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라미레스

(일본프로야구/감독)
세리그 감독 | 파리그 감독
50px마나카 미쓰루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50px타카하시 요시노부
(요미우리 자이언츠)
60px알렉스 라미레스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60px모리 시게카즈
(주니치 드래곤즈)
50px가네모토 도모아키
(한신 타이거스)
50px오가타 고이치
(히로시마 도요 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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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No.80
알렉산데르 라몬 "알렉스" 라미레스
(Alexander Ramón "Alex" Ramírez)
생년월일1974년 10월 3일
국적베네수엘라
출신지카라카스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소속팀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8~2000)
피츠버그 파이리츠 (2000)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1~2007)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2011)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12~2013)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 (2014)
지도자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 플레잉코치 (2014)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감독 (2016~)
2008~2009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와다 가즈히로
(주니치 드래곤즈)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역대 감독
나카하타 키요시
(2012 - 2015)
알렉스 라미레스
(2016 - )
현직

1 개요

베네수엘라 출신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이자, 現 일본프로야구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감독.

일본프로야구에서만 10년을 넘게 뛰며 일본의 야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로, 일본에서는 라미짱(ラミちゃん)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데, 랜디 바스 급의 임팩트는 아니어도 일본리그에서 내내 특급 용병으로 군림했고 용병 중에서도 누적 커리어가 크고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평가. 외국인 선수 최초의 명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였다. 볼넷을 많이 얻어내지 못해 타율 대비 출루율은 좋지 않았지만 괜찮은 컨택과 장타 생산능력으로 꾸준한 타격 생산성을 자랑했다. 일본 통산 기록은 .301-.336-.523 OPS .859, 2017안타, 380홈런.

2 선수 시절

2.1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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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 입단한 뒤 마이너 생활을 좀 오래 한다. 1998년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만 그리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2000년 11월 1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일본으로 가게 된다.

2001년 7번 타자로 일본무대에 첫발을 내딛는다. 입단 첫 해 29홈런 88타점의 준수한 성적을 내며 중장거리 타자로서의 성공적인 연착륙에 성공하며, 로베르토 페타지니, 후루타 아츠야, 이와무라 아키노리 등이 포진한 강타선의 한 축을 이루면서 2001년 야쿠르트의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2002년 홈런은 24개로 줄었지만, 타율과 출루율을 조금씩 높이면서 안정적인 성적을 보여준다. 2003년에는 140경기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189안타 40홈런 349루타 124타점으로 당시 일본 이적 첫 해였던 타이론 우즈와 함께 공동 홈런왕의 영광을 누린다. 페타지니나 후루타가 떠난 이후에도 꾸준히 3할 타율, 30개 언저리의 홈런, 100타점 이상을 올리는 그야말로 꾸준한 성적을 찍으며 야쿠르트의 명실상부한 중심타자로 활약한다. 2007년에는 204안타를 치면서, 일본프로야구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를 넘긴 우타자가 되었다.[1]

2.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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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즌 종료 후 고액 장기계약을 원하는 자신의 의지와 구단의 뜻이 어긋나자 다년계약을 해 줄 다른 팀을 찾았다. 그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 외에 선뜻 나서는 팀이 없었기 때문에 원래 조건으로 내걸었던 연 7억 엔을 5억 엔으로 대폭 낮추고 요미우리로 이적한다.[2]

2008년 144경기 전 경기 출장에 45홈런, 338루타, 125타점, .319의 타율로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내며 부동의 요미우리 4번타자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장타력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 성공시대를 창조하는 이정표를 찍게 된다[3]. 이 해 센트럴리그 MVP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 라미레스의 이적으로 이승엽은 4번타자 자리를 내줘야 했고, 이후 이승엽의 부진이 계속되는 와중에 라미레스는 2008-2009년 2년 연속 연속 MVP를 차지하면서 21세기 요미우리를 대표하는 4번타자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2010년에 외국인 재적년수를 채워서 외국인 선수 제한에서 풀렸을 때 선수등록명을 라미짱 으로 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라 타츠노리 감독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정도. 그러나 구단측이 강력히 막아서 무산됐다.[4]

공인구가 바뀐 것이 원인인지 나이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2011시즌을 2할 7푼 9리 23홈런으로 마무리, 4년 연속 3할-30홈런 달성에 실패했다. 그래도 11년 연속 20홈런은 이어갔지만 수비 강화와 세대교체를 도모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측이 수비력에 문제가 있었던 라미레스를 결국 방출시켰고 라미레스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도 아직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를 갖춘데다가 연차가 차서 일본인 선수 취급을 받아 용병 선수 제한을 받지 않으므로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리그에서 콜이 올 수 있다는 예상이 있...

