고는 없다. 민첩성 때문에 방어를 하는 인간을 공격하면 공격이 거의 다 막힌다. 반대로 적이 공격을 하면 거의 그대로 얻어맞고 있다. 즉, 체력 높고 힘이 높은 것이 전혀 도움이 돠지 않는다. 거기다 민첩성이 너무 부족해서 민첩성 증가 아이템 없이 롱기누스의 창만 쥐어주면 필살기인 천공일섬을 쓸 수가 없다. 왜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서풍 최고의 잉여캐릭터...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힘만 좀 있는 바보' 로, 서사상으로나 게임 성능상으로나 나와도 그만, 안나와도 그만인 캐릭터.

로베르토 데 메디치를 친형처럼 따르며 혈육 이상의 우애와 충성을 바친다. 반면 시라노 번스타인에겐 처음부터 적대적이었으며 나중에는 알력이 정말 심해진다. 그래서 프레데릭과 연합을 맺었을 때 메디치를 부추겨 작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만들어 연합군을 위기에 몰아넣는 행동까지 했다. 그러고도 반성을 못했는지, 메디치와 더불어 시라노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 시라노가 제발로 제피르 팰컨을 떠나게 한다. 문제는 시라노가 탈퇴하길 바라던 리델과 메디치를 제외한 모두가 시라노를 따라간다는 것.(...)

진엔딩으로 가지 않을 경우, 일찌감치 제피르 팰컨을 떠나지 않고 남은 시라노가 탈퇴하도록 메디치와 함께 부추기는 통에 제피르 팰컨이 분열되는 사태까지 낳고 만다. 여기서 엔딩 분기가 나누어지는데, 시라노가 제피르 팰컨을 탈퇴할 경우 해피 엔딩 루트로, 탈퇴하지 않을 경우 리델 하트와 메디치가 대신 탈퇴하여 배드 엔딩 루트로 가게 된다.

진엔딩 루트로 갈 경우, 시라노 일행이 수중도시로 갔을 때 그들을 배신한 에스테 도데에 의해 이미 살해당한 걸로 나온다.[4] 해피 엔딩 루트에서는 디아블로에게 당할 뻔하다 시라노에 의해 구해진 뒤 그간의 오해를 풀고 함께 파괴신을 물리치나, 베드 엔딩 루트에선 메르세데스가 메디치에게 죽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힌 시라노가 메디치와 리델을 모두 죽여버린다. 그나마 메디치는 진엔딩 루트에서 좋은 엔딩을 맞이했건만... 안습.

해피 엔딩 루트에서는 메디치, 카나, 이자벨과 함께 4번째 멤버로 선택이 가능하다. 그런데 웃기는건.. 육성할 기회도 거의 없는 관계로 열에 아홉은 선택을 안하겠지만, 리델 하트를 고른다 치더라도 함께 싸우겠다는 말만 하고는, 전투에는 참가도 안한다(!!!). 소프트맥스 입장에선 이 비호감에 구린 캐릭터를 최종전에 넣을 사람들은 없겠지 싶어서 만들다 만 모양... 물론 실제로도 작중 행적이 워낙 비호감이라 셀렉률은 제로

창세기전 4에서는 뜬금없이 TS되어 여자로 나온다. 원래는 쌍둥이였으나 둘 중 하나만 살아남아서 죽은 사람의 이름도 같이 쓰는 거라고 하는데, 정황상 서풍의 광시곡 쪽의 정사인 남자아이가 죽고 여자아이가 살아남은 완전 반대되는 스토리라인을 억지로 추가한 듯.
  1. 초급장교로서 1914년부터 1916년까지 2년간 전선에서 근무했으나, 전투 참가 기간은 단 7주였다. 이는 당대 장교들의 복무 기간 대비 전투 참가 기간으로는 짧은 축에 든다. 이후 전선에서 독가스 피해를 입어 후송, 이후 교육부대로 옮겼다.
  2.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작전술/전술은 18세기 말의 나폴레옹 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고전적 독일식 기동전의 현대적 적용에 지나지 않는다. 전격전 항목을 참고.
  3. 마침 적성국으로 부각된 소련 역시 독일군처럼 기동전을 장기로 삼았기 때문에 서방세계에선 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리델 하트의 견해에 크게 주목한 편이었다.
  4. 에스테 도데에겐 그정도의 힘이 없지만 디아블로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