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유럽 축구 연맹(UEFA)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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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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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트비아
러시아
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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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
리히텐슈타인
마케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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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
몰도바
몰타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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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북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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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리노
세르비아
스위스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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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스페인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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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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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라
알바니아
에스토니아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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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웨일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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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조지아
지브롤터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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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코소보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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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페로 제도
포르투갈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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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Republic of Ireland national football team
정식명칭Republic of Ireland national football team[1]
Foireann sacair náisiúnta Phoblacht na hÉireann[2]
FIFA 코드IRL
협회아일랜드공화국축구협회 (FAI)
연맹유럽 축구 연맹 (UEFA)
감독마틴 오닐 (Martin O'Neill)
주장셰이머스 콜먼 (Seamus Coleman)
최다출전자로비 킨 (Robbie Keane) 146경기
최다득점자로비 킨 (Robbie Keane) 68골
홈 구장아비바 스타디움 (Aviva Stadium)
첫 국제경기 출전VS 불가리아 (1:0 승), 프랑스 콜롱브 (1924년 5월 28일)
최다 점수차 승리VS 몰타 (8:0 승), 아일랜드 더블린 (1983년 11월 16일)
최다 점수차 패배VS 브라질 (0:7 패), 브라질 우베를란디아 (1982년 5월 27일)
별칭The Boys in Green (녹색 소년들), The Green Army (녹색군)
월드컵출전 3회, 8강 1회 (1990)
유로출전 3회, 16강 1회 (2016)
올림픽출전 2회 (1924, 1948)
현 FIFA 랭킹33위
현 Elo 랭킹24위
유니폼어웨이
상의초록하양
하의초록하양
양말초록하양

아일랜드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항목.

1 개요

감독은 마틴 오닐이다. 녹색소년들(The Boys in Green)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 역사

  • 아일랜드 국대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2012, RTÉ 방영) - 1, 2, 3, 4

아일랜드 국대의 팀 역사는 상당히 복잡하여 아일랜드 공화국 및 북아일랜드의 역사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다. 1916년에 '부활절 봉기'라고 해서 아일랜드 독립의 계기가 된 일대 사건이 터졌다. 아일랜드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가 겪었던 일제강점기에 버금갈 정도로 오랫동안 영국에게 침략이란 수난을 겪어온 뼈아픈 역사였으며, 20세기에 와서야 아일랜드에서도 목숨을 건 저항이 시작되려던 때였다. 피로 얼룩진 영국-아일랜드 전쟁(1919~1921)과 아일랜드 내전(1922~1923)을 거치며 독립국의 윤곽을 드러낼 때에 아일랜드 축구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역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같이 19세기 후반부터 축구 대회에 참가했으나 세 곳과 달리 독립된 축구협회가 없었다. 1921년 휴전 조약에 따라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고,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면서 비로소 기존의 '아일랜드축구협회(IFA)'와 분리된 축구협회의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아일랜드축구협회(FAI)'가 생기게 되었다. 한 마디로 아일랜드 국대의 역사는 1921년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아일랜드는 같은 해에 프로 리그 창설과 FAI컵 등을 만들어 축구 발전에 매진했고, 3년 뒤인 1924 파리 올림픽 1라운드에서 불가리아와 역사상 첫 A매치를 치뤄 1-0으로 이겼다. 미국과의 홈 데뷔전에서도 3-1로 이겨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동안 팀은 국내외에서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실력 부족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아일랜드 국민들의 '무관심'이었다. 애초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축구보다 민족 고유의 스포츠이자 변종 축구 종류 중 하나인 '게일릭 풋볼'과 럭비를 더 사랑했으며 축구는 듣보잡 종목이었다고 한다.

거기에 FAI는 아일랜드 공화국 출범 3년 전인 1946년까지만 해도 북아일랜드 출신 선수 역시 국대에 등록 가능했다. 이는 민족/종교 갈등이 지속된 상황에서 대표팀의 결속을 깨뜨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자 FAI는 1946년부터 아일랜드 출신만 국대에 발탁하기로 하면서 북아일랜드와의 결별을 선언하여 두 팀은 완전히 갈라졌다.

