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더 마인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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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e Armee Fraktion
Baader-Meinhof-Gruppe

1 개요

냉전중이었던 자본주의 독일의 불안과 실망들을 가장 잘 보여준 단체

서독의 좌익 급진파/테러리스트 단체.
정식 명칭은 Rote Armee Fraktion(로테 아르메 프락치온; RAF/적군파). 1967년 이란 팔레비 국왕의 서독 방문 반대 데모 진압 중에 학생인 베노 오네조르크(Benno Ohnesorg)가 경찰의 총에 살해된 것을 계기로 결성되었다.[1][2] 이름은 리더인 '안드레아스 바더(Andreas Baader)'와 '울리케 마인호프(Ulike Meinhof)'의 이름에서 따왔다.

2 상세

▲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에 등장한 이란 팔레비 국왕(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통칭 샤)의 서독 방문 반대 시위 장면

서유럽이 극좌 모험주의로 몸살을 앓는 중에서도 특히 바더 마인호프의 활약은 특기할 만하다. 체 게바라식 반제국주의모택동주의(Maoism)를 기치로 내걸고 은행강도, 폭탄 테러, 납치 처단, 영리 목적 유괴를 혁명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감행했다.[3]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급진파인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과 제휴해 각종 기술과 장비를 공급받았고 나중에는 일본적군파와 연대해 RAF로 개칭했다.[4] 바더 마인호프에게 처단된, 서독의 명사로는 서독 굴지의 은행이었던 드레스덴 은행 은행장인 위르겐 폰토(Jürgen Ponto), 독일 연방검찰총장 지크프리트 부바크(Siegfried Buback), 서독 경제인 연합회장 한스-마르틴 슐라이어(Hanns-Martin Schleyer) 등이 있고 후일 미합중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 사령관인 미합중국 육군 대장 알렉산더 헤이그도 바더 마인호프에게 살해당할 뻔했다.

워낙 유명한 데다가 활동이 두드러진 탓에 서독 경찰과 방첩 기관의 우선 표적이 되어 바더 마인호프를 지도한 두 사람이 체포된 후 이번보다 과격해져 이념에서 약간 멀어진 테러 조직으로 표류하기도 한다. 1977년의 루프트한자 비행기 납치(란츠후트(Landshut)호 사건)가 실패하고 지도하던 인사들이 옥중에서 자살[5]을 택한 뒤에는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의 현지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1980년대까지도 끈질기게 테러를 감행했으나 동유럽권 몰락 후 기반을 상실하고 동독에 잠복하던 주요한 조직원들도 대부분 체포당해 재판을 거쳐 교도소에 차례로 보내져 와해되었다. 극소수 잔여 세력이 프랑스벨기에에 잔류했으나 그 조직원들도 1998년 언론을 이용해 해체를 정식으로 선언한다.

부득이 명분론에 매몰된 혁명투사에서 권력에 이용된 이상주의자라는 시각까지 후일의 평가는 평가자의 계급의식을 좇아 다양하다. 물론 바더 마인호프가 자신들 입장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간주되는 사회를 급진적으로 실현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분명하나, 이들의 테러리즘과 과격함, 무자비함을 생각해 본다면 이데올로기를 떠나 쉽게 긍정할 수 없는 면모가 있다.
독일의 법률상 나치 부역 혐의와 더불어 살인에는 공소시효가 없기에 지금도 바더 마인호프 소속 조직원들은 수배범으로 명시되어 있고 심지어 2009년에도 바더 마인호프 조직원이 살인 혐의로 체포당한 적이 있다. 독일에는 사형제도가 없기에 사형당한 바더 마인호프 조직원은 없으나 대부분은 지금도 특별 격리 대상으로서 분류되어 무기수로서 교도소에서 생활하지만, 전향하거나 출소한 일부는 독일 행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면서 일코일반인으로서 생활하기도 한다.

바더 마인호프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현재 유럽에 남은 극좌 조직은 이탈리아붉은 여단이 명맥을 겨우 유지한다.

바더 마인호프를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 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세미 다큐멘터리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Der Baader-Meinhof Komplex)>(2007)도 나와 있다. 독일 영화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고 시대 고증도 아주 잘 되어 있어 서독의 자유주의나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을 연구하고 싶은 사람이 보면 유익한 수작이다.[6]


▲ 영화 <바더 마인호프>의 영어 버전 트레일러 독일어 버전 트레일러

사족으로, 붉은 여단의 총리 알도 모로 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 <굿모닝 나잇(Buongiorno, notte)>(2003)과 함께 감상하면 양국의 관점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 상당히 재미있다. 이 영화도 상당한 수작.
  1. 2009년, 익명을 요구한 전직 슈타지 요원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총을 쏜 경찰관은 슈타지에 포섭된 자로, 서독에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자 일부러 총을 쏘았다고 주장했으나 이 익명의 주장 말고는 물증은 없다.
  2. 또한 당시 독일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상당히 보수스러웠고 독일에선 베노 오네조르크의 피살을 계기로 보수스럽고 권위스러운 사회에 저항하는 68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3. 이 녀석들이 일으킨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독일 언론이 독일의 가을(Deutscher Herbst)이라고 칭한다. 대표적 사건으로 "위르겐 폰토와 지그프리트 부박 암살사건", "한스-마르틴 슐라이어 유괴사건", "루프트한자 181편 납치사건(일명: 란츠후트호 사건)" 자세한 것은 GSG-9의 '마법의 불꽃 작전'항목 참조, "RAF 멤버의 옥사(獄死)" 및 "한스-마르틴 슐라이어의 보복살해"로 꼽는다.
  4. 그런데 RAF는 Royal Air Force. 즉 영국 공군의 약자이기도 해서 이것이 의도된 작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독일인들에게 밤마다 융단폭격을 쏟아붓던 영국 공군은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물론 먼저 시작한건 그쪽 대빵이었지만
  5. 울리히 마인호프는 1976년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 안드레아스 바더는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 사건이 GSG-9에 의해 진압당했다는 보도를 라디오로 들은 직후 권총으로써 자살했다. 감방 내에 권총이 있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안드레아스 바더의 죽음은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에 의한 사형집행이라는 음모론이 있다.
  6.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감독한 울리히 에델이 감독했다.