2.3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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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는데, 주포 3루수 무라타 슈이치가 FA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건너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에서 공격력 보강 차원에서 라미레스를 영입했다. 비록 FA로 풀린 선수들을 서로 영입한 거지만 묘하게 트레이드를 한 셈이 돼버렸다.[5] 어쨌든 2012 시즌부터는 인터뷰도 일본말로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고 덤으로 라미짱을 등록명으로 하는 것도 가능할 듯? 하지만 등록명은 그대로 본명대로 유지되었다.

2012년 5월 17일 친정팀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미-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그리고 2013년 4월 6일, 원래 친정팀(...)인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일본프로야구 외국인선수로서는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였다.[6] 1656경기 만에 2000안타를 달성한 것은 '타격의 신' 카와카미 테츠하루 이후 두 번째로 빠른 페이스라고. 또한 통산 2000안타를 달성으로 일본프로야구 레전드들의 모임인 명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가입했다. 일본프로야구를 존중하며 열심히 뛴 덕택에 이견 없이 명구회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2할대를 쉬이 넘기지 못하는 부진한 타격을 보이면서, 나이저 모건이나 타무라 히토시 등에 밀려 거의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2013년 9월 27일, 전력외 통보를 당하며 방출당했다.

2.4 은퇴

2014년에는 독립리그 팀인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에서 플레잉코치로 뛰었다. 2014년 4월 7일에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지명타자로 영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10월 14일, 라미레스는 구단을 통해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이후에는 오릭스 버팔로즈의 어드바이저로 활동하였으며, 2015년 10월 19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제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로서 일본프로야구 팀의 감독이 되고 싶다던 꿈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2016 시즌 개막 후 초반 성적은 신통치 않은 편. 믿을만한 선수들이 원체 부족한 게 요코하마의 팀 사정이라지만, 아직 초보 감독으로서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후 안정된 투수력, 츠츠고 요시토모가 대폭발한 타선의 힘을 앞세워 급격히 반등하며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리그 3위를 달리는 중. 그러나 현재 센트럴리그 2~6위팀이 1,2승 차이로 팽팽한 상태이므로 아직 방심은 금물이다. 당장 지난 시즌도 전반기 끝났을땐 A클래스였다. 그래도 팀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높게 평가되어 연임이 결정되었다.

