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subishi Debonair / 三菱・デボネア
1 개요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인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1964년부터 1999년까지 생산한 세단이다.
2 역사
2.1 1세대 (1964~1986)
미쓰비시는 1960년대 초 후륜구동 방식의 2,000cc급 승용차 생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피아트의 준대형차였던 1800/2100 모델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도 검토되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따라서 미쓰비시는 자사가 독자 개발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차체는 모노코크 바디를 이용했고 소형차급인 5넘버 규격에 맞는 차체 크기로 설계되었다. 외관 디자인은 GM에서 일했던 한스 브레츠너(Hans Bretzner)가 맡았는데, 1960년대 당시 미국 세단의 스타일링을 적용했다. 엔진은 직렬 6기통 1,991cc KE64형 OHV, 1,994cc 6G34형 SOHC, 직렬 4기통 2,555cc G54B형 SOHC가 있었다.
1970년 9월부터는 128마력 1994cc 6G34 새턴엔진이 익스큐티브(Excutive) 트림 패키지 전용으로 제공되었으며, 그릴 디자인도 MCA-Jet 엠블럼을 추가하는 식으로 차별화시켰다. 1973년 10월에는 페이스리프트를 해 앞부분의 방향 지시등을 위로 올리고 크기를 줄였으며, 앞창문 쪽창을 삭제하고 ㄴ자 형상의 후미등도 직사각형 모양으로 바꾸었다. 1976년식은 수동변속기를 삭제하면서 보그워너(Borg-Warner)제 3단 자동변속기만 남았으며, 1976년 6월에는 2.6L 4G54 아스트론 엔진을 도입하면서 트림 패키지의 명칭도 "익스큐티브 SE"로 바꾸었다. 1979년에는 ABS를 추가했으며, 그릴 디자인도 다시 변경되었다. 1978년 4월에는 배기가스 규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술적인 변경이 있었고, 1986년 여름까지 큰 변화 없이 만들어졌다.
미국식 디자인을 적용해서 초반에는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으나, 1964년부터 1986년까지 총 22년 동안 디자인이나 기본 설계의 변경이 없었던 탓에 토요타 크라운 등 경쟁차량에 밀려 판매량이 떨어졌다. 하도 안 팔려서 미쓰비시 그룹 중역 전용 차량이라고 불리는가 하면, 단일 모델을 하도 오래 우려먹어서 달리는 실러캔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을 정도로 평이 좋지 못했다. 다만 저조한 판매량은 나름대로의 희소성을 낳기도 했다.
2.2 2세대 (1986~1992)
450px | 450px |
일반 모델 | AMG 버전 |
결국 미쓰비시에서는 22년 가까이 사골 신세를 면치 못했던 1세대를 대신할 신차를 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신차를 개발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컸던 탓에 당시 미쓰비시로부터 기술을 배우고 있던 현대자동차에 접근해 공동개발을 제안했다. 마침 현대차도 당시에 팔던 포드 그라나다가 끝물인데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의 고급차를 갖고 싶었고 결국 두 회사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져서 2세대 데보네어의 개발이 진행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현대차와 미쓰비시가 공동개발한 데보네어 2세대는 1986년 7월에 출시되었다. 이번에는 개발 비용을 줄이면서도 실내공간을 늘리기 위해 앞엔진 전륜구동 설계를 도입했으며, 엔진으로는 미쓰비시 최초의 V6엔진인 6G71 2.0L 및 6G72 3.0L 사이클론 엔진을 사용했다. 또한 이전처럼 일본의 5넘버 규정을 유지하는 선에서 차를 만들었는데, 2.0L 엔진 차량은 작은 범퍼를 장착해 5넘버 규정을 지키도록 했다. 트렁크 역시 새로운 설계를 도입해 골프백 2개를 넣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추었고, 1987년 기준으로 총 6230대를 판매해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크라이슬러 고급차와 디자인이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서스펜션으로는 앞바퀴에 개선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뒷바퀴에는 3링크 토션바 액슬을 사용했으며 4단 자동변속기만 제공했다. 한편 미쓰비시의 당시 협력업체인 현대자동차에서 이 차량을 "현대 그랜저"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1] 1987년 2월에는 2.0L 엔진에 슈퍼차저를 추가했으며, 세계 최초로 니들 롤러 록커 암을 사용했다는 의의를 남겼다. 또한 1987년 초반에는 데보네어의 스트레치 리무진의 주문을 받기 시작했으며, 미쓰비시에서 전장을 60cm 가량 늘려 수제작해 아이치(Aichi) 대리점 체인에서 판매했다.
