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대처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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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8월 15일~

마크 대처는 마가렛 대처의 아들로 영국인이다. 적도기니에서 일어난 쿠데타에 가담한 범죄자이다.

2 생애 초반

마가렛 대처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형제관계로는 이란성 쌍둥이 누나인 캐롤 대처가 있다.

어머니의 총리 재임기 다카르 랠리에서 실종되었다가 겨우 구조된 적이 있다.

3 어머니의 안 좋은 점만 집중적으로 물려 받은 아들

마크 대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자기 회사를 차리고 중동아프리카 대륙 전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무기 밀매[1] 용병단을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던 자기 사업이 실패했다.

1996년에 적도기니에서 마크 대처에게 의뢰가 들어왔다. 시몬 만이라는 적도기니 사람이 자신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당시 적도기니의 대통령인 오비앙 응게마를 퇴진시키고 당시 스페인에서 따로 망명정부를 차리고 있던 적도기니의 야당 대표인 세베로 모토를 옹립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시몬 만이 마크 대처에게는 적도기니 본토에 있는 석유[2]를 마음껏 캐가도 좋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마크 대처는 응하고 시몬 만과 같이 적도기니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했다.

마크 대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용병을 공수해오기로 하고 헬기에 용병 70명을 실어서 적도기니로 이동시키고 있었으나 이동하던 도중 용병을 실은 헬기가 짐바브웨에 억류되는 바람에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크 대처는 그 길로 도주했으나 2004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터폴에게 체포당했다.

이에 마가렛 대처는 부랴부랴 있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보석금을 마련했고 결국 그 거액의 보석금을 낸 뒤 마크 대처는 유죄 인정 대신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중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치계 최대의 거물의 가족이자 영국 왕실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 정도까지 특혜를 받았다. 그러나 그 대신 미국에서는 입국불허자 명단에 등록되었다. 이제 마크 대처는 영원히 미국에 갈 수가 없다. 문제는 아내와 자녀들은 죄다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어머니인 마가렛 대처가 죽자 어머니의 장례식에 나타났다. 그 때 오래간만에 가족들과 재회했다.

4 미디어

마가렛 대처의 생애를 소재로 한 영화 철의 여인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마가렛은 치매 걸려서 자기 욕하는 신문기사도 못 알아보는 마당에 아프리카에서 사고치고 다니는 아들을 보고 싶다고 떼를 쓰고, 딸 캐롤이 이제 마크 못 본다고 타이르는 패턴.
  1. 주로 영국군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자신이 총리의 아들이라는 직함을 이용해서 밀반출한 뒤 그걸 탈레반같은 테러단체에게 팔아넘겼다.
  2. 적도기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산유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