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프트

1 영어단어 draft

명)초안 동)초안을 짜다
명)선발 동)선발하다

'징병하다'라는 뜻도 갖고 있어서 징집병으로 입대한 경력이 있는 군필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영문 의미상으로는 드래프트를 여러번 겪은 것이 된다(...)

2 스포츠 용어

2.1 개요

드래프트는 스포츠에서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로 전환할 때 거치는 일반적인 선수 지명 방식 중 하나로 일반적인 자유계약제의 문제점인 돈 많은 팀이 유망주를 싹쓸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해 프로 계약을 원하는 모든 선수를 드래프트 대상으로 지정한 뒤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정해진 인원을 선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진행 방식은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팀당 일정 횟수의 기회를 주고 팀별로 돌아가면서 선수를 지명하는 것이다. 신인 선수만이 아니라 리그의 특정한 상황에 따라서 기존 선수를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쓰기도 한다. 가령 리그에 신생팀이 들어온 상황에서 신생팀 선수 수급을 위한 확장 드래프트 혹은 KBO의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 따위가 이 같은 경우.

드래프트제는 헌법에서 명시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프로와 아마추어간 협약과 선수의 신분에 대해 당사자가 모두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이를 미국에선 Collective Bargain Agreement, 약칭 CBA라고 하며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매년 노조와 사측이 벌이는 노사협상을 말한다. 이 협상 합의문이 없으면 리그는 돌아가지 않는 직장 폐쇄상태가 되며 드래프트, 웨이버 공시, FA 제도등 리그 내 모든 선수 신분 관련 규정은 저 CBA 문서가 없는한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CBA를 갱신하는 연도(리그 별로 다르나 보통 5~6년 정도가 갱신 주기)가 다가오면 매년 선수협과 구단주 연합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몫을 더챙기기 위해 단체행동을 하고 파업이나 리그 스케줄 지연등의 사건이 생긴다.

이런 규정이 없는 유럽 스포츠리그에는 드래프트가 없으며, 주로 미국식 폐쇄적 독립 리그 체제에서 사용한다. 따라서, 아마추어 선수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드래프트를 거부할 권리를 갖는데 이 경우는 그 리그에 들어오지 못하는 제재를 받게 된다. 물론 타 리그에서 뛰는 걸 막진 못한다. 한국 리그는 아마추어선수층이 얇다는 이유로 졸업생 전원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드래프트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사정상 그냥 눈감아주고는 있지만 문성민 등의 사례때문에 이미 여러번 문제가 된 적이 있으며 드래프트를 거부할 권리가 분명히 있음에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2 특징

드래프트의 장점이자 주요 목적은 기본적인 선수자원 보호 및 위에 언급한 돈 많은 팀의 유망주 싹쓸이 방지, 역으로 아마추어 선수의 몸값 조정 등이다. 드래프트의 중요한 순기능 중 하나는 하위팀의 전력보강기회 제공이다. 이 때문에 드래프트 순위는 주로 성적의 역순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1]

반면 드래프트의 문제점은 매년 들어오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재능이 일정치 않다는 것. 가끔 별볼일 없는 신인들만 오게될 때도 있지만, 어느 해에는 압도적인 신인이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선수가 드래프트 대상으로 나올 경우 몇몇 하위팀이 그 선수를 얻기 위해 노골적인 탱킹(tanking)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NBA의 르브론 제임스나 한국 여자배구의 김연경, 김민지, MLB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브라이스 하퍼 같은 초특급 유망주가 나올 경우. 이들은 모두 소속팀이 전 시즌에 연패행진을 거듭해서 쟁취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이 탱킹의 존재는 반대로 장점으로도 작용하는데, 그런 팀의 수치를 넘어서 이런 초특급 신인을 뽑으면 팀은 이 선수들을 육체적으로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27세 정도의 나이까지 리그에서 정한 최소한의 연봉만 주고 부려먹을 수 있다. 유럽축구계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앙토니 마르시알처럼 20살도 안된 상위리그 검증이 안된 어린 유망주를 단지 가능성만 보고 타팀에 뺏기지 않기 위해 수천만유로의 이적료와 연봉을 주면서 먼저 질러야하는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 둘다 맨유인건 기분 탓이다. 언급한 선수는 사실 극소수의 대성공 케이스일뿐 돈값을 못한 선수라면 팀에 미치는 금전적 피해 수치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수준이며 이런 선수들은 대부분 먹튀항목에 이름을 올린다. 이런 드래프트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자유계약 스포츠시장의 이면에는 온갖 이면계약,뒷돈이 난무하는 복마전이 되기 쉽다. 지금도 중고교 운동선수 스카웃 등에서 학교 지원금[2], 졸업생 끼워팔기 등 수많은 비리가 일어나고 있다. 즉, 드래프트제는 독립 리그로 뭉친 프로팀간의 연합을 통해 신인 유망주들의 제멋대로인 시장 가격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 당연하지만 독립 리그 제도로 뛰는 미국,일본,한국등의 스포츠리그에서는 팀의 전력을 강화하기위해 돈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드래프트로 신인을 골라내는 것.[3]