이후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1960년대에 조니 자일스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나와 활약했지만, 아일랜드는 번번이 월드컵이건 유로 대회건 죄다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1973년부터 7년간 자일스가 감독까지 맡아 활약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1986년에 잉글랜드 국대 출신이자 '더티 리즈'의 리더였던 잭 찰튼이 감독이 되어 프랭크 스테이플턴, 크리스 휴튼, 로니 웰란, 믹 매카시, 존 올드리지, 나이얼 퀸 등의 우수한 선수들이 출현하면서 또다른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이렇게 닻을 올린 (재키)찰튼호는 유로 1988 출전을 시작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1994 미국 월드컵에 연속 출전하며 각각 8강과 16강에 진출하며 준수한 성적을 냈다.

아일랜드의 첫 유로 상대는 공교롭게도 잉글랜드였다. 경기 장소는 슈투트가르트의 네카어 슈타디온(현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이 경기에서 아일랜드는 전반 6분에서 레이 호튼의 골로 1-0으로 이겨 전 유럽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소련에게 비기고 네덜란드에게 패해 조기 탈락하긴 했지만, 잉글랜드 역시 같이 광탈당하면서 외롭지는 않았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조별예선 3경기를 전부 무승부로 통과하고, 심지어 16강도 무승부여서 승부차기로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에서 이탈리아에게 1:0으로 석패했다. 이론상으로 잘만하면 조별예선 3경기와 16강-8강-4강-결승까지 7전 7무로 우승할수 있다는 것을 반증할수 있는 사례가 될 했다. 이로써 이탈리아에서 1988년의 돌풍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아일랜드는 유로 1992에는 못 나갔지만 영건 로이 킨이 가세하면서 또 다시 출전한 1994년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첫 승리를 따냈다. 6년전 잉글랜드를 광탈시킨 그 호튼이 이번에는 장거리포 한 방으로 이탈리아의 골문을 초토화시켰다. 아일랜드는 조 2위로 16강에는 갔지만 네덜란드에게 6년만에 또 졌다. 한편 아일랜드에게 진 이탈리아는 결승까지 갔다.

1996년부터 유로 1996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잭 찰튼 감독의 후임으로 감독직에 앉은 믹 매카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 네덜란드를 이기고 조국에 월드컵 본선 티켓을 선물했다. 팀의 핵심 미드필더 로이 킨이 사이판에서의 훈련 캠프 도중 FAI의 무성의한 태도와 훈련 장소 섭외를 규탄하며 아일랜드로 귀국하는 악재가 있었지만, 3골을 터뜨린 로비 킨의 활약으로 16강에 진출했으나 16강전에서 스페인에게 승부차기까지 가서 탈락했다.

이후엔 재미를 못 봤는데, 2009년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프랑스와의 유럽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서 티에리 앙리의 신의 손 사건으로 억울하게 탈락하기도 하였다. 조금 부연설명을 하자면, 플레이오프경기에서 1,2차전 0-1, 1-0, 합계 1-1로 동률이 되어 연장전에 들어갔는데 여기서 앙리의 어시스트를 받은 갈라스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패배. 문제는 앙리에게 패스가 들어가는 시점에서 이미 오프사이드였고, 앙리는 자신을 지나가는 공을 손으로 쳐서 컨트롤하고 왼발로 들어오던 갈라스에게 어시스트를 하였다. 즉 명백한 핸들링 반칙. 재경기 여론이 높았으나 결국 프랑스가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는 월드컵 본선에서 참패했고 아일랜드 언론은 그 소식을 대서특필하며 조금이나마 복수를 했다(...)

이후 2012년 유로컵에선 베테랑인 데이미언 더프가 마지막 불꽃을 태워 플레이오프 끝에 에스토니아를 제치고 진출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에게 1-3, 스페인에게 0-4, 이탈리아에게 0-2로 지면서 3전전패 1득점 9실점으로 조 꼴지로 허무하게 탈락했다. 이후 마틴 오닐 감독과 로이 킨 체제로 개편하여 다시 태어난 아일랜드는 유로 2016 예선을 극적으로 통과하고 이탈리아, 스웨덴, 벨기에와 E조에 편성되어 스웨덴에 1-1 무, 벨기에에 3-0 패, 이탈리아에 0-1 승으로 1승 1무 1패로 16강에 진출했으나, 16강전에서 앙투안 그리즈만에게 2골을 허용함으로써 2-0으로 탈락했다.

