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F 피오렌티나

2016-17 이탈리아 세리에 A
나폴리
(Napoli)
라치오
(Lazio)
로마
(Roma)
밀란
(Milan)
볼로냐
(Bologna)
사수올로
(Sassuolo)
삼프도리아
(Sampdoria)
아탈란타
(Atalanta)
엠폴리
(Empoli)
우디네세
(Udinese)
유벤투스
(Juventus)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제노아
(Genoa)
칼리아리
(Cagliari)
크로토네
(Crotone)
키에보
(Chievo)
토리노
(Torino)
팔레르모
(Palermo)
페스카라
(Pescara)
피오렌티나
(Fiorentina)
2016-17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리그 J조

피오렌티나
(Fiorentina)

PAOK
(PAOK)

리베레츠
(Liberec)

카라바흐
(Qarabağ)


ACF 피오렌티나
ACF Fiorentina
정식 명칭Associazione Calcio Fiorentina e Florentia Viola SpA
창단1926년 8월 26일
소속 리그이탈리아 세리에 A (Serie A)
연고지토스카나 주 피렌체 (Firenze)
홈 구장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란키(Stadio Artemio Franchi)
(43,147명 수용)
구단주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
안드레아 델라 발레(Andrea Della Valle)
감독파울로 소사 (Paulo Sousa)
주장마누엘 파스쿠알 (Manuel Pasqual)
애칭Viola(보라색), Gigliati(백합), 피렌체[1], 보라돌이[2]
공식 홈 페이지[1]
한국 팬 페이지[2]
한국 팬 카페[3]
  • 우승기록
    • 세리에 A(2회): 1955–56; 1968–69
    • 코파 이탈리아(6회) : 1939–40; 1960–61; 1965–66; 1974–75; 1995–96; 2000–0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1회) : 1996
    • UEFA컵 위너스컵(1회): 1960–61
    • 미트로파컵(1회): 1966
    • 앵글로-I이탈리안 리그 컵(1회): 1975
    • 세리에 B(3회): 1930–31; 1938–39; 1993–94
    • 세리에 C2[3](1회): 2002–03

보라돌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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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의 7공주중 하나로 분류됐던되는 클럽이다. 세리에 A 우승 횟수는 2회 밖에 안되지만, 6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80여년 동안 세리에 B로 떨어져본 적이 단 3번밖에 없을 정도로 꾸준한 전력을 유지해온 전통의 강호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지로 활약해온 역사적인 도시 피렌체를 연고로 하는 구단답게 서포터들의 피오렌티나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한 수준인데, 자신들을 위해 9년동안 168골을 쏟아부은 바티스투타를 위해 그의 동상을 세워준 일화는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정도이다.바티스투타가 로마로 이적하자 상심한 팬들이 동상 다 때려 부순건 모른다.ㅠㅠ 또한 2001년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팀을 떠나게된 그들의 주장 루이 코스타를 위해 아르테미오 프란키 구장에서 대대적인 송별회를 열어준 적도 있었다.


2 창단에서 현재까지

피렌체의 유력한 귀족 집안 출신인 루이지 리돌피 후작(Marchese Luigi Ridolfi)은 영국여행 도중에 축구라는 스포츠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그는 그 즉시 귀국해 자신의 축구팀을 만들기로 하고, 당시 피렌체에 있던 두 개의 작은 클럽인 팔레스트라 진나스티카 리베르타스(Palestra Ginnastica Libertas)와 클루브 스포르티보 피렌체(Club Sportivo Firenze)를 합병해 새로운 축구팀을 만들었다. 1926년 8월 26일의 일이었다.