이때문에 피지명되는 선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금전적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MLB의 인터내셔널 FA나 포스팅 시스템제도처럼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입단이 가능한 선수가 있다면 이 선수들은 최소연봉제에 묶이지 않고 거액을 따낼 수 있으니 더더욱. 게다가 드래프트 제도 자체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 받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팀으로 가기 싫어서 징징을 시전해서 계약에 난항을 겪거나 아예 입단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존 엘웨이, 일라이 매닝. 야구에서는 前 보스턴 레드삭스 외야수 J.D. 드루의 경우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받았다가 지명을 거부하고 독립리그에 입단했다가 1년뒤 드래프트를 재수하는 당시로써는 충공깽스런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 은퇴할때까지도 필라델피아 원정만 오면 무시무시한 야유를 받는다. 한국에서의 드래프트 거부 사례는 프로축구의 김종부,박주영이나 남자 배구의 이경수등 버라이어티한 사례들이 많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목표로 하여 드래프트를 거부한 초노 히사요시, 스가노 도모유키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NBA나 NHL같은 리그는 위의 탱킹을 방지하기 위해 드래프트 로터리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자동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일정 수의 팀에 전체 1번 픽의 확률을 차등으로 부여하고, 드래프트 전에 추첨을 통해 1, 2, 3순위를 뽑아서 순위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꼴찌를 하기 위해 져주기 게임을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NBA에서는 1985년 드래프트에 최초로 시행이 되는데, 이 제도를 통해 특급 유망주들이 간혹 처음부터 빅마켓 팀에 가는 경우가 나오곤 한다. 예를 들자면 최초로 시행됐던 그해에 최대어 패트릭 유잉이 당시 꼴찌가 아니었던 뉴욕 닉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2008년에는 1.17%라는 낮은 확률을 뚫고 시카고 불스가 1순위를 따내서 데릭 로즈를 얻게 됐다.

그렇다고 해도 확률이 차등이기 때문에 대부분 NBA 전문가들은 로터리 1위 경쟁팀이 되면 자기동네 응원팀이라도 그냥 연패해서 로터리 확률이나 높여라 할 정도다. 문제는 그럼에도 이 로터리에 대해 뒷담화나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NBA가 특급 신인을 빅 마켓에 보내 (프랜차이즈) 스타로 만들려고[4] 로터리 추첨을 조작한다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근거는 전혀 없다.

2.3 이야기거리

  • 몇몇 해들은 정말 뛰어난 재능들이 몰리기도 하고[5] 몇몇 해는 그야말로 흉작으로 꼽히기도 하는 등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는데, 그중에서도 특정 몇년은 이름이 붙을 정도로 특이한 경향성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런거 잘하는 것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이다. 1999년 드래프트는 일명 조시 드래프트라고 불리는데 조시 베켓조시 해밀턴이 그 해 투타 최대의 유망주였기 때문인데, 3년 만인 2001년 드래프트는 다시 마크 드래프트라고 해서 마크 프라이어마크 테세이라가 투타 최대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전체 1순위는 조 마우어였다는게 함정. 2002년 드래프트는 잭 그레인키, 프린스 필더 등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 많은 해였지만 그런거 없이 빌리 빈이 자신의 방식으로 선수를 영입한 일명 머니볼 드래프트로 유명하다. 이런 것은 드래프트 단계부터 유망주 선수들의 홍보를 하는 수단이기도 해서, 각종 스포츠 팬들은 이런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아우성이지만...

  • NBA의 경우 농구라는 종목 특성상 드래프트 상위픽이 슈퍼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서[6], MLB 이상으로 드래프트를 포장하고 특히 각 해의 1번픽 예상 선수들은 근 1년 전부터 언론과 전문가들이 금칠을 해주는데, 이 포장질의 절정이 고 1때 부터 무려 3년간 포장을 해줬던 르브론 제임스. 그러나 르브론이 데뷔했던 2003년은 1984년[7], 1996년[8][9]과 함께 느바 역사상 3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드래프트로 꼽히는 해[10]라 무턱대고 르브론만 띄워 줬던 것은 아니고 다른 선수들도 굉장히 주목을 받았다. 1번픽 외에는 볼 것 없어서 대놓고 선수 이름 드래프트로 꼽혔던 케이스 중 대표적인 것이 1997년의 팀 던컨 드래프트.