3 역대전적

3.1 FIFA 월드컵

월드컵 역대 전적 순위 : 38위
⑧⑯⑯

년도결과순위승점경기득점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불참
1934 이탈리아 월드컵불참
1938 프랑스 월드컵불참
1950 브라질 월드컵예선 탈락
1954 스위스 월드컵예선 탈락
1958 스웨덴 월드컵예선 탈락
1962 칠레 월드컵예선 탈락
1966 잉글랜드 월드컵예선 탈락
1970 멕시코 월드컵예선 탈락
1974 서독 월드컵예선 탈락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예선 탈락
1982 스페인 월드컵예선 탈락
1986 멕시코 월드컵예선 탈락
1990 이탈리아 월드컵8강[3]8위4504123
1994 미국 월드컵16강[4]16위4411224
1998 프랑스 월드컵예선 탈락
2002 한일 월드컵16강[5]12위6413063
2006 독일 월드컵예선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예선 탈락
2014 브라질 월드컵예선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합계8강 1회3/20[6]14132831010

총성적 2승 8무 3패 승점 14점으로 38위에 랭크되어있다. 공교롭게도 분단국가 북아일랜드와 월드컵 진출 횟수, 승점이 모두 같은데 북아일랜드가 승리는 더 많고 골득실은 아일랜드가 더 많다. 월드컵 본선처럼 골득실을 우위에 두므로 역대 순위에서는 아일랜드가 하나 더 높다. 북아일랜드가 규모는 아일랜드보다 훨씬 작지만(애초에 아일랜드에서 독립 못하고 영국에 남은 북동쪽 귀퉁이가 현재의 북아일랜드다.), 영연방에 속해서인지는 몰라도 월드컵 맛은 더 일찍 봤다. 1958, 1982, 1986년 이렇게 나왔는데 북아일랜드가 마지막으로 나온 월드컵 다음에 아일랜드가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그동안 북쪽 촌동네가 월드컵 가서 활약하는 모습 보고 배아파했던 본토 사람들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독일 1무(2002), 이탈리아 1승 1패(1990, 1994), 스페인 1무(2002), 잉글랜드 1무(1990), 네덜란드 1무 1패(1990, 1994), 멕시코 1패(1994), 루마니아 1무(1990), 카메룬 1무(2002), 노르웨이 1무(1994), 사우디아라비아 1승(2002), 이집트 1무(1990)이다.

대륙별 상대전적은 유럽 1승 6무 2패, 북중미 1패, 아프리카 2무, 아시아 1승이다. 제3대륙과 모두 붙어봤는데 특이하게도 남미는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2002년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 3:0 승으로 세 골을 넣었고, 한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1994년 조별리그 멕시코전 1:2 패, 1994년 16강 네덜란드전 0:2 패로 단 두 골에 불과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처음으로 진출했는데 대진이 만만치 않았다. 오렌지 삼총사가 버티는 유로 1988 우승국 네덜란드와 게리 리네커의 활약으로 대회 4강까지 오른 잉글랜드, 56년만에 본선에 오른 이집트와 한 조였는데, 세 나라와 모두 무재배를 하고 심지어 같이 3무한 네덜란드와 골득실까지 같아 동전 던지기로 순위를 갈랐다. 동전 던지기의 승자는 아일랜드가 되어 조2위를 차지했고 네덜란드가 3위로 미끄러졌는데, 당시는 24개국이라 조3위 6개국 중 상위 네 나라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기에 네덜란드도 16강에 진출은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위로 올라간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하필 네덜란드가 맞붙은 상대가 서독이었던 것. 반면 아일랜드는 루마니아와 붙어 상대적으로 쉬운 대진이었다. 조 3위로 미끄러진 네덜란드는 16강전에서 '미리보는 결승전'을 치르고 장렬하게 전사했고 아일랜드는 루마니아와 무득점 무재배 승부차기로 승리, 한 경기도 이기지 않고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8강에서는 개최국 이탈리아를 만나 역시 장렬히 전사. 유럽 변방의 첫 월드컵 무대는 이렇게 끝이 났다. 4무 1패 2득점 3실점이라는 기록으로 8강까지 갔다. ㅎㄷㄷ...

