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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츠 성곽에서 바라본 구 시가지의 모습
마인츠 Mainz | |
마인츠 시의 문장 | |
국가 | 독일 |
주 | 라인란트-팔츠 |
위치 |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준수) |
한국과의 시차 | -7시간 |
1 개요
독일 남서부의 도시로 라인란트-팔츠주의 주도로 97.76㎢에 2003년을 기준으로 185,532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2 역사
비스바덴 맞은편인 라인 강의 좌안, 마인 강 입구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로 BC 14~9세기에 켈트족의 거주지였으며, 이후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켈트족이 숭배하던 모고 신의 이름을 따 모군티아쿰이라고 알려진 군사 야영지가 세워지고, 80년경부터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모군티아쿰 주교구가 설치되었다. 이후에도 451년경 로마인들이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발전했으며 이후 게르마니아 수도원의 중심지가 되었다.
6세기에 새로운 시가지가 생겼으며, 이후 프랑크 왕국의 세력권에 편입되면서 745년에 도시명이 마인츠로 개칭되면서 마인츠 대주교 관구가 개설되었고, 775~780년도에 성 보니파세가 등장했으며 대주교관구와 주교관구를 비롯한 독일교구의 중심지가 되었고, 마인츠의 대주교는 알프스 이북에서 교황을 대리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1세의 제국교회정책으로 마인츠 대주교를 비롯한 독일 내의 교회에 세속권력을 쥐게 하면서 마인츠 주교를 포함한 점차 성직 제후화 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급격하게 발전해 1118년 얼마간의 자치권을 얻었고, 1244년 자유도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1251년 대주교였던 게르하르트 1세가 선제후가 되었고 이후 마인츠의 대주교가 독일의 재상과 대법관직을 겸했고,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기까지 황제 선거인단을 주재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 1254년 '마인츠 황금지대'로 강력한 라인 지방 도시연맹의 중심지가 되었고, 당시 마인츠의 영향력은 라인 강 좌·우안에 있는 마인츠 일대 뿐만 아니라 메인 강을 끼고 보다 위에 있는 아샤펜부르크 특별구역을 포함하여 프랑크푸르트와 니더작센 주의 아이히스펠트, 튀링겐 주의 에르푸르트 인근에 이르는 지역을 세력권으로 편입하였다.
그러나 1462년 적대관계에 있던 두 대주교의 전쟁으로 경제 침체가 극에 달하자 이곳 시민들은 자치권을 박탈당했다. 많은 기술자들이 유랑의 길을 떠남으로써 인쇄술이 퍼지게 되었다. 1477년부터 유럽의 주요 대학도시중 하나가 되었지만 30년 전쟁중 스웨덴과 프랑스의 점령을 받았으나 1792년 프랑스에 다시 점령되기 전까지는 활발한 상업 및 문화 중심지였다.
1793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이곳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으나, 1797년 캄포 포르미오 조약과 1801년에 루네빌 조약이 각각 체결됨에 따라 프랑스에 양도되어 실질적으로 프랑스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되었으며 1802년 프랑스에 의해 대주교령은 세속화되기 시작해 대주교관구 또한 주교관구로 바꾸고 탄압했으며, 1803년에는 레겐스부르크에서 열린 마지막 제국 회의에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산됨과 동시에 대주교령을 포함한 주교령의 세속화를 인정하자 교회의 영토를 종교와 분리시면서 완전히 세속화가 된다.
1815년 프랑스의 지배가 끝나자 이 도시는 헤센-다름슈타트로 넘어가 새로 생긴 라인-헤센 주의 주도가 되었다. 독일연맹과 후에는 1918년까지 독일제국의 요새도시였다. 이후 제1차·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군대가 점령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중 도시의 80% 정도가 파괴되었으나 급속하고 광범위한 재건사업이 이루어졌다. 1946년 새로 주의 영역과 명칭을 개정하면서 새로 설치된 라인란트-팔츠의 주도가 되었고, 라인 강 오른쪽 둑에 있던 교외지대는 헤센 주로 편입되었다.
3 여담
- 독일의 고도중 하나로 각종 문화유산이 많은 편으로 로마의 영토였기에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약간 남아 있으며, 유물들은 중앙 로마-게르만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마인츠 대주교령이 있었기에 많은 성당들이 위치하고 있다. 975~1009년에 처음 세워진 장크트마르틴 성당과 18세기 중후반에 세워진 장크트이그나티우스 성당, 장크트페터 성당과 르네상스 양식의 선제후 궁전이 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지만 재건사업때 복원되었다.
- 그 외에도 라인란트-팔츠 주의 중심지이기에 가톨릭 주교좌·대학·가톨릭신학교·국립미술공예학교·기능공회의소·상공회의소·철도관리국·지방법원 등이 있으며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태어난 곳이기도해 구텐베르크를 추모하기 위하여 구텐베르크 기념비, 구텐베르크 박물관, 국제 구텐베르크 협회의 본부 건물가 위치하고 있으며 1816년 폐교된 마인츠 대학교를 1946년 다시 개교할때 그의 이름을 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대학교로 했다. 개국 이후 잠시 떠돌던 공영방송 ZDF의 본사도 마인츠에 있다.
마인츠 전차 |
- 또한 경제적으로는 포도재배지 라인란트팔츠의 중심에 있어서 포도주 양조업도 발달되어 있으며 포도주 축제와 사순절 전야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곳은 군사적으로 중요한데다 인근에 프랑크푸르트 암마인과 만하임이 있어 상업적으로는 발전하지 못했으며 19세기초 프랑스에 점령된 시절에 상업이 심하게 침체되기까지 했다. 그후 라인 강의 포도주 교역 중심지가 되었다. 산업화는 늦게 이루어졌으나 제조업은 화학·의약 제품, 기계, 유리, 악기 등을 포함하여 매우 다양하다.
- 이 곳을 연고로 하는 축구구단 1.FSV 마인츠05 와 야구 구단인 마인츠 애슬레틱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