또한 드래프트의 중요성 때문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이 희박한 하위권의 경우 팀 운영을 일부러 개판으로 하는 이른바 탱킹을 시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위에 언급된 르브론 제임스를 뽑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2002-03시즌 당시 공동 꼴찌를 기록한 덴버와 함께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개판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또한 1983시즌 후반에 기괴할 정도로 연패를 거듭한 휴스턴 로케츠 역시[11] 탱킹이 의심되는 팀이었고,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 하위 7개팀 들 사이에서 1~7순위를 정하는 로터리 제도이다. [12]

추가로 NBA의 경우 자동 참가라고 해서 신청을 하지 않은 선수들도 일정 자격을 갖추면 자동으로 지명 대상이 되어 선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명될 수 있다. 그 자격요건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인 선수의 경우
    • 1. 4년간 대학에서 뛰었을 것.
    • 2.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미국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을 경우, 고교 졸업 이후 4년이 지났을 것.
    • 3. NBA 외의 프로리그 팀과 계약을 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 외국인 선수의 경우
    • 1. 드래프트가 열리는 해 기준으로 만 22세 이상일 것.[13]
  • 2. NBA 외의 미국 리그의 프로팀과 계약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당연하지만 뽑혔다고 해서 강제로 NBA끌려와 뛰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선수가 훗날 NBA에서 뛰기로 마음을 먹었을 경우에는, 그를 지명한 팀이 그를 트레이드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이 팀과 계약을 해야한다. 추가로 NBA팀 입장에서는 "데뷔 안한 선수에 대한 권한" 역시 자산으로 취급되어 트레이드할 수 있다.

이 드래프트 대상자 조항은 수십년간 계속해서 수정이 되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정말 생뚱맞은 선수들도 뽑히곤 했다.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등이 뽑힌 전설의 1984년 드래프트에서는 조던을 3번픽으로 뽑은 시카고 불스가 208번픽으로 육상선수 칼 루이스를 뽑기도 했는데 황당한 건 루이스는 정식농구 경력이 없었다는 점. 당시 시카고 불스에서 서부 지역 스카우트 팀을 이끌던 론 와이스는 "남아있던 선수 중 최고의 운동선수라서 뽑았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루이스는 NBA에서 뛰지 않았다. 재밌는건 NFL드래프트에서도 12라운드에 뽑혔다는 점.

루이스의 순위를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당시만 해도 NBA는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인을 드래프트로 뽑았다. 팀이 겨우 23개인데 10라운드까지 진행되서 매년 200명 내외가 지명될 정도. 과거엔 이 라운드수가 왔다갔다했는데 1960년과 1968년에는 무려 21라운드까지 간 적도 있었다. 당연히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들은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었고 이 때문에 9,10라운드까지 가면 뛰지않을게 뻔한 선수들도 종종 지명되곤 했다. 1977년에서 뉴올리언즈 재즈는 루이자 해리스를 7라운드 137번픽으로 지명했는데, 그녀는 NBA에서 사상 최초로 "공식 지명"된 여자 선수였다. (1969년에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즈가 데니스 롱을 지명했지만 리그가 이를 무효화했다) 당시 시대상으로 보나 남녀 사이의 수준차로 보나 그녀가 NBA에서 뛰는 건 불가능했다.

가끔 하위 라운드 출신 중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었는데, 1979년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3라운드 65번으로 뽑힌 빌 레임비어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트래이드된 후 훗날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로 탁월한 커리어를 보냈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더티 플레이어로도 유명하다. 탁월한 득점력과 무표정한 얼굴로 유명한 "Iceman" 조지 거빈 역시 3라운드 출신이다.

1985년에는 7라운드로 줄어들고 1989년에 현행 2라운드로 정착이 되면서 지명자 수는 훨씬 적어졌지만 일단 지명된 선수들은 거의 안전하게 계약을 하게 되었다. 90년대에 선수노조와 구단주들이 협상한 결과에 따라 1라운드 지명선수들은 전원 계약을 보장되며 지명순위에 따라 계약액수가 정해지게 되었는데, 규정상 보장은 아니더라도 2라운드 선수들도 대부분 관행에 따라 최소 2~3년의 최소연봉으로 계약을 한다. [14]

2.4 한국의 드래프트

2.4.1 프로농구

1996년부터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역대 국내선수 드래프트 현황은 당 사이트를 참조하길 바란다.