새로 생긴 클럽의 이름은 ''을 뜻하는 라틴어인 '피오렌티나(Fiorentina)'로 정해졌고 비아 벨리니(Via Bellini)에 있는 경기장을 사용하기로 했다. 또한 유니폼은 기존의 두 클럽의 색상을 조합한 빨간색-흰색이 채택되었는데, 지금의 보라색(Viola) 유니폼으로 바뀐 것은 1929년이 되어서였다. 보라색은 피렌체의 꽃인 백합을 본딴 색으로 백합은 피오렌티나의 문양에도 나타나 있다. 경기장은 피오렌티나의 고위층 출신으로 이탈리아 축구협회장과 UEFA 회장직을 역임한 아르테미오 프란키(Artemio Franchi, 1983년 8월 12일에 교통사고로 사망)를 기리기 위해 1991년 11월에 그의 이름이 경기장에 헌액됐다. 완공 당시에는 파시스트 지도자의 이름인 조반니 베르타(Giovanni Berta)라고 불리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부터는 '피렌체 공설 운동장(Stadio Communale di Firenze)'이라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1931년 9월 13일에 초대 구단주 리돌피에 의해 완공되었으며, 그후로 계속 피오렌티나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47,290명 수용의 축구전용구장이다. 34년과 90년에 걸쳐 두번의 월드컵을 치루어낸 전통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후 2001/02 시즌에 강등당할 때까지 두 번의 강등을 제외하고 수십 년간 세리에 A의 붙박이 팀으로 자리잡았으며, 그 동안 피오렌티나는 2번의 리그 우승과 6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일궈냈으며, 이탈리아 팀으로는 최초로 UEFA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함으로써 사상 첫 유럽 클럽대항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0년부터 구단주로 취임한 영화제작자 마리오 체키 고리는 팀을 그럭저럭 잘 운영한 뒤에 아들인 비토리오에게 구단을 물려주었지만, 다혈질에 욕심이 많은 비토리오는 하프타임때 라커룸으로 찾아와 알베르토 말레사니(Alberto Malesani) 감독에게 욕을 퍼붓고, 팀내의 선수, 감독은 물론 클럽 출신 최고의 스타였던 지안카를로 안토뇨니(Giancarlo Antognoni)를 비롯한 여러 고위층 임원들과도 자주 불화를 일으켜 팀에서 내쫓는 등, 구단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벌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정계 도전 실패와 방만한 경영으로 돈을 이리저리 빼돌려 팀을 위기로 몰아넣었고, 결국 비토리오는 천문학적인 빚을 남긴 채 2001년에 구단주 자리에서 해임되었는데, 이 여파로 피오렌티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여 2001/02 시즌을 끝으로 세리에 B로 강등되었는데, 재정 문제로 세리에 C2까지 자동 강등되어 플로렌티나 비올라로 이름을 바꿔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빌딩을 지속하여 2003년에는 세리에 B로 복귀하여 비상을 시작해 마침내 2004년에 세리에 A로 돌아와 원래 팀명으로 회귀했지만,아직도 과거의 명성까지는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3 시즌 별 역사

3.1 2012-13 시즌

스테판 요베티치를 필두로 시즌 초반 무시무시한 페이스로 치고나갔다가 시즌 중반 추락했다가 다시 후반기에 약진, 세리에 A 34라운드 UC 삼프도리아전에서 3-0으로 낙승하며 AC 밀란의 경기가 월요일 날 열리기 때문에 하루 동안 리그 3위 자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AC 밀란이 패배한다면 그대로 3위 유지도 가능했는데 AC밀란은 지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 라운드까지 지지 않은 AC밀란이 3위를 유지하며 4위로 끝났다.


3.2 2013-14 시즌

같은 리그 내 유벤투스 간다던 요베티치를 결국 맨시티에 30m 다 받고 판 후 주세페 로시마리오 고메즈와 일리치치,그래도 아직은 기대할만한 호아킨 산체스를 영입하며 비록 랴이치를 AS 로마에 팔았지만 스쿠데토를 노릴만한 수준으로 팀을 끌어올렸다. 지난 시즌 챔스권 경쟁을 보아 순조롭게 상위권까지 순항할 것으로 보였으나 갑자기 다른 팀들이 다 각성하고, SS 라치오빼고 AC 밀란 특히 AS 로마는 10라운드까지 전승을 달리고, 승격팀인 헬라스 베로나가 챔스권까지 올라와 깽판을 벌이는 등 리그가 난전 양상이 되어 치열한 상위권에서 고전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SSC 나폴리, 인테르에게 전반기 경기를 내주고 이겨야 할 상대에게 비기고 얇은 스쿼드에 마리오 고메즈의 부상 등 악재가 겹치고 겹쳐 또 유로파권에서 거의 시즌 대부분을 보냈다. 주전 공격수인 마리오 고메즈가 부상인 동안 승점 기회를 많이 날려먹었다. 또 AS 로마에게도 패하며 강팀약, 약팀강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강팀 중 잡아낸 건 유베뿐으로 그나마도 후반기 경기에서는 리벤지당하며 4위로 시즌 마감. 아무래도 이름값으로는 전설의 투톱이였는데 실제로 전설속에만 존재했던 점이 아쉬웠다는 평가. 그나마 시즌 최고의 수확인 콰드라도가 있어서 나쁘지는 않은 시장이였다.