9월 중순인 현재 4위 야쿠르트와 4경기 차 3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10년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9부 능선을 넘었다. 9월 19일 센트럴리그 우승팀 히로시마와의 홈경기에서 3대 1로 승리, 2005 시즌 이후 11년만의 A클래스 확정[7] 및 창단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기세를 타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센트럴리그 2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2승 1패를 기록하며 팀을 히로시마 도요 카프과의 파이널 스테이지로 이끌었다. 그러나 히로시마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1승4패로 패하며 일본시리즈 진출엔 실패하며 시즌 종료. 하지만 그동안 가을야구는 커녕 최하위나 밥먹듯 찍던 팀을 이 정도로까지 끌어올린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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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특한 홈런 세레모니가 인상적인 선수. 일본 진출 첫해부터 꾸준히 매년 레퍼토리를 바꿔왔다. 세러모니 소스는 일본 유명 게닌들의 동작들. 2001~2002년까지는 1개의 모션만 취했지만 이후 2-4개로 늘어났다. 각 모션은 각기 다른 코미디언들로부터 차용한 것으로, 이들 동작을 연결하여 연속으로 취한다. 홈경기에는 팀의 마스코트와 함께 세레모니 액션을 취하고, 원정에서는 혼자 한다. 요미우리로 와서는 팀이 이기고 있을 때와 리드당하고 있을 때의 세러모니를 각각 다르게 하고 있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자 일부 연예인들은 자신의 액션을 라미레스가 차용해 주기를 공개적으로 요청한 적도 있다. 구단이 팬 기고로 세러모니 아이디어를 모집하기도 했다.
홈런 세레모니의 영향으로 타석에서 위협구 세례를 끊임없이 받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세레모니를 했다. 위협구가 날아와도 절대로 안 뛰쳐나가고 허허 웃고 가는 걸로 유명하기도 한데, 타이론 우즈를 필두로 한 외국인 선수들 중 상당수가 심리전의 일환 겸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위협구나 도발이 나올 경우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지던 때라 희귀 케이스로 주목받았다.
  •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꿈은 언젠가 일본 프로야구 감독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일본 성공 비결을 '일본 야구를 존경하고, 동료들을 많이 사귀고, 신문을 통해 상대 선수들의 자료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9년 8월 경에 '일본에서 성공하는 법'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라미레스의 태도답게 47세까지 야구를 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 타석에서는 매서운 눈빛을 보이지만, 평상시에는 매우 온화한 신사라고 한다.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더그아웃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며, 요미우리에 온 지 1년만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기무라 타쿠야, 사카모토 하야토 등과 함께 자주 밥을 먹으러 다닌다는 것을 보면 인간관계 형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 2009시즌에는 이승엽 앞에서 자주 아웃되어 광고소환 잔루를 많이 남기거나, 느린 발 때문에 이승엽의 타점을 날려먹는다는 이유로 소위 승빠라 불리는 이승엽의 극성 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엽과 라미레즈의 사이는 정말 좋아서 둘 중 하나가 홈런을 치면 같이 세레머니를 했다. 아마도 라미레즈가 꼬드긴 걸로 보이는데 이 두 사람은 외국인 선수 주제에 원어민 뺨치는 일본어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일본 선수들을 많이 당황하게 했다고.
  • 로베르토 페타지니처럼 아주 연상의 부인이 있다고 하는데 그 부인이 전 남편에게서 얻은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자식을 낳아서 할아버지라 불러야 할지 미묘해지게 생겼다. 괜찮아. 페타지니는 친구를 아들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공교롭게도 이 둘은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동시에 중심선수로 활약한 시기가 있다;
  1. 일본프로야구 전체로서는 스즈키 이치로, 아오키 노리치카에 이은 3번째.
  2. 아울러, 절친했던 후루타 아츠야 감독의 퇴진도 이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3. 정확히는 장타력 자체가 늘었다기보단 홈런이 잘 나오는 도쿄돔을 홈으로 사용하는 요미우리로 팀을 옮기면서 장타가 늘어난 것으로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다. 역시 돔런(...) ~~하지만 메이지진구 구장도 큰 건 아닌데?
  4.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프로야구 팀 중에서도 꼴통보수적인 구단으로 유명하다. 외국인 선수는 일본어 실력에 관계없이 통역을 필수로 붙이는데, 성실한 성격에 일본어도 잘 구사하는 라미레스나 이승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외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는 닛폰햄 시절 줄곧 길러왔던 수염을 요미우리에 와서 깨끗히 밀었고, 오오무라 사부로는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부터 10여년 이상 써왔던 가타카나 등록명(サブロー)을 요미우리에 와서 버려야 했다.
  5. 요코하마는 이전에도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주전 포수 타니시게 모토노부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주니치의 전 주전 포수였던 나카무라 타케시를 영입한 적이 있었다.
  6. 참고로 알렉스 라미레스 이전에 외국인 선수 최다 안타를 기록했던 이가 바로 하나둘셋이야! 라지에다가 터졌어!그 분. 20시즌 동안 1831안타를 기록했다.
  7. 단 2005년에는 센트럴리그에 아직 플레이오프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서 가을야구는 치를 수 없었다. 옆동네 2위팀 롯데는 일본시리즈 올라가서 33-4까지 이룩했는데... 안습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