프로농구는 발족서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드래프트를 여러번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였다. 외국인 선수를 자유계약할 경우 생기는 이른바 뒷돈문제를 고려해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를 드래프트로 선발했다가 잠깐 자유계약으로 전환했더니 예상대로 뒷돈문제가 터지면서 드래프트제로 환원. 그 외에도 귀화선수 특별 드래프트등 드래프트가 자주 열린다.

2.4.2 프로배구

배구리그의 팀 간 계약 관행과 여러 이권 다툼으로 드래프트에 관련해서 가장 파행이 잦았던 리그중 하나다.
실질적 드래프트는 2000년부터 시작되었고 중간에 한양대학교 소속 이경수 선수 스카우트 파동으로 중단된 적도 있다. 여자배구리그에서는 1순위 선수를 위한 탱킹까지 발생한데다 대한배구협회와 KOVO의 갈등으로 인해 몇 번이나 파행운영을 겪는 등 드래프트가 아직도 제대로 자리 못잡은 리그이다. 지난 2009년 드래프트에서도 대학 3학년 마치고 얼리엔트리로 프로에 참가하려던 한양대학교의 거포 박준범[15]을 우리캐피탈의 유망주 싹쓸이[16]를 이유로 나머지 구단이 반대해 드래프트가 파행을 겪는 등 좀처럼 구단과 협회, 선수간의 알력싸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나마 2012년 이후부터는 매 시즌 조변석개하는 농구보다는 제도가 무난하게 굴러가는 상황[17]이라서 그런지 문제가 별로 안보이는 편. 얼리엔트리도 확장되어 대학 2학년뿐 아니라 고등학생(2013년 입단한 대한항공의 정지석이 박철우 이후의 첫 고졸 입단이다.)도 참가할 정도로 폭이 넓어졌다.

방식은 추첨제+역순위의 혼합이다. 전체 1~3순위는 전 시즌 리그 최저 순위 3팀이 각각 1순위 지명확률 50%, 35%, 15%로 나눠가져서 구슬 뽑기로 순서를 정하고, 이 순서에 따라 드래프트가 ㄹ자로 진행된다.

유독 지명권 양도 논의가 많은 종목이다. 즉, 마일영의 케이스가 많다는 소리다.

  • 11-12시즌 현대캐피탈과 드림식스의 송병일, 이철규 ↔ 2011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 맞교환 시도[18]
  • 12-13시즌 도중 변경된 삼성-드식간의 최귀엽+2013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 ↔ 4억 5천만원[19]
  • 2013 드래프트 직전 도공-인삼의 이재은, 이보람 ↔ 차희선, 2013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양도[20]
  • 13-14시즌 종료 후 한전-삼성의 곽동혁 ↔ 2014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21] 양도
  • 15-16시즌 도중 대한항공-한전의 강민웅, 전진용최석기, 2016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양도

2.4.3 프로야구

2.4.4 프로축구

1988년부터 드래프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월드컵등을 통해 해외리그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자유로운 시장계약방식으로 돌아가는 해외리그에 선수 유출이 시작되면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단되기도 했었다. 김동현, 박주영 계약파동으로 2006년부터 드래프트가 재개되었지만 위의 이유로 야구에 비하면 드래프트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거센 편. 게다가 소위 루키라 불리는 어린 신인의 데뷔를 막는 제도이기도 하다. 유럽권에서는 실력만 인정 받으면 고등학생의 나이에도 데뷔전을 치르며 경험치를 쌓을 수 있지만 K리그는 드래프트 제도로 인해 어린 선수들의 계약이 막히는 경우가 발생한다(그런데 이는 드래프트나 노동법의 문제가 아니라 학원축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2014년 12월을 화끈하게 달궜던 황희찬 사태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프로축구연맹도 장기적으로 드래프트를 폐지한다고 한다.