그나마 코파 이탈리아에서 결승까지 진출하여 13년만에 우승을 노려보았으나 나폴리에게 석패.

유로파리그에서는 48강 조예선에서 CS 판두리 타르구 지우(루마니아), FC 파송스 데 페헤이라(포르투갈, FC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우크라이나) 같은 쉬운 상대들을 만났다. 3전전승을 달리며 32강 진출은 전혀 문제없어 보인다. 예상대로 거뜬하게 32강에 진출, 덴마크 에스비에리 fB와 16강을 다투게 되었다. 예상대로 쉽게 16강에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16강 상대는 리그 챔피언이자 올 시즌도 리그 우승이 거의 확정된 유벤투스 FC가 되고 말았다.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선전했으나 안방에서 0:1로 패하며 탈락했다.


3.3 2014-15 시즌

34라운드까지 5위를 기록 중이다. 8위 인테르와 승점 차가 3점이라 남은 4경기 여부에 따라 순위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4위 나폴리랑 7점이 벌어진 상황이라 추격은 힘들 듯 하다.

코파 이탈리아는 4강까지 올랐으나 유벤투스에게 0-3으로 참패하며 탈락했다.

유로파리그는 4강까지 진출했으나 세비야에게 1차전 원정에서 0-3으로 참패하면서 2차전 홈경기에서 4점차로 이겨야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결국 떨어졌다..

리그에선 4위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이 끝나고 6월 9일 몬텔라 감독이 해임되었다. 몬텔라의 바이아웃을 두고 겨울 이적시장 무렵부터 보드진과 갈등이 있었는데,
월요일까지 답변을 주기로 보드진과 합의해놓고는 마다가스카르(...)로 통보없이 휴가를 가버렸다. 이에 보드진이 열받아 경질했다. 통수 맞기에 익숙해진 피오렌티나 팬들이지만 몬텔라에 대한 여론은 가히 최악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
2015년 6월 21일 피오렌티나 공식 홈페이지에 파울로 소사 감독선임을 발표했다.
임대와서 활약했던 살라 또한 잔류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면서 팀을 흔들고 있다. 어째 근 5년간 피오렌티나에서 좀 날린다 싶은 선수는 죄다 떠나고 있는데,[4] 희한하게도 그 선수들 대부분은 기대치만큼 크지 못했다.몬텔라: 나는 감독이니까 아니겠지?

물론 여기에는 주세페 로시의 부상, 마리오 고메즈의 먹튀짓, 쿠마 바바카르의 부상등이 복합적으로 겹치긴 했다. 질라르디노와 살라 덕분에 체면은 치렀다. 게다가 질라르디노는 적은 출장기회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고메즈를 벤치로 보내는 활약까지 했다.

3.4 2015-16 시즌

결국 살라도 떠나고 말았다. 살라는 피오렌티나를 자신의 빅클럽 이적의 교두보 발판의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고 이런 그의 이런 행동과 이적 시장에서 피오렌티나가 살라 건으로 여러 클럽들과 엮이면서 복잡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적 시장 플랜이 매우 꼬였고 또한 그의 에이전트가 피오렌티나를 조롱하면서 살라는 피오렌티나의 후반기 영웅이었다가 역적으로 돌변했다. FM 2016에서 싫어하는 선수 등록 꼭 필수네

필요 이상으로 로테급 선수들만 많은 상황, 즉 쩌리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감독까지 예상치 못한 불화로 나가버린 상황이다. 일단 감독을 빠르게 선임하고 쩌리들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마리오 고메즈 게다가 믿음직하지 못한 오른쪽 풀백과 네투가 프리로 풀린 상황에서 타타루시누와 경쟁할 NO.2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밖에 챔스권을 위해선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상황. 감독 물망엔 파올로 소사 바젤 감독이 오르고 있다. 그리고 파올로 소사 감독이 피렌체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7월 1일. 쩌리들의 계약 만료로 주급이 무려 8M이나 절약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방만하게 경영하니 ffp 주의 조치 먹지.. 팬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그러나 의외로 이적시장은 좀 실망적인 편이었던 것이 공격수나 미드필더의 보강은 나름 괜찮은 편이었지만 엄청난 주급을 받아대던 방출 명단 대상의 방출이 늦어지는 바람의 여파인지 중앙 수비수 포지션과 오른쪽 풀백의 믿음직한 주전의 보강이 실패한 바람에 수비 포지션의 걱정이 생기게 되었다.[5]