이후 1994 월드컵에도 연속 진출해 죽음의 조에 걸렸는데, 이탈리아, 멕시코, 노르웨이와 만나 네 나라가 1승 1무 1패를 기록, 골득실까지 같아 다득점으로 1위와 4위를 갈라야 했다. 일단 멕시코가 다득점에서 앞서 1위를 차지했고, 이번에도 아일랜드는 이탈리아와 승점, 다득점까지 같아 동전 던지기로 순위를 가르.........진 않았고 아일랜드가 이탈리아를 이긴(!) 덕분에 승자승에서 조 2위를 가져갔다. 우승후보 팀을 연속으로 조 3위로 밀치고 2위로 16강에 올라간 것. 다만 이번엔 이탈리아가 로베르토 바조의 대활약으로 각성하면서 결승에 올라갔지만 아일랜드는 16강전에서 네덜란드를 만나 0:2로 패하고 짐을 쌌다. 8년 뒤 한일월드컵에도 출전하여 로비 킨의 대활약으로 1승 3무라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독일, 스페인과도 모두 무재배해 16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짐을 싸는 등 월드컵만 나가면 기본 16강은 가는 유럽의 고춧가루 팀으로 명성을 날렸다.

다만 덴마크도 아일랜드와 비슷한 포지션이었다가 2010년 네번째 무대에서 깨진 만큼 아일랜드 또한 다음 대회에선 얼마든지 깨질 가능성이 있으며, 일단 2002년을 마지막으로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2010년엔 프랑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앙리에게 신의손을 엊어맞고 억울하게 떨어졌지만(그래서 프랑스가 남아공가서 죽 쑬때 그렇게 좋아했다 카더라) 오히려 이후로 전력이 크게 하락하면서 2014년에는 플레이오프조차 가지 못한 상황. 과연 부진을 씻고 월드컵에 다시 올라올지 기대해 볼 일이다.

3.2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순위 : 20위

년도결과순위경기득점실점
프랑스 1960예선 탈락
스페인 1964예선 탈락
이탈리아 1968예선 탈락
벨기에 1972예선 탈락
유고슬라비아 1976예선 탈락
이탈리아 1980예선 탈락
프랑스 1984예선 탈락
서독 19881라운드5311122
스웨덴 1992예선 탈락
잉글랜드 1996예선 탈락
벨기에/네덜란드 2000예선 탈락
포르투갈 2004예선 탈락
오스트리아/스위스 2008예선 탈락
폴란드/우크라이나 20121라운드16300319
프랑스 201616강15411236
유로 2020????????
합계16강 1회3/1510226617
  1. 영어
  2. 아일랜드어
  3. 조예선에서 3무, 16강전에서 승부차기로 이겨 8강에 갔다. 4무의 성적으로 첫 월드컵에서 8강 진출.
  4. 조예선 네 나라가 1승1무1패를 기록한 혼돈의 조였는데, 아일랜드는 이탈리아를 잡고 16강에 갔다. 월드컵 11대이변에 속하는 경기.
  5. 조별예선에서 독일, 카메룬, 사우디 아라비아와 E조에 편성되었고, 2승 1무를 거둔 독일에 이어, 1승 2무의 성적으로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조별 예선 2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로비 킨의 동점골로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었는데, 이 골은 독일이 결승전을 치루기 전까지 실점한 유일한 골이었고, 당시 독일의 골키퍼는 그 대회에서 야신상을 수상한 올리버 칸이었다. 한편 16강전에서 스페인을 만나 극적인 승부를 펼치며 2:2로 경기가 종료되었고, 승부차기에서 세 명의 키커가 연속으로 실축하며 PK 스코어 3:2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때 아일랜드를 누르고 8강에 진출한 스페인은 개최국 대한민국을 만났고 4강의 제물이 되었다.
  6.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