지명순위별로 연봉 상한선과 의무 계약 기간이 존재하는데 연봉 상한선도 낮은편인데다가 의무 계약도 4년이었고, 계약금도 없었기 때문에[22] 많은 유망주들이 낮은 연봉으로 인해 해외로(특히 J리그) 나가게 하는 결정적인 빌미가 되고 있다.(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유망주가 망가진다.) 그때문에 계약금에서 일부 금액을 지급받는, 일명 선수장사를 하는 대학팀 감독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23]그리고 드래프트를 반대하는 축구팬들조차 이들은 까임의 대상이다. 거기다 김종부 파동+김동현 파동+박주영 파동. 드래프트 부활에는 대학팀(고려대)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6년 드래프트 재개에 큰 목소리를 낸 시민 구단들 역시 최근에는 드래프트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배기종이나 염기훈과 같이 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실력있는 선수는 결국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아직 쓸만하지만 수도권팀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은 베테랑과 조금 실력이 떨어져도 꾸준하고 충성심이 있는 유망주와 선수들, 그리고 용병대박위주의 운영을 많이 고려하고 있다.

다른 종목에서 멀쩡하게 돌아가는 드래프트가 축구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건 다른 국가의 리그와의 선수 이적이 적거나 거의 없다시피한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축구는 다른 국가의 리그들과 치열한 경쟁체제에 있다는 점이 크다. 한국에서 좋은 신인이 나오면 한국 축구팀들만 그 신인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 더 넓게는 중동이나 유럽에서까지 관심을 보이니 드래프트와 같은 선수에게 불리한 제도를 제시할 경우 선수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가 힘들다. 선수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데 연봉도 적고 자신이 원하는 팀을 정할 수도 없는 드래프트는 당연히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드래프트라는 방식은 위에도 서술되어있듯 폐쇄적인 미국식 스포츠 리그에 적합한 방식이며(메이저 리그 사커는 드래프트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선수 이동이 일어나는 축구에는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전년도 성적에 따라 지명권을 주는 드래프트 방식으로는 1부리그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만한 선수가 2부리그에서 가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고찰만 해도 신인선수들에게 얼마나 불합리하게 다가올 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때문에 2012년 승강제 도입에 맞춰 매년 자유선발 선수를 1명씩 점진적으로 늘리되, 2016년에는 드래프트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하였다. 우선지명 방식을 병행하여 운영하는 기존의 방침에 2013 K리그부터 드래프트에 앞서 자유선발 방식을 도입한 것. 자유선발 인원은 2013년도에는 자유선발로 각 구단이 한명씩 계약할 수 있으며, 2014년도에는 둘, 2015년에는 셋, 2016년도에는 모든 신인을 자유선발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 2016년 이전에 프로리그에 합류하는 신생구단은 자유선발 선수 제한이 2015년까지 5명씩 할 수 있도록 하여 구단의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완전 자유선발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다.

2.4.5 e스포츠

2005년부터 실시되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 참가하는 10개팀이 커리지 매치를 통과해 프로게이머 자격을 갖춘 선수를 지명해 계약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0개팀이 각각 아마추어, 준프로 선수들의 풀이 별개로 존재하고 굳이 남의 팀 연습생을 빼갈 정도로 연습생 확보 경쟁이 이뤄지는 곳이 아닌지라(이영호가 유일하게 문제가 됐던 케이스) 드래프트가 크게 전력강화의 목적이 아니다.

카트라이더 리그 또한 2014년부터 드래프트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매 리그별로 8개의 레이싱팀[24]이 참가하여 선수를 뽑는다. 2014년에 열린 리그에서는 8개 팀이 1차~4차, 1순위~8순위로 한 명씩 선수를 뽑았으나, 2015년 이후 선수들이 미리 팀을 짜면 카레이싱팀이 그 팀을 통째로 드래프트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드래프트가 사실상 거의 무의미해졌다.[25] 특이한 점은 특정 선수의 소속 팀은 리그 기간동안만 적용되며, 리그가 끝날 시 그 팀은 해체되고 다음 리그에서는 새로운 팀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모든 참가자 중 자율로 드래프트하는 것이 아닌, 드래프트 전에 따로 대회를 열어 뽑은 32명 중에서만 드래프트를 하는 방식이다.

2.4.6 프로바둑

2004년 한국바둑리그가 출범한 이후 드래프트를 시작한다. 한국바둑리그의 특이한 점은 스폰서팀만 고정이고 나머지 연고지와 선수는 매년 드래프트로 정한다는 것. 따라서 한 선수가 한 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소속팀과 연고가 바뀔 수 있다. 매년 선수가 바뀌지만, 2007년부터 최규병 감독이 이끄는 영남일보팀이 3년 연속 한국바둑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3년 연속 영남일보팀에 뽑힌 김지석 6단이 MVP를 2회 수상하는 등 한국바둑리그의 에이스로 군림하고 있다. 예전에는 예선전과 랭킹을 따져가며 추려서 선수를 선발했으나 최근엔 한국기원 소속기사들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전면 드래프트로 선수를 선발하고 있고 2015시즌 부터는 보호선수 규정이 확대되면서 5명까지 선수를 보호할 수 있도록했다.