하지만 피오렌티나에서 활용도가 애매하다는 평가를 듣던 마르코스 알론소가 주장인 파스쿠알을 백업으로 밀어내는 등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했고 이적시장 때 처분대상으로 취급되는 편이었던 제노아에서 임대복귀한 파쿤도 론칼리아가 다시 주전을 잡을 정도로 경기력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저번 시즌 후반기 때부터 경기력이 상승한 요시프 일리치치와 고메즈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영입생 니콜라 칼리니치 등 선수단의 분위기에 힘입어서 10월 4일 기준 리그 1위를 하고 있다.이제 로테이션 가능한 수비진 스쿼드만 좀 보강하면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10월 26일 AS 로마 에게 패하면서 순위가 내려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리에 A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높은 순위권에서 꾸준히 경쟁 중이라는 점, 그리고 올 시즌 유벤투스 FC 가 아직까진 부진한 상태이며, AC 밀란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데 비하면 아주 놀라운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AS 로마, SSC 나폴리, 인테르 밀란 과의 경쟁에서 한 두팀 정도를 밀어낸다면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가능할 기세.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이 팀들보다 먼저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 될 듯 하다. 그리고 올해 상승세의 핵심인 발레로가 퍼지는 순간 비올라는 끝장이다

그리고 11월 1일 프로시노네와의 홈경기에서 4-1 대승을 거둠으로써 다시 리그 1위로 복귀했다.

23R 기준 14승 3무 6패, 승점 45점으로 3위를 기록중이다. 나쁜 페이스는 아니지만 1,2위 나폴리와 유벤투스가 너무 잘 한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16강에서 카르피에게 패해 탈락했다.

유로파리그에서는 I조 예선에서 바젤에게 밀려 2위로 32강에 진출했고 32강에서는 토트넘을 만났다. 그러나 토트넘은 지난 시즌 받은 수모를 제대로 갚아주면서 피오렌티나를 탈락시켰다. 유로파 바젤 원정에서 피오렌티나 최고의 기대주인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시치의 맹활약으로 2:0으로 앞서고도 카드캡쳐 파쿤도 론칼리아가 쓸데없는 퇴장으로 다 잡은 경기를 놓친 탓에 파울루 수자는 론칼리아에게 큰 분노를 했고 그 여파가 토트넘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유로파 리그 토트넘과의 2차전은 피오렌티나가 런던 원정이라는 점도 있지만 피오렌티나는 리그에서 상대팀들에 의해 약점이 노출된 3-4-2-1을 버리고 크리스티안 테요가 합류하면서 4-2-3-1로 테요와 베르나르데시치의 양 윙포워드의 빠르고 창의적인 플레이에 최근 쏠쏠한 재미를 보았으나 이 전술의 핵심인 테요를 유로파 리그에서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방압박에 취약한 약점을 드러낸 3-4-2-1을 썼고 이것은 토트넘같은 전방 압박이 무시무시한 클럽에겐 피오렌티나를 공략하기에 매우 좋은 상황이었다.

또한 빌드업 위주라서 그 만큼 공격 전개가 느린 편인 이 전술의 핵은 바로 보르하 발레로와 요시프 일리치치인데 문제는 상대편 압박에 맥을 못 추는 트레콰르티스타인 일리치치가 제 몫을 전혀 해주질 못했다. 또한 일리치치는 팀의 스피드를 잡아먹는 주범으로서 스피드한 전개에는 취약한 단점을 보여준다. 물론 그의 의외성과 강력하고 정확한 왼발은 정말 상대팀들에겐 무서운 무기이지만 그가 슛을 못하게 막는다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리치치가 반 시즌은 리그에서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쳤지만 그의 약점이 노출되었고 계속 부진 중이기 때문에 4-2-3-1에서 트레콰르티스타로 현재 보르하 발레로가 점차 중용받기 시작했다. 발레로는 비록 일리치치보다 득점력이나 파괴력에선 많이 밀리겠지만 개인 한정이 아닌 팀을 생각하자면 플레이메이킹 능력에선 일리치치는 발레로에게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또한 발레로는 팀 스피드도 살릴 줄 아는 축구를 펼치고 있으며 일리치치같이 탐욕을 부리거나 쓸데없이 기술 부리다가 빼앗기거나 그러질 않는다. 즉 오히려 팀에 있어선 일리치치보다도 더 공헌도가 높은 선수이고 밑에는 밀란 바델리와 마티아스 베시노라는 우수한 질의 미드필더들이 버티고 있기에 그래서 다음 시즌 미드필더 영입이 꼭 필요한 거다. 공미 중미 다 소화하는 발레로가 불쌍하다. 돈 좀 풀어라 구단주야 발레로를 굳이 아래로 내리고 일리치치를 쓸 이유가 전혀 없다. 괜히 세리에A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게 아니다.