2세대 데보네어는 V6 엔진을 장착한 첫 세대인만큼 "데보네어 V"라는 명칭이 붙었고, 보닛에도 V자 형상의 보닛 엠블럼이 장착되었다. 세대별 구분 역시 해외 차량들과 미쓰비시 스타리온 등의 최상위급 라인업에서 사용하던 로마 숫자 체계를 사용해 데보네어 I/II/III 등으로 불렀다. 1989년 가을에는 3.0L V6엔진에 트윈캠 구조를 추가해 밸브 수를 24밸브로 늘려 출력을 개선했다.[2] 2.0L 엔진 역시 트윈캠 구조를 추가해 16밸브 구조로 바뀌었고, 따라서 슈퍼차저 사양을 라인업에서 삭제했다.
1990년에는 훨씬 현대적인 미쓰비시 디아망떼(Diamante)가 출시되어 미쓰비시의 새 고급차 자리를 맡았는데,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한 고급차 시장의 성장으로 하여금 혼다 레전드 등의 다른 경쟁차들의 등장을 부추겨 데보네어도 서서히 구식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AMG[3]는 기본형과 전장을 15cm(150mm) 정도 늘린 데보네어 V 150 AMG가 제공되었으며, 후자는 3.0L 엔진 전용으로 1990년 10월에 공개되었다.[4] 한편, 영국의 고급 의류업체인 아쿠아스큐텀(Aquascutum)이 새 인테리어 패키지를 만들기 위해 접근했었는데, 이때 미쓰비시는 벌써 일본의 섬유업체인 리노운(Renown)을 이미 사들인 뒤였다고 한다. 리노운 인수 후 제작한 전용 인테리어는 슈퍼차저 사양과 같이 특수 트림 패키지로서 제공되었다. 1991년 5월에는 안전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해 페이스리프트를 했으며, 이때 세부 디자인을 일부 바꾼 뒤 V6엔진의 출력을 살짝 늘려 놓았다. 1992년 10월에 3세대의 등장으로 단종되었다.
"부의 상징" 타이틀을 달고 한국에서 엄청나게 팔려나갔던 그랜저와 달리 데보네어는 일본에서 판매가 부진했는데, 당시 토요타 크라운과 닛산 세드릭 등 경쟁차량이 여전히 건재했고 전륜구동 레이아웃, 그리고 새로 내놓은 모델인 디아망떼 또한 데보네어의 판매량에 악영향을 끼쳤다. 미쓰비시는 데보네어 판매량 회복을 위해 AMG 버전 등 여러 특별 사양들을 추가하기도 했지만, 판매량 회복에는 실패했다.
2.3 3세대 (1992~1999)
2세대 데보네어가 잘 안 팔리자, 미쓰비시에서는 후속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현대차와 공동개발했고 1992년 10월에 출시되었다. 변속기로는 INVECS 5단 자동변속기 하나만 트랙션 컨트롤과 같이 적용되었으며, 이전보다 훨씬 낮고 넓은 자세를 취했다. 가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3세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엔진은 V6 3.0L 6G72형 SOHC와 3.5L 6G74형 DOHC가 적용되었다. 영업용 차량에는 V6 3.0L LPG 엔진이 적용되었다. 서스펜션으로는 맥퍼슨 스트럿을 다시 개량해 사용했으며, 뒷바퀴에는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기술적인 부분들 다수는 미쓰비시 GTO와 같이 공유하는 것들이기도 했다.
편의장비로는 4륜 스티어링, 4륜 ABS, 전자 제어식 서스펜션, GPS 내비게이션, 후방카메라, 자동으로 닫히는 문, 세계 최초로 양산차에 적용된 거리 감지 시스템 등이 들어가 있었다. 그 중 거리 감지 시스템은 라이더(Lidar)[5]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Distance Warning"이라는 명칭 하에 판매되었다. 근처에 차량이 있다는 것을 감지해 알리는 기능이며, 일본 내수용으로 제공된 사양이다. 차량이 있다는 것만 통보하는 수준이었지만, 당대 미쓰비시의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트림 체계는 사양에 따라 익스큐티브 I/II/III과 익시드(Exceed), 익시드 콘테가(Contega), 익시드 타입 A/B/C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었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개편되었다. 3.5L 엔진이 장착된 차량은 전장이 약간 더 길었으며, 기본적으로 덩치가 상당히 커진 덕분에 5넘버 대신 3넘버 규정에 들어간 첫 세대가 되었다. 또한 디아망떼에 적용한 고급 옵션이 데보네어에도 대거 적용되어 고급차로서의 체면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뉴 그랜저로 판매된 한국에서는 잘 팔렸으나 일본에서는 당시 버블경제가 붕괴되던 시기였던 탓에 고급차 수요가 줄었고, 이는 처음부터 판매가 부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99년에 단종되면서 데보네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데보네어 후속의 이름은 프라우디아로 정해졌고, 리무진 버전은 디그니티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그리고 그 프라우디아마저 데보네어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버리면서 미쓰비시는 대형차 개발을 완전히 접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