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감독) | |||
세리그 감독 | 파리그 감독 | |||
50px | 마나카 미쓰루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50px | 타카하시 요시노부 (요미우리 자이언츠) |
60px | 알렉스 라미레스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 60px | 모리 시게카즈 (주니치 드래곤즈) |
50px | 가네모토 도모아키 (한신 타이거스) | 50px | 오가타 고이치 (히로시마 도요 카프) |
주니치 드래곤즈 No.80 | |
모리 시게카즈(森繁和) | |
생년월일 | 1954년 11월 18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치바 현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78년 드래프트 1위 |
소속팀 | 세이부 라이온즈 (1979~1988) |
지도자 | 세이부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1989~1991, 1998[1]~1999) 세이부 라이온즈 투수코치 (1992~1998[1]) 닛폰햄 파이터즈 투수코치 (2000~2001)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투수코치 (2002~2003) 주니치 드래곤즈 배터리 치프 코치(2004~2009) 주니치 드래곤즈 수석코치 (2010~2011, 2014~)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 (2016~) |
전 NPB 야구 선수, 평론가, 해설가.
현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
고교 시절 과학기술공업 고등학교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3학년 때 폐교가 결정되면서 여름 코시엔 예선 패배 후 코마자와 대학 고등학교로 전학해서 그곳에서 졸업했다.
졸업 후엔 코마자와 대학에 입학해 거기서도 활약하면서 5번의 대학야구 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완전시합을 달성하기도 하였으며 제5회 일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표로 출장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의 성적은 41시합 출장. 18승 9패. 방어율 2.11. 191탈삼진.
졸업년도인 1976년 드래프트에서 롯데 오리온즈의 1위 지명을 받았으나 거부. 그 후 사회인야구팀 스미토모 금융에 입단하여 1977년 사회인야구 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 뒤 1978년 드래프트에서 닛폰햄 파이터즈, 주니치 드래곤즈, 야쿠르트 스왈로즈, 세이부 라이온즈의 1위 지명을 받았고, 제비뽑기로 선제 교섭권을 얻은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부상 등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특출난 활약은 하지 못하고 1988년 은퇴했다. 타이틀은 1983년 세이브왕을 획득한 게 전부였다.
10시즌간 통산 성적은 57승 62패 82세이브 455탈삼진 방어율 3.73이다.
은퇴 뒤 1989~1991년 세이부 라이온즈의 2군 투수코치를 맡은 후, 1992년 치바 롯데 마린즈 최초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떠난 야기사와 소하치의 뒤를 이어 1군 투수코치가 되었으나 1998년 시즌 도중 투수진의 저조한 성적의 책임을 지고 2군 투수코치로 강등. 1999년 시즌 후 해임당했다.
그 후 2000~2001년 닛폰햄 파이터즈 투수코치로 전임했으나 팀 투수진이 2년 연속 방어율 5위로 주저앉고 2001년 팀 순위가 최하위를 찍으면서 또 해임당했다.
이듬해인 2002년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투수코치로 전임했지만 2003년 해임당했다. 2년 내내 팀 방어율이 4점대에서 놀았고 방어율 성적도 2002년 5위, 2003년 최하위를 찍었고 팀 순위조차 2년 연속 최하위로 추락한 게 원인이었다.
그리고 2004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배터리 치프 코치로 부임. 2010년엔 수석코치로 부임해 2011년까지(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이 해 퇴임) 수석코치를 맡으며 팀의 전성기[2]를 이끌었다.
그 뒤 2012~2013년 야구해설자, 야구평론가로 일하다 2014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다시 부임. 2016년 시즌 도중 타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휴양(을 빙자한 사실상의 해임)을 선언하면서 감독대행을 맡게 되었다. 만약 감독대행으로써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주니치의 차기 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근데 보면 알겠지만 주니치 때를 제외하곤 코치 성적이 쓰레기다(...) 같은 팀의 누군가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