2.5 특별 드래프트 사례

2.6 괴담

드래프트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그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때문에 드래프트에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들이 많으며, 일부는 괴담을 넘어 징크스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 NBA의 2, 3번픽 징크스 : 1984년 드래프트에서 일어난 샘 보위와 마이클 조던의 사례로 너무나도 유명한 케이스. 유독 2번픽 선수가 3번픽 선수에 비해 실패확률이 높은 징크스를 말한다. 그리고 이는 2003년 다르코 밀리시치와 카멜로 앤써니를 통해서 재현된다. 이는 이후로도 드래프트때마다 선수의 전체적 재능과 팀의 필요(특히 포지션 문제)가 충돌할때 어떤 쪽을 택하는 것이 정답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쓰인다. 대부분 2번픽 선수가 실패하는 이유가 드래프트 당시 팀의 필요를 우선시[26][27] 하면서 재능이 떨어지는 선수를 뽑아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심지어 1, 2번픽에서도 발생한다. 24년이 지난 뒤 또 센터가 필요했던 포틀랜드가 케빈 듀란트대신 희대의 유리몸 그렉 오든을 전체 1번으로 뽑으면서.(…) 다만 밀리시치, 부위의 케이스와는 달리 오든은 드래프트 당시만 해도 재능도 듀란트보다 더 위면 위였지 아래는 아니라고 평가받았다. 물론 오든이 듀란트보다 높게 평가받은건 이게 마지막이다.
  • NBA의 6번픽 필패 징크스 : 1978년 래리 버드가 전체 6번픽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뒤[28] 그 이후 NBA에서 전체 6번으로 입단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망했다. 그보다 높은 픽의 선수들도 망할수 있는게 거친 프로세계지만 1988년 6번 허시 호킨스, 2001년 6번 셰인 베티에같이 괜찮은 선수정도로 남은 것이 그나마 선방이고 드라마틱하게 망한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심각한 유리몸으로 전락하거나 반쪽 주전, 심지어는 잘 뛰다가 멘탈이 망가지면서 훅가는 선수(ex:앤트완 워커) 등 유독 안좋게 망하는 사례가 잦아서 거의 징크스 수준까지 올라갔다. 거기다 2006년 전체 6번픽으로 지명된 후 신인상 수상 및 3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며 맹활약해 6번픽 징크스를 깨줄거라 믿었던 포틀랜드의 브랜든 로이도 무릎 부상때문에 조기은퇴 크리를 맞고 6번픽 징크스는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2012년 6번픽 데미안 릴라드가 13년 신인상을 수상하는데... 아까부터 유난히 포틀랜드가 많이보이는데 기분탓이겠지
  • 주사위 징크스 - 드래프트 순위와 직접 연관이 있는건 아니지만, 과거 프로야구의 1차지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 OB 베어스에 존재했던 안습의 징크스. 잠실 라이벌이었던 OB 베어스와 LG 트윈스는 연고가 서울로 같기 때문에 1차 지명할 유망주가 서로 겹칠경우 주사위로 우선순위를 정했었다. 1991년부터는 1차 지명이 팀당 1명으로 줄었기 때문에 서울에 대어급 선수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주사위승부를 해야했다. 그리고...두산은 주사위게임에서 매년 졌다. 이때문에 두산이 원하는 선수를 LG에게 줄줄이 뺏긴 안습의 역사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실시리즈 항목 참조.

2.7 기타

2014년 NFL의 신인드래프트를 소재로 한 영화 '드래프트 데이'가 개봉하였다. 주연은 케빈 코스트너.

스포츠가 아닌 분야에서는 일본의 아이돌그룹 AKB48이 드래프트를 실시한다. 자세한 것은 AKB48/드래프트항목 참조.

WWE에서는 RAW와 SMACKDOWN 둘로 나뉜 후 간혹 드래프트를 터트렸다가 이후 흐지부지 로스터를 통일했다. 2016년 7월달 다시금 드래프트를 통해 로스터가 나뉘어졌다.

3 트레이딩 카드 게임의 룰 중 하나

즉석에서 확장팩을 뜯어 나온 내용물로 덱을 구성해서 플레이하는 룰이다.