또한 2차전에선 베르나르데시키마저도 부진한 활약 당연 테요도 쓰지 못하는 마당에 야쿱 브와슈치콥스키는 이미 후보로 밀린 상황에서 보르하 발레로와 같이 매 경기 출장하는 어린 선수인데 체력이 오죽하랴!! 그렇다고 혼자놀기 사라테를 윙포로 쓸 수도 없고 결국 베르나르데시키를 아래로 내려 3백의 윙백으로 쓸 수 밖에 없기에 그 만큼 체력부담이 엄청났고 으로 원정에서 3:0으로 완패하고 유로파 리그에서 탈락하게 된다.

더구나 다음 리그 상대는 나폴리 그리고 며칠 뒤엔 로마 즉 3위 결정전에서 아주 중요한 갈림길에 선 상황이다. 이 2연전에서 피오렌티나의 앞으로의 운명이 갈릴 것이다.

4 현재 선수단

틀:ACF 피오렌티나


5 전설

대단히 우승기록이 많은 팀도 아니고 부자 구단주도 딱히 없었던 팀이지만 그래도 팀에 레전드는 있다. 대표적으로는 지안카를로 안토뇨니가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72~73 시즌에서 86~87시즌까지 피오렌티나에서만 15시즌을 뛰고 268경기 출장, 65골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1982년 월드컵때 이탈리아의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그 우승은 유벤투스 FC가 좌절시켰다
FIFA 100에도 선정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역시 피오렌티나에서만 10년동안 뛴 레전드이며, 피오렌티나에서만 168골을 넣었다. 어떤 인간이 나이가 많아서 바티골을 팔았다고 썻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고 팀 자금 사정이 어려워 지면서 어쩔 수 없이 로마로 판매하게 되었다. AS 로마로 이적하게 되어 그동안 한 번도 못해봤던 세리에 A 우승을 맛보고 친정팀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골을 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라운드의 로맨티스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편 로베르토 바조가 세리에 A에 데뷔하게 된 팀이 바로 피오렌티나이다. 세리에 B와 C를 오고가던 비첸차에서 데뷔한 바조를 눈여겨보고 스카우트했고 이후 피렌체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가 구단이 유벤투스로 낼름 팔아버렸다. 그것도 UEFA컵 결승에서 유벤투스에게 패한지 이틀만에.(...) 이 바람에 팬들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고, 이후 피오렌티나 팬들에게 있어 유벤투스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FM에서도 이를 충실히 반영해서 피오렌티나가 가장 싫어하는 팀이 바로 유벤투스(...). 여담이지만 과거 팀의 주장이자 핵심이었던 리카르도 몬톨리보가 재계약을 하겠다고 말만 하다가 끝내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AC밀란으로 자유계약으로 이적한 후에는, AC밀란 측이 사전 접촉했다라는 의혹과 함께 구단 간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그나마 암브로시니를 자유계약으로 데려오며 조금 나아지나 싶더니 갈리아니는 끝내 아뎀 랴이치에게도 집적대서 구단간 관계는 다시금 험악해진 상황.

  1. 국내 세리에 팬들 한정으로 피오렌티나라는 이름 대신 그냥 피렌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세리에매니아.
  2. 와싯의 파스타툰에서 피오렌티나는 보라돌이로 나온다.근데 볼수록 엠블럼 모양과 텔레토비 안테나가 똑같은듯??
  3. 07-08이후 Lega Pro Seconda Divisione으로 변경
  4. 몬톨리보, 요베티치, 랴이치, 콰드라도 등등
  5. 소사 감독이 부임한 뒤로 포지션 플랜이 4-5-1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강이 필수인 포지션의 보강 실패로 3-4-3 포지션 플랜도 사용하게 되는 사태가 생겼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