물론, 확장팩의 내용물은 랜덤이며 다른 세력(색, 타입, 클랜 등)의 카드들이 섞여 있으므로 부스터의 내용물 중 원하는 카드를 순서대로 골라서 분배하는데 이 규칙의 상세는 게임 종목이나 부스터의 구성 등에 따라 다르다. 매직 더 개더링 같은 경우 대지(자원) 카드는 따로 준비된 것을 사용한다.
  1. 최초 도입은 미국 미식축구 NFL이다. 1950년대 각 구단별 재정의 불균형 때문에 불과 10여년 사이에 50여개 팀이 사라지는 막장사태를 경험하고 나서 팀간 전력평준화를 위해서 성적역순에 따른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하였다. 동시에 도입한게 엄격한 하드샐러리캡(연봉총액제한)과 이익공유제(모든 구단 수입의 40%를 리그 사무국이 일괄 징수해서 전 구단에 균등하게 분배). 이 3가지 제도로 NFL은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치열한 경쟁으로 전 구단 흑자라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달성했다. 이는 전세계 프로스포츠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
  2. 대학에 지원금이 몰리면서 초,중,고등학교들은 불만이다.
  3. WAR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세계의 야구재능이 몰려드는 메이저리그 야구조차 자유계약시장에서 1년에 WAR 1을 더 올리려고 지출하는 연봉은 600만 달러가 넘는다. FA 제도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도 그만큼 가성비는 신인과 비교가 되지 않으며 절대다수, 아니 모두가 빠른 시기내에 DTD를 겪는다.
  4. 실제로 NBA는 스타 선수에게 원소속팀이 다른 팀보다 유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할수 있는 규정이 있다. 일명 designated player rule.
  5. 대표적으로 NBA의 1984년 드래프트 1라운드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입이 쩍 벌어지는 신인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일단 대표적으로 아직까지도 농구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 정도인 슈퍼스타인 마이클 조던을 포함하여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등이 쏟아져 나왔으며, 그리고 이 선수들은 지금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는 레전드 선수들이 되어있다. 그 외에 NFL의 1983년 드래프트 1라운드나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등이 등장한 2003년 NBA드래프트가 손꼽히는 대형 드래프트.
  6. 농구는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의 영향이 거의 절대적인 스포츠로 뽑힌다. 반면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의 영향이 보다 적은 야구의 경우 1라운더 조차 메이저로 콜업될 확률이 절반도 안될 정도. 여담이지만 농구에서 야구와 같은 팜시스템이 정착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대로 신체능력이 절대적이다보니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들은 벤치롤이라도 맡는게 보통이지, 경험을 위해 하위리그에서 뛰는 경우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NBDL(현 D리그)가 출범하고 사실상 D리그와 연계가 된 NBA팀들은 자유롭게 선수이동이 가능하게 된 현 시점에도 신인들을 D리그에 보내서 경험을 쌓게 하거나 부상에서 회복중인 선수를 실전감각을 위해 D리그에서 뛰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7. 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가 1,3,5픽, 존 스탁턴 도 있었다.
  8. 앨런 아이버슨, 코비 브라이언트, 레이 알렌, 스티브 내쉬 등.
  9. 참고로 코비는 13픽, 내쉬는 15픽이었다.
  10. 1픽 르브론 제임스, 3픽 카멜로 앤서니, 4픽 크리스 보쉬, 5픽 드웨인 웨이드
  11. 당시는 동서부 컨퍼런스 꼴찌팀들 사이에서 동전 던지기를 통해 1,2순위를 결정.
  12. 현재는 팀 수가 늘어나 14개팀이 로터리에 참여하며 승률별로 각자 다른 갯수의 탁구공을 넣은 추첨기를 통해 추첨한다. 당연히 꼴찌팀이 가장 많은 탁구공을 넣는다.
  13. 즉, 드래프트가 2015년 6월 25일에 열린다면, 201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만 22세가 되는 1993년 12월 31일생까지 자동 참가대상이 되는 것이다.
  14. 최소연봉은 연차에 따라 달라지는데 신인 최소연봉은 2014-15시즌 기준 507,336달러이다(한화 약 5억7천5백만원). 1라운드 지명 인원에게 추천되는 연봉기준은 Rookie scale이라고 하는데 동시즌 기준 1순위 467만 달러에서 마지막 30순위인 92만7천 달러까지로 나뉜다. 다만 꼭 이 액수로 계약해야되는 건 아니고 팀과의 협상결과에 따라 이 액수의 80~120%까지 받을 수 있다.
  15. 2012년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하여 영구제명당했다.
  16. 당시 한국전력도 준프로로 프로무대 참가를 한 마당이라 이로 인해 보강이 시원치 않기에 생긴 문제이다.
  17. 게다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창단 당시 드래프트에서 드식 창단 당시와 더불어 경기대학교 3인방의 얼리엔트리와 한국전력의 상황이 개판이라 또 파행이 나올 수 있었지만 당시를 반면교사 삼아 전체 1픽 지명권을 한국전력에 주고 그 이후 8명을 연달이 지명하는 방식으로 분란을 차단했다.
  18. 송병일을 먼저 드림식스로 보낸 다음 1년 뒤에 이철규를 보내고 지명권을 넘겨받는 형식이었다. 현대캐피탈은 이 지명권으로 최홍석을 지명하려고 했으나 이철규가 이에 반발하고 은퇴하는 바람에 지명권을 돌려주는 대신 박주형을 받았다.
  19. 원래 지명권 대신 민경환을 받았지만 숙소이탈과 드식 복귀를 요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민경환이 드래프트 당시 수련선수로 입단했기에 3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것으로 대체했다
  20. 이걸로 지명한 선수가 고예림이다.
  21. 센터 우상조를 지명했다.
  22. 2012년도 리그가 종료된 이후부터는 드래프트와 우선지명에 한해 3년부터 5년사이에서 선수와 구단간에 조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계약금에 대해서도 '계약금 우선지명 선수'와 '자유선발 선수'는 계약금을 설정하도록 되어 있다.
  23. 선수가 유스시절 이미 계약한 계약서의 우선협상권을 씹어버리고 자기가 보내고 싶은 구단으로 보낸게 한두번이 아니다. 대표적인 피해팀은 모두가 예상 가능하듯이 포항.
  24. 실제 프로 카레이싱팀!
  25. 왜냐면, 뛰어난 선수들이 자신들끼리만 팀을 미리 짜서 올라오고,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의 경우는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로만 팀을 짜서 올라가기 때문에 이미 팀 간의 밸런스가 매우 벌어져 있다. 따라서 1,2위로 우선순위를 얻은 팀과 7,8순위 등으로 밀린 팀이 경기를 할 경우, 6:0이나 6:1 등의 정규 리그 본선답지 않은 압살경기가 속출하고 있다!
  26. 그 문제의 1984년 드래프트때 하킴 올라주원은 전체 1위 지명이 확실했고, 센터보강이 절실했던 2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누구를 지명해야 되느냐라고 논란이 일었을때 일부 전문가들은 이렇게 답했다. 마이클 조던을 지명해 센터로 써라. 포틀랜드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스타들이 모두 얼리엔트리를 신청했으나 전체 1번픽이 대놓고 확정이었던 초대형 센터가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 선수와 하킴을 제외한 최고의 센터를 지명했던 거지만....
  27. 앞서 언급된 다르코 밀리시치와 카멜로 앤써니의 경우에도 84년과 거의 똑같은데, 다만 이 땐 2번픽을 가졌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파이널 우승을 노릴법했고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초 강팀이었음에도 트레이드를 잘해서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2번픽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미 완성된 팀에 굳이 옵션을 하나 더 추가하느니 상대적으로 높이도 낮고 나이도 있는 인사이드진에 유망주를 추가해서 그 선수가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하고자 하는 구단의 의도가 있었다. 물론 망했지만... 2009년 드래프트 전체 2번픽인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하심 타빗도 당시 잭 랜돌프라는 에이스 파워 포워드와, 마이클 콘리,O.J 메요,루디 게이라는 젊고 유망해보였던 1,2,3번 유망주를 보유했기 때문에 유일한 약점이었던 센터 자리를 보강하기 위해 지명한 프로젝트형 빅맨이었는데 정말 역대 최악의 2픽 수준으로 폭망하고, 3번픽이었던 제임스 하든이 올스타 가드로 성장하면서, 최근엔 팀 사정보고 키우지 말고 그냥 잘하는 놈 뽑아 쓰자는 분위기가 대세.
  28. 참고로 래리 버드는 애초에 78년 드래프트에 참가할지, 대학 4학년을 다닐지 선택을 못한 상태여서 다른 팀들이 계속 넘기다가 보스턴 셀틱스가 버드 정도의 재능이라면 당장 합류 안해도 1년 정도 기다릴 수 있다며 그냥 무대뽀로 지명한 케이스다. 버드는 결국 4학년을 마치고 셀틱스에 합류했는데 만약 버드가 드래프트에 참가하겠다고 했다면 78년 1번픽은 버드였을 것이고 4학년을 마치겠다고 했다면 79년 드래프트에서 평생의 라이벌 매직 존슨과 1,2픽을 나눠가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